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국내 산업은 급격한 디지털 전환을 거쳤다. 그로 인해 사실상 모든 기업들이 개발자를 필요로 하게 됐고, 채용 경쟁에 나선 게임사를 비롯해 온라인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빅테크, 중견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개발자 모집 러시가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개발자 가뭄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꼭 필요하지만, 또 아무나 뽑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적정 수준의 실력을 갖춘 개발자를 찾기 힘들다는 말이다.
이러한 기현상을 겪는 것은 개발자들 역시 다르지 않다. 억대 연봉과 스톡옵션까지 제시하며 개발자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고 하지만 한편에서는 스킬업이 되지 못해 열악한 업무 환경에서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고 일하는 개발자 또한 존재한다.
아산나눔재단 창업가 플랫폼 마루 360에서 만난 박중수 에프랩앤컴퍼니 대표는 이렇듯 이상한 상황을 “개발자들의 성장을 돕는 제대로 된 교육 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스무살 무렵부터 프리랜서를 시작으로 개발자의 길을 걸어온 박 대표 역시 뼈저리게 경험한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한 문제 의식은 그를 창업가의 삶으로 이끌었고, 그 결실은 ‘상위 1% 개발자들의 1:1 멘토링 플랫폼, 에프랩(F-Lab)’을 통해 맺히고 있다.
‘어느 곳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갈리는 개발자들의 운명
“개발자들이 직면하는 문제는 직업을 얻는 것이 아닌, ‘어떤 곳에서 일하느냐’예요. 많은 분들이 부푼 꿈을 안고 개발자라는 직업을 갖게 되지만, 사수가 없거나 개발 문화가 없는 등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대로 실력을 쌓는 법을 몰라 ‘물경력’이라 불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죠. 그러다 보면 개발 속도만 늘어날 뿐 실력이 쌓이지 않아 이직을 시도하더라도 비슷한 회사로만 이직하는 ‘수평 이직’을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개발자 양성 프로그램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 지원 프로그램 등으로 개발자 교육을 진행하는 곳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프로그램의 목적이 단순히 ‘양성’에만 그친다는 점이다. 이제 막 초급 개발자로 세상에 나온 이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어떤 기업에 취업을 하느냐에 달렸다. 운이 좋아 좋은 사수와 환경을 갖추고 있고 다양한 경험과 시도가 가능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기업에 취업했다면 단기간에 실력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공장식 단순 개발과 반복되는 업무만을 처리해야 하는 일이 주어지는 회사라면 10년이 가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런 그가 처음 개발자 멘토링을 시작한 것은 2019년 무렵이었다. 그 스스로도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며 실력을 키워왔던 경험이 있기도 했고, 적지 않은 회사들이 좋은 개발자를 찾지 못해 구인난을 겪고 있는 현상을 보며 느낀 안타까움을 해소하기 위한 시도였다. 결과적으로 ‘F-Lab(에프랩)’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멘토링은 2020년 11월 그가 ‘에프랩앤컴퍼니’라는 사명으로 창업을 택하며 ‘상위 1% 개발자들의 1:1 멘토링 플랫폼’으로 진화를 거쳤다.
이제 창업 3년여, 한걸음씩 차근차근 디뎌온 ‘에프랩앤컴퍼니’의 행보는 본격적인 플랫폼 서비스를 시작한 2021년 매출 10억원을 넘어서는 성과로 돌아왔고, 이듬해인 2022년에는 20억원을 달성하며 급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 사이 상위 1%에 속하는 멘토 개발자 풀은 150명을 넘어섰고, 이들을 통해 배출된 수료생 역시 8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는 ‘에프랩’의 멘토링 수준과 만족도를 반증하는 성과라 할 수 있다.
“저희는 수료생의 취업률을 핵심지표로 삼고있지 않아요. 예전부터 ‘공돌이는 취업 걱정 없다’는 말처럼 개발자들의 취업은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회사가 열악하냐 아니냐의 여부가 다른 거죠. 그 과정에서 개발자들의 니즈가 의외로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어요. 현재 회사에 만족하더라도 스스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멘토링을 원하는 수료생이 있는가 하면, 이직을 목표로 스킬업을 원하는 수료생들도 있죠. 확실한 것은 이직을 목표로 멘토링을 받으신 분들은 대부분 성공하셨다는 점입니다.”
수료생들이 늘어나며 기억할 만한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창업 이전 박 대표가 개인과외 수준으로 진행했던 첫 번째 멘토링 수료생이 스킬업을 통해 이직에 성공하고 이제 다시 상위 1%의 멘토로서 에프랩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박 대표 역시 흐뭇한 미소로 첫 제자의 흥미로운 성장 과정을 털어놨다.
“지방대를 졸업하고 국비 학원을 통해 초급 개발자 과정을 거친 분이었어요. 제 첫 멘티였죠(웃음). 멘토링을 거쳐 결국 카카오 개발자로 입사에 성공하셨어요. 멘토링을 진행하면서도 굉장히 열심히 했고, 실력이 빨리 늘어 잘 되겠다 싶었는데 어느 날 정말 고급 개발자가 되어 나타나서는 멘토가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국비 학원을 나와 시작한 개발자의 삶, 스스로 겪은 어려움을 창업으로 풀어
그렇다면 과외 수준으로 시작한 멘토링을 창업으로 연결한 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박 대표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가설 이전에 삶에서 얻은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며 말을 이어갔다.
