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스에서 벚꽃의 개화 시기가 2주가량 당겨졌다는 사실은 많은 함의를 갖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그로 인한 기후 변화의 심각성은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말이다. 올여름에는 남미 연안의 해수 온난화가 심해지는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예년과 다른 폭염과 폭우가 예고되고 있다. 기후 변화는 이미 우리나라의 사과 재배지도 바꿔놨다. 중부지방에서는 한여름 고온으로 사과가 익어버린다고 한다. 많은 농민들이 재배를 포기하거나 강원도로 이주하는 상황이 몇 년 전부터 이어지며 이제는 양구 펀치볼 사과가 나올 정도다.
이렇듯 기후위기시계가 당겨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기후 변화의 주범인 지구 온난화를 막고 에너지 자원 고갈에 대응하기 위해 바이오 연료와 같은 대체 에너지에 주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속가능항공유(SAF, Sustainable Aviation Fuel), 바이오디젤이다. 보통은 기존 연료와 혼합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2015년 7월부터 신재생에너지 연료혼합의무제도를 시행하는 우리나라는 자동차 수송용 연료(경유)에 바이오디젤 3%를 혼합해 공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법개정을 거쳐 지난해 1월부터 바이오디젤 혼합 비율은 3년 단위로 0.5%씩 단계적으로 늘려, 오는 2030년 5%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항공 분야의 SAF 활용은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미 전 세계 45개 이상의 항공사가 SAF를 활용한 비행 시험하고 있다. EU는 오는 2025년부터 모든 항공기에 SAF를 혼합한 연료 적용을 의무화했고, 이 시기에 맞춰 유럽 항공기 제작사인 에어버스는 SAF 3000만리터 규모의 상업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역시 ‘SAF 그랜드 챌린지’를 바탕으로 SAF 생산 확대 목표를 제시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폐식용유 출처 인증 및 재활용 솔루션 개발 기업을 표방하며 창업한 스타트업, 리피드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앤틀러 코리아 1기 배치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리피드는 6개월의 프로그램이 다 끝나기도 전에 비즈니스 모델을 확정하고, 지난 12월 베트남 현지에 외국투자 법인을 설립하며 빠른 사업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계획은 베트남을 교두보로 삼아 여러 동남아 국가에서 버려지거나 불법적으로 재사용되고 있는 폐식용유를 수거하고 출처를 인증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정제를 통한 SAF, 바이오디젤 등의 직접 생산도 계획하고 있다. 그렇다. SAF, 바이오디젤의 원료가 다름 아닌 폐식용유인 것이다. 차세대 아람코’를 꿈꾼다는 리피드의 비전을 잠시 한국에 방문한 이충호 대표를 만나 들어봤다.
운명처럼 의기투합한 공동창업자들
리피드의 공동창업자인 이충호 대표와 전준봉 CTO, 유정환 COO는 지난해 12월 베트남으로 떠난 후 현지에서 함께 생활하며 리피드의 초기 목표인 폐식용유 수거 프로세스 자동화 및 출처 인증 솔루션 구축을 위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유럽을 비롯한 한국 등 주요국의 바이오 에너지 적용 의무화가 확대되는 오는 2025년까지 유의미한 폐식용유 물량 확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 아이디어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리피드 팀의 지난 스토리를 먼저 알아야 했다. 이충호 대표는 연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2012년 석유화학 기업인 삼성토탈(현 한화토탈)에 입사하며 에너지 분야의 커리어를 쌓았다. 이후 2020년 하버드 캐네디정책대학원에서 에너지 정책을 공부하며 전문성을 강화했다.
“석유화학 에너지 분야에서 일을 할 때부터 친환경 에너지, 저탄소, 무탄소 에너지와 관련된 이슈가 화두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이오 에너지에 관심을 갖게 됐죠. 바이오 에너지를 만드는데 폐식용유를 활용한다는 것은 이미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고요. 하지만 최근까지 마땅한 솔루션은 없었고,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사업화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앤틀러 코리아의 배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고, 사업화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었던 거죠.”
