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설립된 콤스는 삼발이 형태의 구조물로 바다에 풍력발전설비를 고정시키는 재킹 타입 해상풍력 하부구조와 부유식 해상풍력 탈부착 계류시스템 등을 개발하는 회사다. 연혁으로 봤을 때 이제 막 4년차에 접어든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지만, 사업 분야나 기술력은 그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고도화 돼 있다. 이를 이끄는 인물의 지난 이력 역시 예사롭지 않다.
김장진 콤스 대표는 우리나라 조선, 플랜트 부흥기라 할 수 있는 1981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당시 대우조선해양 최초의 상선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이후 김 대표는 북해, 서아프리카, 알래스카, 캐나다, 호주, 중동과 동남아시아, 남미 등 세계 각지에 위치한 다양한 종류의 선박·산업 플랜트 및 해양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경력을 쌓았다. 한마디로 한국 조선·플랜트 산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산 증인인 셈이다.
이후 대우조선해양의 사업본부장(부사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는 세계적인 석유 메이저, 시추업체, 해운사 등에 주요 EPC 프로젝트* 30여개(프로젝트 총액 320억 달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2019년을 끝으로 퇴임하며 인생 1막을 마무리했다.
EPC : 설계(engineering), 조달(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 등의 영문 첫 글자를 딴 말이다. 대형 건설 프로젝트나 인프라사업 계약을 따낸 사업자가 설계와 부품·소재 조달, 공사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형태의 사업을 뜻한다.
1955년생으로 은퇴를 선택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 그러나 인생 2막을 여는 그의 선택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부·울·경 플랜트 산업 인프라와 노하우… “사장될 위기 처했다”
중부내륙을 지나 남해고속도로 끝자락에 위치한 부산 강서구 생곡동, 서울에서 내 달려 5시간여 만에 도착하니 바다 내음이 코 끝을 감돌았다. 콤스(KOMS)는 김해공항과도 그리 멀지 않은 이곳에 위치한 해양엔지니어링센터에 입주해 있다. 콤스의 영문명인 ‘KOMS’는 ‘Korea Offshore Marine Solution(한국해양솔루션)’이다. 말 그대로 해양, 해상풍력 분야의 엔지니어링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콤스는 자사의 고유 콘셉트를 적용한 해상풍력 하부 구조 등의 기술력을 인정받아 정부출연 시설인 이곳에 입주할 수 있었다. 특히 이곳은 세계 최대 심해수조공학 실증시설을 옆에 두고 있어 엔지니어링 프로젝트 실증이 원활하고, 조선해양산업 클러스터와 근접하다는 잇점이 있다.
이곳에서 콤스는 엔지니어링 및 기술 개발 프로젝트 등 약 180억원 상당의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국가연구개발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풍력발전 기술이 앞서 있는 노르웨이 기업의 파트너로, 오는 2025년부터 시작되는 울산 앞바다 부유식 해상풍력 단지 건설에 참여를 준비하고 있다.
그 외에도 콤스는 소형 LNG발전선, 소형 정유공장, 소형 수소생산설비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창업 후 단 3년여 만에 이룩한 성과로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마주한 김장진 대표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도 울산, 부산을 비롯한 경남, 창원 지역에 이정도의 산업 콤플렉스가 형성돼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국내 건설사들은 이제 육상 플랜트사업을 포기하고 수익률이 높은 아파트 짓기에 열중하고 있죠. 조선해양사업체들도 선대 기술자들이 수십년간 개발해 놓은 LNG 운반선으로 지금까지 먹고 살고는 있지만, 역시 마찬가지예요. 이런 기업들은 해외를 다니면서 외화를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힘들고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는 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양 엔지니어링 분야는 소멸위기에 처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신이 평생을 받쳐온 산업의 현실이 기가 막히다는 듯 굳어진 표정으로 말을 잇는 노장(老將)의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외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에 발주를 하고 싶어도 입찰 조차 참여하지 않으니, 그 수소문은 종종 여전히 그들과 네트워크가 연결돼 있는 김 대표에까지 닿곤 한다. 김 대표는 “서울까지 찾아가 오지랍을 부렸건만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며 에피소드를 털어 놓았다.
