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애 스니커즈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월 개최된 글로벌 벤처캐피탈(VC) 엔틀러코리아의 ‘스타트업 제너레이팅 1기 데모데이’ 무대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대규모로 개최된 스타트업 행사인 탓에 수많은 청중들이 모인 자리였다. 대개의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이 그렇지만, 떨리는 긴장감을 억누르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들이 공들여 만든 서비스를 발표하는 그녀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스니커즈 서비스의 소개가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그런 진솔한 대표의 모습도 있었지만, 서비스 그 자체의 참신함 때문이기도 했다. ‘실시간 온디맨드 정보거래 플랫폼’ 혹은 ‘걸어 다니는 실시간 라이브캠’을 표방한 스니커즈 서비스는 디지털화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곳곳에 존재하는, 그러나 활용되지 못하고 이내 휘발돼 버리는 실시간 정보를 활용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
스니커즈가 주목한 실시간 정보란, 획득하기 위해 여전히 발품을 팔거나 수소문해야 하는 정보다. 이를테면 가고 싶은 식당에 얼마나 사람이 붐비는지, 사고 싶은 제품의 현재 매장 가격, 특정 나라 여행지의 현지인들만이 아는 정보들이다. 골프 부킹을 하기 전 궁금한 잔디 상태도 그런 정보가 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정보들은 간단한 온라인 검색, 혹은 해당 분야에 전문 앱을 통해서도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검색을 통해 확인되는 홈페이지, 블로그, SNS의 정보들은 길게는 몇 년 전 혹은 몇 달 전, 수 시간 전의 정보라는 문제가 있다. 주위에서는 간혹 이러한 ‘지난’ 정보에 의지하다가 바뀐 상황에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스니커즈는 이 정보를 가지고 제공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거래의 장을 만들었다. 원하는 실시간 정보를 얼마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면, 제공자들은 정보를 제공하고 소액의 정보 제공료를 받는다. 그 중간에는 스니커즈가 있다. 실시간이라는 장점을 극대화한 단 하나의 정보는 짧지만 강렬하게 이를 원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판매가 된다. 정보의 한계 비용이 제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6개월여 만에 50억 가치 인정받은 스타트업
“간단히 말씀드리면 정보 제공자와 수요자가 서로 질문하고 답변하는 과정을 통해 돈과 정보가 오가는 서비스예요. 기본적으로 정보를 요청하는, 즉 질문하는 사람이 있고 그 질문에 대해 답해주는 사람이 있죠. 스니커즈는 그 가운데에서 원활하게 실시간 정보 거래가 이뤄지도록 돕습니다. ‘실시간 정보의 P2P 거래’라고도 할 수 있죠.”
지난주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졸업하고 첫 둥지였던 앤틀러코리아 창업팀 사무실을 떠나 새롭게 마련한 사무실에서 만난 정은애 대표의 목소리에는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스니커즈 비즈니스의 원천인 실시간 정보에 대한 수요는 얼마나될까. 창업 후 불과 6개월여가 지나는 사이 스니커즈는 실시간 정보와 관련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이디어 하나 만으로 MVP(최소요건제품)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카카오톡채널을 통해 비즈니스 계정을 개설하고 서울 이태원과 제주도를 대상으로 테스트에 들어간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출시 전 3개월 간 이용자 1200명, 정보요청 600건을 돌파했고, 누적 거래액만 1000만원을 기록한 것이다. 다른 마케팅 없이 오직 커뮤니티 사이트 등 입소문에 의한 자연유입만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이러한 성과는 지난해 12월 스니커즈 첫 MVP 버전으로 오픈베타 서비스를 실시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초기 2030세대를 타깃으로 설정했는데 막상 서비스를 시작하니 40대 고객분도 적지 않게 유입되더군요. 다양한 연령층에서 반응을 해 주시는 것을 보며 저희 서비스가 상당히 범용성이 있고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현재는 정보가 오가는 과정에서 수수료 수익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데이터가 쌓이면서 제휴 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확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
이러한 스니커즈 서비스의 가능성은 창업 당시 앤틀러코리아의 인정을 받으며 2억원의 프리시드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지난 1월 데모데이 이후 커진 VC업계의 관심 덕분에 이달까지 진행된 시드라운드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기업가치는 단숨에 50억원 규모로 뛰어올랐다. 이 모든 것이 6개월여만의 일이다.
