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교육부가 새롭게 개통한 4세대 지능형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이하 나이스)가 접속불가 및 지연, 타 학교 문항 정보표가 출력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달 17일에는 공무원 전용 행정전산망 ‘시도 새올행정시스템’과 대국민 온라인 민원 서비스인 ‘정부24’가 먹통이 되며 큰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와 여당, 대통령실은 당정대 고위협의회를 통해 ‘범정부 대책 TF’를 발족해 내년 1월까지 종합 대책을 수립해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과거에도 공공소프트웨어(이하 공공SW) 사업의 문제점 해결을 위한 TF는 간간히 발족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때마다 지적된 고질적인 문제들이 여전히 이어져왔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누적된 문제들이 최근 공공 행정 전산망 사태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지적은 지난 11일 국민의힘 권은희 의원 주최로 진행된 ‘국가적 재난, 멈춰선 대국민서비스 : 민생과 직결되는 정보화 사업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한 국회 토론회에서 불거져 나왔다.
이날 개회사를 통해 권은희 의원은 “국민의 정보를 다루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공공SW사업은 더욱 체계적이고 꼼꼼하게 관리될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현재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부담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구조적 문제, 체계적이지 못한 데이터 관리, 유지보수 업체 선정과정의 고질적인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함께 자리한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의 최현택 회장 역시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적은 예산 책정과 불명확한 요구사항, 과업 번위 변경에 따른 대가 미지급, 운용 유지보수료 비 현실화, 노후 시스템 내용년수 연장 전문성 부족, 기술 평가를 위한 차등 점수제 미반영, 장기간 사업 도매 물가 상승률에 따른 인건비 인상 미반영, 시스템 내장현 SW(OS) 버전 변경에 따른 대처 미흡 등의 관행이 매년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구조적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간 공공SW 사업 해법 필요성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지만…여전히 문제인 이유는?
이날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이동희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방부 군수통합정보체계시스템’ ‘나이스 대란’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행복e음’ ‘차세대 지방세입 정보 시스템 구축’ 등 최근 몇 년 사이 문제가 됐던 공공SW사업 사례를 언급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과도한 업무량이 필요한 사업임에도 펑션 포인트(FP) 기준으로 발주기관과 용역 업체의 의견이 달라, 산정한 비용이 300억원 가량이나 차이가 난 것이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나이스의 경우도 이미 1세대부터 계속 문제가 지적돼 온 바 있습니다. 최근 대기업 참여 제한이 문제라고 하지만 나이스 사업은 과거 대기업이 참여한 사례가 있었죠. 하지만 그때 역시 오픈 당시 문제가 나왔습니다. 즉 대기업 사업 참여 제한이 현 공공SW 문제의 이슈는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나이스의 경우는 교육부의 무리한 과업 변경에 따른 사고라는 관측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대기업 참여 여부를 이슈로 삼기보다는 중소 중견 기업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대기업의 노하우와 자원을 이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상생구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행복e음’ 역시도 이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개발자 이탈, 데이터 전환 응용시스템 개발이 지연됐고, 이로 인해 불완전한 테스트가 이뤄졌다"며 "개통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고 개통을 강행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차세대 지방세입 정보 시스템 구축’ 사업의 경우는 대기업 사업 참여 제한까지 풀어준 사례지만 오히려 대기업들 모두 불참하며 문제가 됐다. 불참 이유는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비 책정이었다. 이 교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공공SW사업이라도 제 값을 받길 원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불공정한 관행을 없애고 공정한 산업 생태계, 일하기 좋은 근무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말을 이어갔다.
“이러한 문제들은 예전에도 동일하게 발생했고 그래서 2017년에 의견을 수렴해 소프트웨어 진흥법을 2018년 전면 개정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나온 개정 사항이 ‘(발주자의) 제안요청서 요구사항 명확화’ 입니다. 아주 지겹게 지적된 문제죠. 그 외에도 과업 변경에 대한 추가 적정 대가 지급 등이 포함돼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제도를 신설하고 보완하고 법을 개정하는데 집중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이것이 실질적으로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어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황만수 신한대 소프트웨어융합학과 교수 역시 “원초적인 뿌리를 건드리지 못하고 가지치기만 해온 것이 문제”라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함을 언급했다.
