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발명가 등장, 머지 않았다

[AI 요약] 1953년 현재의 컴퓨터 구조를 처음 제안한 천재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기술적 특이점'을 언급한 이래 이 용어는 다양한 과학 기술 분야 전문가를 비롯해 미래학자들에게 애용되며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한 인공지능(AI) 기술은 최근 인간만의 영역으로만 인식됐던 창작과 발명까지 도달하며 ‘인공지능 발명가’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인공지능 다부스가 인간 고유의 영역인 발명에까지 발을 들이게 되며 세계 각국은 '인공지능에 대한 법적 지위 부여'를 주제로 격렬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1953년 현재의 컴퓨터 구조를 처음 제안한 천재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을 언급한 이래 1993년 3월 미항공우주국 산하 루이스 조사센터와 오하이오항공우주 연구소가 후원한 심포지움에서 수학자, 컴퓨터 과학자이자 SF소설가 버너 빈지(Vernor Vinge)는 다시금 인공지능이 불러올 미래의 변화를 이 용어로 정의했다. 이후 이 용어는 다양한 과학 기술 분야 전문가를 비롯해 미래학자들에게 애용되며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도래할 기술적 특이점:포스트휴먼 시대의 생존법’이란 제목으로 발표된 버너 빈지의 에세이에는 향후 30년 내에 인간을 뛰어넘는 지성을 창조해낼 기술적 수단을 갖추게 된다는 예측이 담겨 있다. 물론 그로 인해 인간의 시대는 종말 할 것’이라는 디스토파아적인 예측이 포함됐지만 현 시점에서 주목할 것은 그가 예측한 ‘인공지능이 불러올 미래의 변화’다.

버너 빈지의 에세이 이후 28년이 지난 지금, 그 사이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한 인공지능 기술은 최근 인간만의 영역으로만 인식됐던 창작과 발명에까지 도달하며 ‘인공지능 발명가’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AI 시스템 다부스(DABUS) ‘발명가로 인정해 달라’

인공지능 개발기업인 이매지네이션 엔진의 창업자인 스티븐 탈러 박사는 지난 2018년 인공지능 시스템인 다부스(DABUS)를 발명가로한 특허를 16개국에 출원했다. 특허출원 된 발명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프랙탈(Fractal) 디자인을 이용한 음식 용기’는 프랙탈 기하학에 기반해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새로운 유형의 음료 용기다. 두 번째 출원된 발명은 ‘신경동작의 패턴을 모방해 깜박이는 램프’로 수색·구조 작업 중 사람의 주의를 끌기 위한 램프로 알려졌다.

논쟁은 특허 자체보다 주체로 집중됐다. 어느 나라 건 사람이나 법인을 제외한 특정 대상이 법적 권리의 주체가 되는 경우는 이제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 사례를 돌이켜 봤을 때 법적 관점에서의 해결 방안은 있다. 시대에 맞춰 법을 정비해 새롭게 권리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지금은 법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 받는 ‘법인’ 역시 한때 인공지능 발명가와 마찬가지로 인식됐던 시절이 있었다.

이유는 형체가 불분명한 ‘법인’에 사람과 동일하게 법적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심지어 19세기 중반까지도 주식회사법상 유한책임이 표준적인 원칙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역시 1931년까지 회사 채무에 대해 주주들이 개인적으로 무한책임을 졌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 시대에 법인은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별개의 법인격을 인정받으며 사회적으로도 법적 주체로서 작동하고 있다.

‘인공지능 발명가’ 최초의 시도였지만…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결국 좌절

인공지능 시스템 다부스의 발명 특허는 주요국에서 논쟁적인 주제로 다뤄졌다. 그 사이 탈러 박사는 다부스를 발명가로 인정 받게 하기 위해 2년이 넘도록 지속적인 국제 마케팅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다부스가 특허 자격을 갖추는 데 필요한 ‘혁신적 단계’를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다부스가 의식적인 인간의 두뇌처럼 인식, 창의, 지각, 의식 등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철학적 싸움”으로 자신의 활동을 정의했다.

하지만 미국 특허청(USPTO)은 지난해 5월 인공지능의 특허 출원을 거절했다. 결정문에서 언급된 사유는 “미국 특허법에서 발명가를 인간으로 보는 용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고, 현행법상 특허 출원에는 자연인만이 발명가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였다.  

유럽 특허청(EPO) 역시 지난해 11월 ‘특허출원서에 기재되는 발명가는 반드시 기계가 아닌 인간이어야 한다’는 유럽특허협약을 근거로 들어 끝내 특허 출원을 거절했다.

