최근 ‘티타늄’을 적용한 최신 아이폰15 프로 시리즈가 새삼 화제로 떠올랐다.
애플은 지난 12일(현지시각) 신제품 발표장에서 아이폰15 프로에 아이폰 역사상 가장 가볍고 뛰어난 내구성을 지닌 티타늄 소재를 사용했다고 밝혀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열흘 후 한 유명 IT 유튜버(‘애플트랙’)가 아이폰 신·구 제품 비교 낙하 실험을 가지면서 세상은 또한번 놀랐다. 이 유튜버는 티타늄 사용 신제품(아이폰15프로)보다 스테인레스 스틸을 사용한 전작(아이폰14 프로)이 튼튼하다는 것을 제시했다. 최고 6.1m 높이에서 다각도로 여러차례 두 스마트폰을 낙하 실험한 영향은 작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고급 아이폰15 프로버전에 ‘티타늄’ 소재를 적용함으로써 가볍고, 우주에도 갈 정도로 튼튼하며, 더 비싼 이유가 된다는 식으로 제품을 소개한 애플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사상 최대의 단말기 내구성을 장담한 애플을 당황하게 만든 티타늄 소재가 대체 뭐길래?
많은 사람들이 ‘티타늄’이란 소재에 대해 알루미늄처럼 가볍고 튼튼하고 그래서 항공우주 소재로 사용되며, 가격이 비싸다는 것 정도로 알고 있다.
아이폰15 티타늄 내구성 소동을 계기로 인류를 놀라게 한 티타늄의 마법같은 특징들과 그처럼 비싼 이유를 알아봤다. 이와함께 냉전시대(1950~1980)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공우주와 군사분야는 물론 민간분야에서 마법처럼 활용된 가장 놀라운 사례와 일화도 살펴봤다.
① 쓸모없는 금속에서 미래 첨단소재로
② SR 71-우주선 연료탱크-구겐하임
애플을 당황시킨 역대급 내구성 소재인 ‘티타늄’
“아이폰 사상 최초로 항공우주 등급의 티타늄 디자인을 채택한 아이폰 15 프로. 화성 탐사선에 쓰이는 소재와 동일한 합금을 사용했습니다. 금속 중 비강도(space-to-weight ratio, 강도대 중량비율)가 가장 탁월한 것으로 손꼽히는 티타늄을 사용한 덕분에 아이폰 15 프로는 역대 프로 모델 중 가장 가볍습니다. 기기를 집어드는 순간, 가벼워진 무게감이 확연히 느껴지죠.”
애플 공식 웹사이트는 아이폰15 시리즈 발표 이후 홈페이지에서 ‘아이폰15 프로’급 단말기에 사용된 티타늄 소재에 대해 이처럼 설명했다.
많은 이들이 이 설명 문구 가운데 ‘항공우주 등급의 티타늄’, ‘화상 탐사선에 쓰이는 소재와 동일한 합금’, ‘금속중 비강도가 가장 탁월한’, ‘역대 프로 모델 중 가장 가볍습니다’라는 부분에 대해 애플을 믿었다. (비강도(specific strength, 比强度)란 재료의 강도를 비중량(比重量)으로 나눈 값으로서 가벼우면서 튼튼한 재료가 요구되는 분야에서 그 척도를 나타내기 위한 값이다.)
그런데 한 유튜버의 낙하충돌 비교 실험에서 맥없이 깨지는 약한 아이폰15 프로의 모습은 애플이 신제품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사실 애플이 아이폰15 프로급에 적용한 티타늄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티타늄 그레이드5(5등급 티타늄)’다.
이 합금은 티타늄이 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티타늄 합금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알파-베타 합금으로 분류되며 알루미늄 6%, 바나듐 4%, 미량의 철로 구성된 합금이다. 이 합금은 구성 성분을 약자로 써서 ‘Ti 6AI-4V’로도 쓴다.
5등급 티타늄은 강도는 매우 높지만 연성(ductility, 延性)이 비교적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성은 탄성 한계를 넘는 힘인데 당기면 파괴되지 않고 늘어나서 소성변형하는 성질을 말한다. 몇가지 금속의 연성크기를 보면, ‘금>은>알루미늄>구리>백금>납>아연>철>니켈’의 순서다.
