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등장한 밀리의서재는 오랜 세월 오프라인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의 독서 습관을 플랫폼으로 확장하며 독서 경험의 혁신을 이뤄냈다. 국내 최초 월정액 구독 서비스를 오픈하고 새로운 독서 지표인 ‘완독지수’를 선보이는가 하면 오디오 드라마, 창작 플랫폼 ‘밀리로드’를 론칭하는 등의 시도가 그것이다. 그렇게 8년 남짓한 사이, 밀리의서재는 누적 가입자 780만명(2분기 기준)을 보유한 국내 1위 독서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보유하고 있는 도서 콘텐츠만 해도 18만권(9월 기준), 제휴 출판사는 2100곳 이상이다.
그리고 지금, 밀리의서재는 또 한 번의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2022년 말 챗GPT로 촉발된 생성형 AI 기술이 일으키는 격변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AI를 활용한 콘텐츠를 시도하며 준비를 거친 밀리의서재는 올 4월 ‘AI서비스본부’를 신설하고 자사 플랫폼에 AI 기술 접목을 본격화하고 있다.
첫째로는 ‘AI 스마트 키워드’가 있다. 책 소개, 줄거리, 출판사 서평과 독자들의 리뷰를 바탕으로 키워드를 추출해 독자의 책 선택을 돕는 기능이다. 본부 출범 이후 시작돼 연내 밀리의서재가 제공하는 모든 콘텐츠에 탑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6월 AI 스타트업 마인드로직과 협업해 ‘모녀의 세계’ 저자 김지윤 작가를 시작으로 선보인 ‘페르소나 챗봇’ 역시 업계 최초의 시도로 주목 받았다. 이어 7월에 선보인 ‘AI TTS(Text to Speech)’ 기능은 실제 사람의 억양, 발음, 미세한 호흡까지 학습한 고품질 AI 음성 합성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독서 연결성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AI서비스본부를 중심으로 한 밀리의서재의 혁신은 서비스에만 그치지 않는다. 구성원을 대상으로 AI 툴의 경험을 늘리고, 개별 조직은 물론 회사 전체의 생산성을 강화하는 AX(AI 전환)을 추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밀리의서재가 준비하는 2025년은 더욱 흥미로운 서비스와 변화가 예상된다.
이에 테크42는 AI 격변이라는 파고에 맞서 정체성을 지켜가며 조용한 혁신을 시도하고 있는 밀리의서재가 나아갈 방향과 전략을 방은혜 AI 서비스본부장을 만나 직접 들어봤다.
AI서비스본부 신설은 밀리만의 철학에 AI를 접목하는 시도
“밀리의서재의 AI서비스본부 신설은 밀리만의 철학을 AI와 접목하기 위한 결정이예요. 기술적 접근 보다는 저희 플랫폼 본연의 목적을 더욱 충실하게 실현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중이죠. 커머스 플랫폼이 제품을 얼마나 저렴하고 빠르게 배송하느냐를 기준을 세우고 있는 것처럼, 밀리의서재는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더 잘 책을 고르고 읽고 리뷰하게 하느냐를 중요한 기준으로 보고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AI서비스본부는 고객의 독서 경험을 혁신해 온 밀리의서재의 철학을 기본으로 삼고 AI를 통해 더 좋은 독서 경험을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조직이죠.”
밀리의서재 본사에서 만난 방은혜 AI서비스본부장은 밀리의서재가 지키고 키워온 철학을 언급하며 말문을 열었다.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싸이월드 미니홈피 프로덕트 매니저로 서비스 기획을 시작한 방 본부장은 유통 분야 서비스 기획을 거쳐 지난 2019년 밀리의서재에 합류했다. 이후 줄곧 밀리의서재 서비스 기획을 총괄해 온 그녀가 AI서비스본부 출범과 함께 이를 총괄하는 본부장을 맡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언뜻 ‘플랫폼에 기반한 고객들의 독서 경험 혁신’에 집중해 온 밀리의서재의 정체성은 고수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새로운 혁신을 시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이는 방 본부장의 이어지는 말로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제가 밀리의서재에 처음 합류했을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플랫폼 다움’이었어요. 그 전까지 밀리의서재는 기존 인터넷 서점과 유사한 문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간의 제 경험을 살려 플랫폼만의 화법으로 구독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저는 밀리의서재의 경쟁자는 동종 업계라기 보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 혹은 유튜브라고 생각해요. 고객의 생애 주기를 따라가는 서비스이기 때문이죠. 일상적 관심사나 취향이 책의 검색이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저희가 지키려고 하는 아이덴티티는 그런 일상적인 경험들을 좀 더 잘 만들어주는 거예요.”
돌이켜보면 밀리의서재는 그간 그들만이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시도들을 이어왔다. 일반적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와 별개로 플랫폼에서만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에 기반해 ‘밀리랭킹’이라는 인사이트를 제공해 왔고, ‘완독지수’를 적용해 구독자들의 관심사가 어떻게 실제 독서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방 본부장이 이야기하는 ‘밀리의서재만의 철학’을 구축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작지만 실행력 있는, 유연한 조직이 만들어 내고 있는 변화는?
방 본부장이 강조하는 ‘AI서비스본부’의 또 한 가지 지향점은 작지만 빠른 실행을 할 수 있는 조직, 이제까지처럼 유연함을 갖춘 조직이다. 그렇게 조직을 신설한 후 6개월여, 방 본부장은 “생성형 AI를 서비스에 도입해보자는 나름의 시도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AI TTS’를 사례로 꼽았다.