세계여행에서 깨달은 시간의 가치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정 대표는 닐슨코리아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소비자 행동심리학’에 대한 흥미로 선택한 직장에서 그녀는 삼성, LG, CJ의 마케팅 프로젝트와 소비자 컨설팅을 진행하며 경험을 쌓았다. 당시를 돌이킨 그녀는 “다양한 국가의 소비자 데이터와 시장을 보고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성과도 적지 않았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꿈꿨던 세계여행에 대한 미련이 내내 마음을 흔들었다.
“대학 시절 2개월 간 인도여행을 한 이후로 여행은 제게 답을 찾는 과정이었어요. 4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현실에서 오는 의문과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누를 수 없는 수준이 됐죠. ‘이정도면 여행을 다녀와서도 먹고 살 직장을 구할 경력은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떠났어요. 그게 3년 가까이 될 줄은 저도 몰랐죠(웃음).”
4년의 직장 생활을 통해 모은 경비로 티베트의 히말라야 산맥에 자리한 카일라스 순례길에서부터 시작된 그녀의 여정은 인도, 이탈리아, 이집트, 스위스 아이슬란드를 거쳐 총 39개국으로 이어졌다. 극지방의 지지 않는 해, 장맛비와 비교도 되지 않은 아프리카의 장대비, 사막의 일출 등을 직접 마주했고, 영국 런던에서는 6개월가량 머물며 현지인의 삶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배낭 하나에 의지해 지구 한 바퀴를 돌며 그녀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제가 겪은 경험과 그 시간 외에 다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였어요. 인생이 너무 짧게 느껴진 거죠. 그래서 그 이후 삶은 꽤 미니멀하게 살고 있어요. 대신 시간에는 더 집착하게 됐죠.”
이후 돌아온 한국에서 그녀는 잠시 이전과 같은 글로벌 회사의 마케팅 팀을 거친 후 초기 스타트업의 멤버로 합류했다. 그곳에서 3년 가까이 몸담으며 초기 스타트업이 급성장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경험했다. 앞서 경험을 바탕으로 B2C(소비자 대상 비즈니스) 기반 브랜드를 만들고 스스로의 포지션을 ‘브랜드 스페셜리스트’로 잡기도 했다. 지난 여행의 경험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고’라는 제목의 책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좀 더 큰 목표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앤틀러코리아로부터 프로그램 참여 제안을 받은 것은 그 즈음이었다.
“지난해 6월경에 링크드인을 통해 엔틀러코리아 매니저님께서 ‘앤틀러가 생각하는 창업자의 프로필에 적합한 분이라고 봤다’며 제안을 주셨어요. 저도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던 순간이어서 6개월 정도라면 한 번 도전해 보자고 결심했죠. 그 전까지 창업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정형화된 삶 대신 미지의 도전을 시도한 사람들
지난 2018년 설립된 앤틀러는 미국, 캐나다, 남미,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호주 등 전세계 25개 도시에 지사를 두고, 스타트업에 대한 시드 라운드 투자부터 시리즈 A, B, C 등의 투자를 지원하는 글로벌 VC다.
한국 지사인 앤틀러코리아는 지난해 7월 800여명이 넘는 개인단위 예비창업 지원자가운데, 80명을 선발해 한국 최초의 앤틀러 프로그램을 공식 런칭했다. 그중 정 대표와 같이 제안을 받아 참여한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후 앤틀러코리아는 선발자들 간 특장점을 고려해 32개 팀을 구성하게 한 다음 5주 동안 비즈니스 아이디어 발굴 작업을 진행했고, 서바이벌 방식을 통해 그중 16개 팀을 선발해 앤플러 프리시드 투자를 진행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열린 ‘프라이빗 데모데이’를 통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최종 14개 창업팀을 선발해 지난 1월 개최된 ‘스타트업 제너레이팅 1기 데모데이’ 참여권을 부여했다. 스니커즈는 이 모든 과정을 거친 14개 팀 중 하나가 됐다. 정 대표는 “스니커즈는 앤틀러 프로그램에서 ‘언더독’ 같은 존재였다”며 치열했던 지난 6개월여를 돌이켰다.