한양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전준봉 CTO는 이 대표와 같은 한화토탈 출신으로 에너지 관리와 위험 물질 산업 엔지니어 면허를 보유한 전문가다. 이 대표의 설득 끝에 앤틀러 프로그램에 동반 참여한 케이스다. 개별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유정환 COO는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아산나눔재단에서 미디어 플랫폼 기획, 창업 관련 연구 논문 게재 등을 담당한 마케팅 전문가로 두 사람의 사업 계획에 관심을 갖고 합류했다. 이들 리피드 팀은 앤틀러 프로그램 2주 만에 의기투합해 사업을 실행에 옮겼다.
베트남에서 시작한 차세대 ‘아람코’의 꿈, 폐식용유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그렇다면 왜 베트남일까? 그 질문의 답은 이 대표가 지난 2016년부터 1년간 경험한 말레이시아 주재원 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이 대표는 말레이시아에서 머무르며 동남아 시장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과시하고 있는 베트남에 주목했다고 한다.
“베트남을 두고 아이폰을 쓰는 1990년대 한국이라고 표현해요. 실제로 방문을 해 보신 분들은 어떤 느낌인지 잘 아실 거예요. 최근 베트남의 인구는 1억을 돌파했죠. 한국과 탄소배출권을 교류할 수 있는 우선 협력국가로 선정 되기도 했고요. 물론 동남아에서 제대로 탄소배출권 시장이 형성된 국가는 싱가포르 외에 아직 전무하지만, 베트남에서도 탄소 크레딧을 쉐어링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있고,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죠. 개인적으로는 대학원 시절 캐네디스쿨에 방문한 팜민찐 베트남 총리가 ‘베트남은 기후 테크에 열려 있으니 스타트업이 온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한 말에 영향을 받기도 했고요.”
그런 리피드가 베트남에서 집중하는 것은 폐식용유 확보다. 프렌차이즈 업체에서 나오는 것은 물론, 중대형 식당, 길거리 노점을 가리지 않고 확보할 수 있는 폐식용유는 모조리 수거하고 있다. 현지 물류 회사와 계약을 통해 진행되고 있지만, 급할 때는 이들 세 공동창업자가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수거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현재 베트남에서 발생하는 폐식용유는 36만톤으로 한국의 2배에 달한다. 그런데 이중 13만톤이 불법 재사용되는 것이 문제다. 주로 대형 프렌차이즈에서 사용한 식용유가 재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앞서 10월 현지 답사를 통해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리피드는 현지 업체와 수거 계약을 맺는 등 물량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업체 입장에서는 최근 강화되는 ESG 추세에 맞출 수 있으니 손해볼 것이 없다. 다만 이 대표는 “폐식용유의 불법 재사용량이 많다고 베트남 사람들이 환경 보호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하며 에피소드를 털어 놨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네 포장마차와 같은 소형 점포인데, 하루에 나오는 기름이 5~10리터 정도예요. 처음에는 기름을 사용하고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그냥 버린다더군요. 여기까지는 예상한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주인에게 그냥 버리면 환경이 오염되니 버리지 말고 우리에게 주면 환경을 위해서 쓰겠다고 했죠. 절대 귀찮게 하지 않고 문 닫는 시간에 와서 폐식용유만 가져가겠다고 해도 싫다는 거예요. 설득을 하면서 얘기를 들어보니 이유가 있더군요. 주인은 이런 폐식용유를 가져가서 되파는 것을 알고 있다며 너희에게 주면 되팔 위험성이 있으니 그냥 버리는 것이 낫다는 거였어요. 신뢰의 문제였죠.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환경 보호 개념이 없어서 버린다고 생각했는데, 나름의 원칙이 있으셨던 거였어요.”
그렇다면 또 드는 의문, 이들은 왜 이렇게 폐식용유의 ‘수거’에만 집착을 할까? 심지어 리피드는 호치민 시 외각의 빈즈엉 지역에 최대 30톤 정도의 폐식용유를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마련해 수거한 폐식용유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얘기를 들어보니 수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모은 폐식용유는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기업들에게 공급되고 있다. 즉 무작정 모으는 것이 아니라 폐식용유 정제 시스템을 갖춘 회사들을 대상으로 판로를 열었다는 말이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 쪽 기업 납품도 협의 중이다. 리피드는 향후 자체적인 정제 시스템을 갖춰 수익화 루트를 다양화할 계획이다.
