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셜록 홈즈’가 먼저 떠오른다. 적어도 한국의 현실에서 탐정은 아직까지 소설이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막연한 존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는 좀 다르다. OECD 주요 선진국들의 경우 이미 법률을 통해 탐정업을 인정하며 국가 차원의 관리감독이 이뤄지는, 공권력을 보완하는 역할로서 탐정을 규정하고 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이러한 변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지난 2020년 8월 신용정보법 개정 시행으로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된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를 관리하기 위한 법안이 나오지 않으면서 애매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탐정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는 실종 아동·청소년 소재 확인, 부동산등기부등본 등 공개 정보의 대리수집, 채용대상·거래상대 동의 전제 이력서·계약서 기재 사실의 진위 확인, 도난·분실·은닉자산의 소재 확인 등 제한적이다. 하지만 소위 ‘탐정사무소’를 통해 수집된 증거는 종종 재판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조사 과정에서 불법이 자행될 소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4월에는 국회에서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표 발의로 ‘공인탐정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비슷한 법안이 앞서 지난 2020년 이명수·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의 대표 발의로 발의된 바 있지만, 당시에도 논의만 이뤄졌을 뿐 현재까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탐정 명칭을 사용하는 민간자격증은 106개(2022년 12월 기준)으로 우후죽숙처럼 늘어났고, 종사자는 1만명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기존 문제가 많던 흥신소들이 탐정사무소를 내세우며 활동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산에 소재한 블록체인·플랫폼 전문 업체인 ‘비트시스’가 ‘탐정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플랫폼이 국제탐정연합회라는 탐정 교육·자격 단체와 연계돼 운영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부산에서 만난 김동칠 비트시스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그간 흥신소의 오명으로 실추된 탐정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투명성, 신뢰성을 확보하는 새로운 기준을 세울 것”이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블록체인 기술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역시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해서 이제까지 블록체인 기술은 금융 분야에서 투명성을 강화하고 자금 세탁을 방지하는 기술로 주목받아 왔다. 김동칠 비트시스 대표는 이러한 블록체인 기술을 탐정의 업무에 적용해 ‘증거의 위변조를 불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법적 증거 채택률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출을 방지해 의뢰인의 내밀한 정보를 지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블록체인 탐정 플랫폼 ‘탐정을 찾는 사람들’ 개발은 그런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Q 비트시스가 ‘탐정을 찾는 사람들(이하 탐찾사)’ 플랫폼 개발에 나선 스토리가 궁금하다.
A 비트시스 창업을 준비한 것은 블록체인 기술이 막 관심을 받던 2015년 무렵 부터였다. 당시 ICO(Initial Coin Offering, 초기 코인 공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플랫폼을 개발하는 회사로 준비를 해서 2018년에 창업 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에 앞서 2016년부터 개인적인 관심으로 산업 기밀 등 기업 탐정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떤 문제에 대한 정보를 취급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보안에 강한 블록체인 기술과 연계된다면 탐정들이 민간 조사 영역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데이터3법 저촉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렇게 개발을 시작한 것이 블록체인 탐정 플랫폼인 ‘탐찾사’다.
Q 그렇다면 비트시스는 초기 코인이나 메인넷 개발도 진행했었나?
A 메인넷이나 코인 개발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 보다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플랫폼,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 주 업무다. 주로 의뢰를 받아 플랫폼 구축을 해주는 SI 영역에 가깝다. 그렇게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자체적인 플랫폼 개발에 대한 갈증이 생겼고, 병행해 왔던 탐정 분야 업무와 연결하게 된 셈이다.
실제로 김 대표는 고려대학교에서 블록체인 전략 최고위 과정을 수료하고 동서대학교에서 디지털포렌식 석사 과정을 밟은 바 있다. 탐정 영역에서도 오래도록 활동을 이어와 국제탐정사 1급, IOS 국제심사원 자격을 비롯해 심리상담사, 인권보호관리사, 블록체인지도사 등 다수의 자격을 획득한 바 있다. 지난 5월에는 국제탐정연합회 설립을 주도해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국제탐정연합회를 통해서는 각 분야 전문가를 강사로 한 탐정 교육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민간 자격증을 수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배출된 연합회 소속 탐정들의 업무를 ‘탐찾사’ 플랫폼을 통해 진행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Q ‘탐찾사’ 플랫폼의 개발 과정은 어떤가?
A 프로토타입은 이미 나왔다. 이달 중 베타 버전을 선보이기 위해 백엔드와 UX, UI를 좀 더 보강하는 중이다. 베타 버전이 나오면 우선 국제탐정연합회 소속 탐정 대상으로 클로즈드 베타 서비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후 문제점을 수정·보완해 내년에 정식 버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Q ‘탐찾사’ 플랫폼을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A 세상에는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 인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건을 처리할 수는 없다. 탐정은 그런 공권력이 신경쓰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한다. 어찌 보면 탐정을 찾는 사람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절박함에 벼랑에 몰린 심정이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수사를 의뢰해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진척이 더딘 답답함을 가지고 탐정을 찾는다. 탐정의 일자체가 법을 집행하는 수사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찰이 하면 수사, 탐정이 하면 조사라는 차이점 뿐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탐정 중에 이런 절박한 의뢰인을 돕기는 커녕 그 감정을 악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밀한 진실을 찾고 파헤치는 과정에서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협박해 돈을 갈취하거나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경우도 심심지 않게 볼 수 있다. 모두 과거 ‘흥신소’라는 이름으로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관행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또 그렇지 않다고 해도 불법적으로 취득한 녹음 기록이나 GPS 정보는 법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런 점들이 안타까웠고, 해결하고 싶었다.
