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 대학을 비롯해 군부대와 기업, 요양원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급식 체계는 상당히 보편화 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각 급식소에서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의 양 또한 엄청나다. 환경부의 환경백서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음식물류폐기물 1일 발생량은 1만4210톤에 달한다. 전체 생활계폐기물 발생량의 약 22%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각 급식소에서는 가급적 잔반을 남기지 않는 것을 권하지만, 개개인의 음식 선호도와 식습관에 따라 먹지 않는 음식은 버려질 수밖에 없다. 밥과 국, 반찬 등으로 이뤄진 우리나라 특유의 다채로운 식단 역시 일정 부분 어쩔 수 없는 잔반이 생기는 원인이다. 또 급식소 입장에서도 음식이 모자라는 상황보다는 남는 것이 낫기에, 예측되는 수요를 웃도는 ‘넉넉한 량’을 준비하는 것도 문제다. 이 모든 요인이 결국 음식쓰레기 발생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급식소를 이용하는 개개인의 식습관은 물론 적당한 음식의 양과 종류를 파악할 수 있다면 어떨까? 단순하게 생각해도 그에 맞춰 음식량을 정할 수 있고, 자연스레 음식물쓰레기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당뇨와 고혈압 등의 질환을 보유한 이들은 먹지 말아야 할 음식과 먹어도 되는 음식은 물론 허용되는 양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작심 3일로 끝나는 다이어트 역시 조금은 더 쉬워질 수 있다.
사실, 이와 같은 일들은 이미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버려지는 음식물의 줄여 환경 문제와 식습관 불균형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겠다고 나선 스타트업, 누비랩이 일으키는 변화다.
음식물쓰레기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은 어떻게 자율주행 기술 적용으로 이어졌나?
누비랩의 AI 음식 스캐너 ‘누비스캔’은 3D 카메라를 활용해 음식을 스캔하고 그 종류와 양을 AI로 분석해 빅데이터화 한다. 방식은 음식을 내주는 배식구와 식기를 반납하는 퇴식구에 각각 스캐너와 센서를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에는 자율주행차에 적용되는 순간 감지 기술, 이미지 AI 분석 기술 등이 적용됐다.
음식의 종류와 양을 분석하는데 어떻게 자율주행에 적용되는 신기술이 활용됐을까?
이 질문의 답은 누비랩 삼성 오피스에서 만난 류제윤 CTO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사연은 지난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대훈 누비랩 대표와 류제윤 CTO는 현대자동차그룹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종종 업무에 집중하다가 늦은 식사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퇴식구에 버려진 엄청난 양의 음식물쓰레기를 보게 됐다고 한다. 류 CTO는 “자연스레 문제의식이 생겼고 마침 당시 논의를 하던 3D 센서 등 자동차 자율주행에 적용되는 기술을 활용하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려면 먼저 각 개인이 식기에 담는 음식의 종류와 양을 파악하고 남겨진 음식의 종류와 양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술적으로는 각 대상체와 거리 등을 파악하는 자율주행 기술로 가능하다고 판단했죠. 사업적으로 생각했을 때도 이것을 데이터화 했을 때 시도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다양하다고 봤고요. 이를테면 환경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건강 관리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죠. 그런 생각이 결국 창업으로 연결된 셈이에요.”
그렇게 시작된 아이디어를 가지고 두 사람은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 사이드 프로젝트로 연구를 시작했다. 기술 적용 방식과 이를 통한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방식을 연구하는데 약 8개월의 시간이 소요됐다. 결국 이 아이디어는 환경부 환경창업대전에서 장관상을 수상했고, 이는 다시 본격적인 누비랩 창업으로 이어졌다. 2018년 11월 즈음이었다.
가능성을 바탕으로 시작된 누비랩은 이후 국방부 3대 혁신과제에 선정되며 군수 혁신사업을 통해 현장 실증 및 테스트에 돌입했다. 서울시청과 경기도 교육청 시범 사업은 물론 삼성 웰스토리, SKT, 서울시청, 롯데호텔 등의 구내식당과 협업이 이어지며 데이터는 차곡차곡 쌓여갔다. 류 CTO는 “처음에는 기술적 역량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소득이라고 생각했는데, 국방부를 비롯해 각 기관과 기업에서 연이어 연락이 오면서 성공을 예감하게 됐다”며 당시 이야기를 털어 놨다.
“창업 후 5개월이 지난 무렵이었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한 것을 보고 국방부에서 연락을 하신 것 같아요. 한 부대를 정해 2주간 데이터를 수집하고 기술 검증을 했는데, 그 결과를 보고 정식 도입을 하자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레퍼런스가 생겨나며 이후 정부 지원사업과 AI 기술 관련 경진대회 등에서 수상을 하면서 시드 자금을 확보했죠.”
음식물쓰레기 저감은 기본, 다양한 데이터 비즈니스 진행 중
이후로도 누비랩의 기술로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고 식자재 비용을 효율화한 급식소의 성과가 알려지며 대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 정부기관, 학교 등 협업 요청이 줄을 이었다. 현재 누비랩 솔루션이 도입된 급식소는 국내 약 70여곳에 달하며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보이는 중이다. 각 급식소 별 차이는 있지만 누비랩 솔루션은 평균 30%의 음식물쓰레기 저감 성과를 내고 있다. 1년 치로 환산할 시 무려 9톤의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류 CTO는 “누비랩은 지속적인 기술 고도화를 통해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것을 넘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데이터를 활용한 급식 모니터링 등의 사업 방향성을 설명했다.