“초기에 법인을 설립하고 폐식용유 수거를 위해 물류 업체와 계약을 하고, 창고를 마련하는데 들어간 비용을 치면 아직은 마이너스지만 본격적으로 매출이 발생하고 있어요. 올해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수거 프로세스 자동화하고, 유의미한 물량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죠. 업계에서는 이걸 ‘파이프라인을 형성했다’고 하는데요. 파이프라인이 형성되면 그 다음부터는 정제를 통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죠. 1단계로 바이오디젤 정제, 그 다음 단계로는 바이오 플라스틱의 원재료인 바이오 납사(naphtha)까지 정제하는 것이 전략적인 목표예요.”
올해 목표는 폐식용유 추적 자동화
정리하자면 리피드의 비즈니스는 폐식용유 수거·물량 확보를 고도화하는 것과 바이오 에너지 정제 기업에 납품, 더 나아가 직접 생산을 위한 기술 개발이라는 두 축으로 나눠 추진되고 있다. 특히 올해 목표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부정확하게 이뤄지고 있는 폐식용유 수거를 자동화하는 것이다. 초기 리피드는 앱을 개발해 업주들이 폐식용유 물량을 입력하면 수거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하지만 문제는 업주들이 굳이 앱에 배출하는 폐식용유를 기록하는 수고로움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저울이다.
“IoT 저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개발은 끝냈고 현재 각 프렌차이즈, 식당을 비롯해 베트남에 진출한 GS25 편의점(220여 점포)과 협력해 설치를 진행하는 중이죠. 쉽게 설명을 드리면 각 업주들은 저울에 설치된 통에 폐식용유를 붓기만 하면 돼요. 센서로 자동으로 측정된 폐식용유 양은 데이터화 돼 확인할 수 있어요. 어느 정도 물량이 찬 것을 확인하면 그때 수거를 하게 되는 거죠.”
리피드의 폐식용유 수거와 추적 프로세스는 한국 환경부에서 운영하는 폐기물적법처리시스템인 ‘올바로’를 벤치마킹해 구축되고 있다. 폐식용유가 발생하는 단계에서 배출 데이터를 모으고 이동 경로를 추적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모두 자동화하는 것이다. “자체적인 추적 시스템 개발까지는 끝냈다”는 이 대표는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으로서 큰 물줄기를 바꾸긴 어렵겠지만, 꾸준히 시도하다 보면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베트남이 시장을 개방하고 있어도 여전히 공산국가라는 점에서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을 거라고 보는 분들이 종종 있지만, 반대로 그런 약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한번 결정되면 이후 적용은 일사천리로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리피드의 폐식용유 추적 시스템은 블록체인 방식으로 기록돼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향후에는 EU의 ISCC 인증(EU의 재생에너지지침(Renewable Energy Directives)에 부합하는 지속가능성 및 저탄소 제품에 대한 국제인증제도)에 버금가는 글로벌 인증제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그 외에도 리피드는 폐식용유의 품질을 측정하는 일명 ‘튀김기 센서’도 개발하고 있다. 단순히 폐식용유의 양을 측정하고 수거와 추적을 자동화하는 것을 넘어 사전에 제품의 스펙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더욱 기대를 모으는 것은 베트남에서 이러한 계획들이 완성된 이후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동남아 시장은 베트남 외에도 이러한 폐식용유 수거·추적·정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나라가 대부분이다. 인구 2.5억명의 인도네시아, 1억을 넘긴 필리핀이 대표적이다. 베트남에 인접한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리피드의 우선 고려 대상이다. 이러한 여러 계획들과 함께 리피드는 올해 월 1000톤의 폐식용유 수거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저희 팀의 강점은 지치지 않는 도전 정신입니다. 문제가 있는 곳이면 지구 어디라도 달려가서 폐식용유의 수거, 정제, 판매까지 모든 것을 집착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문득 지난 1월 앤틀러 코리아 데모데이에서 이충호 대표가 한 말 떠올랐다.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코는 땅에서 원유를 뽑아내지만, 리피드는 동남아시아 전체에서 폐식용유를 수거하려 하고 있다. 원유는 한계가 있는 자원이지만 폐식용유는 기름을 사용하는 요리가 없어지지 않는 한, 지속 확보가 가능하다. 리피드가 폐식용유 확보 네트워크 구축과 자동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새삼 와닿았다. ‘차세대 아람코’를 꿈꾼다는 이들의 비전은 예상보다 빨리 이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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