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엔비디아는 반도체 역사상 가장 큰 400억 달러(약 48조 원) 규모의 암(ARM) 인수를 포기할 것인가.
지난달 25일 블룸버그가 엔비디아의 암 인수 포기설을 전하면서 엔비디아의 거취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심지어 포기가 이익이라는 분석까지 나온 마당이다. 왜 2년만에 이런 얘기가 나올까. 물론 제반 정황상 인수 포기 가능성이 설득력 있지만 어디까지나 소식통의 말을 전한 보도로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거래 불발 보도에 대해 엔비디아 대변인은 “우리는 이번 거래가 암을 가속화하고 경쟁과 혁신을 촉진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최근 규제 서류에 상세히 표현된 견해를 계속 견지하고 있다”고 말해 여전히 인수 가능성 여지를 남겨놓았다. 하지만 이 설득력 있는 보도는 세계 반도체 업계가 기득권을 지키고 특정 업체에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묘한 신경전을 읽게 하기에 충분하다.
엔비디아-암 불발설이 나온 배경과 향배에 대해 알아본다.
요약하자면 반도체 업계의 반발, 각국 독점 규제 당국의 부정적 시각, 여기에 더해 인수 합병 기간 장기화에 따른 비용 증가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수를 하지 않고도 우량기업 엔비디아의 발전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주식시장 주가추이도 보도후 잠시 출렁이다가 다시 안정세로 나아가고 있다.
엔비디아가 암 인수하면 CPU 주도권 확보
우선 2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엔비디아의 암 인수 결렬설이 나오게 된 배경을 알려면 사상 최대 규모의 반도체 회사 인수 시도 배경부터 살펴봐야 한다.
엔비디아가 400억 달러에 암 홀딩스(Arm Holdings)를 인수할 계획을 처음 발표했던 때가 어느덧 2020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엔비디아는 소프트뱅크가 320억달러(약 38조 4000억원)에 인수한 암을 80억달러(약 9조 6000억 원)나 더 얹어 인수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 거래는 표면상 세계 최고의 그래픽 칩(GPU) 설계업체인 엔비디아와 3위 암(GPU 말리 설계)을 합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인수합병의 중심에는 칩에 사용되는 CPU 코어가 있다.
실제로 암의 CPU 표준 칩 설계(아키텍처)는 전 세계 스마트폰의 95%에서 볼 수 있다. 암의 칩 표준설계(아키텍처)는 전 세계 스마트폰의 95%에서 발견되며, 500개 이상의 회사가 암으로부터 CPU 아키텍처 사용허가를 받아 칩셋 설계를 한다.
암은 스마트폰 칩 분야를 진전시키는 디자인으로 세상을 변화시켰지만 이제는 컴퓨터쪽으로 도 영역과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애플이 컴퓨터에서 최초의 암 아키텍처 기반 칩셋을 사용한 컴퓨터들을 선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꽤 유망해 보이기까지 하다. 애플이 인텔 x86 컴퓨터를 완전히 대체하기 시작한 애플 M1 칩이 그것이다.
이는 테그라 시리즈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그래픽 카드들 중 일부의 배후에 있는 엔비디아가 CPU부문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이로써 암의 칩 아키텍처를 라이선스하는 유명 회사 고객 목록에 애플, 퀄컴, 삼성같은 거물 회사들이 나란히 포진하게 됐다. 엔비디아-암 거래가 반도체 역사상 가장 큰 거래가 되리라는 점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같은 암의 중요성 때문에 산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엔비디아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질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 인수에 퀄컴과 같은 회사들이 반대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퀄컴은 엔비디아가 일단 암을 인수하면 퀄컴과 같은 다른 회사에 CPU 코어를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았다.
물론 엔비디아는 인수 후에도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하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이같은 업계의 반대는 엔비디아가 암을 인수하기 위한 거래을 막던 최대 장애물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며 독점당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보인다.
급격히 불거진 규제당국의 반독점 규제 장벽
블룸버그의 보도 가운데 주목되는 대목은 ‘엔비디아가 규제당국과 지속적인 협의에도 불구하고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것임을’ 파트너들에게 조용히 알려왔다고 전한 점이다.
엔비디아의 암 인수는 세계최대 CPU 표준설계 소유권이 비 반도체 회사(소프트뱅크)에서 반도체회사(엔비디아)로 넘어간다는 점에서 반독점 규제당국의 엄중한 규제 칼날 아래 놓일 수 밖에 없다.
암 CPU 표준설계(아키텍처)가 세계 휴대폰의 95%에 들어 가 있다는 점은 독점 가능성과 직결돼 있다. 이러한 중요성과 거래의 규모 때문에 각국의 여러 규제 기관들이 이 계약을 승인해야만 엔비디아의 암 인수 거래가 종결된다.
그런데 각국 규제기관의 반응은 영 마뜩지 않다.
실제로 엔비디아가 암 인수 후 기존 비즈니스모델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그리고 중국의 규제 기관들은 현재 이 거래를 막으려 하고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이 거래가 반도체 업체 간 경쟁을 막을 것을 우려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게다가 암 본사가 있는 영국 정부도 제안된 거래에 깊이 들여다 보기로 결정했다.
중국정부는 다른 나라 규제당국이 이 거래를 승인할 경우 이를 저지할 태세다.
거래 제안 2년이 지났건만 이 거래에는 여전히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중국 등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이 국가들은 아직 엔비디아-암 인수 거래를 승인하지 않았다.
게다가 퀄컴, 애플,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으로 구성된 한 그룹은 공동으로 규제 기관에게 거래를 거절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대목에서 퀄컴이 자동차 반도체 주력인 NXP반도체를 440억달러(약 52조 8000억 원)에 사들이려 했다가 불발된 건이 연상된다. 퀄컴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중국의 승인뿐이었지만, 퀄컴은 2년간의 기다림 끝에 결국 NXP인수를 포기했다.
엔비디아, 즉각 거래 중단이 오히려 이득?
엔비디아는 이번 계약이 성사되면 데이터 센터용 칩에 대한 추진력으로 활용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엔비디아가 이 거래를 중단한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를 통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만 증시 분석가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이들은 엔비디아가 굳이 암을 인수하지 않아도 단독으로 비즈니스를 운영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 회사 시가총액 5000억달러(약 600조 원)가 넘게 만들면서 이 회사를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미국 기업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큰 회사는 이번 거래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번창할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암을 매물로 내놓은 현 소유주 소프트뱅크는 회사 기업공개(IPO)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하나. 엔비디아가 오히려 암초투성이인 암 인수 시도를 지금 중단할 경우 오히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현재로선 서로 엇갈리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공식 해명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협상이 확정될지 안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일단 암과 소프트뱅크 모두 새로운 보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주식시장의 반응은 이 보도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응을 읽는 주요 지표가 된다.
두 회사 주가는 지난 15일 보도이후 잠시 출렁였다가 다시 안정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엔비디아의 암 인수 불발 보도의 충격이 흡수됐거나 아니면 이를 인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인수건과 별도로 암은 이제 막 암 v9(ARMv9) 아키텍처로 모바일 기기 부문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향후 누가 소유주가 되던 앞으로 몇 년 동안 여전히 이 산업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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