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정육각, 생존할 수 있을까?

새로운 행보에 나선 정육각

정육각은 초신선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워, 정말 혜성처럼 등장한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초록마을 인수는 정육각의 성공이 정점에 달하던 순간이었는데요. 하지만 영광의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인수 직후 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추가 자금 유치가 지연되기 시작했고요. 투자 대금 지불을 위해 단기대출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작년 11월 470억 원 규모의 시리즈 D 투자를 유치하면서 한숨 돌리긴 했지만, 창업 7년 만에 닥친 첫 위기에 구조조정까지 해야 했습니다.

정육각은 이후 버티기 모드에 들어갑니다. 구조조정과 더불어 신사업을 전부 정리하였고, 사업 방향 역시 손익 개선으로 수정하였는데요. 이를 위해 올해 1월부터 여러 새로운 시도들에 도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제조 공장을 주 5일에서 주 7일 가동으로 확대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주말까지 당일배송과 새벽배송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초록마을과의 시너지를 위해 '매일신선' 라인업도 신규 론칭하였고요.

다만 의아한 점은 이러한 액션들이 모두 손익 개선을 위한 거라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새벽배송과 공장 가동일 수의 확대는 손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긴커녕, 단기적으론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인데요. 도대체 정육각의 행보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변동비와 고정비, 하나만 하고 싶어요!

손익을 개선하는 방법은 전통적으로 3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가격을 올리면 당연히 이익이 늘어나고요. 혹은 비용을 줄여도 됩니다. 마지막으론 추가 고정비 사용 없이, 매출 규모를 늘려도 손익은 좋아지게 되고요. 이 중에서 정육각은 우선 비용, 그것도 고정비를 줄이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구조조정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 효율화 작업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매출 총이익률을 높이고 있다고 하고요.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정육각은 이미 투자한 고정비가 어마어마하다는 겁니다. 우선 초록마을 인수부터가 막대한 현금을 필요로 했고요. 성남공장에 이어, 2021년엔 김포공장도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설비 인프라들을 유지하려면, 적정 수준의 매출 볼륨이 나와야 합니다. 더욱이 정육각 런즈라는 자체 배송 플랫폼도 가지고 있는 정육각 입장에선, 러너들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물류 물량도 제공해야 하고요.

정육각은 인플레이션과 엔데믹이라는 시장 변화로 인한 역성장이라는 위기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컬리처럼, 정육각 역시 성장성은 작년 하반기부터 둔화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7월부터는 전년 대비 소비자 거래건수가 오히려 줄고 있고요. 정육각의 주력은 여전히 육류입니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 가정 내 정육 소비는 줄고, 외식으로 전환되면서 정육각의 실적도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요.

따라서 공장 가동률은 아마 악화되고 있었을 겁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문 수를 어떻게든 늘리려고 새벽배송도 주말까지 확대한 거일 테고요. 하지만 문제는 전체 손익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개별 주문 단위의 수익성은 점차 악화될 거라는 점입니다. 작년에 이미 여러 업체들이 새벽배송 서비스를 종료할 정도로 난이도가 있는 비즈니스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확장을 하는 건, 당장의 주문 볼륨 확보가 더 이슈이기 때문일 겁니다.

결국 문제는 타이밍입니다

이러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 이유는 결국, 정육각이 거시 흐름을 읽지 못하고 경영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유동성이 줄어든 시기가 곧 찾아올 시점에, 대규모 인수를 선택했으니까요. 하지만 공장 시설 확대든, 초록마을 인수든 당시 기준으론 옳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단지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정육각은 힘든 시기긴 하지만, 상당 부분 선제적으로 대처하며, 생존 확률을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나 컬리 등 다른 업체들에 비해, 정육각은 상대적으로 이른 단계의 스타트업이라는 점도 긍정적인데요. 기업 공개 등의 압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요구받는 기대 수준도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버틸만한 시간은 주어진 셈이죠.

더욱이 한때 애물단지가 돼버릴 뿐 했지만, 초록마을의 존재는 참으로 큰 힘이 될 겁니다. 기존 이커머스 매출이 줄더라도, 오프라인 판매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있고요. 온오프라인 채널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정육각 만의 차별화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정육각의 생존 자체는 희망이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좋은 기업이 되려면 그 이후도 바라봐야 하고요. 생존을 넘어 향후 온라인 장보기 시장 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차지하려면, 정말 사업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차별화 요소를 찾아내야 할 겁니다.

커머스와 IT에 관한 트렌드를 기록하고 나눕니다.

뉴스레터 무료 구독하기

이 글의 원본은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기묘한

tech42@tech42.co.kr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저작권자 © Tech42 - Tech Journalism by AI 테크42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비전프로 국내 출시에 앞서... (지난 반년의 경험, 그리고 비전 OS 2의 가능성)

애플의 증강현실(AR) 헤드셋 ‘비전 프로’가 11월 15일 드디어 국내 시장에 출시됩니다. 비전 프로는 지난 2월 미국에서 첫 출시된 이후 주요...

디지털 아트의 딜레마, 즐거움과 깊이 사이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의 가능성과 한계 디지털 아트의 전시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장에서 화려한 시각 효과와 감각적 체험을 통해 관람객에게...

페이스북과 구글 뉴스 우선순위 하락에 대응하는 BBC와 The Hill의 트래픽 전략[2024년 버전]

페이스북과 구글 뉴스 우선순위 하락에 대응하는 BBC와 The Hill의 트래픽 전략에 대해 정리했습니다. 영미권 언론사들은 페이스북과 구글 등 주요 플랫폼이...

도요타가 만들고 아마존이 따라한 '린(Lean) 방식'

‘린 생산 방식’은 1950년대 일본에서 처음 탄생한 것으로 ‘군살 없는 생산방식’이란 뜻입니다. 한 마디로 제조과정에서 낭비를 없애고 생산성을 높이는 건데요. 이는 도요타가 세계 1, 2위를 다투던 GM과 포드를 따라잡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