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브랜드의 홍보 이미지를 떠올리면 흔히 셀럽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미국 농구 레전드 마이클 조던과 나이키의 콜라보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방식은 오늘날 역시 대부분의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가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며 글로벌 브랜드로 등극하는 브랜드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강변을 달리는 러너들에게 선택 받으며 러닝화에서 시작해 점차 다양한 아웃도어 영역으로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호카(HOKA)’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호카는 세계 각지에서 유명 인플루언서, 선수와의 스폰서십을 넘어 소셜미디어 마케팅, 온라인 캠페인, 콘텐츠 마케팅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며 인지도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보통 스타 마케팅을 중심에 두는 다른 브랜드와 다른 부분은 그 근저에 ‘액티비티 유저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개인의 다양한 취향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프랑스의 러너인 니콜라 메르무드(Nicolas Mermoud)와 장뤼크 디아르(Jean-Luc Diard)에 의해 설립된 호카의 브랜드 명은 ‘지구 위를 날다’라는 뜻의 마오리어에서 유래 됐다. 이후 2013년 어그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데커스가 인수한 뒤 2019년 조이웍스에 의해 한국 시장에 처음 소개됐다.
이후 독특한 디자인 철학과 더불어 편안함과 안정감에 초점을 맞춘 호카 브랜드는 이른바 ‘두껍지만 가벼운 러닝화’로 러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며 국내외 시장에서 지난 2020년부터 매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수십년의 역사를 지닌 다른 스포츠 브랜드와 경쟁하고 있는 호카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은 무엇일까? 오는 28일 개최하는 ‘디지털 마케팅 인사이트 2025’에서 ‘디지털 시대, 강력한 글로벌 브랜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주제로 발표를 앞둔 김만희 조이웍스 마케팅 본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호카의 브랜드 전략, 오프라인의 경험을 디지털로 연결한다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외래 교수를 역임한 김만희 조이웍스 본부장(이사)은 닥터마틴, 뉴에라, 컬럼비아 등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한 전문가다. 올해 초 조이웍스에 합류한 김 본부장은 호카 마케팅에 집중하며 브랜드에 내재된 잠재력을 더욱 끌어올리는 중이다.
“저는 커뮤니케이션과 디지털 퍼포먼스 마케팅을 담당해 온 전문가로서 메시지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갖고 있는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고 있어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고객 머릿속에 있는 브랜드 이미지의 교집합이 커질수록 강력한 브랜드가 형성되거든요. 조이웍스에 합류 전에 FGI(Focus Group Interview, 집단 심층면접)을 한 적이 있는데, 그 교집합이 굉장히 큰 브랜드가 바로 ‘호카’였어요. 그래서 제게 호카는 일찌감치 관심이 가는 브랜드였죠. 아직 다른 글로벌 브랜드에 비해 인지도가 높진 안더라도 제 경험상 이런 교집합이 큰 브랜드는 성장 속도도 굉장히 빠르고 브랜드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도 쉽게 극복합니다. 그런 가능성 있는 브랜드를 제가 마케팅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이웍스에 합류하게 됐죠.”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 마케팅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김 본부장의 관점에서 호카는 이제 갓 시작된 신생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존 브랜드에 적용된 마케팅의 틀을 벗어나는 과감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의미도 된다. 김 본부장이 언급한 단어는 다름 아닌 ‘디지털’이다.
“컬럼비아는 80년, 닥터마틴은 60년, 뉴에라는 무려 100년이 넘은 브랜드예요. 반면 호카는 이제 런칭한지 10년이 좀 넘은 신생 브랜드라고 할 수 있죠. 기존 브랜드들이 명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철학으로 고객을 설득했다면, 호카의 전략은 다릅니다. 오프라인 활동과 콘텐츠에서 나오는 고객 체험을 디지털로 전이하며 ‘에너지 있는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죠. 그런 점은 조이웍스가 지향하는 브랜드 론칭 기준과 맞아 떨어지기도 해요. 저희가 선택하는 브랜드는 전반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메시지가 명확해야 한다는 조건에 부합해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기존 브랜드와 달리 호카가 유저들에게 제시하는 확고한 차별성, 메시지는 무엇일까? 김 본부장이 언급한 호카의 기본 브랜드 메시지는 ‘조이풀 익스피리언스(joyful performance)’다. 이를 통해 호카는 유저들에게 경쟁이나 승리가 목적이 되는 스포츠 시장의 화법을 뒤로하고 ‘모든 러너가 행복할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호카는 그 동안 스포츠 브랜드에서 말하지 않았던 차별적인 메시지와 제품을 선보이고 있어요. 그동안 스포츠 시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승리를 쟁취하라는 ‘위너’를 부각했다면 호카는 모든 러너가 주인공이 돼 러닝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브랜드예요. 호카 브랜드가 눈에 띄는 디자인, 컬러를 강조하는 것도 개별 유저의 니즈를 반영했기 때문이고요. 그런 점에서 올해 호카가 전개하는 글로벌 마케팅 캠페인 ‘플라이 휴먼 플라이(FLY HUMAN FLY, 비상할 능력을 타고난 우리 자신을 믿고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자는 의미)’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도 주효한 메시지를 담고 있죠. 모두가 평등하게,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슈즈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저희의 기본 모토거든요.”
