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보코서울강남에서는 ‘하이브리드 워크 서밋 2023((Hybrid Work Summit 2023, 이하 하이브리드 서밋)’이 열렸다. 비즈니스 메타버스를 지향하는 오비스의 버추얼 오피스를 적용한 기업들이 참여해 ‘일하는 방식의 진화’를 주제로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 앞서 만난 정세형 오비스 대표는 91년생의 젊은 CEO다. 하지만 그의 창업 이력은 이미 10여년이 훌쩍 넘는다. 첫 창업은 호주에서 고교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해외 직구’ 업체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그는 다시 일본 교토 공예섬유 대학 중 채용플랫폼 ‘HR데이터뱅크’를 창업해 일본 HR기업인 윌그룹에 매각하며 엑시트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런 정 대표가 다시금 일본에서 오비스(oVice)를 창업한 것은 지난 2020년의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코로나19로 4개월의 격리 생활을 한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이때를 전후해 정 대표는 ‘일하는 방식’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 이전까지 그에게 있어 일이라는 것은 ‘좋은 사무실에서 서로 함께하며 하는 것’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가피한 격리 생활로 원격 업무를 진행하게 되며 가상의 오피스를 직접 개발해 도입하게 됐고, 이는 오비스라는 브랜드로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리며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됐다.
글로벌 ‘비즈니스’ 메타버스 플랫폼, 오비스 탄생 스토리
“’HR데이터뱅크’를 매각 후 부업 식으로 세 번째 창업을 했고, 아프리카 튀니지에 개발자들이 있어 관리를 하기 위해 2020년 2월에 튀지지를 가게 됐어요. 공교롭게 코로나19가 막 확산되던 시기였죠. 갑자기 튀니지 정부에서 내일 국경을 닫는다며 지금 출국 하지 않으면 못 나간다고 하더군요. 결국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했죠. 그래도 ‘한 일주일이면 나가겠지’ 했는데 결과적으로 4개월의 격리 생활을 해야 했어요.”
막 새로운 시도를 하던 차에 발이 묶여 버린 정 대표로서는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원격근무를 경험하게 된 셈이다. 문제는 그 전까지 그는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남다른 고집이 있었다는 점이다.
“연이어 창업을 하면서 항상 좋은 오피스를 마련해 직원들을 모으고 내가 보는 앞에서 함께 하는 것이 제대로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전에도 해외 출장을 갈 경우에는 잠시 원격 근무를 하긴 했지만, 그때는 그저 문서를 확인하고 메일을 보내는 수준이었죠. 풀 타임으로 원격근무를 무려 4개월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어요.”
예상치 못한 격리 상황에 놓인 채로 업무를 진행하며 정 대표가 처음 느낀 것은 ‘위화감’이었다고 한다. 평소 오피스에서 근무할 때 자연스레 감지되던 각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이나 문제 등을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 대표가 경험한 어려움은 ‘소리 없음’이었다.
“오피스에 앉아 있으면 집중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소리로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알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2~3명이 모여 심각한 얼굴로 얘기하는 것을 보면 ‘뭔가 잘 안되고 있구나’하는 것을 감지하는 거죠. 그렇게 들려오는 소리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회사의 분위기가 파악되는데, 원격업무로 줌 같은 것을 쓰면서 일을 하니 ‘깜깜이’ 상황이 된 거예요.”
이런 저런 원격근무 툴을 사용하던 정 대표는 결국 일반 오피스와 같은 업무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원격근무 툴을 직접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실제 오피스와도 같은 업무 경험을 할 수 있는 가상의 오피스, 오비스의 시작이었다.
“회사 상황이 전혀 파악이 안되는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2주 정도 개발해 프로토 타입으로 원격근무에 도입했죠. 그때는 이것을 서비스로 만들려고 하기보다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막상 적용해보니 진짜 오피스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이걸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때까지 진행하던 사업을 모두 정리한 뒤 여기에 올인했죠.”
그렇게 정 대표는 4개월의 튀니지 격리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직후인 그해 8월 정식으로 오비스 서비스를 론칭했다.
