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번 이사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한다. 내 옷장에 이렇게 안 입는 옷들이 많았는지를… 버리기는 아쉽고, 그렇다고 입기에는 좀 그런 옷들이 있다. 대개 이런 옷들은 수년에 걸쳐 고인물처럼 옷장에 쌓여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답 안 나오는 옷장 정리는 물론, 처지곤란인 ‘입지 않은 옷’들을 알아서 처분해 리워드까지 준다면 어떨까? 열다컴퍼니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페인포인트의 해법을 찾는데서 시작됐다.
서울창업허브에서 만난 임찬솔 열다컴퍼니 대표는 “다른 판매대행 서비스, 중고 마켓플레이스 서비스들과 다른 점은 오프라인 요소”라며 “옷장 정리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많은 분들이 옷장을 정리할 때 비로소 얼마나 많은 옷이 있는지, 또 비슷한 옷들이 얼마나 되고 그 중에 안 입는 옷들이 어느 정도인지를 인지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동시에 안 입는 옷들을 처분해야겠다고 결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이 수요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순환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 가치 확산, 중고의류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져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생활폐기물로 버려지는 섬유류는 연간 37만톤(2020년 기준)에 달한다. 그중 의류 페기물은 8만2000톤 가량이다. 이렇게 버려지는 의류 외에도 여전히 수많은 가정의 옷장 속에는 어찌할 바를 찾지 못해 방치되는, 혹은 언젠가는 버려질 예정인 의류들이 적지 않다. 더구나 합성섬유로 만들어 진 의류의 경우 생분해되기까지는 약 200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러한 환경 문제를 인식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며 중고 의류를 구매하거나 고쳐서 다시 사용하는 재활용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젠지(Gen-Z) 세대들에게 빈티지 감성의 중고의류는 힙한 느낌을 살릴 수 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기업들도 이러한 소비자의 변화에 반응하고 있다. 패스트패션의 대명사였던 ’자라(ZARA)’가 자사 의류 리셀 플랫폼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고,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 역시 중고 류 거래 플랫폼 ‘셀피’와 협업해 의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추세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SSG닷컴은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와 손잡고 ‘BGZT LAB’라는 리셀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고, 롯데쇼핑은 국내 1세대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를 인수했다. 네이버 역시 지난해 10월 2조원이 넘는 빅딜을 통해 미국 중고거래 플랫폼 ‘포시마크’를 인수했다. 임찬솔 열다컴퍼니 대표는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글로벌 중고 패션 시장은 167조원 규모, 그중 글로벌 중고의류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50조원에서 오는 2025년 95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며 사업 초기부터 체감하는 시장의 특성을 설명했다.
“환경오염 문제에 심각성을 인식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실행 가능한 대처 방안이 중고의류 시장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봐요. 이를 바탕으로 옷장정리 서비스에서 시작해 중고의류 판매를 대행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도출하게 됐죠. 열다컴퍼니의 비즈니스 모델은 많은 사람들이 직면하는 옷장정리의 문제, 그리고 이어지는 중고의류의 직접 판매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이예요.”
임 대표의 말처럼 열다컴퍼니의 서비스는 옷장정리 서비스와 중고의류 판매 대행 서비스를 두 축으로 한다. 옷장정리의 경우 전문 정리 매니저가 직접 고객의 집에 방문해 이뤄지는 서비스다. 그만큼 엄격한 기준을 정해 선발한다. 첫 번째 기준은 정리수납전문가 자격이다. 이를 바탕으로 대면 인성면접과 신원 조회, 서약서 작성 등의 절차를 거친다. 원활한 서비스를 위해서는 이렇듯 전문 인력 확보가 중요하지만, 까다로운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열다컴퍼니는 이를 정리수납전문가 자격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수납정리개발원과 제휴를 통해 해결했다.
