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연구는 ‘User Experience’의 줄임말로, 제품 혹은 서비스를 사용할 때 사용자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 및 사용자의 경험, 어려움, 요구 사항, 행동 패턴, 감정, 의도, 믿음 등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품 출시 전 사용자 입장에서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찾아 미리 개선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UX 연구는 수년 전부터 글로벌 빅테크와 같이 큰 규모의 회사에서 비즈니스 전략을 짤 때 고객 만족도를 올리고 사용자 인게이지먼트와 리텐션을 증시키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에 비해 국내 기업들의 UX 연구 도입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그래서 더욱 UX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최근까지 나온 UX 관련 서적이나 전문 자료는 이론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며 현장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한국 출신 UX 관련 연구원 두 명이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UX 연구와 연구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글로벌 UX 연구원은 이렇게 일합니다’라는 제목의 책에 담았다. 수십 년째 글로벌 빅테크의 선두 주자로 꼽히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에서 AI 코파일럿 관련 UX 연구를 진행하는 김예림 씨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넘어 메타버스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는 메타에서 광고 관련 UX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박수현 씨다.
테크42는 이중 지난 주 한국을 방문한 김예림 씨를 만나 책을 쓰게 된 동기와 함께 남다른 커리어를 쌓으며 글로벌 빅테크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빅테크 UX 연구의 현실,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어
“빅테크를 주제로 한 책을 보면 빅테크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무조건 이 방법이 정론이다.’ 하는 식의 고압적인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요. 빅테크에서 사용하는 모든 UX 연구 방법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며, 그 모든 것을 한국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빅테크 UX 연구의 현실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글로벌 UX 연구원은 이렇게 일합니다’ 저자의 말 中
길지 않은 일정으로 모처럼 귀국한 김예림 씨의 스케줄은 꽤 빡빡해 보였다. 시차적응도 안된 상태로 공동저자인 박수현 씨와 UX 연구원 모임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강의를 소화했다고. 하지만 피로보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며 기운 찬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오래 전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으로 캐나다에서 시작된 그녀의 도전은 이후 대학원에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인간과 컴퓨터 간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로 이어졌고, 인공지능 UX 연구로 확장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산업계로 발향을 정한 그녀는 유비소프트 UX 연구원을 거쳐 현재 MS의 비바 인게이지 코파일럿 팀에서 최근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AI 코파일럿 관련 UX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글로벌 UX 연구원은 이렇게 일합니다’는 과거 워킹홀리데이 관련 경험을 쓴 책에 이은 그녀의 두 번째 책이다. 김예림 씨는 “현업에서 접한 현장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직접 기획했다”며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야기했다.
“과거에는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한 누가 쓴 책과 같이, 약간은 고입적으로 이게 정답이라는 식의 느낌을 주는 책이 많았잖아요. 전 그 보다는 사례 중심, 일종의 케이스 스터디와 같은 방식으로 현장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었어요. 어떤 부분은 한국의 사정과 맞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아닌 부분도 있을 테니까요. 다만 UX가 북미에서는 이미 오래전 확립됐고, 여러 가지 시도와 성공 사례가 있다는 것, 그리고 UX를 적용하고자 하는 분들이 활용할 수 있는 템플릿이나 기법을 쉽게 설명하고 제안하는 방식으로 소개하고 싶었어요.”
그러한 저자의 생각은 ‘PM·기획자·디자이너도 함께 보는 UX 연구 입문서’ ‘마음을 사로잡는 프로덕트 기획을 위한 유저 리서치 실전 비법'과 같은 이 책의 부제에도 스며들어 있다. 그런 목표로 가능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담으려 욕심을 낸 탓에 책의 분량도 상당하다. 책은 UX 연구의 기본 개념과 방법론을 다룬 첫 번째 파트를 비롯해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생생한 실무 스토리와 최신 UX 연구 트렌드, UX 연구원의 삶과 커리어 대한 이야기를 담은 총 세 파트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각 파트와 소제목을 살펴보면 비 전문가라도 하나 같이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들이다. 이를 테면 ‘회사의 UX 연구 성숙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빅테크에서 UX 연구 프로세스를 수립하는 방법’ ‘UX 프로세스의 다양한 스테이크홀더’ 등이다. 빅테크 UX 연구원에 대해 커리어 측면에서 접근한 ‘빅테크 UX 연구원의 일주일’을 비롯해 핵심 자질과 백그라운드, 직급 체계와 역할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모두 박수현 저자와 그녀가 모두 직접 겪은 과정을 토대로 집필됐다.
“MS 이전에 저는 유비소프트에서도 일을 했어요. 서로 다른 빅테크에서 근무를 하면서 차이도 느꼈고, 많은 제품과 사람이 모인데 따른 장점과 단점을 경험할 수 있었죠. 그 중에서도 특히 제 흥미를 끝 것은 빅테크의 구조적인 단점과 이를 보완하려는 그들의 방법이었어요. 우선 빅테크는 사람이 많다보니 여러가지 수준 높은 제품을 빠르게 만들 수 있고, 데이터를 많이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이나 가시성이 떨어지고 고객과 거리도 멀어진다는 단점이 있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부서들을 유기적으로 모아주는 이벤트나 프로그램이 존재해요. 하지만 우리나라 대기업에 근무하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그런 UX 관련 디자인 프로세스나 연구가 많이 도입돼 있진 않았죠. 알면 알수록 글로벌 빅테크와 국내 기업이 상황은 다르지만 구조나 방법적인 측면에서 도입할 부분이 있어 보이더군요. 그런 사실을 깨달을수록 현업에서 제가 접하고 배운 것들을 그대로 두기가 너무 아까웠죠(웃음). 그래서 책으로 쓰게 된 거예요.”
