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윤경 어센트코리아 본부장 “마케터는 사람의 문제를 공감하고 해결해주는 파트너”

고객과의 진정한 관계 형성은 행복한 마케터의 ‘특권’
통신사 개발자에서 글로벌 기업의 이커머스 마케팅 총괄, 다시 국내 리테일 마케팅까지 섭렵
조직 문화의 문제 해법, 상품의 성공 비결, 팬덤을 만들기 위한 니즈 ‘인텐트 데이터’에 다 있어
김윤경 어센트코리아 마케팅본부장은 국내외 기업을 두루 거치며 다양한 디지털 마케팅 영역에 대한 인사이트를 쌓아왔다. (사진=어센트코리아)

김윤경 어센트코리아 마케팅본부장의 지난 이력은 남다르다. 딸 셋 집안의 첫째로 태어나 의사를 지망했지만, ‘앞으로는 컴퓨터의 시대’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이화여자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전산학과’였던 시절이었으니 딸을 키우던 아버지로서는 대단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고, 그러한 선택은 김 본부장의 미래를 여는 첫 열쇠가 됐다.

“당시만해도 남자가 있으면 역할 구분이 생기는데, 여대는 그것이 없었어요. 한편으로 역할 구분이 있었으면 활기를 얻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모든 사람들이 똑 같은 상황에서 정말 재미있게 컴퓨터를 배웠던 것 같아요.”

“아침부터 여자를 보면 재수가 없어”

이후 김 본부장은 포항공과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서 인공지능을 전공하고 첫 직장으로 당시 ‘017’로 이동통신사업을 진행하던 ‘신세기통신’ 공채 1기로 입사해 개발을 담당했다. 이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에 꽃을 피운 데이터에 대한 인사이트를 키우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 와중에 당시 직장 여성이 직면해야 했던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신세기통신 입사 당시에는 144명 동기 중 여성이 4명 뿐이었어요. 그마저도 몇년 안에 모두 퇴사하고 저만 남았죠. 당시 신세기통신은 국내 대표 제철 기업 등의 대기업이 합작을 한 회사였는데, 신입 시절 저는 제철 기업 출신의 팀장님을 모셨죠. 그때만 해도 신입으로써 일이 재미있어 매일 새벽 가장 먼저 출근했어요. 그런데 그 팀장님이 저를 부르더니 아침에 일찍 출근하지 말라더군요. 이유를 물어보니 제철 회사에서는 ‘아침에 여자를 먼저 보면 재수가 없다’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라더군요.”

'Intent is all we need(의도는 우리가 원하는 전부다)'라는 글귀는 인텐트코리아의 철학은 물론 김윤경 본부장의 커리어를 대변하고 있다. (사진=테크42)

지금이야 말도 안되지만, 당시만 해도 상사의 그러한 말이 직접적으로 나올 수 있는 분위기였다. 김 본부장 역시 웃으며 당시를 회고했지만, 스스로도 ‘신입으로서 존경하던 상사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충격이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후 그녀는 예상을 벗어나는 대응법을 택했다. 이런 경우를 두고 ‘긍정의 아이콘’이라고 하는 것일까?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 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 분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잘못 심어진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좀 긍정적인 편이거든요(웃음). 어쨌든 일찍 나오지 말라고 하니 대신 회사 앞 영어학원에 등록해 새벽 6시부터 세 시간 동안 수업을 받으며 영어공부를 했어요. 본의 아니게 시작한 영어공부였지만, 곧 토익 900점을 가볍게 넘길 수 있었죠.”

신세기통신을 거쳐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긴 그녀는 플랫폼 연구원으로 시작해 기술 기반의 해외 신규 사업 발굴 부장에 이르기까지 공대 출신 개발자로서 17년의 커리어를 쌓게 된다. 앞서 신세기통신 시절부터 쌓은 영어실력은 결과적으로 회사에서 미국 미시건 대학교 MBA 과정 지원자를 뽑을 때 결정적인 조건으로 작용했다. 대단한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김 본부장은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탓하기 보다는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자’는 마음 가짐으로 일을 대하게 됐다”고 털어 놨다.

공대 출신 개발자는 어떻게 마케터로 변신했을까?

‘MBA’ 과정을 거치며 접한 마케팅 이론은 이후 김 본부장의 진로에 큰 변곡점이 됐다. 마침 글로벌 기업인 존슨앤존슨에서 마케팅 이사라는 제안도 받게 됐다. 김 본부장은 “2010년에 필립 코틀러의 ‘마케팅 3.0’을 읽으며 ‘마케터는 상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그 기업의 가치관과 철학을 전파하는 메신저다’라는 대목에서 ‘앞으로 이 일을 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신세기통신을 거쳐 SK텔레콤에서 쌓은 17년의 개발자 경력이 극적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잘 나가던 개발자 커리어를 바꾸는 것은 물론 쉽지 않았죠. 하지만 뭔가 새로운 전환이 필요했고, 마침 존슨앤존슨에서 제안받은 디지털 마케팅 디렉터 자리도 마음에 들었어요. 당시만해도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흔치 않았을 때였는데, IT와 데이터를 잘 아는 사람을 찾아 디지털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역할을 마련해 주는 거였으니까요. 막 마케팅과 디지털이 융합되던 시기였고, 그들이 보기에 전 필요한 기술과 자세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죠.”

존슨앤존슨 북아시아 디지털 혁신 이커머스 총괄을 맡은 김 본부장은 당시만해도 자사몰이 없이 회사 홈페이지로만 운영되던 시스템 속에서 홈페이지에 로그인한 고객 데이터와 소셜 데이터를 결합하는 시도를 시작했다. 이는 존슨앤존슨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기업 철학과 접목되며 영유아 제품부터 시작해 노년층을 위한 제품까지 브랜드 전체를 생애 주기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발전되며 큰 성과를 거뒀다. 브랜드 앰버서더, 이른바 팬덤을 활용한 마케팅 역시 당시 그녀가 시도해 성공한 방식이었다.

