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 소득만으로 살기 힘든 세상이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그 활로를 금융투자를 통해 찾고 있다. 하지만 불확실성과 정보비대칭이 극대화 된 이 분야에서 원하는 수익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위험성이 큰 투자를 할수록 더 큰 이득을 본다는 의미)은 일종의 바이블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이들에게 그 사이에 숨어 있는 부도덕성과 욕망으로 덧씌워 진 오류들은 간과되기 일쑤다.
그 민낯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사건이 지난 2008년 서프 프라임 모기지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노벨상을 수상한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MPT)’을 악용한 미국 월스트리트의 욕망이 낳은 결과물이다. 수익은 극대화하면서 위험은 최소화하는 포트폴리오를 선택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 이론을 당시 월스트리트는 여러 개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모아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 방식에 적용했다. 당시 논리는 위험을 분산했으니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월스트리트의 금융사들이 기대 수익만을 강조하고 불확실성은 임의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간과한 불확실성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D)의 금리 인상, 모기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변동금리 대출, 금리 인상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한 대다수의 모기지의 부실화, 그로 인해 작동하지 못한 CDS(Credit Default Swap, 부도가 발생하여 채권이나 대출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대비한 신용파생상품) 등이다.
그렇게 ‘분산투자’로 대표됐던 MPT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깨지고 신봉자들 역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최근 ‘MPT를 ‘인공지능으로 부활시킨다’를 모토로 삼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투자 모델인 ‘쫄보’를 선보이고 연평균 80%에 달하는 누적수익율을 입증하며 ‘정도 있는 투자’를 표방한 알고리즘을 공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알케미랩이 그 주인공이다.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의 오류는 불확실성을 멋대로 계산했기 때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MPT가 망한 것은 은행들의 부도덕 때문이었어요.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대수익과 위험이라는 두 가지 변수를 정확하게 계산해야 했죠. 하지만 당시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은 기대 수익만을 강조하고 불확실성은 멋대로 계산했어요. 당시에는 컴퓨팅 파워가 없었고 그래서 계산할 수 없는 위험들이 많았던 탓이기도 해요.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계산할 수 없으니 임의로 이렇게 정했다고 하면 받아들여 졌던 거죠. 문제는 당시 은행들이 모기지 대출자가 다른 은행에서도 대출 받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다는 점이예요. 자신들이 파악했을 때 신용카드 대금도 잘 갚고, 이자도 잘 내고 있으니 신용도가 좋다고 판단하고 대출을 내주며 부실을 키운 거죠. 그래서 저희는 이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에 정보 이론이라는 레이어를 더했어요. 실시간성 정보까지 모두 반영한 정보 이론 관점에서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을 재해석한 거죠.”
여의도에 위치한 서울핀테크랩에서 만난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는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의 실패와 이를 정보 이론으로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인 ‘쫄보’를 설명했다. 알케미랩이 표방하는 ‘쫄보 모델’은 MPT에 따른 자산배분을 근간으로 해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인공지능을 적용한 정보 이론을 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알케미랩이 개발한 로보어드바이저 ‘쫄보’는 100% 과학만으로 연평균 80%에 달하는 누적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알케미랩에 따르면 이는 “이미 입증된 MPT 알고리즘에 입력 변수인 기대수익과 기대 위험을 확률론적 딥러닝으로 추산한 결과”다.
놀라운 것은 알케미랩이 그렇게 개발한 알고리즘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매개 변수인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알케미랩이 중시하는 데이터는 시계열 데이터다. 알케미랩은 이 시계열 데이터를 가지고 그 행간에 숨겨진 정보를 추출해 인공지능이 분석한 공포감, 즉 기대 위험을 MPT에 접목한다.
“데이터에서 정보를 추출하는 것은 액기스를 추출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 내부에서 개발한 이 추출기는 ‘아거스(Argus, 눈이 100개 달린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 신화 속 거인)’라고 해요. 여기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이 중요한데 데이터는 노이즈 데이터를 비롯해 어떤 데이터도 상관없어요. 그 자체가 편향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또 언뜻 쓸모없는 데이터도 다른 데이터와 연결됐을 때 중요해 질 수 있거든요. 이를테면 누군가 아침에 수저를 몇 번 들었다 놨는지는 의미 없는 데이터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다른 데이터와 연결됐을 때는 쌀 가격과 관련이 생기는 데이터가 될 수 있거든요.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인공지능 기술이죠.”