기술적인 실무 경험과 관리적인 측면까지 고려했다
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그녀가 취한 방법은 국내 기업에 재직한 UX 연구원 모임 등을 통해 그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질문들을 모아가면서 그녀는 공동 저자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UX 연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관련 연구원을 고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에 더해 글로벌 빅테크에서 리더십을 쌓은 공동저자라면 책의 내용이 더욱 풍부해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인들의 네트워크까지 총동원해 찾은 사람이 메타와 틱톡에서 광고 관련 UX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박수현 씨다.
“저는 기술적인 방법이나 체계에 대해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어요. 현업에서 쓰는 여러가지 프로젝트가 있고, 우선순위를 둬야하는지, 또 AI 분야 연구를 한 경험을 반영하기도 했고요. 각 테크 부서 간 대화와 소통을 중시하는 MS의 문화나 방식 등도 최대한 다루려고 했죠. 반면 수현 님은 탑다운 관점에서 UX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고 구성원을 채용하는지, 관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했어요. 또 빅테크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하고 쉽게 기억에 남을 수 있게 해야 하죠. 그런 기술적인 정보에 집중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책을 집필한 기간은 꼬박 1년이 소요됐다. 한 사람은 MS 비바 인게이지 코파일럿(Microsoft Viva Engage Copilot) 팀에 실무자로 바빴고, 한 사람은 관리 책임자로 새로운 팀의 팀 빌딩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수시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소통하며 그때마다 정해진 분량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도전으로 이어진 삶, 개발자에서 HCI, AI로 확장된 경험들
그렇다면 김예림 씨는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된 걸까. 좀 더 구체적으로 그녀의 지난 여정을 알고 싶어졌다. 질문을 접한 그녀는 잠시 겸연쩍어 하면서 지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놨다.
“성균관대학교 공대에 입학해서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 중 하나가 외국인 교환학생을 도와주는 동아리인데, 거기서 캐나다에서 온 친구를 만나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알게 됐죠.”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떠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에서 그녀는 비로소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영어를 배우며 각 나라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그렇게 생겨난 호기심은 다시 토론토대학에 입학하는 계기가 됐다.
“친구들을 통해 컴퓨터과학을 알게 되고 또 당시에 본 영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든 스토리를 알게 되면서 왠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영화를 보면서 싸이월드는 왜 실패했고, 페이스북은 왜 성공했는지가 궁금해지더군요. 만약 북미에서 싸이월드가 나왔으면 성공할 수도 있겠다 싶었고, 테크는 여기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어렵사리 입학한 대학에서 그녀는 컴퓨터과학과 통계학을 전공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졸업을 앞둔 4학년 무렵 부모님이 더 이상 지원이 어렵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중산층 집안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파트타임 개발자, 조교로 일하며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 학부를 마쳤다. 다시 그녀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의 연구 석사 과정에 전액 장학생으로 진학해 HCI와 AI 연구를 진행, 이 분야 탑티어 컨퍼런스인 CHI에 합격해 각각 2개의 논문을 제1저자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그녀의 AI UX 연구에 대한 관심은 산업계로 이어져 유비소프트를 거쳐 현재 MS에 이르게 된 것이다.
AI는 블랙박스 모델, 신뢰감을 주는 것이 중요
이렇듯 다양한 경험을 거치며 전문성을 확보한 그녀에게 현재의 AI 코파일럿 UX 연구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코로나19 이후 시작된 뉴노멀과 함께 현재는 그녀가 책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AI 격동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그녀는 “AI는 블랙박스 모델(Black Box Model, 입·출력 및 수행 기능은 알려졌지만, 내부 처리방식은 알려져 있지 않거나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모델)”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AI 자체는 어디든지 통용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어떻게 세팅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아직까지 모르는 부분도 많고 신기한 기술이라 측면과 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측면이 있어요. 한편으로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이 기술로 도움을 받고 싶지만, 아직 내 데이터를 적용하는 건 위험할 것 같다는 반대 급부적인 생각도 있죠. 이런 상황에서 UX는 AI 기술 적용 시 신뢰감을 주는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어요. 신뢰감을 적절히 형성하고 그것이 계속 이어지는지, 혹은 무너지고 있지는 않은지를 트래킹하는 과정도 중요하죠. 뉴노멀과 마찬가지로 이 기술 역시 계속 변하고 혁신이 이어지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으니까요. 아무도 다음 스텝이 뭔지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 탐색해가는 과정인데, 결국엔 이 트렌드를 어떻게 잘 잡아내느냐가 중요해요. 어떤 사고나 행동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를 잡아내야 다음 스텝을 준비할 수 있죠. 이런 관점에서 UX 연구가 중요한 것이고요.”
이어 그녀는 재차 “신뢰감과 기대감을 적절히 유지하며 효용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AI UX 연구의 핵심”이라며 “새로운 것을 어떻게 선제적으로 파악해 문제나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디자인 적으로 풀어나갈지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UX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들 역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인터뷰 말미, 김예림 씨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하나의 직업이 유망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죠. 커스터머 스페셜리스트라던가, 마켓 사이언티스트, 마켓 리서처 등 항상 타이틀은 바뀌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항상 우리 제품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 직업은 존재할 것 같아요. 한편으로 요즘에 드는 생각은 기술이 극강으로 발전하다 보면 반대급부로 인간다움에 대해, 인간과 인간 간의 연결에 대해 고민하는 수요가 생길 거 같기도 하고요. 물론 기술적 측면에서 AI는 유망한 분야니 공부를 하시는 분이라면 추천을 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다시 인간이라는 주제에 어떻게 돌아올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미래에는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