“외국 기업이 연락이 와서 (국내 기업에 입찰에 참여하라고)얘기 좀 해달라는 경우까지 생기더군요. 서울에 가서 그 대기업 건설사를 설득해보기도 했는데, 정책적으로 해당 사업을 접었다더군요. 그렇게 기업들이 사업을 접으면서 그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로 뻗어나갔던 기술자들이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됐어요. 이렇게 편안함만을 찾다가는 5년 이내에 중국이나 싱가포르 등 후발주자에게 시장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오랜 기간 몸담았던 업계가 처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김 대표의 말은 곧 그가 콤스를 창업한 이유이기도 했다.
해양 엔지니어링 기술의 명맥 유지를 넘어 진화를 시도하다
“우리나라 해양 엔지니어링 기술을 글로벌 탑클래스로 올려놨던 사람들은 여전히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었어요. 이들을 모으려면 어떤 툴이 필요했습니다. 그 툴로써 엔지니어링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설립하자고 결심했죠. 기존 방식으로 제조 공장을 만들려면 땅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데, 현실은 불가능하니 우선 선행단계인 엔지니어링과 연구개발에 주력하기로 했고요. 우리 스스로 설계를 하고 자금을 모아 제조를 추가하면서 수직계열화 하게 되면 규모 문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콤스로 그 계획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고요.”
창업의 과정을 밝히며 김 대표는 콤스의 비전을 ‘그린 에너지(Green Energy)’와 ‘리뉴어블 에너지(Renewable Energy)’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EPC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비전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 중에서도 최근 주목받는 것이 바로 앞서 언급된 ‘재킹 타입(Jacking type) 고정식 해상풍력 하부구조’와 ‘부유식 해상풍력 탈부착 계류 시스템’이다.
풍력발전시설은 크게 하부구조와 흔히 날개로 부르는 ‘블레이드’ 운동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터빈 제너레이터로 나뉜다. 이중 콤스가 집중하는 것은 해상 풍력발전의 기초가 되는 하부구조다. 김 대표에 따르면 현재 국내 기술로는 GM, 지멘스와 같은 외국 기업의 터빈 제너레이터와 블레이드 기술을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신 하부구조에 집중에 기술 자립을 실현한다는 것이 콤스의 전략이다.
“국산 전투기인 KF-21(보라매)의 엔진을 GE사 제품을 썼듯이, 풍력발전 역시도 터빈 테너레이터 등은 잘 만드는 기업의 제품을 적용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하부 구조인데, 우리가 만드는 하부구조 설계는 풍속 약 60㎧까지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업체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 기존 해상 풍력발전의 하부구조는 해저 깊숙이 드릴로 호를 파고 기둥을 박는 방식이다. 문제는 대규모의 특수설치선단(작업선단)이 필수적이고 기상의 영향을 받으며, 시간과 비용 또한 적지 않게 소요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콤스의 하부구조 방식은 특수설치선단이 필요하지 않고 해저 지반이 연약한 곳에도 설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김 대표는 이와 같은 장점을 설명하며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에너지 산업을 수십년 된 방식으로 계속하자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역설했다.
“기존의 하부구조 설치 방식은 바다를 온통 흙탕물로 만들어서 어민 피해도 상당합니다. 또 소음 문제도 적지 않게 발생하죠. 설치 공사 기간도 10분의 1에 불과하고 비용도 기존의 30% 정도면 가능합니다. 또 저희가 개발한 하부구조 방식은 수면 위에 추가로 그린 에너지 생산 시설을 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마련 돼 있습니다. 작은 수소생산 플랜트 등을 설치하면 하나의 시설로 두 가지 발전이 이뤄질 수도 있는 거죠.”
산업 구조의 변화? “조선·해양 플랜트는 선진국 산업”
혹자는 국내 건설사 등이 플랜트 사업을 접는 이유를 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한국도 선진국이 된 만큼 그에 걸맞은 산업 구조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그렇다면 선진국이 자동차 산업을 포기했습니까? 또 항공기 산업을 버렸나요? 아니죠. 하늘을 무대로한 항공기 산업, 땅에서는 자동차 산업, 바다는 조선과 해양 플랜트가 있고, 이는 그야 말로 ‘선진국 산업’ 입니다. 그 중에서도 해양 플랜트는 더욱 그렇죠. 자동차는 한번 개발하면 수십만대를 양산할 수 있고, 비행기도 한번 개발하면 그 이후로는 개량해 나가며 반복 생산하면 되거든요. 배도 마찬가지고요. 시리즈로 막 찍어낼 수 있어요. 하지만 플랜트는 해양이나 육상이나 시리즈로 찍어내는 경우가 없어요. 하나 하나가 모두 다 처음부터 설계해야 하는 것들이죠. 이것이 노동력, 임금에 좌우되지 않고 가장 오래 갈 수 있는 분야 입니다. 확장성도 무궁무진하고요.”
