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에서 만난 사람] 정상용 픽셀릭 대표 “다섯 번에 걸친 피벗 끝에 B2B SaaS 스타트업을 위한 세일즈CRM 만들었죠”

새해가 됐지만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라고 불리는 시기는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유니콘을 꿈꾸며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에 테크42는 미래 창업가와 사회혁신가를 육성하는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아산나눔재단의 플랫폼, 마루(180/360)에 입주한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는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를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스타트업의 오늘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정상용 픽셀릭 대표는 학부시절부터 창업을 이어온, 이른바 연쇄창업가다. 모바일 커머스, 핀테크, 디자인 협업 솔루션 등을 거친 그가 최근 선보인 것은 B2B SaaS 분야에 적용하는 Sales CRM '릴레잇(Relate)'이다.

정해진 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스타트업 대표 중에는 여러 차례 창업을 하며 자신만의 성공 방정식을 찾아 나가는 이들이 많다. 그러한 이들 중에도 정상용 픽셀릭 대표가 걸어온 길은 유난히 우여곡절이 많았다.

학부시절부터 시도한 창업아이템은 개수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대표적으로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시절인 2010년 무렵 창업한 디자인바이(DEZNE.BY)를 꼽을 수 있다. 클라우드 소싱을 통해 디셔츠 디자인을 제품화하고 판매해 수익을 디자이너, 플랫폼과 나누는 사업이었다. 정 대표의 말에 따르면 ‘티셔츠의 앱스토어’와 같은 모델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창업 스토리는 본격화됐다. 2012년에는 모바일 커머스 앱 ‘엠엔오피 디자인스(MNOP Designs)를 운영하는 버티컬 커머스 스타트업 엠버스(Mverse)를 공동 창업해 투자유치에도 성공하는 경험을 맛봤다. 학부시절부터 갈증을 느껴왔던 개발역량을 키우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IT융합공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이후 대학원을 마친 이 대표는 엠버스를 퇴사하고 공부한 것을 십분 활용해 스타트업을 위한 외주개발사인 크리에이티드(Created)를 창업하기도 했다. 그 사이 비교문학을 전공한 아내의 유학길을 함께하기 위해 미국행을 택하기도 했다. 8년여의 짧지 않은 미국 생활 동안에도 그의 창업 의지는 이어졌다. 2015년 비트코인을 통한 해외송금을 아이템으로 한 센트비(Sentbe)를 공동창업한 것이다. 정 대표는 그렇게 3년간 원격근무 방식으로 센트비에서 공동대표이자 회사 제품팀을 담당하는 역할 수행했다.

“3년의 시간 동안 센트비는 연 이어 라운드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팀 규모도 30명 이상으로 커졌어요. 무엇보다도 센트비는 PMF(Product-Market Fit)을 명확하게 한 상태로 시작했고 그래서 빠른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죠.”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 새로운 아이템에서 시작된 또 다른 창업

픽셀릭의 미국 직원들과 함께한 워크숍.

3년여 간 센트비 공동대표로서 스타트업 성공의 필요조건을 경험한 정 대표는 이후 다시금 독자적인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조직이 커지면서 홀로 미국에서 원격 근무로 업무를 진행하기 어려워 졌기도 했고 효율적인 협업과 팀빌딩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추진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기 때문이다.

“본사는 한국에 있고 저는 미국에 있는 상태로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고민이 생겼어요. 원격근무로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픽셀릭은 창업할 때부터 현재까지 100% 원격근무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부터는 원격근무가 일반화되더군요."

5000만원의 초기비용을 투자해 픽셀릭을 창업한 정 대표의 첫 시도는 한국의 디자이너와 미국의 회사를 연결하는 플랫폼 개발이었다. 하지만 ‘Upple’로 명명된 이 플랫폼 개발은 마켓 자체의 한계가 존재했다.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 강행하는 것은 무리였다. 고민 끝에 픽셀릭 팀은 첫 피벗을 감행한다.

“Upple 개발에서 피벗을 선택한 것은 마켓 자체가 지닌 한계 때문이었어요. 한국 디자이너가 미국에 비해 인건비는 낮지만, 그래픽 디자이너 분야에서는 동남아나 우크라이나 등이 더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죠. 또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언어 장벽이 높았다는 것도 문제였고요.”

픽셀릭의 한국 자회사 픽셀릭 코리아는 아산나눔재단이 스타트업을 위해 운영하는 창업 플랫폼 마루(360/180)에 입주해 있다. (이미지=아산나눔재단)

첫 번째 피벗을 통해 정 대표는 B2B SaaS 분야의 제품 개발에 도전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와 고객사의 협업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이었다. 스케치플로우(Sketchflow)로 명명된 소프트웨어는 300명 정도의 유저를 확보했고 프로덕트 헌트(Product Hunt)와 같은 스타트업 무료 서비스 소개 사이트에서도 6위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문제는 고객이 너무 디테일한 피드백을 주는 탓에 디자이너의 권한이 사라지고, 진행에도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결국 다시 피벗을 선택한 픽셀릭 팀은 이후 네 차례 더 피벗을 감행하며 B2B SaaS 분야의 인사이트를 얻게 된다.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는 정 대표는 “PMF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이었다”고 털어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사업모델 측면에서 B2B SaaS 분야는 제품이 일단 완성되고 나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매출이 발생하면서도, 동시에 제품원가는 ’0’에 수렴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분야죠. 일단 PMF(Product-Market Fit)을 찾기만 하면 안정적으로 성장이 가능한 모델이고요. 다만 그만큼 PMF를 찾는데 오랜 시간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 예전에 창업할 때에는 오히려 B2B SaaS 서비스로 창업할 엄두를 내지는 못했죠.”

