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최근 세 자릿수의 신입 개발자를 채용한다고 밝혔습니다. 적어도 100명 이상입니다. 17개월 연속으로 30대 취업자 수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카카오라고 해도 한 기업이 이 정도까지 채용에 나서는 모습은 낯설기만 합니다.
판교를 중심으로 IT업계에서의 개발자 확보 경쟁은 어제 오늘의 이슈는 아닙니다. 올해 초 게임 업계는 개발자 이탈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개발자 연봉 인상 릴레이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성과에 대한 처우 인상보다는 자사가 보유한 기업 인재를 다른 기업에 빼앗기지 않기 위한 방어적인 측면이 강했습니다. 당시 넥슨의 연봉 일괄 인상을 시작으로 넷마블, 크래프톤, 펄어비스, 엔씨소프트 등 게임업계의 흐름이 업계에서 그치지 않고, 네이버, 카카오 등 인터넷 플랫폼 기업의 개발자 연봉 개선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 등 스타트업의 개발자 초봉이 5000만원 수준까지 올랐습니다.
이렇게 특정 직군(개발자) 인재 이슈가 산업군을 넘어 연쇄적으로 번졌다는 것은 '일할 사람'에 대한 관점을 경제 전체로 바라보게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유통업계까지 개발자 대규모 채용에 나섰습니다.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면 규모를 키운 SSG닷컴은 두 자릿수 경력 개발자 채용과 함께, 기존 개발자에 스톡옵션 제공 인센티브를 부여했고, 지마켓, 11번가 등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 역시 채용 인원을 대폭 늘렸습니다. 올 하반기 상장을 앞둔 마켓컬리도 2021년 내 100명이 넘는 개발자 채용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김슬아 컬리 대표가 직접 채용설명회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는 기업들이 인재 확보에 나선 이유는 사업 확장에 따른 필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이면에는 '퇴사'할 인재에 대한 준비, 즉, '퇴사경제(the Quitting economy)'에 대한 대비입니다.
퇴사경제 형성의 시그널은 이전과는 다른 퇴사 현상에서 시작했습니다. 이는 미국 노동 시장에서 먼저 신호가 나타났는데요. 2021년 4월 한 달 동안 직장을 그만 둔 미국인은 무려 400만 명에 달합니다. 2020년 4월에 1.6%였던 퇴사율이 2021년 6월이 되자 2.7%까지 올랐습니다. 그 파급으로 인해 기업 채용공고 역시 최근 2000년 이후 최대치인 930만 건을 기록했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하반기 중 퇴사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러한 퇴사 현상은 미국만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 역시 개발자 채용 붐 이면에서는 퇴사를 선택하는 직장인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세대는 소위 MZ세대입니다. 사람인에 따르면, 기업 조사 결과 약 49%의 기업에서 가장 퇴사를 많이 하는 연령대는 MZ세대였습니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입사한 지 5개월 만에 회사를 떠났습니다.
세대를 불문해 나타나기도 합니다. 1년 이내 퇴사자 중 경력사원의 비율은 약 45%에 달했습니다. 전체 입사 직원 중 조기퇴사 비율은 평균 28%로, 10명 중 3명은 입사 후 1년 내 회사를 떠났습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근로자가 상황에 따라 조건이 더 좋은 일자리로 옮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혼란스러워 보여도 노동시장이 건강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이 퇴사하는 것일까요?
먼저 '다른 직장으로 옮길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현재 경제계는 그룹 단위로 디지털화를 당면 과제로 내세우며,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을 통한 신사업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SK그룹은 2021년부터 '첨단소재, 그린(Green), 바이오(Bio), 디지털(Digital)' 등 4대 핵심 사업으로 정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LG그룹은 개발자 출신을 위주로 21년 정기 임원을 발탁해 조직을 개편해 AI·빅데이터·클라우드·IoT 분야에 집중한다고 전했습니다. 롯데 그룹은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물류, 스마트 리테일로 이어지는 ‘스마트 에코시스템’을 구축해 그룹 차원에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일선 기업 역시 각각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에 따라 개발자 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이 있는 곳에 일자리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퇴사자 역시 늘게 됐습니다. 적어도 개발자 직군에서는 구직자가 노동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것입니다. 노동 수요의 상승으로 구직 기대치가 높아지자, 연봉 인상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져 퇴사를 촉진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2021년은 1980년대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초임 임금이 오른 한 해였습니다.
또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도 직장인의 연이은 퇴사 물결에 영향을 줬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강제적 재택 근무로 수많은 직장인이 동료를 실제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때문에 업무 성과와는 별개로 조직 소속감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입사하는 직장인의 이직률은 특히 높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강력한 생산성 성장을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기업들은 필수적인 요소만 제외하고 운영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수 인원와 부대 비용 절감을 통해 경험한 생산성 상승 효과는, 기업으로 하여금 직원에게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하고 또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얻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퇴사 경제가 시작된 미국의 노동자 생산성은 2021년 1분기에 5.4%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OCED 국가 중 하위에 속한 한국의 노동자 생산성 역시 개선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개발자 직군을 비롯해 여러 산업군에서 퇴사의 물결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푸르덴셜 파이낸셜에 따르면, 지난 3월 직장인 2000명의 응답자 4분의 1이 조만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볼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달라진 분위기 속에서 기존처럼 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 등 실리콘밸리식 인재 확보 전략은 더 이상 떠나는 직장인의 마음을 잡지 못 합니다. 퇴사자를 잡기 위한 기업의 고민이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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