또한 5등급 티타늄은 순수한 티타늄에 비해 훨씬 높은 인장 강도와 높은 압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5등급 티타늄은 내부식성보다 강도가 더 중요할 때 사용한다. 이 합금의 주된 용도는 항공기와 우주선 제작에 있다. 이 합금은 용접도 가능하다. 다만 납땜은 할 수 없고 레이저 용접기로 용접할 수 있다. 이 금속의 녹는 점은 무려 1660°C다.
더 강한 티타늄 합금 사용해야 했을까?
5등급 티타늄보다 더 강한 티타늄 합금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강도도 강도지만 그 강도와 함께 얼마나 충격을 흡수하느냐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한 IT유튜버의 아이폰15프로와 아이폰14프로 낙하 실험 결과는 티타늄이 강하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이 유튜버의 실험은 금속 소재 자체가 충격을 얼마나 흡수하는지도 강도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애플이 아이폰에 더 강한 티타늄 합금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5등급 티타늄 다음 단계인 티타늄 6246(6-2-4-6)도 있다. 티타늄 6246(6-2-4-6)은 고강도 응용 분야, NACE MR0175/ISO 15156을 충족하는 재료가 필요한 응용 분야 및 5등급 티타늄보다 더 강도가 필요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NACE MR0175/ISO 15156 재료는 내균열성 탄소강 및 저합금강, 주철, 내균열성 합금 및 기타 합금을 포함한 내균열성 재료를 선별하기 위한 일반적인 재료 요건과 이황화수소 함유 환경에서 사용되는 장비에 대한 세부 요건을 규정한 표준이다.)
티타늄 6246은 고강도로 열처리할 때 5등급 티타늄보다 반응성이 좋다. 이밖에도 2등급, 7등급, 9등급, 12등급, 28등급, 29등급 티타늄을 포함한 다양한 티타늄 합금이 있다.
물론 최종적으로 고객들의 스마트폰에 어떤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최적일지 판단하고 적용하는 일은 제품 설계 제조사인 애플의 몫이다.
그렇다면 순수 티타늄은 어떤 금속원소일까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로 변신한 티타늄
티타늄은 높은 내구성과 가벼운 성질 등으로 인해 영구불변의 물질로도 여겨진다.
산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고순도 티타늄을 생산하는 공정 개발은 초창기 이래 지지부진했다. ‘티타늄’이란 금속 이름이 명명된 지 1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인 1940년대에야 산업적 양산 추출 공정이 나올 정도로 지난한 과정이었다. 1950년대가 돼서야 우주항공과 군사 및 산업계에서 고강도, 고내구성, 연성 등으로 인기를 얻는 고순도 티타늄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미소 냉전기간 중인 1960년대가 되자 두나라의 항공우주 분야 활용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티타늄의 원래 이름은 1791년 명명돼 1795년까지 불린 메나신(menaccine)이었다. 메나카나이트 광석에서 이 금속을 발견한 영국 화학자이자 광물학자 윌리엄 그레고르가 1791년 명명했다. 1795년에 독일 화학자 마틴 클라프로스가 이 금속을 금홍석이란 암석에서 발견하면서 티타늄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왜 순수한 티타늄을 대규모로 정련하기가 그리 어려웠을까.
많은 티타늄 발견자가 있었지만 이 금속이 자연에서는 순수한 티타늄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산소를 포함한 티타늄 화합물, 즉 하얀 결정 가루인 ‘산화티타늄’의 형태로 이 금속원소를 발견했다. 이로부터 순수한 티타늄을 분리해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러시아 과학자 키릴로프가 1875년 금속 형태의 티타늄을 얻을 수 있었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고 순수한 티타늄 추출 노력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1910년 헌터라는 미국 화학자가 당시 순수한 티타늄 수 g을 얻었다. 불행히도 이또한 불순물을 미량 함유하고 있었다. 불순물이 들어간 티타늄은 깨지기 쉽고 잘게 부서지며 기계공작에 사용하기엔 부적합한 금속이었다. 헌터는 티타늄에 “쓸모없는 금속”이란 오명을 씌웠다. ‘미운 오리새끼’같은 금속이었다.
1925년 이 쓸모없는 금속에 반전이 일어났다.
네덜란드 과학자인 반 아르켈과 드보어가 고순도의 티타늄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티타늄은 매우 유연성이 높고 철처럼 용광로에서 제련될 수도 있었기에 얇은 판이나 가느다란 선, 봉의 형태로 변형이 가능했다.