Q ‘탐찾사’ 플랫폼이 기존 탐정 업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
A ‘탐찾사’는 앱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 처음 접속할 때부터 DID(탈중앙화 신원 인증 기술)가 적용된다. 탐정의 모든 활동이 이 앱을 통해 기록되고 진행된다. 증거를 채증하는 활동 중에도 위변조나 악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앱을 사용하는 것은 정식 교육 과정을 거치고 자격증을 발급 받은 탐정이다. 그래서 국제탐정연합회를 통한 커리큘럼과 연계를 하려 하는 것이다.
Q 그렇다면 국제탐정연합회는 어떤 커리큘럼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A 연합회 설립 이전부터 앞서 설립된 여러 탐정 단체들을 찾아 직접 자격증 과정과 전문 과정을 모두 이수하면서 장단점을 비교했다. 그 외에도 파생돼 있는 단체들의 교육 과정을 모두 참고하고 개인적으로도 그간 쌓은 탐정으로서 경험과 지식을 반영해 커리큘럼을 개발했다. 또 채권, 보험, 부동산 등 탐정 활동이 법적으로 가능한 8개 분과를 만들어 각 분야 전문가 분들을 분과장으로 임명하고 강사진을 구축했다. 이를테면 보험 분야의 분과장은 보험사 지사장 출신인 식이다. 이 과정을 수료하면 탐정 자격증 취득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예비생 자격을 얻게 된다. 이런 교육 커리큘럼은 각 대학과 재직자 과정 개설 등 협력을 통해서 확대하고 있다. 보통 무자격으로 탐정 활동을 해 온 이들이 대부분이라 첫 단계에서는 LMS(learning management system)를 통해 10시간의 수업을 이수하고 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이후에도 바로 실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4시간으로 구성된 실무 교육을 받도록 돼 있다.
Q ‘탐찾사’ 플랫폼과는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가?
A 커리큘럼을 이수하고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 한 탐정은 연합회 회원으로 가입하고 ‘탐찾사’ 플랫폼과 연결돼 의뢰인들의 수임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의뢰가 들어온 지역과 전문성을 고려해 1:1로 매칭을 해주는 방식이다. 이 모든 것이 ‘탐찾사’ 플랫폼을 통해 이뤄진다. 또 반드시 2인 1조로 활동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전문성에 따라 1급부터 3급까지 등급을 구분해 놨는데, 1급 선임 탐정과 3급 신입 탐정을 함께 팀으로 활동하게 하는 식이다. 또 플랫폼을 통해서는 탐정들의 수임 내용과 결산 등도 체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Q 비트시스와 국제탐정연합회는 어떤 관계라고 할 수 있나?
국제탐정연합회와 비트시스는 독립된 단체와 기업이다. 단지 비트시스가 개발한 ‘탐찾사’ 플랫폼을 국제탐정연합회가 독점적으로 쓴다는 것 뿐이다. 지금 내 역할은 국제탐정연합회 회장으로서 비중이 더 크다. 비트시스는 16명의 개발진을 갖춘 5년차 기업으로 다양한 기관과 기업 고객의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와 블록체인 개발과 과정 교육 등을 진행하며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실질적인 경영은 이사진에게 맡기고 나는 ‘탐찾사’ 플랫폼 개발 과정에만 관여를 하는 중이다.
Q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우선은 ‘탐찾사’ 플랫폼 구축을 완성해 국제탐정연합회와 연계된 시스템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성과를 만들어 내면 각지에 산재된 탐정 단체들과 MOU 등을 추진해 ‘탐찾사’ 플랫폼을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계획이다. 이미 유튜브 등에서 탐정 활동을 소개하는 인플루언서도 생겨나고 있다. 탐정 분야는 이제 막 시작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의외로 3040 여성층에서 탐정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 한가지 생각하는 것은 탐정 업무의 장단점을 제대로 알리는 일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꽤 다르다. 조사하고 탐문하는 것이 주가 된다. 크게 보면 법을 집행하는 경찰 등의 조직에서 하는 일과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차이는 공권력은 강제성이 있고 탐정의 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경찰, 형사 등이 수사를 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법에서 정한 범위를 준수하며 정의감을 바탕으로 의뢰인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꼼꼼할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교육이나 경험을 쌓지 않고 탐정 일에 뛰어들 경우 문제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더욱 탐정업을 명확히 규정하는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국가에서 인정하는 공인 탐정제도가 만들어 진다면 ‘탐찾사’ 플랫폼이나 국제탐정연합회와 같은 단체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셜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