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리, 너 정말 괜찮은 거니

이것은 투자인가 대출인가

난 3월 23일 에이블리의 신규 투자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규모는 500억 원 정도로 알려졌고요. 얼핏 소식을 접했을 땐 투자 혹한기 속 선방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요. 자세히 보니 뭔가 이상했습니다. '벤처 대출'이라는 희한한 방식으로 진행된 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벤처 대출'은 보통 스타트업에게 대출을 해주고, 대출 금액의 일정 비율을 이자처럼 해당 회사의 주식으로 받는 형태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에이블리는 대출이지만 투자 방식 중 하나이고, 구글, 페이스북, 에어비엔비, 스포티파이, 우버 등도 받은 사례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요. 일각에서는 엄밀히 말해서 투자가 아니라 대출이라며, 너무 이를 포장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에이블리의 새로운 자금 수혈을 어떤 성격으로 해석하느냐도 물론 중요한 문제이지만요. 결국 핵심은 과연 에이블리의 사업 전망이 앞으로 좋을 것이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의 성과만 좋다면, 대출이든 투자든 상관없을 테니까요. 반면 성장이 멈추거나 수익성이 개선되지 못한다면 설혹 투자였다고 하더라도, 파국을 막을 순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에이블리는 현재 잘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도 하고 수익성도 개선시킬 수 있을까요?

충분히 성장하고 있진 않습니다

현재 공개된 에이블리의 지표들은 나쁘지 않습니다. 언론에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연간 거래액 1조 원을 돌파했다고 하고요. 턱걸이로 도달했다고 가정해도, 22년 연간 성장률은 무려 43%에 달합니다. 이는 통계청에서 제공한 의복 카테고리 온라인 쇼핑 거래액 성장률인 11% 대비 4배나 높은 수치이고요.

하지만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솔직히 에이블리가 보여준 성과가 압도적이라 말하기 뭔가 애매합니다. 우선 가장 강력한 라이벌 지그재그보다는 성장률이 높았던 것 같긴 한데요. 최근 여성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 트렌드에 힘입어 무섭게 크고 있는 29CM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고, W컨셉도 비슷한 수준으로 거래액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수년 전부터 에이블리와 지그재그는 모두 브랜드 패션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었는데요. 따라서 이와 같은 온라인 편집샵들의 질주가 달가울 리가 없습니다. 동대문 기반으로는 한계가 있고, 브랜드 확장은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니 고민이 깊어질 것 같은데요.

더 큰 문제는 그렇다고 수익성 강화를 시도하기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겁니다. 다행히 이번 추가 자금 수혈 소식과 함께 배포된 홍보 자료에 의하면, 에이블리는 월간 기준으로 손익 분기점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를 유지하거나, 혹은 이익 규모를 늘려나가기엔 에이블리가 가진 근본적인 비즈니스 구조의 한계가 걸리는데요. 우선 기본적으로 에이블리는 동대문 기반의 저가 상품이 주력이기 때문에, 마진 자체가 박합니다. 더욱이 상당수의 셀러가 사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제조 기반 브랜드에 비해 가져가는 몫이 더욱 작을 수밖에 없고요. 설상가상으로 원가마저 상승하며 이마저도 통제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직접 생산을 하는 데다가, 브랜드 가치 기반의 프라이싱으로 안정적인 마진을 확보한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이들로부터 충분한 수수료를 수취하는 온라인 편집샵들과의 경쟁에서 더욱 불리할 수밖에 없고요.

특히 물류비 증가는 전 상품 무료배송을 지향하는 에이블리로써는 매우 치명적인데요. 근 CJ대한통운을 비롯하여 주요 택배사들은 지속적으로 요금을 인상하고 있습니다. 혁신의숲이 제공한 데이터에 따르면 에이블리의 평균 구매 단가는 4만 원 초반대로, 지그재그(6만 원 대 초반), 29CM(7만 원 대 후반), W컨셉(12만 원대 초반) 등 타 플랫폼에 비해 상당히 낮은데요. 이렇듯 적은 장바구니 금액으로 물류비까지 감당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여러 사유들로 인해, 아무리 허리띠를 조인다고 해도, 현재는 에이블리의 분기 혹은 연간 단위의 BEP 달성도 어려워 보이는데요.

버티기 모드를 넘어 돌파구를 찾아야

그렇기에 일단 에이블리는 버티기 모드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작년 12월에 무료 정책을 폐기하고 3%의 판매 수수료를 부과하기 시작했고요. 여러 논란을 각오하고 500억 원이라는 현금을 추가로 확보한 것 역시 우선 런웨이를 어떻게든 늘리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제 중요한 건, 이처럼 어렵게 확보한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무리한 외형 경쟁보다는 내실 확보, 특히 에이블리 파트너스의 운영 최적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그간 에이블리는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고,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외형 규모를 성장시키고, 지그재그를 제치고 1위 자리에 오르는 걸 지상 과제로 삼은 듯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지그재그를 서서히 앞서기 시작했지만, 온라인 편집샵들이 새로운 경쟁자로 대두되었고요. 수익성을 증명하지 않고서는 투자를 받기 어려운 시기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에이블리가 플랫폼으로써의 가치도 가지고 있지만, 상품 사입부터 물류까지 대행해 주는 파트너스 운영 역량이야 말로, 에이블리만의 특장점이라 생각하는데요. 오히려 19년부터 21년까지 3년 연속으로 매출총이익률은 하락하면서, 관리 역량이 발전한다는 인식을 주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물류 관리 역량을 키워, 이 부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매출총이익률이 개선된다면, 당연히 수익성도 따라서 좋아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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