황 교수는 “소프트웨어 사업의 성공률은 30% 수준이고 각 도메인 별로 따졌을 때 공공 부문의 실패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며 “상용SW 적용 시 성공률을 높일 수 있지만, 현재는 SI 형태로 개발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이 문제, 또 상용SW를 적용하는 과정도 개발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람이 개발하는 소프트웨어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한 황 교수는 “소프트웨어는 생물이기 때문에 계속 변경이 된다”며 “이것을 어떻게 컨트롤하고 측정, 가치화 해서 비즈니스로 전환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지만, 변경을 막아라, 돈을 더 못 준다고 하니 문제”라고 말을 이어갔다.
“변경을 계속 제어하고 숨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오픈 시키고 제대로 측정하고 적정한 대가를 지급하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 사업을 가치 즉 밸류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 통해 황 교수가 지적한 공공SW의 문제는 사업 예정가격과 실제 개발 비용의 격차, 사업 특성 및 규모에 맞지 않은 평가 체계 부실, 잘못된 범위 정의와 시간, 비용 예측 등 불완전한 사업 요구사항, 책임자가 불분명한 대형 컨소시엄 구성 문제 등이다.
이어 황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품질을 기준으로 한 SW 가치 평가와 현실적인 비용/일정을 반영한 발주 정책 개선, 명확한 SW 요구사항 정의와 설계로 변경 최소화, 변경 협의 시 범위와 비용 변화 측정의 현실화, 최적의 사업자 선정을 위한 평가 체계 개선 등을 언급했다.
투자 없이 유지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문제, 다양한 개선 제안 이어져
이어진 본 토론에서는 공공SW 사업 분야에 발주기관, 수행업체, 정책 주관 부서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인 자리가 마련됐다.
이균성 지디넷코리아 논설위원이 좌장을 맡은 토론은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 이남용 숭실대학교 교수, 김상욱 대보정보통신 대표, 김민성 한국IBM실장, 조기현 유엔파인 대표, 김동헌 근로복지공단 부장, 장두원 과기부 소프트웨어산업과장 등이 패널로 참석해 의견을 밝혔다.
먼저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의 채 부회장은 “김영삼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까지 전자정부 구축을 위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해 왔고 그 결과 이명박 정부 때 글로벌 전자정부 구축 1위를 하는 성과를 올렸다”며 “문제는 그 이후로 투자를 안하고 유지보수 중심으로 현상유지에 집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시스템 노후화를 초래했고, 그로 인해 모든 구조가 망가지는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어 채 부회장은 “현 정부가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안에 디지털은 하나도 없다”며 우려를 털어놨다.
“행안부에서 이번 문제 원인을 장비 탓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재난은 아니라고 하는데, 지금은 디지털 재난 상황이 맞습니다. 정부가 기능을 상실한 재난을 재난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죠. 그에 따른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내년 (공공SW) 유지보수 예산이 30% 이상 절감됐다는 얘기가 들리거든요. 이건 30% 정도의 시스템을 걷어 내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유지를 안하겠다는 얘기니까요. 그런 과학적인 부분을 모두 생략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저가 예산에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유지보수만 해도 맨먼스(man/month)를 따지는데 어떤 기관은 15년째 그 예산이 동결입니다. 거기서 무슨 품질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또 앞서도 언급됐지만 SW 과업은 변경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따른 예산이 뒷받침 되지 않는 것도 문제죠. 결국 모든 시작은 적정한 예산입니다. 이후 그 예산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품질이나 프로세스가 제대로 됐는지 구조적으로 따져야지 지금과 같이 대폭 예산이 삭감되면 뭘 하겠습니까.”
