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가속화되는 디지털 전환은 의료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며 의료 인력 양성에 필요한 교육 역시 커리큘럼 진행에 차질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의료 시뮬레이션 교육 솔루션 ‘널스베이스’의 등장 이후 상황은 바뀌고 있다.
박선영 대표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최고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라는 이유로 디지털 기술 도입이 쉽지 않았던 환경을 극복하고 의료인들이 ‘엄지척’하는 ‘널스베이스’ 솔루션을 선보이며 단숨에 주목받는 기업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응축된 비대면 의료 교육 니즈, 상용화 된 VR 솔루션 나오자 ‘관심 집중’
의료 분야의 전문가 즉 의사, 간호사 등의 의료 전문인력 양성에는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된다. 매년 3000~3500명 내외 전문의와 2만명 내외의 간호사들이 배출되고 있지만 최근의 코로나19 상황을 보면 의료 붕괴를 우려할 정도로 인력난이 극심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의대와 간호대학의 정원을 늘릴 수는 없다. 가르치는 선생들 수도 한정돼 있을 뿐 아니라, 앞서 언급한 시간과 비용에 한계가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뉴베이스가 제시한 VR(가상현실) 의료 시뮬레이션 교육 솔루션인 ‘널스베이스’의 등장은 의료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와 관련된 협업과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도 연이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박 대표는 “VR 간호 시뮬레이션 교육이라는 명확한 제품 콘셉트를 설정한 후에는 간호대학 등 여러 의료교육기관에서 수업에 도입하는가 하면, 세일즈 파이프라인이 100개가 넘어가고 있을 정도로 반응을 얻고 있다”며 “최근 서울여자간호대학교, 순천대학교 등 간호대학 교육과정에 도입되었고, 삼성서울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과는 콘텐츠 공동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성과를 설명했다.
의료 교육용으로 채택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의료전문인들에게 실용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기도 하다. 실제 널스베이스 솔루션은 메타가 2014년 인수한 오큘러스의 VR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와 연동돼 케이스별 환자 확인, 환자의 상태 변화 감지, 다른 의료진과 의사소통, 각 상황별 필요한 처치 등의 교육과정을 생생한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학습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널스베이스에 포함된 술기는 신체 사정, 환자 감시 장치, 산소 투여, 흡인, 정맥 주사, 정맥 투약, 인퓨전 펌프 등으로 다양한데, 학습자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안전하게 수술이나 처치 등의 과정을 습득하는 한편, 교수자에게 개별 피드백을 통해 잘못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 또 교수자는 피드백을 과정에서 학습자의 학습 성과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이를 디브리핑에 사용할 수도 있고 학습자 역시 자신의 시뮬레이션을 다시 재생해 반복 학습에 사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은 시나리오 기반 3D 가상 체험으로 진행돼 학습자로 하여금 실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해준다.
시행착오 거듭했지만, 영역 확장성 확인하는 계기 돼
사실 ‘뉴베이스’의 최초 사업은 VR 의료 시뮬레이션이 아니었다. 2014년 소셜 벤처로 설립 당시에는 재난 도상 훈련(TTS) 서비스 제공이 주 사업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시기이기도 했고 다양한 재난 상황에서 대응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훈련 필요성이 제기되는 등 관련 니즈가 형성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뉴베이스가 제시한 서비스는 각 재난 훈련 상황에 최적화된 현장응급의료소 설치와 운영, 재난환자의 중증도 분류, 처치, 이송 등 원외 재난 대응 도상훈련 키트와 시뮬레이션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박 대표는 초기 사업 설명과 함께 VR 의료 시뮬레이션 개발로 피보팅(Pivoting, 사업 방향 전환)을 하게 된 계기를 털어놨다.
“각종 재난 도상 훈련 프로덕트를 만들게 되면서 의료 분야에 대해서도 니즈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어요. 당시에도 오프라인 교육이나 영상으로 제공되는 교육은 많이 있었어요. 보건소 교육, 구급대원 교육, 의료진 교육 등 다양했고 정보나 데이터도 이미 풍부했고요. 그런 내용을 확인하게 되면서 이것을 온라인화해야겠다 생각하게 됐고, VR 의료 시뮬레이션 교육으로 포커싱한 거예요.”
그 과정에서 뉴베이스의 비전도 커졌다. 현재는 피보팅 과정을 거치며 재난 도상훈련을 비롯해 의료 교육 등 시뮬레이션 교육이 필요한 각 의료 분야의 허브로서 뉴베이스 플랫폼을 구축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여기에 최근 중대재해법 등이 적용되며 기업들의 재난·재해 관련 교육 솔루션 니즈에 부응하는 프로덕트를 추가했다.
“재난 대응과 관련 된 응급의료 훈련·교육에 필요한 시뮬레이션 키트를 올해 ‘세이퍼스’라는 브랜드로 론칭했어요. 오프라인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키트죠. 지난해부터 한국전력과 개발한 보호·안전 교육 키트도 개발해 납품을 완료한 상황이고요. 이러한 프로덕트와 함께 널스베이스는 올해부터 뉴베이스 플랫폼을 기반으로 클라우드 환경에서 더 많은 창작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서비스하려고 해요.”
