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 “AI 비전 기술로 난임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 뒤로 하고 미국서 MBA, 다시 의료 기업 사이앱스 APAC 비즈니스 개발 담당 경험
AI 학습을 통해 임신이 된 배아 판단, 기존 50% 수준의 정확도 60~70%까지 끌어 올릴 수 있어
인공수정, 시험관… 복잡하고 힘겨운 난임 시술의 페인포인트, 데이터와 과학으로 풀어 낼 것
임신과 출산을 계획한다고 하는 부부라고 해도 7쌍 중 1쌍이 겪을 정도로 난임은 일반화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우리나라 난임 인구는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세를 띄고 있다. 최근에는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이 많아지며 난임 인구 비중이 아기를 낳는 출산 인구를 뛰어 넘을 정도다. 또 임신과 출산을 계획한다고 하는 부부라고 해도 7쌍 중 1쌍이 난임을 겪을 정도로 일반화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렇듯 난임 문제에 직면한 부부들이 택하는 것이 바로 인공수정, 시험관 등으로 불리는 ‘난임 시술’이다. 하지만 난임 시술을 한다고 해도 인공수정은 대략 12%~18%, 시험관은 20~30% 정도의 성공률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성공 확률은 35세를 기준으로 여성이 고령일수록 급격하게 낮아진다.

일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한 번 시술에 적잖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 난임 시술에 들어간다고 해도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불편함과 고통스러움은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난임 시술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률이 높아지면 시술 회수에 따른 여성의 스트레스도 현격히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인공지능(AI) 난임 솔루션 개발을 통해 수정이 된 배아를 찾고 임신 성공률을 높이는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스타트업이 등장해 주목을 끌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 출신의 이혜준 대표가 이끄는 ‘카이헬스’는 지난 2021년 10월 창업 이후 그해 12월 디캠프-서울의대 창업경진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 NIA(한국정보화진흥원) 인공지능 태아/배아 데이터셋 구축 사업 선정, 8월 팁스 선정 등의 성과를 연이어 달성하며 단숨에 유망 헬스케어 스타트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카이헬스의 기술력은 미국과 유럽의 난임학회 발표를 비롯해 최근 싱가포르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IMDA)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교두보까지 마련한 상황이다.

난임치료의 문제를 고민하던 산부인과 의사가 창업을 선택한 이유

산부인과 의사 출신의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는 “진료실에서 난임 문제를 풀어가는 것 역시 의미가 있지만, 시스템적인 변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창업의 이유를 털어놨다. (사진=테크42)

이혜준 대표는 서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산부인과 불임생식내분비 전문의로 오랜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진료를 통한 난임 문제 해결의 한계성을 느끼며 지난 2014년을 끝으로 의사 업무를 내려놨다. 그 대신 그녀가 택한 길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 켈로그(Kellogg) 경영스쿨의 MBA 과정을 밟는 것이었다. 이후 그녀는 미국 헬스케어 기업인 ‘Change Healthcare’에서 전략·인공지능 팀을 거쳐 사이앱스 아시아태평양(APAC) 이사를 역임하며 비즈니스 경험을 쌓았다. 그런 그녀가 카이헬스를 창업한 것은 지난 2021년의 일이다. 서울 역삼동 테헤란로에 위치한 오렌지 플래닛에서 만난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는 “진료실에서 난임 문제를 풀어가는 것 역시 의미가 있지만, 시스템적인 변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창업의 이유를 털어놨다.

“의사 일을 접고 MBA 수료 후 글로벌 기업 한국 지사에서 영업·마케팅과 고객 관리를 하다 보니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죠. 아버지를 비롯해 동생, 남편, 시아버님 역시 사업가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고요. 구체적인 사업 아이템은 퇴사를 한 후에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의사로 일할 당시 진료를 하면서 느꼈던 답답함이 떠올랐어요. 난임은 여전히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많아요. 실패했다고 해서 꼭 무엇이 원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그런 한계를 데이터와 과학으로 뛰어 넘는다면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대표는 “자녀를 가지려는 부부가 줄어들고 있지만, 난임 문제를 겪는 부부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아이를 낳는 산모의 연령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며 난자의 질이 저하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이헬스가 집중한 것이 좋은 배아를 고르는 AI 솔루션의 개발이었다.

시험관 시술 성공률 높이는 배아, AI가 선별한다

시험관 시술은 인공수정보다 성공률은 높지만, 여성의 몸에 무리가 적지 않고 횟수도 제한돼 있어 난임 부부에게는 마지막 기회라고도 할 수 있다. (사진=카이헬스 홈페이지)
카이헬스가 연구하고 있는 배아 이미지<span data-cke-bookmark="1" style="display: none;"> </span><br>
배아 이미지, 카이헬스는 AI 비전 기술을 활용해 임신이 된 배아의 이미지를 인공지능이 학습하고, 선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미지=카이헬스)