“저 역시 스무살에 소프트웨어 공학과에 입학해 한동안 허송세월을 보내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국비 학원을 다녀서 개발을 처음 접했죠. 그때는 사실 개발자라고 할 수도 없는 코더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로 외주 일을 하나 둘 하기 시작하면서 제 스스로 ‘나 정도면 실력있는 개발자’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물론 지금 역시 12년 경력의 개발자라고 해도 저보다 훨씬 실력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자만심에 빠져 책도 보지 않고 공부하지 않은 상황이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제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공부를 해서 실력을 쌓으며 네이버 개발자로 입사하게 됐고, 그 과정을 거치며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개발자가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네이버 개발자를 시작으로 박 대표는 이후 하이퍼커넥트 백엔드 엔지니어, 기술 면접관, 테크 블로그 관리자 등을 거치며 남다른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실력을 인정받는 고급 개발자가 됐지만, 그때까지도 ‘중급 개발자를 양성하는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은 그의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그의 선택은 자신이 멘토가 돼 스킬업을 원하는 후배 개발자를 돕는 것이었고, 그런 시도가 창업으로 연결된 것이다.
“처음 개발자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은 TV에 등장하는 멋진 개발자의 모습을 목표로 하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당수의 개발자들이 수시로 파견을 나가고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죠. 그런 환경에 처한 상당수의 개발자들이 성장에 목말라 한다는 점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그러했듯 그들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에프랩 비즈니스 모델의 가설이었어요. 그 가설은 앞서 말씀드린 첫 멘티를 비롯해 여러 멘티를 마주하며 검증을 거쳤죠.”
초기 진입 장벽은 낮은 개발자의 세계, 스킬업은 다른 문제
박 대표는 “초급 개발자는 3개월 정도의 교육 만으로도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진입 장벽이 낮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초급 개발자는 단순 반복 작업을 하는 육체 노동자의 영역이지만 중급 이상의 개발자는 지식 노동자의 영역이라 할 정도로 다른 차원을 대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달의민족’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라고 했을 때 2~3년간 스킬업 없이 물경력만 이어온 사람이라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유저가 몰리는 저녁 식사 시간에 과부하 없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급 개발자 이상의 영역이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초급에서 중급으로 넘어가는 진입 장벽은 처음과 달리 굉장히 높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부분 회사들은 사이트만 구현하는 것에 치중돼 있어 그 다음 단계의 수준 높은 개발을 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은 상황이죠. 개중에 스스로 노력해 실력을 높인 개발자라고 해도 그런 사람들은 초급 개발자들에게 사수가 돼 주기 보다는 더 실력있는 사수가 있는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과 같은 회사로 이직을 해 버리죠. 결국 초급 개발자가 성장하기는 더 어려워 지게 되고요.”
그렇다면 초급 개발자가 중급 이상의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박 대표는 주저 없이 ‘이론’이라고 답했다. 실무에 필요한 실력을 쌓아야 하는데 느닷없이 이론이 중요하다니, 의아함이 앞섰다. 하지만 그 이유는 이어지는 박 대표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실무라고 하는 일에는 너무 많은 노이즈가 껴 있어요. 많은 분들이 실무 경험 아니면 안되고 회사에서 일하며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좋다고 알고 계시는데 오히려 대학생보다 낮은 수준으로 개발하는 회사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또 초급과 중급은 탄탄한 이론이 차이를 가른다면 중급에서 고급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이론을 바탕으로 얼마나 많은 사례에 적용했는지, 경험을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물론 큰 기업 가면 많은 경험을 접할 수 있지만, 이때 이론 지식이 없으며 문제가 되곤 하죠. 개발이 잘 됐으면 왜 잘 됐는지 모르고 안 됐으면 왜 안 됐는지 모르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요. 잘 된 것과 잘못 된 개발에 대해 대해 그 이치를 설명할 수 있어야 비로소 고급 개발자라고 할 수 있죠. 다시 말하자면 탄탄한 기본기에 자유로운 응용이 가능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고급 개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자체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야하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논문을 참고하고 생활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개선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하죠.”
이러한 말 끝에 박 대표는 자신 역시 아직 한 없이 부족하며 끊임없이 공부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과거 네이버 등 내노라 하는 회사에서 최고의 인사평가를 받은 실력있는 개발자였고, 현재는 수많은 멘티들을 육성하는 멘토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 개발자에게 필요한 또 한가지 덕목은 아마 ‘겸손’인 듯했다.
인터뷰 말미 박 대표는 에프랩앤컴퍼니를 통해 “개발자들을 비롯해 각 전문 분야의 계층(커리어) 이동 사다리를 만들고자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에프랩앤컴퍼니는 내년 상반기 프리A 투자 라운드를 준비 중이다. 개발자 영역에서 확인된 에프랩의 프로세스가 다른 업무 영역으로 확장될 경우 그 파급효과는 기대 이상일 듯 하다.
“성장하고 싶지만 방향을 몰라서, 혹은 환경을 타고나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의지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에프랩앤컴퍼니의 첫 번째 목표에요. 두 번째로는 에프랩을 통해 구축된 멘토와 멘티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전체 커리어를 아우를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현재 중급자 멘토링 교육을 넘어 초급, 고급 또 개발자 창업을 지원하는 커리어 매니지먼트 기업이 되는 거죠. 이후에는 PM을 비롯해 디자이너 등 개발자 영역과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영역에도 에프랩의 프로세스를 적용해 커리어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만들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