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닮은 인공지능도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인간의 두뇌 vs 인공지능의 인공신경망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익히 들어봤을 법한 이 말은 프랑스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가 제시한 논리입니다. '생각하므로 또 존재한다(Je pense, donc je suis)'라는 말 자체가 어쩌면 되게 단순할 수 있는데, 유명인사들의 '명언'이라도 되는 듯 오랜 시간에 걸쳐 회자되었죠. 데카르트라는 철학자보다 더 유명한 이 짧은 문장은 데카르트를 철학 분야의 대스타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을 합니다. 데카르트도 생각이라는 것을 했을 테니 이런 말이 나왔을 테죠.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생각한다고도 볼 수 없으니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 숨 쉬는 모든 인간은 두뇌가 있어 생각을 하고 또 존재합니다. 사실 그냥 얼렁뚱땅 이렇게만 표현하기엔 짧은 문장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와 '인간의 성찰'이라는 것은 너무 깊고 광범위합니다. 감히 제가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말이죠. 어쨌든 이러한 명제를 통해서 "어떤 특정 물질이 공간을 차지한다"라는 둥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적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원어로는 Je pense, donc je suis)라는 짧은 문장은 철학자 데카르트가 방법론적 회의 끝에 도달한 명제입니다.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고 또 일체가 허위라고 생각할 수 있어도 이와 같이 의심하고 또 생각하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의심할 순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확실성을 표현한 것이죠.
작은 우주라 불리는 인간의 두뇌. 출처 : What If Show
작은 우주라 불리는 인간의 두뇌
과거의 데카르트도, 지금의 나도 그리고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생각하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인간은 누구나 '두뇌'라는 것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인간의 두뇌는 작은 우주(Universe)인 듯 그 끝을 알 수 없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니 뇌과학(brain science)이라는 것도 '뇌의 신비를 밝혀내 인간의 물리적이고 정신적 기능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하니, 마치 우주 공간 다루듯 미지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인간의 두뇌가 광활한 우주처럼 복잡하다고 말하지만 질량으로 보면 고작 1~2kg 안팎이라고 합니다(그런데 제 머리는 왜 더 무거운 것 같죠?) 다른 동물들과 비교하면 그렇게 작은 크기도 아닐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를 '작은 우주'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안에 담고 있는 신경세포 자체가 무려 약 860억 개에 달하고 이를 통한 판단, 지능, 지각, 기억 등을 비롯하여 무의식이나 꿈처럼 미지의 세계도 존재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작지만 거대한 두뇌를 꼭 닮은 '인공신경망'이라는 것이 탄생했다는 것이니 어찌 놀랍지 아니한가요. 또한 이러한 인공신경망이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며 분석까지 할 수 있어 이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곤 합니다. 더욱 심플하게 표현하면 '인간의 지능을 컴퓨터와 같은 기계를 통해 인공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네요. 영화 속에서 인공지능을 표현하는 경우 사람과 대화를 하는 장면들이 종종 나오곤 합니다. 실제 사람과 대화하듯 굉장히 자연스러운 표현들을 하기도 하지만 때론 어색하게 연출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죠.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할, <그녀>의 사만다, <인터스텔라>의 타스, <터미네이터>의 T-1000 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 <아이언맨>의 자비스라던가 <프로메테우스>의 안드로이드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함)을 보면서 AI를 어느정도 현실감 있게 다룬 것처럼 느꼈답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프로메테우스>의 경우는 기존 '에일리언'의 프리퀄이고 극중 등장한 데이빗은 꽤 비중 있는 캐릭터였죠.
극중에서 찰리 할로웨이(로건 마샬 그린)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인류를 창조했다고 하는) 엔지니어를 만나게 되면 꼭 인간을 창조한 이유를 묻고 싶어"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데이빗은 "저도 인간이 (저와 같은) 로봇을 만든 이유가 궁금합니다"라고 받아칩니다. 인류의 기원에 대해 궁금해할법한 찰리의 궁금증은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단순한 호기심 그 이상입니다만 안드로이드인 데이빗 역시 이러한 궁금증을 갖고 있다는걸 보면 데이빗이 가진 인공신경망은 어쩌면 '오버 테크놀로지'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떻게 저런 궁금증을 가질 수 있는지 말이죠. 하지만 데이빗이 실존한다면 매우 크게 도움을 받기도 할테지만 종종 오싹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인조인간, 데이빗 8. 출처 : inverse.com
인간이 대화하는 방법, 인공지능이 대화를 지속하는 방법
사람은 자신과 다른 인격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는 그것을 '대화(Conversation)'라고 부릅니다. 초면이든 구면이든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아주 짧은 순간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죠. 어려운 자리일수록 그 생각은 더욱 깊어지기도 합니다. 언변이 좋지 않다면 더욱 중언부언할 수도 있습니다. 남녀가 소개팅을 한다거나 비즈니스 차원에서 어려운 미팅 자리에 앉게 되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me thinking of something else completely while I'm being talked to(내가 말을 하는 동안에도 딴생각을 하는 내 자아)
아마도 설렘과 긴장의 연속일 것입니다. 머릿속에서 다양한 것들이 마구 스쳐 지나가겠군요.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한 불특정의 대화 주제를 던져놓고 1시간이든 2시간이든 어렵지 않게 하는 '투머치 토커형'의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1분 1초를 이어가다가 침묵이라는 틈이 생겨 생각의 늪에 빠지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상대방을 향해) 어서 무슨 말이든 좀 해봐!"