그리고 1940년대에 미국의 과학자 크롤은 산업적으로 이용가능한 티탄 생산 공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1950년대가 되면서 비로소 채산성이 맞아 떨어지는 양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미운 오리새끼같던 금속이 백조로 변했다. 이어 티타늄의 기술적 적용 분야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0년대가 되자 냉전을 맞은 미소 양국의 항공우주 분야 티타늄을 사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보다도 많은 생산량을 갖고 있는 국가가 구 소련이었다.
튼튼하고 가볍지만 비싼 ‘경이의 금속’
원광석에서 추출공정을 통해 불순물이 제거된 후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티타늄은 과학자들에게 경이의 대상이었다.
티타늄은 같은 질량의 철에 비해 무게는 절반, 강도는 그보다 뛰어났다. 강도면에서 티타늄과 견줄 상대가 산업적 금속중에는 거의 없다.
다방면에서 사용되고 있는 알루미늄은 무게가 티타늄보다 1~1.5배 가볍지만 강도는 6분의 1에 불과해 많은 자리를 티타늄에게 양보해야 했다.
특히 알루미늄 합금의 강도는 300°C에서 현격히 떨어지지만 티타늄의 경우 520°C라는 높은 온도에서도 특유의 강도를 유지하며 합금일 때는 650°C까지도 버틴다.
티타늄은 아주 단단해서 알루미늄보다 12배나 단단하며 철과 구리에 비해선 4배나 단단하다.
티타늄의 휘는점은 알루미늄보다 18배, 철보다 2.5배 더높다. 금속의 휘는 점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계부품의 부하 저항성은 더 뛰어나며, 부품의 형체와 부피를 더오랫동안 유지한다.
티탐타늄은 또한 강력한 내 부식성을 갖는다.
티타늄판을 바닷물 속에 10년 동안 넣어두어도 한 점의 녹도 생기지 않는다. 같은 양의 철을 그렇게 하면 남아있는 철이 하나도 없이 다 부식돼 없어질 것이다
수중 함정 설계자들이 항공산업계나 화학플랜트 공학자들처럼 티타늄에 애착을 갖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조선산업에서 티타늄 합금 셸은 주로 심해 잠수정 및 잠수함 등에 적용되고 있으며, 티타늄 합금은 높은 비강도와 우수한 내식성, 비자성(非磁性)을 가지고 있어 심해장비용 내압셸 제조용 소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티타늄은 화학플랜트 공정에서도 화학적 반응성에 안정적이어서 인기다.
일례로 주철, 스테인레스강철, 티타늄 세가지로 만들어진 펌프들을 화학적 반응성이 큰 액체에서 실험한 결과가 있다. 이 액체들을 펌프로 뿜어올리는 실험을 쉬지않고 이어간 결과 주철은 3일간, 스테인레스강은 10일간 그리고 티나튬은 반년간 계속 아무 이상없이 작동됐다.
티타늄은 염소, 황산 질산등과 같이 화학적 반응성이 큰 매질에서 작동하는 부품을 생산하는데 매우 뛰어나다. 티타늄 노즐은 황산가스를 포함한 여러 뜨거운 기체속에서 두달 이상 작동하지만 스테인레스 강철로 된 노즐은 그러한 상황에서 몇시간밖에 지탱하지 못하고 망가진 사례도 보고됐다.
하지만 이처럼 훌륭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가치있는 금속이 왜 강철이나 알루미늄처럼 산업적으로 널리 쓰이지 못할까.
한마디로 높은 티타늄 가격 때문이다. 철 가격의 10~15배에 이른다.
금이나 다이아몬드처럼 지구상에 있는 희귀한 자원이어서가 아니다. 지구상의 티타늄 양은 구리,아연, 납, 금, 은, 백금, 크롬, 텅스텐, 수은, 몰리브덴, 미스무드, 안티몬, 니켈, 주석을 모두 합한 양보다도 몇배나 많다.
그럼에도 티타늄이 비싼 이유는 티타늄을 원광석에서 분리해 순수하게 정제해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화학적으로 가장 안정된 물질인 점이 오히려 널리 활용하기 위한 추출공정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티타늄은 점점더 미래의 금속으로 여겨지고 있다.
티타늄의 높은 강도와 높은 융점으로 우주 항공 및 우주 탐사에 점점더 중요한 재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건 스탠리에 따르면 오는 2040년까지 우주 산업 매출이 1조 달러(약 1330조원)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세계 우주 경제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