“창업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프로그램에 들어왔어요(웃음). PMF(Product Market Fit, 제품과 시장이 부합된 상태)가 뭔지도 몰랐죠.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제가 그렇게 부족하게 느껴진 순간은 처음이었어요. 저는 창업 팀을 구성할 당시 함께할 팀을 찾지도 못했죠.”
앤틀러 코리아 프로그램에서 비즈니스 아이디어 발굴 과정을 거치며 그녀는 세계여행 당시 런던에서 경험했던 일을 떠올렸다. 6개월 간 머문 런던에서 그녀는 출판 등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실시간 런던 거리의 풍경 사진을 찍어 보내 수익을 낸 바 있다. 현지 매장에서 더 싸게 팔리는 명품 구매를 대행하기도 했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그녀는 ‘제한된 시간에 원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팀이었다. 선발된 인원 중에는 그녀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팀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촉박하게 주어진 시간 속에 그녀가 택한 것은 외부 영입이었다.
“주신영 COO님과 저는 몇 년 전부터 SNS로 소통했어요. 남다른 여행 경험이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죠. 저와 달랐던 것은 제가 정보를 이용해 수익을 얻을 때 신영님은 정보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거였어요. 어떻게 보면 앤틀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이전부터 제 생각을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던 거죠.”
주 COO는 웹 디자인과 퍼블리싱을 전문으로 하는 프리랜서로서 삶을 살아가던 중이었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로 경험을 쌓으며 알 만한 기업에서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을 뿌리치고 정 대표의 제안에 선뜻 스니커즈에 합류했다.
스니커즈 개발의 모든 것을 담당했던 정민식 CTO 역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중어중문학과 4학년 무렵 중국 칭화대 교환 학생을 갔던 정 CTO는 칭화대 대부분의 학생들이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것에 충격을 받고, 돌아와 졸업 대신 자퇴를 선택했다. 이후 독학으로 풀 스택 개발자로서 역량을 구축하고 여러 스타트업을 거치며 자신만의 개발 포트폴리오를 쌓았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정 대표를 비롯해 스니커즈 구성원 모두는 정형화된 삶 대신 도전을 감행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험난한 과정 끝에 만든 성과, 새로운 도전은 지금부터
“사명이자 서비스명을 ‘스니커즈’로 지은 것은 좋은 운동화를 신었을 때 느끼는 확장성, 효율성, 편리성 등의 이점이 저희가 추구하는 프로덕트의 핵심 가치와 같기 때문이예요. 좋은 운동화가 주는 잇점, 즉 편하고 효율적이며 가동성이 커지는 혜택을 시간 자원에서 구현한다는 의미죠.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시간과 에너지를 좀 더 효율적으로 원하는 곳에 쓰도록 하는 것이 저희 서비스가 지향하는 가치예요.”
MVP로 베타서비스를 출시한지 2개월만에 스니커즈에 유입된 유저는 곧 2000명을 바라보고 있다. 누적 거래액은 1500만원에 달한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핫플레이스에서 발생하는 실시간 정보가 구매로 이어지는 단계에 접어들면 이후로는 지속적으로 거래액이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스니커즈는 이달 중 시드 라운드를 마감한 뒤 위치기반 기능을 추가하는 등 서비스 고도화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를 바탕으로 목표로 삼은 것은 내년 2분기까지 50만명의 유저를 확보하는 것이에요. 그 전에 올해 안에는 글로벌 진출도 계획하고 있고요. 인도네시아 발리, 태국 방콕 등 각국의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부터 시작하려 해요. 물론 당장은 국내 유저를 중심으로 서비스 활성화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이를 위해 신규 개발 인력을 충원하려 하고 있어요.”
여행은 물론 맛집이나 쇼핑 등에서 발품을 많이 파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은 ‘편한 운동화’가 아닐까. 정 대표와 스니커즈가 지금의 열정과 속도감을 유지한다면, 편한 운동화와 같은 ‘스니커즈 서비스의 대중화’도 머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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