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세일즈포스 연례 행사 무대에 선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의 인공지능(AI)과 관련해 “복잡한 코딩 작업 대신, 마치 새로운 직원을 교육하듯 기업의 AI 도입이 쉬워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놨다.
이는 지난해부터 각 솔루션 기업들이 앞다퉈 선보이고 있는 AI 에이전트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현재의 AI 기술 발달 속도 볼 때 이는 곧 다가올 미래처럼 여겨진다. 마치 신입사원과 같이 업무를 돕고, 어느 정도 프로세스를 익힌 뒤에는 서로 협력하며 처음의 능력을 넘어서는 업무까지 빠르게 처리하는 숙련성까지 더한 AI 시대가 열린 수 있다는 말이다.
2025년은 그러한 기술 발달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의 시기가 될 전망이다. 이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언급하고 있고, 실제 생성형 AI 서비스 등을 접해본 사람들이 체감하는 것처럼, AI 기술 발전 속도는 이전 어떤 기술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젠슨황 CEO의 말에 따르면 이는 이미 반도체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향상된다고 했던 ‘무어의 법칙’을 초월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중차대한 AI 대전환기를 맞이한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대외적인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 한국은 내부의 정치적인 문제로 사상 초유의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흐르는 강물처럼 빠르게 나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것과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최근 법무법인 디엘지 세미나에서 오순영 AI 미래포럼 공동의장의 ‘AI 대전환, 주도권을 선점하라!’를 주제 발표를 통해 격화되고 있는 AI 경쟁에서 한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와 수립해야 할 전략을 알아봤다.
AI 대전환 시대의 흐름과 맥락을 이해해야
오순영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 AI 미래포럼 공동의장(이하 의장)은 24년차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한컴그룹에서 인공지능개발실, 미래성장본부장을 거쳐 그룹 최초 여성 CTO이자 계열사 최연소 CEO를 맡기도 했다. KB국민은행에서는 금융계 최연소 임원으로 금융AI센터장을 맡아 AI 관련 전략 기획 수립과 금융 특화 AI 기술 내재화 및 기술 협력 등을 주도한 바 있다. 저서로는 ‘AI시대의 부의 지도’와 함께 최근 하정우 네이버클아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과 함께 공저한 ‘2025 AI 대전환 주도권을 선점하라’가 있다.
지난달 13일 강남 드림플러스에서 개최된 법무법인 디엘지의 세미나에서 발표에 나선 오 의장은 “지금 중요한 것은 AI 대전환 시대의 흐름과 맥락을 이해하고 슬기롭게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지금의 화두는 AI와 인간이 어떻게 공존하느냐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저는 얼마전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언급한 ‘다음 AI는 마치 신입사원을 교육시키는 것과 같을 것’이라는 말에 200% 공감합니다. 제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기업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AI 도입을 고려할 때 중요한 것은 AI 모델이 아닙니다. 내부의 다양한 에셋, 자료가 학습돼야 하고 그것을 실제 적용하기 위한 프로세스 상에 태워져야 하죠. AI가 기존 시스템에 들어가면서 조직에 대한 R&R(역할과 책임)도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AI 도입은 함께 사람들의 일자리를 잃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사실 AI가 대체할 부분은 일자리가 아니라 태스크(task, 업무)예요. AI로 전환하기 쉬운 특정 업무 영역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오 의장에 따르면 이러한 AI 도입 시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학습과 훈련,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가 된다. 이미 세상의 모든 자료를 학습한 AI 모델에게 어떤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신입사원과 같이 진화할 것이라 일컬어지는 최근의 AI 에이전트 도입을 살펴보면 그 답이 있다. 결국 AI가 특정 태스크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해당 업무가 이뤄지는 기업의 프로세스를 이해(학습)하고 최적화하는(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 의장이 강조하는 것은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새로운 데이터의 관리와 활용’이다.
“현 상황에서 기업의 AI 도입 시 중요한 것은 실제 활용에 필요한 양질의 좋은 데이터예요. 기존 자료로 학습된 데이터가 아닌 앞으로 생겨나는, 실시간 데이터의 활용이 필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AI 시대에 데이터는 마치 사람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와 같다고 할 수 있어요.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피드백하는 것이 중요하고, 사람과 AI 간 협업과 역할 분담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모든 것들이 모두 디지털로 온라인으로 올라가 있지 않기 때문이죠. 즉 AI가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말이예요.”