네 번째 창업, 일본 버추얼 오피스계의 ‘라인’이 되다
원격근무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오비스는 일본에서 소위 대박이 났다. 투자를 비롯해 서비스 론칭, 고객사 확보 등이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5개월만에 1000개 기업이 오비스의 버추얼 오피스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 버추얼 오피스 분야에서 오비스의 시장 점유율은 90%가 넘는다. 토요타, 키옥시아 등의 일본 대기업이 업무용 SaaS(서비스용 솔루션)로 사용하며 그야말로 일본 버추얼 오피스계의 라인과 같은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늘 ‘왜 일본에서 오비스를 시작했냐’는 질문을 받아요. 제 입장에서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대학 시절 창업을 했던 경험이 있다보니 한국보다 일본에서의 네트워크가 많았던 것이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1억원 규모의 프리 시드 투자에 이은 10억원 규모의 시드투자도 순조롭게 유치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지난해 무렵 한국에서 게더타운이 서비스를 하더군요. 저희의 경쟁사이기도 하고 오비스가 더 낫다고 판단해 ‘한국을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정 대표의 생각은 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지난해 8월 오비스는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영업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원격근무가 확산되던 분위기와 맞물리며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일본에 이어 한국 시장에서도 성과를 내기 시작하며 오비스는 지난 8월 시리즈 B 투자 유치를 완료했다. 누적 투자금은 그사이 650억원을 넘어섰다. 정 대표는 이제 일본, 한국 시장을 넘어 글로벌 서비스로 오비스의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초기에 게더타운을 테스트했던 기업들은 이제 다 오비스를 쓰고 있어요. 게더타운의 대항마로 떠오르면서 빠르게 성장하게 된 셈이죠. 일반 회사와 같이 오비스에도 출근 러시아워가 있어요. 보통 평일 9시에서 10시 사이면 7만명이 동시에 오비스 버추얼 오피스로 출근을 하죠. 오비스의 오피스는 공간 개념으로 임대를 하고 있어요. 50명이 들어가는 하나의 가상 스페이스 당 비용을 받는 식이죠. 그래서 저희가 표방하는 또 다른 사업이 바로 ‘버추얼 부동산’이에요. SaaS의 특성상 보통 유지 가동이 핵심인데, 유저 1명당 비용을 받게 되면 대기업의 경우 전직원에 비용을 적용하기 힘들죠. 그래서 공간 당 과금 식으로 발행된 오비스의 스페이스는 3만개가 넘어가고 있어요. 또 이 스페이스를 쌓아서 빌딩을 만들죠. 빌딩 개념으로 오비스의 가상 빌딩은 1000개를 넘고 있습니다. 1년전 200개 밖에 없던 것이 대도시화 되고 있는 셈이죠.”
정 대표의 설명 대로라면, 오비스는 실리콘벨리에서 적용되는 ‘T2D3(TripleX2, DoubleX3, 매출 성장률이 2년 간 3배, 3년 간 2배씩 성장해 유니콘이 된다는 개념)’를 반년 만에 해내며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실제 오피스와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오비스의 비결은?
오비스는 원격·하이브리드 근무를 위한 가상 공간을 지원하는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을 표방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미국, 베트남, 튀니지 등에서 총 5개국어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까지 오비스를 업무에 적용하는 기업, 공공기관 및 교육기관은 2300개를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오비스의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일까?
우선 오비스의 가상 공간은 프라이빗한 상담부터 팀 단위의 사무실, 대규모 인원이 참석 가능한 행사까지 다양한 크기와 목적에 맞게 제작이 가능하다. 실제 사무실과 같이 목적별 공간 분리와 개인 좌석, 회의실, 폰부스 등 공간 활동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고정 오브젝트, 유튜브 영상, 광고 배너 등을 설치할 수 있고,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공간을 빌딩으로 구축해 층간 이동도 가능하다.
