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지나 위드 코로나 시대로 넘어가는 현재, 이머커스로 대표되는 온라인 유통 시장, 그중에서도 신선식품 분야는 굉장히 빠른 변화와 함께 규모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대중들의 소비 방식이 비대면, 온라인으로 집중되며 업계의 지형도 온라인 시스템 강화, 물류 역량 강화 여부에 따라 달라졌다. 그로 인해 현재 이커머스 분야의 경쟁은 ‘상품’과 ‘속도’로 집중되는 분위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온라인 신선식품 분야를 개척한 1세대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헬로네이처의 행보는 다른 경쟁사와 조금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그간 헬로네이처가 보여준 가치와 덕목에 기반하고 있다.
농수산물 소매 및 전자상거래 기반으로 지난 2012년 사업을 시작한 헬로네이처는 유기농 친환경 식품이라는 경쟁력을 바탕으로 산지와 소비자 간의 거리를 좁혀주는 서비스로 처음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여러 업체가 채택한 새벽 배송도 실은 헬로네이처가 업계 최초로 선보인 서비스였다.
하지만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여러 경쟁사가 등장한 이후 매출 경쟁으로 업계 양상이 바뀌며 상대적으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2018년 현재 모기업인 BGF에 인수된 이후부터였다. 홈페이지 시스템부터 배송 서비스까지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오늘이 맛있는 탐험’이라는 슬로건 아래 친환경, 가치 중심 서비스에 무게 중심을 둔 헬로네이처는 친환경 소재로 만든 재사용 ‘더그린 박스’를 활용한 ‘더그린 배송’ 서비스를 적용하고 과대 포장을 줄이는 등 차별화를 시도했다. 최근에 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는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을 앞서 선보인 셈이다.
이를 주도한 것은 지난 2018년 6월 취임한 오정후 대표였다. 오 대표 취임 후 만 3년이 넘어가는 현재, 헬로네이처는 내실있는 행보를 이어가며 기존 올드한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2030세대에게는 힙한 이커머스로, 4050세대에게는 음식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게 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신규 가입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매출 등 실적 개선 역시 눈에 띄게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3년이 후딱 지나간 것 같아요(웃음). 돌아보면 틀을 갖추려 노력했고 열심히 준비했다고 자평할 수 있겠네요. 정말 지난 3년은 준비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뛰어야죠.”
사실 오 대표의 취임 후 업계 상황은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대부분의 경쟁사가 하고 있는 새벽배송, 신선식품 배송 등은 ‘최초’를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질 정도였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 업체가 조금이라도 색다른 서비스를 내 놓으면 바로 다음 날 다른 경쟁사에서 유사한 서비스가 나오는 식이다.
코로나19 이후 시장의 소비패턴이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며 중요한 것은 속도가 됐다. 각 기업들은 저마다 자신의 서비스가 얼마나 빠른지 앞다퉈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한 웃음으로 맞이하는 오 대표의 표정에 묘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지난 시간들 속에서 그가 얻은 인사이트는 무엇일까? “업계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시장이 갑자기 커져버렸다”고 평가한 오 대표는 “3년 전의 헬로네이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지난 기억을 돌이켰다.
“사실 전 젊은 시절부터 생협의 토대가 된 유기농 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오래도록 생협을 애용했죠.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는 생협을 안 가더라고요. 한번은 그 이유를 물어보니 ‘올드하다’고 얘기하더군요. 헬로네이처 대표로 취임하기 전인데, 그때 굉장한 교훈을 얻었죠. 일종의 ‘식자층 운동의 한계’ 랄까요. 젊은 세대에게는 생협이 추구하는 방식이 ‘유기농을 먹어야 좋다’ ‘우리의 생각에 공감한다면 조합원이 돼야한다’는 식의 강요와 같이 비춰질 수도 있었던 거죠. 유기농의 다른 한편에는 ‘비건’이 있어요. 채식주의자들은 자부심은 있지만 그걸 주장하거나 내세우진 않아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문화의 한 종류가 될 수 있었고요. 그런 것을 깨달으면서 헬로네이처 대표 취임 후 제가 집중한 것은 유기농을 강조하기보다 ‘신선식품의 가치를 올리겠다’ ‘소비자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도록 하겠다’ 였어요.”
시쳇말로 ‘힙한’ 유기농을 만들고 싶었던 그의 구상은 취임 직후 프리미엄 신선식품 ‘더신선’ 코너와 ‘비건’ 코너를 선보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렇듯 음식의 본질에 집중하는 헬로네이처의 서비스는 젊은 세대에게는 식품에 대한 가치를, 중장년층에게는 과거 좋은 먹거리에 대한 향수를 일깨우며 독특한 차별성을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은 가치가 물류 부문에서 반영된 것이 바로 친환경 배송 서비스인 더그린 배송이다. 헬로네이처만의 가치를 담은 더그린 배송은 침체돼 있던 상황을 반전시키는 동력이 됐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제대로 된 평가 대신 폄하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유사한 서비스를 내 놓는 경쟁사도 적지 않았다. 오 대표는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제대로 된 재사용의 개념이 반영되지 않은 채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카피 사례가 많이 발생해 속상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 더그린 배송에 사용되는 재사용 박스는 쌀포대(PE우븐섬유)와 자투리 천 등 재활용 재질로 튼튼하게 만들었어요. 또 서비스를 운영한 이래 단 하나의 박스도 버려지는 것 없이 재사용을 하고 있죠. 어떤 배송 박스는 100회 이상 재사용을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회수하고 꼼꼼하게 수선, 세척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죠. 세척도 사회적 기업 '백의민족' '동구밭'과 협업을 통해 아이스팩 주성분인 전분으로 만든 ‘더그린 전분비누’로 꼼꼼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금력을 앞세우는 업체는 재사용 박스를 회수하지 않고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식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더군요. 그건 다른 말로 관리 책임이 업체에 없다는 의미죠. 종이박스가 더 친환경적이라던 업체도 결국에는 저희 박스를 따라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한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타 업체 박스로 인해 오히려 쓰레기가 양산되는 상황인 거죠. 그 탓에 저희 더그린 배송 박스까지 오해를 받는 경우가 생기더군요. 하지만 이 문제를 굳이 부각시키지는 않으려 해요. 현명한 소비자들께서 알아주리라 믿기 때문이죠.”
