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이 가중되며 스타트업 혹학기라 불리는 시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사업성과 보유기술, 조직 구성 등 가능성을 기반으로 초기 투자를 유치한다고 하지만, 시리즈 A 이후 B 단계를 준비하고 있는 스타트업의 경우는 매출 등 기업의 본질인 이윤창출과 경영관리 능력을 보여줘야 투자 유치가 가능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이는 비단 스타트업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스타트업 단계를 벗어났다고 해도 일정 규모 이하, 중소기업회계기준이 적용되는 비외감법인의 경우 기업을 평가할 수 있는 재무정보가 제한되는 탓에 금융권을 통한 자금조달에 한계가 존재한다. 문제는 스타트업을 비롯해 국내 영리법인 사업자 중 95% 이상이 공시 의무가 없는 비외감법인이라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비외감법인은 자금조달 이슈가 발생할 경우 은행 등 금융권의 한정적인 재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신용등급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다. 이 기준으로 놓고 보면 대부분이 ‘B’에서 ‘BB’ 등급을 넘어서지 못한다. 비외감법인에 속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재무 데이터 외에 어필할 수 있는 다양한 성장 가능 요소들이 있다 해도 과거에는 이를 일일이 평가할 수 있는 방법, 즉 신뢰할 만한 대안신용평가모델이 부재했던 탓에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핀테크 업계를 중심으로 비재무적 데이터를 활용한 대안신용평가모형을 개발하는 사례들이 소속 생겨나면서부터다. 그 중에서도 오랜 기간 탄탄하게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공공데이터 RFM분석을 적용한 대안신용평가 시스템 ‘펄스(PULSE)’는 ‘B~BB’ 신용등급으로 뭉뚱그려졌던 기업들을 더욱 세분화하는데 성공하며 금융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 RFM분석: Recency(최근성), Frequency(빈도), Monetary(규모)를 기준으로 분류를 하는 분석법
이를 개발한 9년차 핀테크 스타트업 ‘앤톡’은 이제 이와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오래도록 구상했던 기술 지주사로서의 목표를 현실화시켜 나가고 있다. 이에 테크42는 앤톡의 공동 창업자인 박영준 부대표를 만나 차별적인 데이터 기반 대안신용평가 시스템 개발에 얽힌 스토리와 기술 이전을 통한 스핀오프 방식의 영역 확장 계획을 들어봤다.
파편화된 데이터를 모아 자본시장의 정보 비대칭 해결에 나서다
박영준 부대표는 미국 보스턴 대학교 거쳐 고려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서 비즈니스 전략과 경영정보시스템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미국 마케팅 기업에서 영업을 담당했다. 열정을 쏟아 일했고, 그런 노력은 그만큼 성과로 돌아왔다. 이후에는 시카고 소재의 애드테크 스타트업인 ‘Freenters’의 제안을 받고 합류해 미 동부지역 사업 총괄을 맡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2년여간 미국 스타트업에 몸담으며 외형 확장에 많은 공을 들였고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겪는 크고 작은 문제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던 그는 정작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발생한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경비대대를 만기 전역한 병장 출신으로서 평소 자신 있었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장기 치료가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행을 택해야 했다고. 그렇게 잠시 휴식기를 가진 동생에게 형인 박재준 대표가 꺼낸 이야기는 돌연 ‘창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지난 이야기를 털어 놓던 박 부대표는 “이미 미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스타트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알고 있었지만, 형의 제안이니 만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며 말을 이어갔다.
“형의 제안에서 첫 번째 관심이 갔던 것은 소프트웨어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이었어요. 미국 스타트업을 통해 하드웨어가 연계된 사업은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거든요. 또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 MBA를 졸업하고 글로벌 회계법인인 언스트앤영((EY) 금융컨설팅본부(FSO) 및 프랑스계 컨설팅회사 CVA 등에서 금융 기관에 대한 전략 컨설팅 업무를 담당했던 형이 구상한 핀테크 비즈니스인 만큼 그 인사이트를 믿기도 했고요. 보장된 미래를 다 버리고 창업을 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죠.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제 판단은 다행히 옳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웃음).”
전략가 스타일의 형과 행동가 스타일의 동생이 의기투합해 시작한 앤톡은 사업 초기 개인투자자 대상 친화적인 상장 기업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시작했다. 사명도 개인 투자자를 지칭하는 ‘Ant(개미)’와 ‘증권(Stock)’을 합친 뜻을 담았다. 그러한 앤톡의 비즈니스 모델은 진화를 거듭해 비상장, 중소기업, 스타트업 기업 표본으로 정보 제공 범위를 확대했고 이 과정에서 데이터의 가치와 이를 활용한 서비스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후 앤톡은 기업의 원천 데이터를 자동으로 확보하는 빅데이터 인프라인 ‘허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다시 창의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고유 AI(인공지능) 알고리즘 라이브러리인 ‘앤톡 MRI’를 연이어 개발했다. 데이터의 수집부터 가공, 분석, 검수 등 전 단계를 내재화한 원스탑 최적화 엔진을 완성한 것이다. 박 부대표는 앤톡의 미션을 이야기하며 그 과정을 설명했다.
