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명진 실비아헬스 대표, ‘유학파 경제학도가 서울대 의대 진학, 다시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대표가 된 이유는?’

‘비대면 인지 건강관리 솔루션, 실비아 플랫폼’으로 오프라인 중심 치매 관리 생태계 혁신할 것
봉사에서 깨달은 ‘에이지테크’의 필요성, 서울대 의과대-디캠프 데모데이 우승으로 창업 결심
B2C, B2B는 물론 B2G까지 확장성 높아, 2월부터 유료 서비스도 출시… 높은 성장 가능성 인정
세계적인 인구 고령화에 따라 치매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고민하는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중앙치매센터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인구 고령화 속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의 경우 오는 2050년 80세 이상 인구비율이 대표적인 초고령국가인 일본을 앞지를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858만명으로 총 인구의 16.5%에 해당하지만 오는 2030년 무렵에는 24%, 2060년 43.9%에 달하는 1881만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문제는 추정치매환자 수다. 국내 65세 이상 추정치매환자 수는 2021년 기준 88만 6173명에서 2060년 332만5602명으로 4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비용이다. 2021년 기준 의료비와 간병비 등을 포함한 치매환자 1인당관리비용은 2100만원을 넘어섰으며, 향후에도 지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지난 2008년 제1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을 시작으로 2017년부터는 ‘치매 국가책임제’를 추진, 노인성질환자 대상 요양시설 확충, 인식개선, 무료 기초검진 등 정책적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 환자의 진료나 치료비에 대한 지원에는 한계가 있고 여전히 치매환자의 돌봄 문제와 경제적 문제는 상당 부분 그 가족에게 지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실비아의 프로그램은 치매 예방을 세계 최초로 입증한 핀란드의 FINGER 스터디를 기반으로 설계됐다. (이미지=실비아헬스)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디지털 헬스케어다. 특히 그간 오프라인 중심으로 전개된 치매와 같은 노인정신 건강 문제 예방과 치료, 돌봄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기술은 디지털 헬스케어 중에서도 ‘에이지테크(Age-Tech)’로 불리고 있다.

이러한 에이지테크 분야에서 최근 AI(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실비아헬스는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고명진 대표와 하버드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출신의 전재민 CTO가 공동 설립한 에이지테크 스타트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을 향한 관심의 배경에는 대표의 독특한 이력도 한몫하고 있지만, 기술적 안정성과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하는 접근방법을 꼽을 수 있다. 실증적인 방식으로 검증을 거친 서비스의 효용성은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 진출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유학파 경제학도가 의대에 진학한 이유는 뭘까? 더 험난한 길인 스타트업 창업을 선택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 이런 여러가지 질문을 가지고 고명진 실비아헬스 대표를 만났다.  

실비아헬스는 어떻게 시작됐나?

고명진 실비아헬스 대표는 프린스턴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 재학 중에 '실비아헬스' 창업을 진행했다. 독특한 이력이지만, 고 대표는 '사람이 처한 문제에 집중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사진=실비아헬스)

고명진 실비아헬스 대표는 수년 전 프린스턴 경제학과를 선택할 당시부터 인간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고 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관계 맺음과 행동, 선택의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한 사람의 행위가 다른 사람의 행위에 미치는 상호의존적, 전략적 상황에서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연구하는 ‘게임이론’ 등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이었다. 공부와 함께 그녀가 몰두했던 것은 봉사활동이었다. ‘조금 더 사람과 밀접하게 부대끼며 할 수 있는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봉사자로서 병원에서 온갖 일들을 하면서 환자, 그리고 보호자들의 절박함을 접하게 됐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의대 진학의 이유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됐다.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마주한 분들의 공통점은 어떤 이유가 됐든 굉장히 간절하셨다는 거예요. 의학이라는 것이 이분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생사를 바꾸고, 삶의 큰 변곡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의사라는 업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세상의 관점에서는 특이한 이력이지만, 제 기준에는 큰 변화라기보다는 모두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선택들이었죠.”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의 우려와 응원이 교차했지만, 그녀의 결심은 확고했다. 한국에 계신 조부모님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했다. 실행에 옮긴 것은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이후였다. 결국 서울대 의대에 편입학했고 그 과정에서 모든 결정은 오롯이 그녀 스스로 판단에 따랐다. 적어도 그때까지 모든 것이 명료했다.