서비스 프로세스는 이렇다. 우선 옷장정리가 필요한 고객이 열다컴퍼니에 의뢰를 하면 미리 정리에 필요한 물품이 배송된다. 협의한 일시에 방문한 정리전문가(매니저)는 이 물품을 사용해 옷장을 정리하는데, 의류의 소재나 유형에 따라 정리를 돕고 한편으로 안 입는 옷에 대해서는 판매, 기부, 폐기 등으로 나눠 처분을 돕는다. 이후 고객은 의류 수거 채널을 통해 판매할 의류의 최고가, 최저가 등을 설정하고 판매 대행을 신청하면 된다. 의류 수거는 앞서 옷장정리물품과 함께 열다컴퍼니에서 다시 수거해 간다. 임 대표는 이후 판매 대행으로 연결되는 서비스 과정을 설명했다.
“이미 중고 마켓플레이스에는 중고의류를 판매하고 있는 수많은 파워 셀러들이 계세요. 저희는 이 셀러들의 계정을 통해 고객들이 판매 요청한 중고의류를 처분하죠. 판매가 발생했을 때만 일정 수수료를 수취하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옷장정리 서비스를 통한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죠.”
솔루션 개발 중심 창업 실패로 얻은 교훈
열다컴퍼니는 글로벌 VC인 앤틀러가 처음 한국에 설립한 앤틀러 코리아의 1기 배치 프로그램을 거쳐 지난해 10월 창업했다. 특징적인 것은 임찬솔 대표를 비롯해 공동창업자인 백창욱 CPO 모두 개발에 특화된 이력을 보유했다는 점이다. 생각과 뜻이 통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의외로 팀 결성에 이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열다컴퍼니는 초기 사명과 창업 아이템을 모두 변경하며 지금에 이른 문제적 팀이기도 했다. 지난 과정을 돌이키는 임 대표가 당시의 문제점을 떠올렸다.
“10주 남짓의 기간 동안 팀빌딩과 아이데이션, 피칭까지 모두 진행해야 하는데 팀이 결성된 것은 8주차에 접어들 무렵이었어요. 초기 아이템은 스포츠·취미 동호회 등이 겪는 회계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서비스를 만들자는 것이었죠. 굉장히 미시적인 문제에서 출발했던 비즈니스였고 시장의 큰 흐름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끈끈한 팀웍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해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죠. 피보팅(pivoting, 사업 방향 전환)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그 덕분에 열다 서비스가 도출 될 수 있었어요.”
이렇듯 어려운 상황에서 시행착오에 대처하는 빠른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두 번의 창업을 통해 얻은 임 대표의 경험 덕분이었다.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경제경영을 전공한 임 대표는 필요에 의해 풀스택 개발자 역량까지 갖추며 창업에 올인한 연쇄창업가다. 공동창업자인 백창욱 CPO 역시 앤틀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이전에 이미 핀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한 경험자다. IT 기업 개발자로서 수년의 커리어를 쌓았고, 금융공학 석사로서 디지털 금융 분야의 경험까지 쌓은 백 CPO는 앤틀러 프로그램 참여 직전까지 사업을 진행하며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IT와 금융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핀테크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지난해 3월에 퇴사 후 법인설립까지 하며 실행에 옮겼죠. 처음에는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마음과 같지 않더군요(웃음). 투자 유치도 문제였고, 팀원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갖은 노력을 하다가 팀원을 찾기 위해 앤틀러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을 통해 저 스스로가 완전히 개조되는 경험을 하게 됐죠.”
그런 백 CPO를 처음 봤을 때, 임 대표는 먼저 커피챗까지 신청하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문제가 보였다. 백 CPO가 당시 진행하던 아이템에 너무 깊이 매몰돼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솔루션 개발에 몰두한 초기 창업자의 딜레마’였다. 임 대표는 슬며시 웃음 지으며 당시를 돌이켰다.
