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 노타임투다이' 첨단 나노로봇···가능성은 불임부부에까지

영화 007시리즈물에는 항상 당대의 최첨단 기술이 등장한다. 미국과 소련 냉전이 한창인 1962년 10월 5일 영국 런던에서 상영된 ‘닥터노’가 시작이었다. (1962년 10월 22일~11월 2일 소련이 미국 플로리다 남쪽 230km에 있는 쿠바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하면서 핵전쟁 직전까지 갔다.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다.) 제작자들은 미소 냉전을 다루기보다는 항상 국제 악당 조직 ‘스펙터’를 등장시켰다. 007 영화의 단골 소재는 핵폭탄 탈취였지만 부수되는 첨단 무기와 첨단 기술도 항상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암호해독장치, 재활용 우주선, 우주왕복선, 전자기 펄스 무기, 음성 인식 SW, 레이저총, 투명망토의 원리, 제트팩, 스텔스 전함, 궤도 거울 위성, RFID 칩같은 첨단 기술들을 007에서 볼 수 있었다.

최근 개봉한 007시리즈 25탄 ‘노타임투 다이’역시 다르지 않다. (*약간의 스포 있음.)

▲007에서는 특정인의 DNA에만 작용해 생명을 빼앗는 나노로봇이 등장한다. 사진은 영화속에 등장하는 악당 사핀의 비밀 정원 내 독약(나노로봇) 배양지. (사진=유니버설 픽처스)

영화에서 본드 일행이 버려진 나토 미사일 기지(악당의 비밀 실험실)에 잠입해 실내에 던져놓는 3D지도제작 장치를 보면 자율차의 라이다 기술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영화 프로메테우스(2012)에서 행성 탐사대원들이 미지의 외계 구조물 속에 드론을 띄워 3D 공간 지도를 사령선에 전송시키는 장면과 겹친다.

또한 노타임투다이에선 C-137에서 발사돼 공중은 물론 수중까지 누비며 악당기지로 침투하는 멋진 가변익 글라이더도 등장한다. 이외에 강력한 통신 능력을 갖춘 악당들의 인공눈은 마치 통신 기능을 가진 혼합현실(MR) 기기의 의안 버전인 듯 해 참신해 보인다. 하지만 눈없는 악당들에게나 요긴하다.

전작 ‘스펙터(2015)’에서 폭탄 기능으로 본드를 살린 시계가 이번 편에서도 강력한 통신전파 발사 기능을 발휘하며 본드를 위기에서 구한다. 하지만 시계도 이젠 진부해 보인다.

▲전작 스펙터(2015)에서는 본드가 블로펠드에게 고문받는 가운데 시계로 비밀 기지를 폭발시켜 탈출한다. (사진=소니픽처스)

이번 편에서 007 스토리를 이어가는 가장 주목받는 첨단 기술은 ‘나노로봇’이다.

이 나노로봇은 M16의 수장 ‘M’의 지휘하에 만들어진 것인데 탈취당한다. 처음엔 특정인의 DNA에만 반응해 사용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스펙터의 수장 블로펠드(크리스토퍼 발츠 분)는 자신의 DNA에만 작용하게 만들어진 나노로봇 물질에 접촉해 죽게 된다. 본드도 결국엔 나노로봇에 감염된다. 이 때의 나노로봇은 누구에게나 맹독을 전달해 생명을 앗아가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본드의 여자 친구 레아 세이두와 딸은 물론 누구라도 그와 접촉하면 죽는다. 악당 사핀(라미 말렉 분)은 자신의 실험실에서 배양한 나노로봇을 수백만명을 죽이려는 고객에게 팔려 하고, 본드는 이를 막으려 한다.

영화에서 ‘Q’는 007에게 “한번 몸에 들어온 나노로봇은 절대 못 빼낸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노로봇은 인체 밖으로 배출될 수 있도록 만든다. 영화에서와 달리 현실의 나노로봇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한 연구에 사용되고 있다.

아직까지 인체 내에 돌아다니는 마이크로로봇, 나노로봇 활용은 연구 수준이어서 대중적 실용화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듯 하다. 그러나 007영화에 나노로봇이 등장했다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 등장할 선행 지표로 봐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했듯이 과거 007 시리즈에 등장한 레이저총이나 재활용 우주선, 우주 왕복선 등 많은 신기술들이 현실이전에 영화에서 실현됐다.