그녀의 삶이 또 다른 변곡점과 마주한 것은 2019년 서울대 의대와 디캠프가 공동 주관한 데모데이에 참가하면서 부터였다. 사업계획서만으로 나선 데모데이에서 그녀는 놀랍게도 우승을 했고, 이는 결국 창업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는 계기가 됐다. 고 대표는 “시장에 대한 진정성과 열정을 높이 사 주셨던 것 같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거의 처음 써본 사업계획서였기에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았어요. 다만 의대에 다니면서도 이어갔던 봉사활동에서, 어르신들을 접하며 느꼈던 문제 의식을 담았죠. 독거 어르신 등에게는 지속적인 봉자사와의 관계가 필요한데, 의대생들은 지속적인 봉사가 어려운 실정이었어요. 방문을 하면 어르신들은 ‘그때 그 친구는 어디갔냐’고 물으시는데… 할말이 없더군요. 당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에 전화를 이용한 비대면 원격 방식으로 어르신들에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봉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적용했어요. 사실 데모데이에 나간 것도 봉사 프로그램 운영비 마련을 위해 나간 거였어요.(웃음).”

데모데이에서 우승을 한 사업계획서의 아이디어는 봉사 활동 와중에 느낀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찾으며 나왔다. 음성만으로 감정상태와 인지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은 이미 존재했고, 이 기술을 접목해 상용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고 대표 스스로 ‘수준이 높지 않다’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당시에도 180명의 어르신과 60명의 봉사단을 대상으로 이 기술을 적용한 초기 교육 프로토콜과 소프트웨어를 운영하고 있었다.

운명처럼 다가온 창업, 이어진 성과

“데모데이에 제출할 사업계획서에서 AI 부분을 작성하면서 초안을 전재민 CTO에게 검토해 달라고 했어요. 그때 그 친구 조부모님 중 한 분이 치매를 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 친구는 손자로서 말기 치매를 앓고 있는 조부모님을 보면서 치매의 무서움을 체감했어요. 그런 친구가 제 사업계획서를 보더니 ‘스타트업이 보인다’라고 하더군요. 사실 전 그때까지 ‘스타트업’이 뭔지도 몰랐어요(웃음). 반면 그 친구는 하버드 재학 당시에도 학비를 벌기 위해 창업도 해봤고 초기 스타트업에서도 일을 하면서 경험이 있었던 거죠. 더구나 치매의 심각성도 체감했던 터라 ‘나도 이 문제를 같이 풀고 싶어’라고 하더군요.”

의대 휴학 후 창업, 그리고 정신없이 지나갔던 지난 몇 년을 돌이키며 고 대표는 “친구이기도 한 전재민 CTO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고 털어놨다. 전재민 CTO, 그리고 심사위원들의 눈이 정확했던 것 일까. 이듬해인 2020년 창업한 실비아헬스는 서울대학교 병원 혁신기술 집중육성사업 선정을 시작으로 네이버 D2SF 기술 창업 공모전 선정, 하버드 아이랩 벤처 인큐베이션 프로그램 등에 선정되더니 그해 8월 시드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수상 실적은 그 이듬해에도 이어졌다. 2021년 8월 아산나눔재단이 주최하는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최우수상을 받은 것은 물론,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데이터산업진흥원 등이 주관한 창업 경진대회에서 각종 수상을 이어갔다.

사용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2021년 8월 오픈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실비아앱은 매달 180% 이상의 월간활성사용자(MAU) 증가를 보였다. 1인당 평균 방문횟수는 13회에 달했다. 실제 수요자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 효용성이 알려지며 실비아헬스는 치매극복선도기업 선정을 비롯해 광주광역시 서구, 시니어클럽, 금천 50 플러스센터, 성남 고령친화 산업 동반 협력기업 선정 등 다수의 지자체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난해에는 안드로이드 버전에 이어 iOS버전까지  출시되며 신한은행, 국민연금공단, 현대해상, KT CS 등 민간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 등과 업무협약이 이어졌다.