“그때는 인스타그램도 나오기 전이라 블로그, 페이스북 정도였죠. 홈페이지에 로그인한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분들 중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존슨앤존슨의 아비노 제품을 블로그나 페이스북에까지 올리며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결이 맞다고 생각하고 이분들에게 저희 새로운 제품을 보내 드리니, 또 열심히 홍보를 해주시더군요.”

존슨앤존슨 북아시아 디지털 혁신 이커머스 총괄 당시의 김윤경 본부장(오른쪽 앞에서 세번째). (사진=김윤경 본부장)

지금은 기본적인 고객 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이지만, 당시만 해도 새롭고 놀라운 방식이었다. 이후 김 본부장은 개발자 경력을 십분 발휘해 그러한 고객 데이터를 프로파일링하는 트래킹 툴을 만들어 ‘아비노 디스커버러’라는 그룹을 형성하고 팬덤을 강화했다.

“이러한 방식은 존슨앤존슨을 좋아하는 고객들 사이에 ‘아비노 디스커버러’에 포함됐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뒤에 들어오는 후배 그룹에게 육아법 등과 함께 전파하는 커뮤니티로 이어졌어요. 즉 우리 안의 데이터뿐 아니라 외부 데이터를 활용해 ‘찐팬’을 발견하고 이분들이 우리 제품을 이야기하는 것을 데이터화했고, 그것이 스스로 퍼져나가는 구조를 만든 거죠. 그걸로 존슨앤존슨 본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어요.”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 그녀에게 존슨앤존슨은 더 큰 역할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후 그녀의 선택은 다시 국내 기업, 그것도 이전에는 전혀 상관없었던 유통·리테일 분야였다.

“당시 회사가 원하는 일을 수행하려면 뉴욕이나 싱가포르 등 더 높은 헤드 쿼터로 가야 했어요. 하지만 남편은 해외 근무를 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제게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죠. 한편으로 5년 간 존슨앤존슨에서 경험한 마케팅 기법, 전략, 조직적인 면 등을 국내 기업에 전파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존슨앤존슨은 140년 이상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회사인 만큼 조직이나 운영에 있어 엄청난 성공 포인트가 있었거든요.”

디지털 마케팅, 그리고 데이터의 본질은 '인텐트'

국내에 돌아온 그녀는 이후 롯데쇼핑 롯데마트 마케팅부문장을 거쳐 BGF리테일 CU 마케팅 실장을 역임했다. 글로벌 기업을 경험한 그녀가 접한 국내 기업의 상황은 예상보다 개선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았다.

“유통이나 리테일은 온라인을 비롯해 엄청난 수의 오프라인 매장을 아우르는 마케팅을 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었죠. 다양한 채널에서 굉장히 많은 데이터를 엿볼 수 있었고 그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만족스럽게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마케팅적인 측면이나 조직적인 측면 등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았죠. 그 과정에서 디지털 전환, 그에 따른 마케팅 전략 수립에 있어 리더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의지가 필요하다는 거였어요. 디지털 전환이라는 것은 체질 개선인데 기술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변화에 익숙한 글로벌 기업은 자신들이 잘하는 분야에 새로운 것을 접목할 때면 전문가를 데려와 자신들의 방식을 교육한 다음 역할을 할 수 있게 하죠. 그것이 구조화되지 않을 경우에는 피상적인 수준에서만 시도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어요.”

어센트코리아 마케팅본부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 그녀는 “본질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검색 데이터로 고객의 의도를 알 수 있다’는 ‘인텐트 마케팅’을 강조해 온 어센트코리아의 철학은 어찌보면 김 본부장이 추구해 온 디지털 마케팅의 본질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어센트코리아 사무실 벽의 글은 '마케터로서의 본질적인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테크42)

“제가 어센트코리아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 존슨앤존슨을 비롯해 이제까지 다양한 기업을 거치며 늘 느꼈던 ‘고객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갈증을 해결하고 있다는 거예요. 유통, 리테일 기업들이 가진 구매 데이터는 많지만, 그것이 진짜 원하는 것을 알려주진 않거든요. 겉보기와는 다른, 그 사람이 그걸 구매하는 행동을 했던 원인이 있는 거죠. 그와 관련된 데이터를 마케터가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그 문제를 공감하는 것이 전제가 되야 해요. 제품이 목적이 아니고 고객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목적이 되다보면 기업은 지속적으로 그 문제에 피팅한 좋은 산출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요.”

‘고객 의도 파악으로 히트상품과 팬덤 만들기’라는 주제와 관련해 김 본부장은 “마케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의 입장과 맥락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공감하는 능력”이라며 “가장 요구가 강한 ‘진상’ 고객 또는 그 제품을 정말 좋아하는 ‘진성’ 고객 사이를 넘나들 수 있는 마케터가 고객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윤경 본부장은 '진상'과 '진성' 고객 사이를 넘나들 수 있는 마케터가 고객을 만족 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어센트코리아)

“고객의 입장에서 나는 인간이지 지갑이 아니에요. 단지 제품만을 더 자주 사게 하는 마케터라면 관계를 맺고 싶지 않는 게 당연하죠. 마케터 스스로도 고객의 입장이라면 그럴 거예요. 그럼에도 고객에게 좀 더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데이터가 없어서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을 알려드리면서 고객과 시선을 맞추고 삶을 나아지게 하며 같이 성장하는 행복한 마케터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보려 해요.”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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