“밀리의서재는 이전부터 새로운 콘텐츠 타입이나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왔어요. 빠르게 기획하고 구독자에게 선보이고 반응을 체크한 후 냉정하게 지속 여부를 판단했죠. AI의 경우도 단순히 지금 유행하고 있어 적용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독서 경험에 잘 녹아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그 고민의 결과물 중 하나가 ‘AI TTS’라고 생각해요. 귀가 편안한 독서를 지향하면서도 실제 구독자들이 AI를 체험하게 하며 성능이나 기술이 더 좋아졌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했거든요.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면서 저희만의 화법으로 녹아들게 하는 부분들이 주효한 셈이죠.”
조직 신설 초기부터 진행해 온 ‘AI 스마트 키워드’ 역시 연내 밀리의서재가 제공하는 모든 콘텐츠에 탑재하는 목표가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현재는 90% 정도까지 적용돼 있는 상황이다. 방 본부장은 이를 “작가나 책 서평, 제목과 같은 도서의 메타 정보에 더해 실제 책을 먼저 읽은 구독자가 남겨 준 한 줄 리뷰를 AI가 모아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맥락있게 설명해 주는 기능”이라며 이와 연결된 ‘페르소나 챗봇’의 특징을 연이어 설명했다.
“’AI 스마트 키워드’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기능이라면 ‘페르소나 챗봇’은 작가에 대한 내용이나 책 속 내용을 AI가 학습해 페르소나화 한 챗봇과 독자들이 직접 대화할 수 있게 한 서비스예요. ‘책을 잘 읽게 하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죠. 보통 책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검색을 하기도 하고 그냥 모른 채 넘어가기도 하는데, ‘페르소나 챗봇’은 실제 작가나 책 속 주인공과 대화를 하며 주인공의 생각이나, 작가의 의도 등 독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좀 더 알 수 있게 하고 있어요. 깊이 있는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시도인 거죠.”
사려 깊게 고민한 서비스의 결과는 흥미로운 독자들의 반응으로 돌아오고 있다. ‘페르소나 챗봇’의 경우 이를 경험한 구독자들의 만족도와 재이용률이 유의미하게 나타나고 있다. ‘AI TTS’는 그보다 더 즉각적인 구독자 반응을 확인 중이라고 한다. 특히 반응이 좋은 것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독서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한 ‘스위치 오버’ 기능이다. 이용자들은 밀리의서재 화면을 통해 전자책을 읽다가 이동 중에는 ‘AI TTS’를 이용해 책을 듣고, 다시 읽을 수 있는 지점이 됐을 때 듣기가 끝난 그 지점부터 책을 연결해 읽는 수 있는 경험에 반응하고 있다. 방 본부장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각 서비스의 사용량이나 만족도가 저희 예상 이상으로 높아 향후 어떤 방향성을 가져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AI TTS’는 사람의 음성을 최대한 비슷하게 구사해 자연스럽고 귀가 편안한 책 듣기를 제공하니, 청각적으로 느끼는 AI 기술에 대한 반응이 다양한 피드백들로 돌아와 저희 내부에서도 고무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죠. 특히 ‘AI TTS’는 저희가 지향하는 ‘끊김이 없는 독서’라는 방향성을 현실화시킨 시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서비스를 넘어 조직 내 AX 시도, ‘미래의 독서’를 열어가는 기술 접목 이어갈 것
밀리의서재가 시도하고 있는 AI 기술 접목은 단지 서비스에 국한돼 있지 않다. 방 본부장은 밀리의서재가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방향의 ‘AX’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비스 측면에서 AI 기술을 적용했으니 AI 사용자 경험이 강화될 거라는 단순한 접근은 지양하고 있어요. 그래서 진행하는 또 다른 시도가 내부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AI 접점을 늘려가는 거예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내부 직원들도 AI 기술에 동기화되고 그 장점과 단점을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현재는 내부망을 구축해 11월부터 전 직원이 챗GPT나 클로드와 같은 생성형 AI를 쓸 수 있는 환경,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 외에 사업 간담회나 밀착형 PoC(개념검증) 등을 통해 AI를 통한 효율화와 생산성 강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밀리의서재의 AX 시도는 남은 올해는 물론 내년에 더욱 빛을 발할 듯하다. 인터뷰 말미, 향후 밀리의서재의 전략을 묻는 질문에 방 본부장은 “내년 1분기 정도에 새로운 신규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며 “이제까지 AI 서비스가 잘 고르고, 읽고 리뷰하게 돕는, 분절화된 형태로 진행됐다면 향후에는 종합적으로 새로운 독서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준비 중”이라고 귀뜸했다.
“당장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시장의 흐름과 상황을 보며 미래의 독서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 왔어요. 지금은 저희만의 답을 어느 정도 찾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다만 어떤 경우에라도 독서 경험 자체에 충실한 서비스라는 점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 기원전 쐐기문자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자와 책을 읽는 행위 자체는 디바이스의 변화만 있을 뿐 똑같이 이어져왔으니까요. AI 기술은 그러한 독서의 경험을 또 한 번 혁신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죠. 향후에는 읽는 독서, 듣는 독서를 넘어 대화형 독서가 새로운 책 읽기 방식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AI 에이전트에 대한 부분도 열어놓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