영화속 첨단 기술로 등장해 궁금증을 자아내는 나노로봇이란 무엇일까.

▲악당 블로펠드는 예기치 않게 특정인의 DNA에만 작용하는 나노로봇으로 죽게 된다. (사진=유니버설 픽처스)

나노로봇은 무엇이며 활용 방식과 잠재력은 어느 정도일까?

나노기술은 100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미만의 물체를 만드는 과학 및 응용분야로 정의된다. 이 때 1마이크로미터는 1mm(나무연필의 가는 촉)의 1000분의 1, 1나노미터(nm)는 1마이크로미터의 1000분의 1에 불과한 크기다. 머리카락이 0.05~0.07mm(50~70마이크로미터)인 것과 비교된다.

나노로봇은 흔히 아주 작은 크기의 로봇을 말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마이크로로봇과 나노로봇 둘로 나누기도 한다.

자연계에 있는 생물체로 비교하자면 마이크로로봇은 대략 박테리아 크기인 반면, 나노로봇은 대략 그보다 작은 바이러스 크기다.

▲왼쪽부터 0.1나노미터 크기의 원자에서 세포, 인간의 크기 비교. 그림 아래 왼쪽에 광학현미경과 전자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한도가 표시돼 있다. (사진=바이오라이브라텍스트닷오알지)

이처럼 작은 나노로봇은 뭐하는데 쓰려고 만들까.

과학자들은 나노로봇을 보안, 의료, 기기 등에 사용하고 싶어한다.

영화에서처럼 신체에 사용된다면 의료용이다. 의료진은 이 경우 인체 내의 혈전을 제거하고, 인간의 세포를 탐사하거나, 심지어 불순물 액체를 제거하길 원한다. 나노로봇은 또한 물 속의 미세 공해 물질을 파괴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연구실에서는 마이크로로봇을 질병 발생지 근처에 전달할 수 있는 마이크로 카데터를 만드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 때 마이크로로봇은 나노로봇 장치를 전달해 약물을 공급하거나, 플라크를 분해하거나, 혈전을 제거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약물 전달 물질 역할을 위해 인간의 뇌에 주입되기도 했다. 향후 더많이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분자 크기의 나노로봇은 인체 내에 약물을 투입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사진=카네기멜론대)

마이크로로봇은 탄소와 금속 성분을 포함한 다양한 화학물질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로봇들이 주로 인체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 대개 인체 장기와 호환되는 물질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철 분자를 사용한 마이크로(또는 나노)로봇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철은 생체 적합성을 가지고 있고, 자기장을 이용해 철 분자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연구자들이 나노로봇을 자기장으로 조정해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키고 복잡한 신체 혈관 속을 돌아다니게 하고 싶어 하는 일반적 희망사항과도 맞아 떨어진다. 실제로 나노로봇 연구자들은 모든 혈관의 로드맵을 만들고 그 경로를 따라 이 방식으로 나노로봇을 이동시킨다.

일부 나노로봇 연구 그룹은 이콜라이(e-Coli) 같은 특정 박테리아 편모 꼬리의 크기와 수영 능력을 모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꼬리는 지름이 약 40~50nm에 이르며 분당 수백 번 회전하는 모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자연 속에서 진화해 온 일종의 나노로봇 메커니즘이다.

브래드 넬슨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ETH취리히) 로봇 공학과 교수는 지난 5월 유럽연합(EU)의 기술혁신잡지 ‘호라이즌’과의 인터뷰에서 “감염과 싸우기 위한 항체의 생성을 자극하기 위해 세포에 주입되는 마이크로RNA를 사용하는 코로나19 백신도 나노로봇 메커니즘의 한 종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분자 메커니즘을 모방할 수 있는 더 복잡한 장치를 만들려 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노로봇이 정자를 난자로 수정시켜 주는 실험 성공

앞서 언급된 이콜라이 같은 특정 박테리아 편모 꼬리의 크기와 수영 능력을 모방한 나노로봇 개발은 또다른 실용적 용도로 관심을 모은다. 언젠가는 남성 정자 무력증으로 불임을 겪는 부부들에게 도움을 주게 될 것이란 기대감이 그것이다.