다섯 번의 피벗 끝에 나온 여섯 번째 제품 ‘릴레잇(Relate)’

릴레잇은 B2B 스타트업이 체계적으로 고객정보와 영업 프로세스를 관리할 수 있는 CRM 소프트웨어다.

그렇게 B2B SaaS를 고수하며 진행된 피벗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세 번째 피벗 단계까지 디자인 프로세스와 관련된 제품에 집중돼 있던 개발이 네 번째 피벗을 통해 나온 다섯 번째 제품인 하이퍼인박스(Hyperinbox)부터 디자인을 넘어 협업이 진행되는 모든 분야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그 사이 정 대표는 Upple에서 픽셀릭으로 피벗을 하는 과정에서 회사를 ‘픽셀릭’이라는 이름의 미국법인으로 등록했고, 한국에는 자회사 픽셀릭 코리아를 설립했다. 이후 그간의 시행착오를 반영한 다섯 번째 피벗을 통해 여섯 번째 제품인 ‘릴레잇(Relate)’을 선보이게 된다.

“하이퍼인박스에서 릴레잇으로의 피벗은 다시한번 마켓을 Sales CRM으로 좁힌 것이었어요. 저희 제품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발견된 여러가지 문제들 중에, 당장 돈을 낼 정도로 고통스러운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피벗을 결정하게 됐죠.”

클로즈드 베타 단계에서부터 유료 모델로 시작한 릴레잇은 지난해 1년여의 기간 동안 60여곳의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었다.

클로즈드 베타 단계에서부터 유료 모델로 시작한 릴레잇은 지난해 1년여의 기간 동안 60여곳의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릴레잇 첫 고객사의 경우 제품 개발과 동시에 제출한 세 장짜리 세일즈 자료로 실제 결제까지 받을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는 점이다. 20억원의 프리시드 투자 유치, 에어비엔비, 드롭박스, 센드버드 등의 유니콘을 초기 발굴해 투자한 세계적인 명성의 엑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의 배치 팀으로 선정된 것도 모두 지난해 릴레잇으로 달성한 성과다.

“프리시드 투자의 경우 저희 팀이 어떤 식으로 일을 해왔는지를 보고 결정을 해 주신 것 같아요. 여러 차례의 피벗 과정에서 점점 더 나은 성과를 만들어 왔고, 유료 모델로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요. 기존에는 한국 기업 고객이 대부분이었다면, 와이콤비네이터 배치 팀으로 선정 된 이후에는 해외 기업들의 비중이 확연히 늘어나고 있어요. 와이콤비네이터에 합격한 동료 회사들을 대상으로 저희 제품을 소개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죠. 그 중 일부가 향후 유니콘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저희는 양질의 고객과 미리 관계를 맺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니까요.”

지난 경험에서 얻은 자산, 그리고 비전

2019년 Upple 플랫폼 개발로 시작된 픽셀릭의 업력도 어느새 5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그 사이 정 대표는 오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다시 한국으로 돌아 왔고, 다섯 차례의 피벗을 통해 릴레잇이 탄생했다. 그 과정에서 정 대표가 얻은 자산은 무엇일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수차례 창업을 하며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또 새로 창업을 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런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의할 수 있는 아내가 큰 힘이 됐죠. 그 과정에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창업자를 찾을 수 있었어요. 특정 아이템이나 제품만을 생각하고 함께한 것이 아니라,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이으면서도 각자 다른 역량으로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이는 공동창업자를 찾았기 때문에 피벗 과정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쭉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픽셀릭 코리아 한국 팀원들과 함께한 워크숍.

이어 정 대표는 “피벗 과정에서 지속적인 배움이 있었고, 더 나아가 유료화를 고민하며 그에 맞는 수준의 제품으로 개발하고자 했던 노력 덕분”이라며 “많은 분들이 무려 다섯번의 피벗을 어떻게 견뎌왔는가에 대해 신기해 하지만, 애초부터 B2B SaaS는 여러 번의 피벗을 통해 PMF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픽셀릭은 올 상반기 내에 릴레잇의 오픈 베타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60여곳 수준의 기업 고객만을 상대하던 클로즈드 베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되는 셈이다. 이를 위해 정 대표를 비롯해 한국과 미국에 있는 동료들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기능을 보완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목적은 명확한 PMF를 찾는 것이다.

“PMF를 찾으면 모를 수 없다는 얘기가 있어요. 고객이 물밀듯이 밀려와서 감당이 안되는 순간을 경험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현재도 저희는 문의주시는 고객들에게 제품 Access를 드리고 있고, 꾸준히 제품 기능을 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B2B SaaS들이 꽤 오랜기간 동안 제한된 수의 사용자들에게만 access를 제공하면서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을 거치거든요. 올해 저희는 그런 과정을 통해 명확한 PMF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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