실비아 플랫폼은 치매를 우려하는 사용자, 고령층의 니즈를 충족하며 서비스 론칭 이후 높은 사용자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실비아헬스 측은 이러한 사용자 데이터와 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서비스 고도화를 추진하는 중이다. (이미지=실비아헬스)

이를 기반으로 실비아헬스는 올해 초 끌림벤처스와 D3쥬빌리파트너스, DSC인베스트먼트, KB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프리A 투자를 유치하는데도 성공했다. 구체적인 투자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인정받은 기업가치만 1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현재 실비아헬스는 실비아 플랫폼의 고도화를 위해 대학병원 출신 인지심리 전문가와 함께 사용자 맞춤형 인지 기능 관리 콘텐츠 고도화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인디애나 대학교, 조선대 병원과 공동 임상연구를 진행해 유의미한 결과를 확인했다. 고 대표는 “이제까지 쌓인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확장해 나가려 하고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기업, 병원에 제공하는 서비스는 50대부터 70대 사용자 분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원하는 세대에 적용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어요. 12주 동안 치매 예방을 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프로그램화가 돼 있어 바로 시작하면 되는 서비스인데, 공개된 실비아앱에는 노출되지 않는 서비스예요. 향후에는 식약처 인증을 받는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선행 연구가 필요한데, 올해 안에 준비해서 연구에 착수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있어요.”

B2C를 넘어 B2B, B2G까지, 글로벌 진출도 염두

고명진 대표를 비롯해 전재민 CTO, 각 파트너 등은 모두 의학, 컴퓨터 분야에 전문가들이다. 실비아 플랫폼의 효용성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러한 전문성이 반영됐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이미지=실비아헬스)

앞서 언급된 여러 사례들에서 최근까지 실비아헬스는 자사의 실비아 플랫폼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왔다. 따라서 아직까지 이렇다할 매출은 없었다. 하지만 다음달부터는 본격적인 수익모델 구축에도 나선다. 인터랙티브 기능을 강화한 ‘유료화 서비스’를 론칭하는 것이다. 장차 치매 검진부터 관리까지 책임지는 비대면 인지 건강 관리 솔루션으로 거듭나 오프라인에 집중됐던 치매 관리 생태계를 혁신하겠다는 것이 실비아헬스의 비전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치매는 인구고령화에 뒤따르는 불가피한 질환이다. 이는 나이를 먹어 가는 누구나 인지건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들에게 치매를 예방하고 인지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서비스의 필요성은 점차 커질 것이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B2C(고객 대상 비즈니스) 서비스로의 시장성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B2B(기업 대상 비즈니스)의 경우는 어떨까? 대표적으로 보험 분야에 적용이 가능하다. 보험사로서는 경도 인지장애, 치매 등의 진행을 예방할 수 있다면 손실을 줄일 수 있으니, 효용성만 입증되면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정부가 주도하는 주요 의료 정책에 치매 예방과 관리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이니 B2G(정부·공공기관 대상 비즈니스) 시장 역시 비즈니스 모델 구축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확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말이다. 고 대표 역시 “정부기관의 치매 관련 연구과제 등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저희가 참여하는 연구과제 중에는 질병관리본부에서 노인 분들을 대상으로 실제 디지털 헬스케어가 효용성이 있는가에 대한 연구가 있어요. 디지털 헬스케어가 의료 분야에 화두가 되고 있지만, 사실 노인 분들이 실질적으로 수혜를 입을 수 있는가는 검증이 되지 않았던 거죠. 저희의 경우 경험적으로 효용성이 있다고 보고 있었고, 이번 연구과제에 참여하게 되면서 검증을 하는 중이예요. 아마 보고서가 곧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그 외에도 실비아헬스 팀원들과 고명진 대표가 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재는 보호자와 사용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를테면 보호자용 버전과 사용자용 버전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치매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환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고 대표는 “창업을 하지 않고 의대를 마쳤더라도 인간의 문제, 고령화로 비롯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꼭 필요하지만 풀어야할 것이 많은 이 문제에 집중할 것”이라는 각오를 전했다.

“의대에 진학을 결심한 것도 의사가 되기보다 예방이나 선제적인 대응 시스템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위암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거의 없어졌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에서는 말기가 될 정도로 만신창이가 돼 서야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질병들은 늦게 발견될수록 치러야 하는 비용도 커지죠. 병원은 병원대로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다보니 적자가 발생하게 되고요. 환자와 의사, 병원 모두 원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적은 비용으로도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것, 저희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그런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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