이렇듯 알케미랩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기반 데이터 분석 기술을 적용해 만든 프로덕트인 가상자산 보어드바이저 ‘쫄보’와 앞서 개발한 자문형 HTS(Home trading System의 약자, 집에서 PC로 하는 거래) ‘셀프레시피’ 구독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김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자산운용업의 판을 뒤집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알케미랩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술력에 근거해 다른 조직 없이 기술개발중심 기업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품의 관리나 영업을 외부 파트너사에 맡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 대표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만드는 제품은 다른 제품과 달리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습니다. 경쟁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저희 제품을 팔아줄 수 있다면 맡기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죠. 저희가 파는 것보다 훨씬 더 잘 파실 테니까요(웃음). 예전에 예비창업패키지를 통해 멘토링을 받을 때도 저희에게 하신 말씀이 ‘특허장사를 하면 어떠냐’는 거였는데, 그때는 ‘사업하려는 사람한테 무슨 말씀이냐’고 했지만, 지금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산업디자인 지망생은 어떻게 자산운용 솔루션을 개발했을까?
알케미랩의 행보가 관심을 끄는 것은 창업자인 김한샘 대표의 독특한 이력도 한몫하고 있다.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초·중·고 학창시절을 모두 미국에서 보냈다. 대학 역시 미국 애리조나주의 루이지애나 대학교 라피엣(University of Louisiana at Lafayette, ULL)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 대표는 금융에 관심이 없는 산업디자인 지망생이었다. 그런 그의 삶이 변곡점을 맞이한 것은 ULL에서 1학기를 마치고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즈음이다. 서툰 한국어 실력을 보강하기 위해 책과 신문을 읽으면서 김 대표는 처음 금융에 눈뜨게 됐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당시에 고승덕 변호사님이 쓰신 주식 관련 책을 읽었어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군요. 그때부터 이걸 이해하려면 뭘 배워야 할까를 생각했어요. 결국 병역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계획을 바꿔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2년간 공부하다가 군대에 갔죠. 제대 후에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에 편입을 했고요. 그렇게 경제학을 접하면서 돈은 과거 선조들이 짜 놓은 틀에 맞춰 흐르고 있고, 이 모습은 또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나는 이걸 디자인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했죠. 케인즈를 존경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예요. 경제학을 기반으로 금융의 틀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학자였죠. 알면 알수록 저와 굉장히 비슷한 관점으로 경제학을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하고요. *브레튼 우즈에서 그가 승리했다면 지금의 경제 문제나 미·중 무역 분쟁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김 대표가 언급한 ‘브레튼우즈’는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전후 세계의 금융질서를 잡기 위해 진행된 ‘브레튼우즈 체제’를 의미한다.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휴양지인 브레튼우즈에서 44개 동맹국 등이 모인 가운데 벌어진 논쟁에서 영국의 경제학자인 케인즈는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의 국제 통화 방코르(Bancor)를 도입해 기축통화로 삼는 것을 주장했으나, 끝내는 패권국이 된 미국의 입장이 반영되며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금본위제가 채택됐다. 이후 이것을 브레튼 우즈 체제라고 부르고 있다. 다시 말해 김 대표가 이 브레튼우즈 체제를 언급한 것은 당시 케인즈가 주장한 국제 통화 제안을 지지한다는 의미다.
이후 김 대표는 대학 재학 시절 글로벌 신용평가기업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tandard & Poor’s)를 경험하고 미래에셋 펀드매니저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미래에셋에서 그는 투자교육연구소, 상품개발본부 등을 거치며 퀀트 투자 모델을 처음 접했다. 이후에도 다양한 금융기관에 몸 담은 그는 자체적인 투자 모델까지 개발하며 업계에서 인정받는 전문성을 구축했다.
