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동시간 개편과 관련해서 정부의 안을 옹호하며 한 장관이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의도치 않게 곡해를 하게 될 수도 있으니 가급적 '돌발영상'에 나온 내용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요새 MZ세대들은 ‘부회장 나와라, 회장 나와라’
성과급을 왜 이렇게 책정했냐 등... (중략)
권리의식이 굉장히 뛰어나다
그러니 MZ 세대는 주당 69시간을 도입한다 해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면 알아서 문제 제기를 할 것이다 이런 취지인 듯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분은 산업부 장관이나 대통령실 대변인일까 싶었는데 무려 고용노동부 장관이더군요. 왠지 아득~해지는 느낌과 함께 예전에 읽었던 시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중략)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로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를 이 장관님이 담당하고 계시는 노동자나, 또 이미 너무나 잘 파악하시고 계시는 듯한 MZ 세대로 바꾸면.. 그 의미가 얼추 와닿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장관님의 예견대로 MZ 세대는 참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대상이 회장이나 부회장이 아니라 대통령과 장관이었지만요..
장관님 표현대로 진짜 회장님 나와라 할 수 있는 처지의 MZ 세대는 과연 얼마나 될까 싶은데요. 여튼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보수 정권이 그렇지 뭐.. 이런 의도는 아닙니다. 정치적인 색을 떠나서 일반적인 기성세대, 또는 상급자가 바라보는 하급자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죠.
예전에 안철수 의원이 CEO였을 때 한 말이 있습니다. 회사 직원들 복지 차원에서 도서구입비를 지급하던 것이 있었는데, 회사 상황의 여의치 않고 실제로 활용도도 높지 않은 것 같아 없애기로 했다는 거죠.
그런데 생각보다 큰 반발이 일었습니다. 직원들은 실제 도서를 구매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회사가 이 정도도 못해줄 정도냐는 생각을 한 거죠. 누군가는 회사가 그 정도로 어렵나? 라고, 또 누군가는 우리한테 이 돈이 아깝나? 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정말 '이해'했다면 내가 이렇게 해도 되겠지, 가 아니라 그들이 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데에 활용해야 맞습니다. 만약 정말 69시간이든, 60시간이든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정말 무엇을 주고받아야 할지를 직원들, 또 MZ 세대의 입장에서 더 고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근무 시간 관련해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인용하는 통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 평균 대비해서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얼핏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능력이 없거나, 게으르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韓 노동생산성 美의 57%… “노동시장 경직, 혁신성도 떨어져”
하지만 생산성이 뭔가요? 동일한 근로시간 기준으로 뽑아내는 가치입니다. 이 '가치'가 왜 낮아졌나에 대해선 저는 두 가지 원인에서 추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 낮은 임금입니다. 특히 서비스 업종에서 그렇죠.
예전에도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이른바 '선진국'들은 사람 쓰는 게 무서워서 웬만한 수리 같은 건 직접해야 합니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북유럽 국가에서 온 여행객들은 꼭 미용실을 들릅니다. 우리는 비싸다고 느끼지만 그분들 입장에선 엄청 싸거든요.
우리나라는 자영업 비중이 엄청나게 높죠.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가족들, 또는 가족 같은(?) 직원들을 싸게 쓰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배달료가 엄청나게 올랐죠. 배달앱 경쟁 때문이다, 교촌 때문이다,, 여러 분석들이 있지만 제가 봤을 때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전엔 유휴 인력들을 (거의 거저) 썼지만, 지금은 진짜 돈을 벌기 위해 배달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거든요.
예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숙식 제공' 같은 말로, 또 요리를 가르쳐준다는 말로 거의 월급도 안 주고 배달원들을 쓰는 내용이 있죠. 당시엔 이렇게 싸게 사람을 쓰던, 아님 배달을 안 하던가 결정하면 됐는데 이제 배달이 필수가 됐습니다.
이런 순환 작용으로 모든 서비스업들의 가격이 오르죠.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도 공짜로 배달을 시켜주던 게 엊그제 같지만 좋게 보면 우리가 진짜 선진국이 됐다는 증거입니다.
결국 낮은 임금을 통해 저렴하게 파니 시간당 생산성은 떨어지죠. 그런데 위의 기사를 보면 기준이 뭔지 애매합니다. 미국 공장과 한국의 공장의 시간당 생산대수를 비교해 놨죠.
거의 대부분이 자동화된 공장에서 과연 노동자들의 생산성 때문에 차이가 날까요? 아니면 우리나라의 강성 노조 때문일까요? 그럼 우리나라보다 일은 적게 하고 파업은 많이 하는 프랑스는 왜 우리나라 보다 앞서 있는 걸까요?
정확한 진실은 알기 어렵지만, 국가든 기업이든 항상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勤勞者)라 칭하는데, 저런 통계를 인용할 때면 왜 항상 '노동(勤勞)'이라는 단어를 쓰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둘째로, 투입 시간입니다. 분모가 커지니 생산성이 떨어지는 겁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생산성 이야기할 때, 보통 한국 사람이 OECD 국가 중 제일 많이 일한다, 그런데 생산성은 떨어진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아이러니하죠. 마치 생산성, 즉 효율이 떨어지니 더 일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들립니다. 왜일까요?
은연중에 우리 국민 모두가 '목표'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국내총생산(GDP) 증대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거든요. 따라서 생산성, 즉 효율(效率)이 떨어지면 일을 더해서 총생산(效果)을 맞춰야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서서의 말을 뒤집어 보면, 우리는 생산성이 떨어질 정도로 많이 일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한계생산체감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죠. 고등학교 때도 배우는 기초적인 수준의 경제 이론입니다. 노동투입을 늘릴수록 생산성은 떨어집니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니까요..
즉,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통계를 보면 뻑하면 파업하는 노조가 문제라거나,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젊은것들이 일을 안 해서라거나, 이래서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하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생산성이 떨어질 정도로 일을 하고 있구나, 내지는 누군가 일도 안 하면서 회사에 남아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이 글의 핵심 의도는 지금보다 근무 시간을 더 줄여야 한다거나, 이미 MZ든, 직원들이든 이미 잘하고 있으니 '너나 잘하세요'하는 뜻은 아닙니다.
저 역시 때론 60시간 이상도 일할 수 있고, 생산성을 더 높일 방법도 찾아야 한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저도 회사 운영을 해봤고, 나름 꽤 오래 조직 관리도 해봤으니까요.
하지만 왜 지금 52시간 근무를 법으로 정해놨는지, 그리고 전경련은 왜 우리나라 노동자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보도자료를 지치지도 않고 뿌리는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근무 시간을 법으로 정해놓지 않으면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고, 제 얼굴에 침을 뱉어서라도 강압적으로 끌고 가려는 분들이 있거든요.
요즘 육아 관련 프로그램들이 많은데요. 한 전문가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부모들은 기승전결이 있다면 아이에게 꼭 결론까지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결론은 스스로 깨닫게끔 만들어야 한다구요. 즉 분위기만 조성해 주고 스스로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거죠.
때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회사와 직원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떼를 쓰거나 공부 안 하는 아이를 보면 매를 들거나, 커서 뭐가 되려고.. 하면서 일장 훈계를 하고 싶지만 예전은 몰라도 지금은 효과가 없죠. 직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때는' 이렇게 했다는 말보다, '나라면' 어떻게 해야 동기부여가 될까? 라는 방향에서 접근을 해본다면 좀 더 마음에 와닿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P.S. 위에서 언급한 안철수 의원의 케이스에서.. 당시 저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작은 복지라도 함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만약 제 기억이 맞다면, 안철수 의원이 더 큰 정치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CEO적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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