지난해 현 정부 출범 당시 ‘소프트웨어 주도 국가경제정책’을 제안하기도 한 이남용 숭실대 교수 역시 채 부회장의 의견에 동의하는 한편, “펑션 포인트(FP) 기반 예가 산정 방식을 쓰는 것은 이제 우리나라 뿐”이라고 지적하며 “미 연방 정부에서 적용하는 WBS(work breakdown structure, 작업분할구조) 기법으로 프로젝트 매지니먼트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수행업체를 대변하는 목소리는 김상욱 대보정보통신 대표를 통해 나왔다. 김 대표는 “시스템 노후와에 따른 문제는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라며 “SW뿐 아니라 하드웨어도 어디서 어떻게 에러가 날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정부에서는 대기업이 참여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는데, 이는 왼쪽 다리가 가려운데 오른쪽 다리를 긁는 상황”이라며 “공공SW 사업의 문제는 예산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직격했다.
“정부에서는 아마 기획재정부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산이 줄고 인력에 대한 이슈는 이미 20년가까이 된 문제들입니다. 결국은 실행력 문제라고 봅니다. 정부는 이미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고 향후 더 커질 것이라는 것도 분명히 예측이 되는데, 정부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가 우려됩니다. 다행히 이번에 대통령실에서 과학기술 수석을 신설했는데, 그나마 발전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문제는 정부에서 열심히 한다고 한번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현장의 사업수행자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될 문제도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한 번 이미 문제를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겠다는 실행력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현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어 김민성 한국IBM실장은 “솔루션 기업들이 유지보수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은 이유는 ‘요율’ 때문”이라며 “과기부 등에서는 실질적인 유지보수 요율 가이드라인을 15% 최대 20% 가까이 인상 개선안이 나오고 있지만, 실제 정부 과제에서 적용되는 기준은 11~12%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그 마저도 부처 별로 다르게 적용돼 업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조기현 유엔파인 대표는 ‘전문성’ 문제를 지적했다. 이는 발주기관과 수행업체 모두에 해당하는 말이다. “사업자들도 처절하게 반성하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제한 조 대표는 “발주기관에서는 순환보직 원칙으로 IT 서비스, 공공SW사업에 대한 전문성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과기정통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공공SW발주기술지원사업을 많이 하고 있지만 참여한 기관이 전체 4%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 대표는 “대국민서비스 수요가 폭증하는 만큼 공공SW사업도 민간투자를 통해 대기업의 자본력과 중견·중소 기업의 역량이 상생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발주기관을 대표해 나온 김동헌 근로복지공단 부장은 “예산과 관련해 정부안과 국회의 최종안을 가지고 사업을 할 수 없는 한계선이 있다”면서도 “그 환경에서도 기관은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김 부장이 언급한 대안은 ‘설계 후 비용 결정’이다. 이는 ‘분석설계’와 ‘구현 테스트’ 비용을 별도로 하는 방식이다. 김 부장은 “소프트웨어 대가 산정에서 분석설계가 54%정도고 나머지를 테스트가 차지한다”며 “분석설계와 테스트 비용을 별도로 할 수 있는 체제만 만들어진다면 지금의 과업심의위원회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대안을 가지고 국가 사업자나 발주자가 좋은 품질을 구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를 통해 제기된 해법과 관련해 장두원 과기부 소프트웨어산업과장은 “오는 1월까지 정부에서 마련하는 대책에 구조적인 문제나 제도 개선 요구를 최대한 담아보도록 할 것”이라며 “과기부 역시 공공SW사업 관행이나 제도 개선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장 과장은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지만 각 패널 분들이 지적해 준 내용을 통해 아직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음을 통감한다”며 “발주기관의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하고 과업 변경 심의를 내실화하는 것이 현실 대안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어 장 과장은 “각각의 안건들을 잘 인식하고 있고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산업계와 논의하려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