난임 시술 중에서도 시험관 시술은 인공수정에 실패한 부부들이 선택하는 과정이다. 부부에게서 각각 난자와 정자를 채취한 뒤 체외에서 수정시켜 2~6일간 배양 후 배아를 자궁 내에 이식해 주는 방식이다. 인공수정보다 성공률은 높지만, 여성의 몸에 무리가 적지 않고 횟수도 제한돼 있어 난임 부부에게는 마지막 기회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카이헬스의 AI 솔루션은 그간 연구원의 경험에 의해 이뤄졌던 배아 선별 작업의 정확도를 높이며 주목받고 있다. 이를 통해 병원에서는 임신 성공률을 높일 수 있고, 난임 부부는 시술에 따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그간 난임 시술 과정은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배아 선별 역시도 연구원들이 눈으로 보고 경험에 의존해 주관적인 판단을 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죠. 그런 한계를 카이헬스 AI 솔루션은 ‘인공지능 비전’ 기술을 이용해 해결하고 있어요. AI에게 임신이 된 배아와 되지 않은 배아의 이미지를 학습시킨 거죠. 이 알고리즘을 활용하면 현재 37% 정도로 나타나는 연구원들이 좋은 배아를 선별하는 확률을 10% 정도 더 끌어 올릴 수 있어요. 인공지능 자체의 정확도만 보면 65%까지 가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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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공식 론칭한 카이헬스의 AI 솔루션은 현재 4개의 병원과 MOU(업무협약)을 맺고 실증을 진행 중이다. (왼쪽부터) 카이헬스 이혜준 대표, 디온여성의원 장기훈 원장, 박경의 원장(사진=카이헬스)

이렇듯 좋은 배아를 선별하는 것 외에도 카이헬스는 좋은 배아를 만드는 영역을 비롯해 좋은 배아를 키우는 영역까지 관심을 두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우선 배아 선별에 집중한 것은 가장 직접적으로 임신 성공률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올해 2월 공식 론칭한 이 솔루션은 현재 4개의 병원과 MOU(업무협약)을 맺고 실증을 진행 중이다. 이와 동시에 분당서울대병원 등과 임상 시험 추진, 의료기기 인증도 진행 중이다. 그간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들을 술술 설명하는 이 대표지만 첫 창업인 만큼 고충도 적지 않았다. “지난 1년 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며 그녀가 언급한 단어는 ‘불안감’이었다.

“과연 사람들에게 이 솔루션이 필요할까,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한 문제일까를 제일 고민했어요. 저는 나름 낙천적인 성격이고 그 전까지는 미래를 걱정하거나 잘 안 될까봐 두려워하는 성향은 아니었거든요(웃음). 물론 창업이 쉽진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불안할 줄은 몰랐죠. 그래도 디캠프-서울의대 창업경진대회 우승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컸던 과정이었죠.”

데이터의 다양성 확보, 임신과 출산의 전 분야를 서포트하는 플랫폼 될 것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한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는 장차 가족 전체를 서포트하는 솔루션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진=테크42)

이제 창업한지 1년 반, 초기 스타트업으로서 카이헬스가 이뤄낸 성과는 놀랍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 대표가 지향하는 카이헬스의 비전은 ‘건강한 가족을 만들기 위한 헬스케어 플랫폼’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좋은 배아를 선별하는 기술에 이어 좋은 배아를 만들고 키우는 전 과정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향후에는 더 나아가 난임 시술에 적용되는 기술을 비롯해 식이조절, 운동과 심리상태, 스트레스 관리 등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는데 필요한 여러 요소들을 데이터 기반으로 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복안이다.  

“확장 가능성은 여러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난임 문제와 관련해서는 난자나 정자 동결 기술로도 확장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국에 위치한 병원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제공할 수 있고요. 현재는 B2B(병원 대상 비즈니스)에 집중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B2C(일반 고객 대상 비즈니스)로 확장할 수도 있겠죠. ‘건강한 가족’을 중심에 둔 플랫폼이 되리라는 것은 변함없어요. 그 가치 하에 제일 절실한 문제가 저출산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장은 난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빠르기 때문에 진행하고 있는 거예요.”

또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난임 문제와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저출산 문제는 국경이 따로 없다는 점이다. 이는 비즈니스 확장성 측면에서도 유리한 상황이다. 이미 카이헬스는 지난 5월 디캠프와 싱가포르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IMDA) 등이 싱가포르 픽셀(PIXEL)에서 개최한 스타트업 데모데이에서 IMDA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카이헬스의 글로벌 진출 계획과 함께 향후 나아갈 발향을 밝히며 포부를 다졌다.

“향후에는 싱가포르 정부기관과 연계한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어요. 이를테면 싱가폴 현지 병원과 함께하는 PoC(기술검증) 같은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죠. ‘카이’는 하와이 말로 바다를 의미해요. 데이터의 바다에서 다양한 인사이트를 찾고, 가족 전체를 서포트하는 솔루션을 만드는 기업으로 카이헬스를 키우고 싶어요. 이는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딸을 키우는 부모로서 제가 이뤄 나가고 싶은 바람이기도 해요.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가족은 소중하고, 누군가를 케어하고 싶은 마음은 어느 사람에게나 있으니까요.”

황정호 기자

jhh@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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