“어느 정도 회사 생활로 경험을 쌓은 후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때 첫째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서 계획을 바꾸게 됐어요. 당시에 이직을 한 회사에서 첫 퀀트 모델을 개발했는데, ‘듀얼 모멘텀 전략’이라는 논문을 참고해 코딩을 해서 만든 모델이었고, 수익률이 꽤 좋게 나왔죠. 지금 나와 있는 로보어드바이저는 대부분 이 모델에 기초하고 있어요. 하지만 듀얼 모멘텀 전략에는 여러 수식적인 한계가 있었고 그 부분을 연구하다가 인공지능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한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사업가라기 보다는 자유로운 영혼의 탐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기 내내 금융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다가 호기심을 자극한 책 한 권에 금융을 공부했고, 이상적인 경제학자의 이론을 추앙하기도 했다. 특징은 안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계를 넘어설 필요를 느낄 때면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공부해 접목했고, 그러한 삶을 살던 와중에도 잠시 금융권을 떠나는 의외의 선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운명이라고 할까? 간간히 ‘금융권을 싫어했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면서도 그는 매번 다시 금융업계로 돌아와 새로운 시도를 반복했다.
“금융권이 싫어서 한 번은 다 그만두고 나무 농장 사업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쉽지 않더군요. 결국은 접고 다시 들어간 KG제로인이라는 펀드평가사에서 구독 형식의 지수 자문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인덱스공작소 팀장을 맡았죠. 그러다가 두나무 투자일임운용실 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가상자산 분야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작은 회사였고, 준비하는 단계에서 참여했는데 ‘업비트’가 나오며 상황이 달라졌죠.”
보장된 길이었고, 그 대로만 가면 안정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또 다른 계획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제 꿈은 처음부터 학자가 되는 거였어요. 당시에는 ‘더 이상 학자의 길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죠. 하지만 대학원은 정답이 아니었어요. 공부 외에 신경을 써야 하는 여러가지 일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을 통해 들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논문 대신 생각한 것이 책을 쓰는 것이었는데, 책을 쓰기 위해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차에 저자 분들이 대체로 학자가 아니면 회사 대표시더군요. 맞아요, 알케미랩을 창업한 것은 책을 쓰기 위한 목적도 있어요(웃음). 사실 무엇이 올바른 세상인지에 대한 물음을 오래도록 해왔어요. 케인즈가 이야기 했던 이상적인 방안들, 이를테면 방코르와 같은 지구촌 단일 화폐 등은 당시에는 구현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블록체인이나 인공지능으로 가능해진 시대가 됐어요. 심지어 제가 혼자 만들 수 있는 수준도 됐고요. 다시 말해 알케미랩을 통해 그런 것들을 만들고 그와 관련된 책을 쓰는 것이 지금 제 계획이죠. 모두가 잘 살고 조금만 일하면서도 여유있게 살 수 있는 세상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기존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없애고 바꾸는 거죠. 알케미랩이 진행하는 일은 모두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가상자산 분야,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높은 규제 장벽이 존재한다. 이에 알케미랩 역시도 국내에서 가능한 것과 해외에서 가능한 것을 구분해 규제를 살피며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단일화된 과학적 투자 알고리즘’을 구축해 자산운용의 방식의 판을 바꾸는 것’이다. 쫄보 모델의 알고리즘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탈중앙화하는 것도 그런 계획의 일환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익을 확보하는 방안은 이미 마련해 놨다. 또 다른 이상향을 이야기하는 김 대표의 눈이 다시 한 번 빛났다.
“저희가 나갈 발향은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이예요. 쫄보의 알고리즘은 모두 공개되고 모두의 자산이 될 거예요. 대신 저희가 돈을 버는 유일한 방법은 데이터라고 생각해요. 세계에서 제일 큰 데이터센터가 되는 거죠. 다음 인공지능의 혁신은 데이터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죠. 나무 산업을 예로 들면(웃음), 나무 농장은 데이터를 발굴하고 채굴하는 쪽이라면 이걸 정리하는 기법을 연구하는 곳은 목재소라 할 수 있어요. 저희는 그런 목재소를 만드는 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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