세대 타겟팅은 의미 없어, 디지털 시장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개인의 취향
유저를 분류하는 방식도 호카는 여느 브랜드와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 현재 소비 여력이 가장 높은 세대, 이를테면 ‘MZ세대’를 주요 고객으로 타겟팅하는 여느 브랜드와 달리 호카는 개별 유저의 취향에 집중한다는 것이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타겟팅에 있어 단순히 소비자를 인구학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이제 부합하지 않는다고 봐요. 가령 10대와 40대가 모두 소속돼 있는 러닝 크루라면 세대는 그리 중요하지 않거든요. 사실 MZ세대는 마케터들이 분류하기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안에는 정말 다양한 수백, 수천가지 취향들이 있어요. 디지털 시대에 제일 중요한 가치는 개인의 정체성과 취향이죠. 그래서 저희는 개별 유저의 취향에 최적화돼 있는 타겟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저희 메인 타겟은 러닝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보다 고도화된 테크니컬 제품을 추구하는 사람과 스타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어 김 본부장은 디지털 시대에 부합되는 진정성을 언급했다. 그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브랜드 마케팅의 관점에서 김 이사가 생각하는 진정성은 ‘남과 다른 이야기를 꾸준히 일관성 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다수의 소비자가 원하는 트렌드만을 쫓을 때 나오는 것이 아닌 브랜드를 알아봐 주고 인정하는 소비자에게 헌신할 때 드러난다는 것이 김 이사의 설명이다.
“굉장히 아날로그스러운 메시지인 ‘진정성’이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 부각된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진짜 차별화된 제품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하고, 소비한다는 거예요. 이때 진정성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말하고 인정해주는 것이죠. ‘저 브랜드는 진정성 있어’라고 인정을 받아야 하는 거예요. 호카 브랜드는 그걸 잘하고 있는 거죠. 오프라인 미디어로 편중돼 있던 과거에는 슈퍼스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런 스포츠 스타들에 비하면 개인은 존재감이 없지만, 당사자에게는 그게 전부거든요. 호카는 개인의 성과와 성장을 응원하고 즐겁게 운동하는 브랜드라는 것을 차별화 요소로 가져가는 것도 그 때문이죠.”
이러한 호카 브랜드의 전략은 팬덤과도 연결된다. 이른바 호카의 ‘풀뿌리 마케팅(GRASSROOT MARKETING)’의 핵심인 런클럽(RUNCLUB)이다. 런클럽은 호카 팬이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이와 함께 호카가 주목하는 또 다른 요소는 개인 미디어다.
“지금은 ‘나’가 중요한 시대예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튜브 등 각자의 미디어를 갖고 있죠. 저희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이렇듯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개인 미디어예요. 작지만 10~20명을 대상으로 런클럽을 운영하고 꾸준히 진행했을 때 콘텐츠가 쌓이고 사람들은 내게 중요한 사람의 관심사에 주목하게 되죠. 내가 신는 신발이 너무 좋고 푹신하고 러닝 할 때 편하다고 하니 나를 팔로워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검색을 하게 되고 구매 전환과 리뷰가 이뤄지는 거예요. 이러한 구조가 저는 가장 디지털 마케팅에 적합하고 봐요. 진정성과 디지털의 조화로운 접근이라 할 수 있죠.”
그러한 경험을 통해 김 본부장은 “디지털 시대에는 기존 TV광고 등의 리소스를 디지털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더해 적절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추가됐을 때 효과는 극대화 된다는 것이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마케팅 방정식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미디어의 변화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고 봐요. 여전히 브랜드 마케터들은 그저 흥미롭거나 유머러스한 콘텐츠를 만들어 클릭을 유도하지만, 그것이 브랜드를 대변하지는 못합니다. 어쩌면 브랜드의 정체성과 일관성을 훼손하는 방식이 되기도 하죠. 그 경우 소비자들은 진정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김만희 조이웍스 마케팅 본부장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오는 28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월드 크리스탈볼룸에서 ‘당신(만)을 위한 마케팅 : 초개인화로 진화하는 콘텐츠와 브랜드 전략’을 주제로 진행되는 ‘디지털 마케팅 인사이트 2025(DMI 2025)’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이날 현장에서 김 본부장은 ‘디지털 시대, 강력한 글로벌 브랜드는 어떠게 탄생하는가?’라는 주제로 한국 시장이 갖는 특성과 더불어 글로벌 브랜드로 나가기 위한 차별화된 디지털 마케팅 전략을 공개한다.
이 외에도 올해 DMI 2025에서는 ‘글로벌 '콘커머스' 성공 전략: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YouTube 쇼핑’을 주제로 한 카페24 송종선 이사의 발표, ‘Micro SaaS와 AI: 2024년 디지털 마케팅의 게임 체인저’를 주제로 한 퍼플아이오 김충섭 CTO의 발표 등 이커머스, 마테크, 브랜드 업계 전문가 총 26명의 인사이트가 담긴 이야기가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