‘확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얘기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아마도 그것이 김 대표가 콤스를 통해 시도하려는 계획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콤스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알면 알수록 그런 생각은 더욱 확실해 졌다. 다시 말해 풍력발전 하부구조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구상하고 실제로 실현해 나가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시장의 수요가 많은 ‘소형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풍력발전을 비롯해 LNG 발전선, 정유공장, 수소생산설비 등을 소형으로 개발해 전력 인프라가 부족한 동남아, 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가에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콤스는 향후 중소형 조선소를 인수해 소형 LNG 발전선을 자체 건조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개발은 이미 완성된 상태다. 하지만 문득 의아함이 생겼다. 소형 발전 설비의 경제성 문제다. 이와 관련한 김 대표의 복안은 이렇다.
“풍력, 발전선, 정유공장, 수소생산설비 등을 지을 때 선진국이나 돈 있는 나라들은 초대형을 원해요. 그래야 효율이 나니까요. 하지만 동남아 국가나 예산이 부족한 나라들은 이런 발전 설비가 필요하긴 한데 엄두를 못 내고 있죠. 그보다는 당장 있는 석탄이나 기름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게 쉽기도 하고요. 친환경을 생각할 겨를도 없고, 뭐든지 써야 하는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이예요. 이런 나라들에게 필요한 것이 대형 발전 설비가 아닌 스몰 스케일의 소형 발전소인 거죠.”
콤스의 전략은 수십만 킬로와트를 생산하기 위해 수조원의 비용이 투입돼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대형 발전 분야 대신, 소형 발전 설비를 설계·디자인하고 개도국을 대상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1만7000개의 섬으로 형성돼 있는 인도네시아와 같은 국가의 경우 개별 섬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데, 소형 발전 설비만큼 적합한 것이 없다는 게 김 대표의 판단이다.
“소형 풍력 발전 설비는 저희가 디자인한 하부구조에 GM, 지멘스보다 효율은 떨어지지만 소형에 적합한 국내 기업의 터빈 제네레이터를 달아 제작이 가능합니다. 이런 소형 풍력 발전기를 대규모로 깔아 ‘베이비 윈드 팜’을 콤스의 스탠다드 디자인으로 개도국에 공급하는 거죠. 특히 대부분의 개도국들은 전기가 부족합니다. 대형 발전소를 짓는다고 해도 송전탑을 만들고 전선을 까는 게 돈이 더 많이 들어요. 그 보다는 소형 발전 설비를 인구 5만, 10만 되는 도시에 하나씩 설치하는 것이 낫죠. 더구나 이들 나라에서는 원유가 나오니 소형 정유 설비를 갖추면 바로 정재해서 쓸 수 있게 됩니다. 콤스는 그런 소형 정유 설비를 표준화하는데 주력하고 있어요.”
이러한 전략 하에 콤스의 계획은 하나 둘 진행되고 있다. 풍력발전을 비롯해 소형 LNG 발전선은 이미 완성한 상태고, 소형 정유공장 등을 설계·디자인 개발이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향후에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조도 할 수 있는 중소형 조선소 인수도 고려하고 있다. 그 외에도 콤스가 개척해 나갈 다양한 미래를 이야기하는 김 대표의 눈빛과 목소리는 청년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적어도 75세까지는 무조건 현역으로 일한다는 게 제 계획입니다. 편한 길을 택하려 했다면 국내외 관련 회사로 갔겠죠. 하지만 남의 집에 가서 숟가락 얹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고, 그 기술을 가진 전문가들을 좀 더 모으고 결집시킨다면 어떤 기업과도 경쟁할 수 있는데, 그럴 이유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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