무슨 말을 해야하지? 출처 : MBC 나혼자산다
스스로 혼잣말을 하기도 합니다. 머리로만 생각해야지 입 밖으로 내뱉어지면 답이 없습니다. 침묵이란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이죠. 인공지능은 이러한 침묵을 어떻게 유지하고 또 깨뜨려버릴까요? 사실 챗봇(Chat Bot)이라는 것도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합니다. 유저가 쿼리를 던져주면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서는 침묵을 유지합니다. 할 일을 다 한 것이죠. 요즘 인공지능 챗봇은 알고리즘 자체가 바뀐 탓인지 조금 달라지긴 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날씨 알려줘"라고 쿼리를 던지면 "XX동 날씨는 오전 23도, 오후 30도이고 가끔 소나기가 내리며 저녁에는 비소식이 있습니다"라며 콤팩트한 답을 제시해 줍니다. 잠시 뒤 "오늘 비소식도 (자세하게) 알려줄까요?"라던가 "내일 날씨도 알려줄까요?" 혹은 지난번 쿼리에 대한 질문을 기억하고서는 "(일상적으로 물어봤을법한) 미세먼지도 알려줄까요?"라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합니다. 굳이 따지면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라기보다 유저가 궁금해할 법한 질문을 역으로 던지는 셈이죠. 당연하지만 인간이 대화하는 방식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도 판단(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특정한 알고리즘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주어진 문장이 있으면 그다음에 나올 확률이 가장 큰 단어를 생각하고 선택합니다. 처음 X개의 단어로 대화를 시작했다면 여기서 'X+1, X+2... X+a번째' 단어를 마구 생성합니다. 그리고 이는 점점 거대한 스케일의 언어 모델로 진화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확률적 측면의 언어 모델로서 문장을 생성하게 되는 셈이지만 이러한 능력은 충분히 언어 구사가 가능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인공지능은 이러한 언어구사 능력 이외에도 문제를 해결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하며 데이터를 기억해 대화를 진행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떠한 문제를 경험했을 때 이를 해결하고자 골똘히 생각을 합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한 끝에 몇 가지 방안을 찾아 이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대화를 할 때에도 초면인 경우 상대방의 기분이나 분위기를 파악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고 구면인 경우 이전에 만났던 경험들을 기억해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명함을 건네주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삼송전자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데이빗입니다"
(별로 들은 건 없어도) "아 네 반갑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다소 어색할 수 있는 첫 상견례이지만 '초면'이라는 것도 시간이 흐르면 '구면'이 되고 나아가 네트워크로 발전하게 됩니다.
"데이빗, 오래간만이네. 더 젊어진 것 같은데?"(벌써 말도 놓은 상황)
"아이고 이게 누구야.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이전보다 더 친근)
네이버의 클로바 케어콜 서비스. 출처 : Naver 보도자료(2022.05.30)
반면 인공지능은 그냥 늘 새로운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계속해서 '초면'인 거죠. "반갑습니다. 저는 당신의 인공지능 비서 ooo입니다"라며 어제 대화를 했음에도 늘 새로운 듯 인사를 합니다. 하지만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가 있습니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는 실버세대를 위한 케어콜이라는 서비스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1인가구 어르신들을 위한 말벗 서비스'랍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챗봇이기는 하지만 굉장히 자연스러워 전국 지자체에 서비스되고 있어요. 2021년 출시되었고 2022년에 업데이트되어 기억 저장 능력을 더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존의 통화 내용을 인지하고 안부를 묻는 경우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식사는 하셨나요?", "어디 아프신 곳은 없구요?"
실제 녹음된 것을 바탕으로 재연한 샘플 파일을 들어봤는데 인공지능이라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자연스러웠고 무엇보다 살갑게 느껴지기도 했죠. 그리곤 '아, 인공지능도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구나'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그만큼 홀로 쓸쓸하게 살고 계신 어르신들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쩌면 누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인공지능이 대신해주는 셈이니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요?
인공지능의 '생각'이란?
위에서 '인공지능도 생각한다'라고 표현했습니다만 인간과 꼭 닮은 인공신경망은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과 아주 같진 않습니다. 인간처럼 보이는 텍스트를 생성하고 그러한 기능을 통해 대화에 참여할 수 있을 테지만 자의식이라던가, 감정 따위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챗GPT 역시 자의식과 감정이라는 것의 '부재'를 인정합니다. 수차례 언급된 것처럼 주어진 정보를 처리하고 답변을 생성하는 생성형 모델이라는 것이죠. 인공지능의 답변도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성되고 꾸준한 학습을 통해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리고 일관성 있는 답변을 자연스럽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생각한다고 하는 방식은 복잡한 패턴의 인식 과정일 뿐입니다. 최근 발표된 LG AI연구원의 인공지능 모델인 '엑사원(Exaone)'은 사용자가 질문을 던졌을 때 'Thinking'이라고 표현하고 있더군요. 과거 대다수 컴퓨터는 'Load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오픈 AI의 챗GPT는 'Generating'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GPT4에게 '생각이 가능한지' 물어봤습니다. 출처 : GPT4
이처럼 인공지능은 알고리즘과 학습에 의해 판단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억도 합니다. 학습된 데이터는 물론이고 대화를 통해 주고받은 실시간 데이터 역시 아주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두뇌는 작지만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능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두뇌와 비교했을 때 스케일면에서 다를 수 있지만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셋에 따라 활용 능력을 다르게 가져갈 수 있답니다. 인간은 생각하므로 존재합니다. 인공지능 역시 판단하고 있으므로 또 존재하고 있는 거겠죠. 데카르트가 이러한 인공지능을 봤다면 어떠한 명제를 냈을지 궁금해집니다.
※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입니다. 바이럴 영상으로 만들어진 클립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