“창업 당시 저희가 세웠던 미션은 ‘자본시장에 만연한 정보 비대칭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었어요.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스텝이 필요했는데 그 첫 스텝이 데이터 수집 영역이었던 거죠. 저희가 주목한 것은 우리나라 96%에 달하는 기업법인이 모두 공시 의무가 없는 중소기업이라는 점이었어요. 데이터 측면에서 봤을 때 이들의 정보는 파편화되고 분절적으로 관리 되고 있었죠. 저희는 이러한 국내 법인 생태계를 전산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하나의 거대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그것이 우주망원경의 이름을 딴 ‘허블 데이터베이스’예요.”
데이터 구축과 분석 자동화 완료, 펄스로 기술력 입증
허블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표준화된 데이터는 다시 ‘앤톡 MRI’를 통해 새로운 관점의 자동화된 기업 진단과 평가에 활용된다. 앤톡 MRI는 총 10종의 고유 진단 알고리즘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통해 다양한 기업 유형에 맞춘 평가와 경영 진단, 성과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 박 부대표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금융 데이터 분석을 목표로 시작한 앤톡의 도전은 그 반대편에 있는 비금융 데이터를 수집·가공하고 결합해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앤톡이 집중하고 있는 중소기업 대안신용평가 시스템(펄스, PULSE)이다. 박 부대표는 “펄스는 앤톡 MRI에 포함된10종의 라이브러리 중 하나”라며 말을 이어갔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맥박(PULSE)이 규칙적이고 분명하게 뛰죠. 저희는 그처럼 건강한 기업의 데이터도 주기적이고 왕성하게 발생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실제 귀납적으로 관찰한 결과 건강한 기업일수록 사업 수행 경과에 따른 공공 데이터가 규칙적이며 강하게 발생하더군요. 이는 반대로 부실 발생 가능성을 예측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펄스는 공공데이터 발생 양상을 분석해 실제 부실 가능성을 예측하는 중소기업 특화 대안신용평가 모델이예요. 올 1월 기준 약 140만개에 대한 법인 데이터를 식별하고 있죠.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12대 영역 300가지에 달하는 공공데이터를 표준화해 분석하고 있고요. 특허를 비롯해 홈페이지 상태, 심지어 언론보도 횟수까지 분석하죠. 사실상 펄스는 상장 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모든 기업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데이터를 이용하면서도, 하나의 데이터를 파생시켜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재무 정보는 일체 활용하지 않죠. 그럼에도 방대한 데이터를 다각적으로 분석함으로서 정교함을 입증하고 있고요.”
이러한 펄스의 기능은 금융위원회를 비롯해 주요 은행과 카드사 등과 PoC(개념증명)을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이를 통해 금융사들은 여신 리스크를 줄이는 선구안을 높이게 된 셈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비재무적 데이터 평가를 통해 신용등급을 올리며 이전 보다 낮은 금리의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앤톡은 기술 집합체, 기술 지주사로서 스핀오프를 통한 영역 확장에 나설 것
박 부대표의 말을 정리해 보면 앤톡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은 결국 ‘데이터’로 귀결된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분석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다시 거기서 파생된 다양한 기법과 솔루션이 존재하는 것이다. 박 부대표는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앤톡의 사업은 데이터를 판매하는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분석 알고리즘을 통해 나온 결과치, 예를 들어 신용등급 등도 결국 데이터라고 할 수 있죠. 결국 저희의 비즈니스 모델은 데이터 판매이고 다만 이를 수요 기관의 니즈에 따라 앤톡 MRI 라이브러리를 통해 분석해 제공하는 거라 할 수 있어요. 이렇듯 데이터 판매를 통한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2020년부터입니다. 이후로 매년 2배 가량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어 박 부대표는 “앤톡은 기술 검증의 집합체”라고 언급했다. 이를 통해 앤톡이 지향하는 미래는 ‘국경을 넘어 기업 데이터가 필요한 모든 곳에 존재하겠다’는 것이다. 박 부대표는 “다가오는 미래를 생각할 때 한국 시장은 앤톡에게 파일럿에 불과하다”며 “중장기적으로 공공데이터 개방 지수가 높은 도시형 국가들을 대상으로 앤톡의 데이터와 분석 인프라를 수출해 나갈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앤톡에게 있어 올해는 그런 성장 로드맵의 첫 단추를 꿰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기술 이전을 통한 스핀오프로 다양한 도메인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 박 부대표는 “앤톡은 기술지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앤톡이 만들어 낼 다양한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기술 지주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이러한 데이터와 사상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미 입니다. 새로운 관점이 만들어 지면 또 계속 PoC를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사업성이 인지되고 확실해지면 스핀오프해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고요. 그 첫 주자가 펄스가 되는 거죠. 그 외에도 앤톡은 향후 2년 내에 CB(신용평가)사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이미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신청한 상태죠. 또 리스크 관점의 데이터 분석과 다른 성공 경로를 예측하는 데이터 분석에 특화된 비즈니스 모델도 개발 중이죠. VC(벤처 캐피탈)을 비롯한 투자사 등을 타깃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올해는 저희 데이터베이스에 생성형 AI를 적용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