오 대표의 말처럼 헬로네이처의 가치에 공감하는 고객들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새벽배송 지역을 대상으로 회원제로 운영되던 더그린 배송을 전체 확대하는 것 역시 긍정적인 고객 반응을 확인한 덕분이다. 더그린 배송은 오는 11월 10일부터 서울을 비롯한 성남, 수원, 안양, 안산, 광명, 시흥, 부천, 의정부, 구리 전지역, 하남, 남양주, 광주 용인 등 수도권 14개 지역, 일부 새벽배송 불가 지역을 제외하고 별도의 신청이나 보증금 제도 없이 누구나 받아볼 수 있도록 확대 적용된다.
이렇듯 배송 방식에 헬로네이처만의 가치를 강화하는 한편으로 오 대표가 병행했던 것은 소비자와 처음 만나는 접점, 홈페이지와 CI, 주문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신선식품과 라이프존을 강조하면서도 트렌드에 맞게 매거진 형태의 모바일 중심 사이트로 대대적인 개편을 했어요. 소비자가 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최신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들의 스토리를 담은 매거진 형태로 꾸몄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식품 유통 업계는 무한 경쟁에 돌입하며 치킨 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격 경쟁과 더불어 배송 경쟁이 끝없이 이어지며 각 업체의 물류비 부담은 지속적으로 커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업체는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덩치를 키우는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물론 매출 등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헬로네이처 역시 턴어라운드는 쉽지 않은 숙제이기도 하다. 이에 오 대표는 “언론 홍보나 자금력 등이 헬로네이처의 약점인 것은 맞다”면서도 “업계가 언제까지고 출혈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옥석이 가려질 날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솔직히 제가 취임하던 당시와는 시장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예요. 이 시장이 마트의 대체재로 인식되며 덩치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죠. 하지만 이 업계가 흥미로운 것은 앞 단은 플랫폼이지만 고객이 클릭하고 들어온 순간에는 유통이 따라붙는 다는 거예요. 저로서는 앞 단도 물론 개편을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뒷 단인 유통 역량 강화에 더 집중을 했어요. 그러면서 3년 전에 비해 매출 측면에서 6배 정도의 성장을 했죠. 물론 그보다 훨씬 더 높은 매출액을 과시하는 업체도 있지만 전 저희 속도가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이 다른 업체들은 규모를 확장하는데 집중하면서 저가 경쟁에 뛰어들고 있죠. 하지만 저가 시장화 된다면 진정한 유기농, 친환경이 가능할까요? 그래서 저희가 가격으로 경쟁할 수 없는 거예요. 경쟁이 치열해지며 돈이 너무 많이 풀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에요. 저희는 다른 기업처럼 광고 마케팅에 엄청난 돈을 허비하기보다 쿠폰 등 고객에게 더 혜택이 가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어요.”
현 상황에서 오 대표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물류비 효율화다. 자원이 한정된 환경에서 상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가격 경쟁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헬로네이처의 정체성을 더욱 강조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저는 직원들에게 우리는 식품 온라인 유통회사라는 점을 수시로 강조해요. 다른 업체와 달리 식품 외에 타 상품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플랫폼 회사가 되는 거니까요. 온라인 플랫폼은 지난 4년간 매년 100% 이상 성장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 분석으로는 온라인 유통은 200%가 넘게 성장 중이예요. 이 말은 온라인 유통이 싸우는 상대는 오프라인 유통이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거죠. 또 *SI(전략적 투자자)와 FI(재무적 투자자)의 대결이기도 해요. 저희는 식품 온라인 유통회사이자 SI죠. 승자는 저희가 될 거라고 봅니다.”
*SI의 목적이 경영권을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사업 영위를 목적으로 하는데 반해 FI는 투자금 회수에 목적이 있는 것을 의미하는 말.
SI라는 말까지 나온 상황에서 최근까지 돌고 있던 소문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헬로네이처 매각설이다. 이에 오 대표는 “추가적인 외부 투자를 협의하던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는 말로 일축했다. 그보다는 요동치는 업계 판도 속에서 헬로네이처만의 길을 묵묵하게 가겠다는 것이 오 대표의 계획이자 각오다.
“더그린 배송의 새벽배송 지역 전체 확대를 통해 재사용 박스라는 것은 이렇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요. 종이박스가 더 환경 친화적이라고 홍보하는 업체도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죠. 분리배출율은 압도적으로 높지만, 재활용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재활용율은 낮은 상황이에요. 한 마디로 잘 되지 않는 리사이클보다는 리유즈(Reuse, 용기의 재이용성 제고)가 먼저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는 몇 번 쓰면 쓰레기가 된다고 험담하는 소리를 듣고 너무 화가 나서 저희 더그린 박스를 고정자산으로 올려 놨어요. 우리 자산인만큼 타 업체에 비해 3배 이상의 비용을 들여서 튼튼하게 만들고 제대로 관리하겠다는 거죠. 앞으로도 한 발 한 발 걸어 나가며 개선할 생각입니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 보다 고객들에게 더 가치를 줄 수 있는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제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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