“저 역시 앤틀러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함께할 파트너를 찾는 것이 우선 목표였어요. 처음에는 기술적인 역량을 중시했는데, 나중에 깨달은 것은 ‘나랑 말이 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거였죠. 창욱님은 자신의 아이템에 깊게 빠져 있다는 점 외에는 저와 가장 말이 잘 통하는 분이었어요. 하지만 처음 모습은 제가 앞서 창업을 했을 때 거친 실수를 보는 것 같았어요.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잘 알기 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처음에는 팀 제안을 거절했어요(웃음). 그런데 프로그램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 피드백을 하며 빠르게 바뀌더군요. 그걸 보며 ‘이 사람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나중에는 제가 역으로 함께하자고 제안을 하게 됐죠.”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의 프레임을 깬 백 CPO는 그간 고집했던 자신의 사업을 바로 정리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발굴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솔루션에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임 대표는 솔루션에 집착했던 과거 경험을 ‘자기 방어(self-defense)의 결정체’라고 돌이키며 말을 이어갔다.
“과거에 경험을 떠올려 보면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드는데 혈안이 돼 있었어요. 처음에는 외주개발을 맡겨 프로덕트가 제대로 안 만들어지는 것을 경험했고, 그래서 시간을 들여 하나씩 하다 보니 1년 반사이 저 스스로가 풀스택 개발자가 됐죠. 그 기간 동안 저를 좀먹었던 생각은 ‘이 기능만 붙이면 고객들이 쓸 것’이라는 거였어요. 일단 만들어 놓으면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든 생길 거라고 믿었죠. 그럼에도 개발성과가 나쁘지 않아 1억원 정도의 엔젤 투자 제안까지 받았어요. ‘이 아이템을 투자까지 받아가며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있나’를 자문했고, 그때 비로소 그저 거기에 쏟은 시간과 노력 때문에 미련을 못 버리고 밀고 갔던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고객의 니즈에 집중하라
피보팅 과정을 통해 올해 초에 비로소 구색을 갖춘 열다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있어 두 사람이 가장 중심에 두는 가치는 ‘고객의 니즈’가 됐다. 그간 베타 서비스를 통해 옷장정리와 함께 중고의류 판매 니즈가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또 다른 소득이다.
“현재는 저희가 만드는 서비스와 시장의 수요가 최적으로 일치하는 지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제까지는 고객들이 판매를 원하는 중고의류를 마켓플레이스에서 활동하는 파워셀러들과 연결해 판매 전환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수수료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검증하는 과정이었죠. 앞으로는 기존 중고 거래 플랫폼과 차별화하는 오프라인 요소와의 연계성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또 고객의 옷장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한, 즉 옷장의 데이터를 활용한 비즈니스 확장성도 고민하고 있고요. 궁극적으로는 옷을 정리하고 관리하고 처분하는 모든 과정을 디지털 동기화해서 클릭 한번에 이뤄질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고도화시키는 것이 목표죠.”
이어 임 대표는 “앤틀러 프로그램을 통해 배운 것을 적용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크게 바꾸진 않는 선에서 더 나은 솔루션을 제시하라’였다”며 “옷장정리의 니즈와 중고의류 판매의 수요를 연결하고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현재 가장 집중하는 것은 열다 서비스를 애플리케이션화하는 거예요. PMF(Product-Market Fit, 시장 적합도)를 완성하고 프로세스까지 자동화하는 것이 현재 과제라고 할 수 있죠. 이를 통해 올해 내 누적 매출액 1억원, 3년내 연매출 90억원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어요.”
초기 스타트업이니 만큼 프로덕트 개발과 함께 앤틀러 프로그램을 통해 획득한 시드 투자금을 바탕으로 추가 자금 확보를 위한 지원사업, 후속 투자 유치 노력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완성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오는 9월 개최되는 앤틀러 코리아 2기 데모데이에 나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인터뷰 말미, 사명이자 서비스 명인 ‘열다’에 포함된 숨은 뜻을 털어 놓는 임 대표의 표정에서 남다른 각오가 느껴졌다.
“’열다’는 ‘옷장을 열다’라는 저희 서비스 특징을 표현한 단어기도 하지만, 저희가 가진 가능성을 열어가겠다는 의미도 있어요. 1차 목표는 한국, 나아가 전세계 사람들의 옷장에 숨어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는 서비스로 거듭나는 거예요. 나아가 아직 중고의류 분야 스타트업 중에는 없는 최초의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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