박 대표가 구상하는 다음 목표는 뉴베이스 플랫폼을 통해 간호 분야를 넘어 다양한 의료 분야를 다루는 VR 시뮬레이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른바 의료 메타버스 플랫폼인 셈이다.
“저희가 생각하는 메타버스는 유저인 의료진 분들이 중심이 되는 거예요. ‘메디크루’라고 명명했죠. 저희가 확보한 가상 디지털 환자 기술이라든지 임상 실기 모듈, 다양한 의료 전문가들이 보유한 임상 시나리오가 이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시뮬레이션화 되고 교육 서비스로 제공되는 거예요. 올해는 그 시작으로 ‘메디크루 캠퍼스’를 오픈할 예정입니다. 널스베이스, 메디베이스, 서바이벌베이스 등의 콘텐츠들이 결합돼 메디크루 캠퍼스 안에서 시뮬레이션 할 수 있고, 교육에 필요한 여러 임상 시나리오도 디벨로퍼들의 참여를 통해 공유하는 형태가 될 거예요. 교수님들은 클래스 관리 시스템을 통해 수강 학생을 관리하고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고요.”
국문과 출신 디자인 컨설팅 전문가가 ‘어떻게’ 의료 시뮬레이션 솔루션을 만들었을까?
뉴베이스가 제시하는 솔루션과 향후 진행하는 비전을 접한 의료 현장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박 대표가 가장 많이 접하는 피드백은 “예전부터 학생들에게 이런 방식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드디어 개발됐다”는 것이다.
이렇듯 현장의 반응이 뜨거운 이유는 사업 초기부터 전문 의료인들을 만나 자문을 받고, 그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부분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박 대표가 국문과를 전공하고 디자인 컨설팅 분야에 몸담았던 비전문가라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는 의미다.
“UX 디자인과 신규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을 오래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의료 분야에는 유독 사용자 경험이 반영된 서비스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 순간 ‘너무 쿨하고 할 일이 많은 섹터’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작정 도전한 거예요(웃음). 이미 훌륭한 의료 전문가 분들이 계시고, 엄청난 자본과 전문 의료 기술이 투입된 분야지만 문제는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기 쉽지 않다는 거였죠. 그 부분은 제가 자신이 있었고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언뜻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덜컥 창업을 한 뒤 세브란스병원 재난의료교육센터에서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만 듣고 사업제안서를 만들어 무작정 찾아간 것이다.
“하루 2~3시간 자면서 고민하고 연구한 사업제안서를 들고 세브란스병원에 처음에 가니까 모두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러다가 장혁재 교수님을 만나게 됐어요. 일면식도 없는 상황에서 찾아뵈니 마침 세브란스병원에서도 업체를 찾는 중이더군요(웃음). 10곳이 넘는 업체를 만나봤지만 나서는 곳이 없어 진행을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지금 생각하면 진정성을 보시고 수락해 주신 것 같아요.”
하지만 박 대표는 시작부터 벽에 부딪히는 경험을 했다. 의료진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수백장에 달하는 논문을 수시로 보내왔지만 용어 하나부터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결국 초기에는 ‘포기’를 떠올리기도 했다”는 박 대표가 다시금 당시를 떠올렸다.
“안되겠다 싶어 교수님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어차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하고 싶은 사람이 하는게 좋다'고 격려해 주시더군요. 그 말씀에 힘을 얻어서 모르는 것은 병원에서 만나는 분들마다 붙잡고 물어보며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나중에는 제 얼굴 만 보시면 먼저 이것 저것 말씀해 주시고,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주시기도 하더군요. 거의 과외 받는 수준이었어요(웃음).”
박 대표의 올해 목표는 현재 3000명 수준인 널스베이스 이용자를 3만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박 대표는 “지금 현장의 반응으로는 그 이상도 가능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이후로도 지속 가능한 헬스케어 솔루션은 이러한 비대면 서비스로 갈 것이라 생각해요. 환자와 의료진의 안전을 모두 지키면서 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의료진 교육뿐 아니라 국가고시 시험 실습 평가 방식도 향후에는 현장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내용으로, 시뮬레이션 기반의 테스트가 진행될 거라 생각해요. 그런 영역에서 저희가 기여할 부분도 많을 거고요.”
얘기를 듣고 보니 전투기 조종사의 모의 훈련이 떠올랐다. 돌발적인 상황 대응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훈련, 의료 분야 역시 돌발적인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는 만큼 그 목적은 동일한 것이 아닐까? 박 대표 역시 맞장구를 치며 좀 더 장기적인 구상을 설명했다. 이른바 ‘메타 병원’이다. 미래를 그리는 박 대표의 표정에 자신감이 가득하다.
“저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누구나 양질의 의료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 ‘메타 병원’이에요. 환자를 치료하고 진단하는 원격 의료와는 다른 개념이에요. 그 보다는 양질의 의료 지식을 기반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죠. 이를 통해 오래 전부터 제기되고 있는 문제인 지역별 의료 불균형도 해소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미개발국가나 개발 도상국 의료 지망자들에게 선진국 수준의 의료 교육도 제공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의사 면허가 없어서 자유로운 임상 실습을 할 수 없는 학생들도 이용할 수 있고요. 각 학과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도 있고, 의료 분야의 다양한 직역을 체험할 수도 있겠죠.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자유로운 의료 교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거죠.”
소셜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