다만 유럽 특허청은 결론을 내리기까지 기존 ‘자연인’과 ‘법인’으로만 규정된 특허권 주체의 범주에 ‘전자 인격(Electronic personality)’을 더하는 안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 로봇공학, 지적재산권, 윤리 등 150여명에 달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서한을 받은 후 결국 거절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 다부스의 발명 특허 요청에 대해 현재까지 주요국 특허청에서는 거절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는 언젠가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사진=픽사베이)

그 외에도 우리나라와 영국, 호주 등 역시 현행 특허법상 자연인만이 발명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인해 다부스를 발명가로 하는 특허 출원은 거절됐다.

한편 남아공은 유일하게 지난 7월 다부스의 특허를 인정했다. 다만 남아공 특허청은 인공지능도 발명가가 될 수 있는지 여부 검토는 생략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와 달리 특허 등록 전 실체 심사를 하지 않는 제도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전, 그리고 이어진 논란

주요국에서 특허 출원이 좌절되며 ‘인공지능 발명가’의 탄생은 실패한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곧 반전이 일어났다. 탈러 박사가 ‘다부스의 발명을 인정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지난달 30일 호주 연방법원이 “인공지능이 발명가가 될 수 없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고, 인간이 아닌 발명가를 배제하는 조항이 없으니 인공지능 시스템이나 장치도 발명가가 될 수 있다”고 판결하며 탈러 박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호주 특허청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부스의 발명’이 촉발시킨 논쟁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해 2월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인공지능에 특허권을 주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가 담긴 자료의 초안을 공개하며 논쟁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자료의 주 내용은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아닌 인공지능 자체에 소유권, 재산권, 특허권을 인정하자”였다.

이에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등 국가는 물론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인텔, 화웨이, 텐센트, 필립스 등이 WIPO에 앞다퉈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체로 “지적재산권 및 특허권 관련 법안은 AI가 발명가로 인정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반대 의견이 주를 이뤘다.

유럽의 경우 “인간이 발명한 기술이 인간과 같은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 받을 시 생기는 혼란을 대비한 근본적인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는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인공지능 발명가, 인식 전환 시작한 한국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티븐 탈러 박사는 지난 6월 우리나라 특허청에도 다부스의 발명에 대한 특허 출원을 접수했다. 특허청의 입장 역시 일단 다른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자연인이 아닌 인공지능을 발명가로 인정하는 것은 현 특허법에 위배된다”였다.

다만 명확한 반대 입장을 내는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 특허청과 정부의 입장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전향적인 편이다. 우선 특허청은 탈러 박사의 특허 출원에 대해 완전한 거절 대신 현행법을 고려해 형식에 맞춰 발명가를 인공지능 다부스가 아닌 사람으로 수정하라는 ‘보정요구서’를 보냈다.

이어 특허청은 가칭 ‘AI 발명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하고 그 첫 회의를 지난 12일 온라인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참여자는 법제, 기술, 산업 분과별 15명 내외의 AI 전문가로 구성됐다.

우리나라 특허청은 일단 인공지능이 특허 출원의 주체로 명시되는 것에 대해 법적인 한계로 수정을 요청한 상태다. 그러나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법률적 쟁점을 따져보며 변화에 전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법제 분과는 논문 발표 등 AI 발명에 대해 식견이 높은 교수, 판사, 변호사 등 법학 전문가로 구성됐으며, AI 발명가 인정 여부와 AI가 한 발명의 특허권은 누구에게 귀속해야 하는지 등 법률적 쟁점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기술 분과는 AI를 개발하고 있는 대학‧연구원 전문가로, 산업 분과는 AI를 상용화하고 있는 기업의 전문가로 구성됐으며, ‘AI의 기술수준, AI가 스스로 발명할 수 있는지’ 등의 기술 쟁점과 ‘AI가 한 발명의 보호가 우리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한편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중심으로는 가칭 ‘인공지능 지식재산 특별법’ 제정을 위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최근 인공지능-지식재산 특별전문위원회 2기를 출범시키고 인공지능 창작물의 제도화 방향 정립과 신규 이슈 발굴 등의 주요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다.  

특히 인공지능-창작물 소위에서는 ‘인공지능을 저작자·발명가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 원칙’을 마련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창작물의 차별적 보호 및 소유권 주체에 대한 기본 원칙과 지식재산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포함하는 ‘특별법’ 제정의 실효성을 검토하고 있다.

세월이 지난 후 지금의 시기를 인공지능의 기술과 지위가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한 ‘특이점의 시대’로 기록할지 모를 일이다. 어찌됐든 변화는 시작됐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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