여전히 많은 ‘그레이’ 영역 존재… 협업과 역할 분담으로 AI와 공존해야
이어 오 의장은 ‘그레이 영역(Gray Zone)’을 언급했다. 세상 모든 데이터가 모두 온라인화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AI가 할 수 없는 업무 분야가 있고, 앞으로도 사람과의 협업은 일정 부분 필요한다는 것이다. 이는 AI의 더 진화된 버전으로 일컬어지는 AGI(인공일반지능) 달성 과정에 있는 ‘공간지능(사물의 크기, 위치 등 물리세계를 이해하는 AI)’ 단계에서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오 의장의 설명이다.
“지금 단계에서 AI 활용을 이야기하면 음성 인식과 번역, 이미지, 영상 인식 등 최근 수년 간 지겹게 본 AI를 떠올리죠. 하지만 AI가 현실세계를 이해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AI의 범위는 훨씬 넓어지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노트북, 모바일을 통해 쓰고 있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넘어서 진짜 실생활에 적용되는 휴머노이드나 자율주행 등이죠. 여기서 중요할 것은 ‘데이터의 연결성’이예요. 현재 AI 서비스의 혁신이나 혹은 기존과 다른 더욱 탁월한 무언가각 나오기 위해서는 특정 영역의 데이터와 그 외에 데이터의 결합을 통해 추가적인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는 말이예요. 이러한 데이터의 연결성을 통해 현실세계에에 대한 적응력을 갖춘 공간지능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재차 언급하는 AI와 인간의 협업이예요.”
이어 오 의장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엔트로픽이 선보인 새로운 AI 모델 ‘클로드 3.5 소네트 (Claude 3.5 Sonnet)’를 언급했다. 클로드 3.5 소네트는 기존 AI 모델에 비해 뉘앙스, 유머 등을 비롯 복잡한 지침을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히 향상된 모델로 알려져 있다. 특히 코딩 능력이 뛰어나 정교한 추론 및 문제 해결이 가능해 독립적으로 코드를 작성하고 편집 실행할 수도 있다. 오 의장은 이를 ‘인간과 컴퓨터 간 인터페이스의 혁신’으로 규정하며 말을 이어갔다.
“클로드 3.5 소네트를 통해 사람이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며 마우스와 키보드로 조작을 하는 것처럼, AI 역시 화면을 이해하고 필요한 것들을 해 나가는 단계가 됐어요. 이러한 자동화 기능은 사실 제가 과거에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도 적용했던 방식이예요. 단지 AI가 추가된 것 뿐이죠. 과거에는 코딩을 해야했지만 지금은 로우코드, 노코드 서비스도 많이 등장했고, 챗GPT 등장 이후에는 인간의 언어로 AI에게 요청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코딩과 같은 것은 AI가 다 할 겁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것에 대한 원리와 알고리즘이죠. 이는 앞으로 특정 언어만 잘 다루는 개발자의 자리는 없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AI 기술 기업들, 다은 도메인으로 확장 가속화 전망… 중요한 것은 기술을 잘 쓰는 것
그렇다면 향후 AI 기술 경쟁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이에 대해 오 의장은 “현재 AI 기술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의 도메인 확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놨다. 챗GPT로 생성형 AI 기술을 주도하는 오픈AI, AI 칩 기술을 주도하는 엔비디아와 같은 기업들이 자사 기술력을 바탕으로 쇼핑과 검색 등의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빠르게 AI 기술 도입을 진행하고 있는 플랫폼 기업들과의 무한 경쟁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으로 이어진다.
“플랫폼을 사람들이 상시 모이고 활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때 향후에는 아마존이나 구글, 네이버 같은 회사 뿐 아니라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즉 모빌리티에도 AI가 들어갈 거예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정수기나 냉장고 같은 가전에도 소소하지만 AI 기능이 들어가 있죠. 소프트웨어 기업의 경우 OS 수준에서 이미 AI가 들어가고 있고요. 실질적으로 이런 플랫폼 기업들이 고객이 정말 간지러워 하는 부분을 박박 긁어주는 킬러 소프트웨어를 만든다면 많은 AI 스타트업들은 또 어려워 질거예요.”