정자의 임무는 간단하다. 결국 난자로 헤엄쳐 가서 유전 물질을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건강한 정자라도 난자까지 헤엄쳐 갈 수 없다. 모든 남성의 약 7%가 이로 인한 불임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정자무력증 치료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6년에 시행돼 학술지 ‘나노 레터스’에 발표된 한 연구는 미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술의 본보기가 됐다.

▲나노로봇이 정자를 난자에 수정시킨 모습. (사진=미화학학회)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IFW의 통합 나노과학 연구소 연구팀은 정자가 난자로 갈 때 더 잘 헤엄칠 수 있도록 하는 작은 마이크로 로봇을 개발했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정자를 태우는 택시 역할을 한다. ‘정자로봇들(spermbots)’로 불리는 이 작은 마이크로모터는 기본적으로 정자의 꼬리를 감싸는 나선형의 금속 조각이다. ‘(정자) 탑재형 전원 공급 장치’ 역할을 하는 이 모터는 정자가 난자로 쉽게 헤엄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자기장을 통해 정자를 이동시킨다.

연구원들에 따르면 정자가 수정하기 위해 난자와 접촉하면 모터가 바로 떨어져 나간다. 나노 모터를 제어하는 자기장은 어떤 관련 세포에도 해를 끼치지 않기에 살아있는 조직에 사용하기에 이상적이라고 한다. 실험에서 이 나노 모터는 건강한 정자를 한 곳에서 난자로 옮기는 데 성공하면서 정자 손상을 최소화했다.

이 과정은 불임부부가 시험관 아기 시술을 위해 매 번 수천 달러(수백만원)의 비용이 드는 의학적 도움을 받는 체외 인공수정 같은 방식에 비해 비용이 덜 들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독일연구진이 실험에 성공한 정자를 나르는 나노로봇. (사진=미화학학회)

하지만 이 나노기술은 아직 실용적이지 않아 인간 실험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또한 연구원들은 여성의 면역체계가 몸에 주입된 마이크로모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때때로 이 작은 나노모터 로봇들이 정자 꼬리에 달라붙어 정자를 난자로 착상시키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연구는 스트레스, 환경 호르몬 등의 요인에 의해 자연도태되는 인간 정자의 현실(정자무력증)을 어떻게든 극복하려 한 중요한 첫 시도로서 언젠가 불임 해결에 기여할 기술로 꼽힌다.

만만치 않은 나노로봇 개발의 과제

나노로봇 개발의 장벽은 만만치 않다.

즉, 이 장치들이 매우 작기 때문에 움직임을 제어하는 물리학적으로 매우 직관적이지 않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생명주기 동안 그들의 모양을 바꾸는 미생물을 찾아 이들을 흉내낼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는지 등을 알아내려 하고 있다.

브래드 넬슨 ETH취리히 교수는 “이러한 발명품들이 작아질수록 이러한 기계들을 지배하는 운동의 법칙은 매우 직관적이지 않기에 연구원들은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큰 이슈는 기기를 만드는 데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가이다. 코발트와 희토류 금속 등 일부 물질은 나노로봇 제작에 바람직한 성질을 갖고 있지만 인체에 독성이 있다.

이런 부분 외에 이 기술이 악용될 가능성도 고려된다.

많은 사람들이 때때로 나노 로봇의 발전을 두려워하면서 의학적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나노로봇들을 몸속에 들이는 것은 사람들에게 유기물이 아닌 무언가를 주입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두려움이자 악으로 여겨진다.

또한 나노 기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나노 기술이 쉽게 조작될 수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점도 넘어서야 할 장애다. 예를 들어 인슐린 투입을 위해 나노봇을 혈류에 주입할 경우 그들이 정확한 양을 공급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노 로봇 공학에 관련된 코딩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학과 과학과 기술이 만나는 결합점인 나노로봇 개발을 향한 새로운 도전은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류가 힘쓰고 있는 나노로봇의 개발 방향은 영화 ‘노타임투다이’에서 보이는 비밀스런 특정인물 살해나 대규모 인류 살상같은 죽이는 쪽이 아니라 인류 모두의 생명을 살리는 쪽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곳에나 악인들은 있기 마련이다.

아래 동영상은 마이크로로봇이 정자를 난자로 안착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재구 기자

jklee@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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