“크게 봤을 때 누비랩의 서비스 카테고리는 급식소 영양사 등 관리자를 위해 인사이트를 주는 프로덕트와 급식소를 이용한 개인에게 가이드를 주는 프로덕트로 구분할 수 있어요. 관리 솔루션은, 가령 급식소 이용자가 1000명 정도라고 했을 때 그날 만든 반찬 별로 몇 명이 가져갔고, 또 가져간 양에서 얼마만큼 먹었는지, 다 먹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를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죠. 이를 통해 감에 의존했던 수요 예측을 데이터에 기반해 정확하게 예측하고 식단 설계를 최적화 할 수 있게 됩니다. 또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 수요량에 맞는 식자재 발주가 가능하고요. 사용자 선호에 맞는 레시피를 개발하는데도 쓰일 수 있죠.”
누비랩은 급식소를 대상으로 한 B2B(기업 대상 비즈니스)를 넘어 개인에게 제공되는 식단 가이드 기능을 확장한 B2C(소비자 대상 비즈니스) 서비스도 올 상반기 내에 선보일 계획이다. 간단하게 모바일로 음식을 촬영하고 식습관을 분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균형을 맞춘 영양 섭취는 물론 비만, 당뇨, 고혈압 등의 질환을 예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 류 CTO의 설명이다.
그 외에도 누비랩의 솔루션은 줄어든 잔반으로 인해 저감된 탄소 배출량을 실시간으로 표시하는 ‘환경 대시보드’, 구성원들의 실천을 통해 저감된 탄소배출량을 매월 리포트로 제공하는 ‘ESG 월간 리포트’ 식당 운영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항목별로 측정하고 관리·정리할 수 있게 하는 ‘탄소 발생 통합 관리 솔루션’ 개인 연동을 통한 섭취 음식을 분석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하는 ‘헬스 케어 리포트’ 등을 제공하며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10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유치, 글로벌 빅테크 지원도 이어져
창업 5년차에 접어든 누비랩은 이제 더 큰 도약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유치에도 성공했다. 기술개발 및 서비스 고도화는 물론 기과 마케팅 등 인력 보강도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류 CTO는 “올해 전국적으로 500여곳 이상의 고객사 확보하고, B2C 사업을 본격화하는 것이 목표”라며 말을 이어갔다.
“투자유치로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죠. 지난해 직원 수가 27명 정도였는데, 현재는 60명 가까이 되고 있어요. 기획·마케팅 분야에 경험이 많은 시니어 분들을 많이 모셨고, 개발과 AI 전문 인력을 비롯해 GPU와 관련된 인프라 투자도 하고 있고요. 이제까지는 하나의 프로덕트로 많은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다지는 기간이었다면, 이제는 B2B와 함께 B2C 서비스가 더해지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친환경,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서비스를 고민하고 있어요.”
나날이 성장 잠재력을 드러내고 있는 누비랩의 행보는 글로벌 빅테크도 주목하고 있다. 최근 누비랩은 구글의 순환경제 분야 스타트업 액셀럴레이팅 프로그램 ‘구글 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순환경제’에 선정됐다. 구글은 대상 스타트업에기술, 클라우드 인프라, 네트워킹 등을 10주간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이와 관련 구글 측은 “음식물쓰레기 관리는 순환경제의 핵심 요소”라며 “누비랩과 함께 AI 기반의 음식물쓰레기 관리 플랫폼을 키워 버려지는 음식량을 줄이고 여유분은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 외에도 누비랩은 마이크로소프트 혁신 서밋에 초청받아 기술 시연을 하는가 하면, 지난해 초에는 엔비디아 인셉션 프로그램(NVIDIA Inception Program)에 선정돼 AWS $100,000 크레딧, GPU 기술 교육 등을 지원 받기도 했다. 2021년부터 연이어진 인공지능산업융합사업단(AICA) 지원을 통해 충분한 GPU 자원을 확보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지원은 모두 누비랩의 AI 기술 고도화로 이어졌고, 국제전자제품박랍회(CES)에서 연이어 혁신상을 수상하는 등의 성과로 나타났다.
지금도 누비랩은 글로벌 급식 기업인 콤파스 그룹, 푸드 서비스 기업인 아라마크, 해외 병원 등 다양한 기업, 기관과 함께 추가적인 서비스 실증 검증(PoC)를 진행 중이다. 헬스케어 분야에서 각 기업이 선보이고 있는 솔루션에 음식을 분석하는 기능을 API로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목표는 글로벌 진출이다.
“국가를 막론하고 식품을 비롯해 다양한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이 경험 기반에서 데이터 기반으로 바뀌는 것은 시대적인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저희가 한 영역을 담당할 수 있다면 영광스러운 일이죠. 올해는 이제까지 획득한 경험을 토대로 하나의 통합 솔루션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누비랩은 장기적인 목표는 사람의 전 생애주기에 걸친 ‘푸드 디지털화’ 실현이다. 인터뷰 말미, 류 CTO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실증 검증을 비롯해 지속적으로 데이터 확보 등이 이어지고, 이런 것들이 종합된다면 어느 순간 자원절약은 물론 혁신적이고 폭발력 있는 헬스케어 서비스가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누비랩이 현재까지 보여준 성과를 봤을 때, 그런 서비스의 등장은 그리 머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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