그렇다면 AI 기술 발달과 함께 각 사업 분야에서 우위를 점해 오던 글로벌 공룡을 중심으로 이렇듯 영역 파괴가 진행되는 시기에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 오 의장은 “반드시 기술력으로 1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며 ‘온디바이스 AI’에 주목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빅테크 주도의 AI 기술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솔직히 쉽지 않아요. 그러면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이러한 생태계 속에서 꼭 1등 혹은 2등을 해야할까요? 기술은 우리의 필요에 맞게 잘 쓰면 되는 거 아닐까요? 물론 기술력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모든 빅테크가 AI 모델을 크게 만드는데 집중하는 시기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온디바이스 AI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작게 작게 만들고 필요한 것들을 최적화해 넣는 작업이죠. 인터넷이 없어도 가능하고 속도도 빠르며 데이터가 밖으로 나가지 않아 보안에도 유리합니다. 실제로 반지나 목걸이 등 다야한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나오고 있고, 거기서 AI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AI 기술을 최적화해서 쓰다는 것, 결국 중요한 것은 사용자
이날 발표에서 오 의장은 “이미 AI가 탁월한 분야는 꼭 사용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번역이나 자료 수집, 리서치 등이 그것이다. 실제 초기 제기됐던 할루시네이션(환각)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영역에 AI의 탁월함은 더욱 개선될 전망이다. 오 의장은 이를 “혁신에 대한 부분을 AI에 기댈 수 있는 상태가 됐다”고 표현했다. 문제는 아직 AI 기술을 업무에 적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글로벌 평균에 비해 낮은 ‘AI 수용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아주 좋은 AI 엔진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솔직히 고성능 AI 엔진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에 따라 활용도는 천차만별이죠. 이는 AI 기술 기반 서비스 기업에도 해당되는 말이예요. 아주 좋은 AI 엔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아주 좋은 AI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죠. 그보다는 필요에 따라 온디바이스 AI를 적용할 수도 있고, AI 오픈 소스를 가져와 용도와 목적에 맞게 하이브리드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오 의장은 재차 AI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고유 영역을 침범할 것이라는 전망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생성형 AI의 자동화 능력과 정보 제공 등은 이미 검증됐지만, 이를 잘한다고 해서 전문가의 영역, 가령 변호사나 변리사의 자리가 위험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식을 기반으로 한 영역의 태스크는 AI가 대체하겠지만, 승률이 좋은 변호사를 두고 굳이 AI를 쓰진 않을 겁니다. 물론 ROI(투자대비이익율)을 따지겠지만, 전문가 영역의 지위가 무조건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흔히 AX(AI 전환)에 앞서 언급됐던 것이 DX(디지털 전환) 입니다. AX가 DX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확장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사실 AI나 클라우드, 머신러닝 등은 DX의 범주에 속했던 키워드기도 하죠. 결국 데이터를 통해 인사이트를 찾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DX의 목적과 AX의 목적은 다르지 않습니다. 성공하는 기업은 이전부터 훌륭한 디지털 역량을 구축해오고 있고, 편하게 잘 쓸 수 있는 UX(사용자경험)을 고려한 기업, 탁월한 데이터를 구축한 기업이 될 겁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도입해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확실히 하는 겁니다. 그에 따라 결과는 상당히 달라질 거니까요.”
AI의 사용 목적을 분명하게 정하고 기존 업무 방식에 적용하는 과정은 앞서 오 의장이 언급한 사람과 AI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에 선행돼야 하는 것은 현재 다양하게 제공되는 최신 AI 서비스를 직접 써보는 것이다. 발표 말미, 오 의장은 재차 “AI와 사람의 협업을 위해서는 사람의 역량이 중요하다”며 AI공존하는 인재의 조건을 언급했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인간과 AI 시스템을 붙여놨더니 잘하는 AI와 잘하는 인간보다 못한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결국 AI 도입을 고려하는 기업은 내부 직원의 업스케일링(최신기술 교육)과 리스케일링(기존 전문가 대상 교육)을 챙겨야 한다는 거예요. AI 시대의 인재는 어느 한 가지를 잘 하는 사람은 아니죠. 특정 단위의 업무는 모두 AI로 대체될 테니까요. 그 보다는 환경과 조직을 폭넓게 이해하고 AI를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죠. 앞으로는 협력, 소통과 같은 소프트 스킬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될 겁니다. 또 AI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에게는 사용성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