이러한 특징이 적용된 오비스 가상 공간에서는 아바타의 움직임을 통해 동료 직원들의 실시간 상태파악이 가능하다. 아바타를 통해 쉽게 다른 사람들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회의실 공간에 직접 미팅을 예약하고 즉석에서 대화, 채팅, 화상회의가 가능하다. 정 대표는 “오비스의 가장 큰 장점은 실제 사무실 공간에서도 발생하는 불편함을 해결했다는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많은 기업들이 실제 사무실 업무 중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여러 개 협업 툴을 동시에 사용하죠. 오비스는 이러한 불편함을 해결해 음성 대화, 채팅 메시지, 화상 미팅, 동영상 동시 시청, 모니터 화면 공유, 실시간 문서 공유 등을 한 공간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무실과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기술도 특징적이예요. 이를테면 아바타 기반의 음성 대화는 아바타가 서로 가까워지면 상대방의 소리가 크게 들리고 멀어지면 작게 들리죠. 회의를 하러 한 공간에 모인 직원들의 아바타끼리는 굳이 줌 등의 툴 접속 없이도 사무실과 같이 얼굴을 보고 목소리로 소통하며 회의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오비스는 기존 협업 툴과 달리 실시간 직원들의 상태 확인이 가능하다. 보통의 협업 툴이 메시지에 대한 상대 답변을 기약없이 기다리거나 대화가 가능한 상태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오비스에서는 하나의 가상 공간에서 모든 직원들이 서로의 현황을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직원이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B직원이 가상공간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 그곳으로 간 뒤 바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식이다. 정 대표는 “이러한 오비스의 서비스는 일본에서 실제 신입 사원의 퇴사율을 줄이는 효과도 발휘한 바 있다”며 일본의 ‘엔 재팬’ 사례를 들었다.
“엔 재팬은 일본 HR 업계에서 3~4위로 꼽히는 기업으로 매출만 10조원 정도가 되죠. 여기서 2020년 10월 무렵에 오비스를 전사적으로 도입했어요. 이유는 신입사원들 관리 때문이에요. 코로나가 확산되고 비대면으로 신입사원을 뽑고 비대면으로 영업을 시키니 신입사원들은 동료도 못 만나고 집에서 전화만 돌릴 수 밖에 없었던 거죠. 그런데 신입사원이 전화로 영업해서 성사될 확률은 적으니 번번히 거절당하고, 멘탈이 깨지면서 우울증에 걸리는 거예요. 자연히 퇴사율도 높아졌죠. 하지만 오비스를 도입하고 달라졌어요. 엔 재팬에서 적용한 것은 그냥 사원들을 가상 오피스에 모이게 하고 전화를 하게 한 거예요. 그러면서 옆에 아바타 직원들이 전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사수가 그걸 듣고 방식을 바로잡아 주고, 지원해 줄 수 있게 됐죠. 계약을 따내면 모두 모여 박수치고 축하해주고요. 근무 장소는 각자의 집이었지만, 이렇게 신입사원들은 연결됐다는 느낌을 받게 되며 퇴사율이 현저히 줄어들었죠.”
정 대표는 이러한 변화의 이유를 ‘우발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회사의 성장 전략이나 사업 아이디어는 공식적인 회의보다 미팅을 끝내고 함께 걷거나 근무 중 잡담을 하는 와중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우발적인 대화의 경험을 오비스는 그대로 가상의 공간에서도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정 대표는 오비스를 당분간 다른 메타버스와 달리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코인 체계와 연계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과거 잠시 참여했던 ICO에서 제대로 된 프로젝트의 성공보다 ‘한탕주의’에 쏠리는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도 정 대표의 사업화 아이디어는 무궁무진 한 듯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에서 유저의 실질적인 가치보다 한탕주의가 만연한 때가 있었어요. 그 이후에는 크게 하락하기도 했죠. 그 다음에 메타버스가 떴는데, 앞서 블록체인 프로젝트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그때 메타버스가 오염됐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저희는 ‘비즈니스 메타버스’라는 것을 강조하죠. 다만 향후 현재 임대 방식의 버추얼 오피스, 버추얼 부동산이 매매방식으로 확장 될 때는 NFT를 적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공간을 채우는 가전이나 가구에도 적용할 수 있겠죠. 이를 통한 데이터 비즈니스도 생각할 수 있고요.”
소셜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