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기웅 삶의질연구소 대표 “대화가 단절된 다 큰 자녀와 시니어를 위한 ‘소통의 연결 고리’ 만들고 있죠”

앤틀러코리아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 액티브 시니어와 독립한 자녀의 소통 증진 앱 ‘앤서록’ 개발
‘단조롭고 피상적인 소통’이 관계의 골을 깊게 해, 소통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
가족간 소통의 문제, 콘텐츠와 취향 파악 문답으로 물꼬… 데이터 기반 커머스 비즈니스로 확장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가 한국 전체 인구의 17.5%인 901만8000명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통계청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가 한국 전체 인구의 17.5%인 901만8000명을 차지하고 있다. 오는 2025년이면 20.6%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인구 고령화 속도가 앞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빠르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말로 인구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는 사회·문화적 인식과 준비가 미처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나마 최근 노년의 삶을 활동적으로 즐기려 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등장하며 여가나 취미활동을 능동적으로 향유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그런 이들 조차도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성인 자녀와의 소통이다.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의 삶은 옛말이 돼 버린 요즘, 따로 사는 자녀들과 소통 부재로 소외감을 느끼는 시니어들이 적지 않다. 동년배끼리 모이면 자녀·손자녀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정작 자식들과 마주할 때면 속내를 털어 놓는데 어색함을 느낀다. 자녀 역시도 부모와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지 못해 겉도는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와 성인 자녀의 소통의 질을 높일 방법은 없을까?’

조기웅 삶의질연구소 대표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그리고 그 고민은 ‘55세 이상 부모 세대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혁신적이면서도 접근성 높은 솔루션을 제공해, 이들의 사회적 건강과 디지털 역량을 증진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액티브 시니어와 독립한 자녀의 소통 증진을 위한 앱, ‘앤서록(Answerlog)’ 개발로 이어졌다.

한국인은 대부분 효자, 하지만 소통은 어려워 한다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한 조기웅 삶의질연구소 대표는 이후 실버산업과 시니어 문제에 천착해 성인 자녀와 부모 사이에 소통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사진=삶의질연구소)

과거에 비해 방식은 꽤 달라졌지만, 부모를 생각하는 자녀의 마음, 자녀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때문에 결혼 후 부모와 떨어져 사는 방식이 보편화된 요즘에도 사람들은 수시로 부모에게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 소통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서로 안부를 묻고 나서 전화를 끊은 이후 부모는 부모 대로, 자녀는 자녀 대로 왠지 모를 아쉬움에 절로 한숨이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 조기웅 삶의질연구소 대표는 “성인 자녀와 부모 사이에 단조롭고 피상적인 내용의 소통이 고착화돼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저도 스무살에 독립을 해서 10년 이상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지만, 부모님과 다채롭고 친밀한 소통은 언뜻 쉬워 보이면서도 아주 어려운 문제예요. 물론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효도를 잘하고 계세요(웃음). 저희가 진행한 부모와 자녀 간 소통 행태 및 니즈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대부분이 충분히 또 자주 부모님께 연락 드리고 있었고, 연락에 대한 만족도도 문제가 없다고 나오더군요. 하지만 소통의 질에 대해서는 부모님이나 자녀 모두 문제가 있다고 답했어요. 그 문제는 부모와 자녀의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심해지고 있었고요. 저 역시 건강이 편찮으신 할아버지를 걱정하면서도 전화를 못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하며 새삼 심각성을 깨달았죠.”

조 대표는 경험을 통해 인지한 부모와 성인 자녀 간에 소통 문제를 실증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직접 봉사활동을 하며 100여명을 노인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냈고, '가족관계가 빠진 사회적 관계는 시니어의 삶의 만족도를 높이지 못한다'는 인사이트를 얻었다. (이미지=삶의질연구소)

조 대표는 경험을 통해 인지한 부모와 성인 자녀 간에 소통 문제를 실증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직접 봉사활동을 하며 100여명을 노인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수발을 돕고 땀을 뻘뻘 흘리며 청소하는 그의 모습을 본 노인들은 자식 대하듯 농담을 던지고 다독이며 다가왔다고 한다. 그런 소통의 과정을 거치며 그 역시도 적잖은 힐링을 경험했다.

“정말 다양한 기관, 다양한 상황에 놓인 어르신들을 마주했는데, 모두가 조금만 본인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다가와서 말을 거세요. 그 중 80%가 자녀 이야기였어요. 자녀 자랑도 있었지만, 때로는 ‘못해줘서 미안하다’ ‘서운하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그 과정에서 결국 어르신들의 고독의 이유가 떨어져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심도 깊은 조사와 체험을 통해 조 대표는 가족관계가 빠진 사회적 관계는 시니어의 삶의 만족도를 높이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렇게 ‘앤서록’의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키기 시작했다.

코넬대, 카이스트 기술창업대학원을 거치며 확인한 ‘실버산업의 가능성’

조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월 앤틀러 코리아 데모데이 현장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 대표는 삶의질연구소의 서비스 '앤서록'의 특장점을 자세히 설명했다. (사진=테크42)

조 대표는 미국 뉴욕에 위치한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실버산업까지 아우르는 공부를 하며 지속적으로 시니어 문제에 천착하게 됐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노인심리상담사 1급, 심리상담사 1급, 인지(치매)선별검사 시행자격까지 갖춘 전문성까지 갖추게 됐다. 지난 과정을 설명하던 그는 뜻밖의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렸을 때 외조부모님 손에서 컸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외할머니께서 갑작스레 백혈병에 걸리셨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상태가 되셨죠. 그때부터 막연하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분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대학 시절 관심사로 이어지고 구체화되면서 학술적으로 접근을 하게 된 거죠. 10년 정도를 그렇게 시니어, 노인 환자를 위한 연구를 하면서 막상 졸업을 할 때가 되니 제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풀려고 하는 회사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창업을 결심하게 됐죠.”

막상 창업을 결심했지만, 경험도 없을 뿐더러 준비도 안돼 있음을 깨달은 그는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대학원 내 창업 석사(창업융합전문석사) 과정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동기들과 독서와 메모를 기반으로 한 에듀테크 스타트업인 스쿱(SKOOB)을 창업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독서는 혼자서 하는 활동이잖아요. 좀 더 재미있게 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책을 읽으면서 남기는 메모를 매개로 한 소통 플랫폼을 생각하게 됐죠. 이 소통 데이터를 가지고 궁극적으로는 지식 격차가 있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지식 통역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생각해보면 그때 역시 ‘소통’이 관심사였던 셈이죠.”

앤틀러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된 ‘앤서록’… 최강의 멤버가 뭉쳤다

(왼쪽부터) 조기웅 삶의질연구소 대표, 이승현 COO, 하윤희 CTO. (사진=삶의질연구소)

카이스트 재학 중 호기롭게 도전했던 스쿱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지속되지 못했다. 이후 그는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봉사활동을 하며 다시금 노인 문제를 살폈다. 앤서록의 아이디어는 그 과정에서 구체화됐다.

“팀 멤버의 절반이 군대에 입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스쿱을 정리하고 심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는데, 봉사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거죠. 나중에는 좀 더 다양한 기관에 어르신들을 접하기 위해 학교도 휴학하고 풀타임 봉사활동을 했어요. 그렇게 어르신들과 이야기하고, 교류하면서 시니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가족적 관계가 중요하다는 확신을 얻게 됐죠.”

그런 확신은 앤틀러 프로그램을 통해서 실행에 옮겨졌다. 이는 글로벌 VC(벤처캐피탈)인 앤틀러가 한국 지사인 앤틀러코리아를 통해 지난해 7월 800여명의 개인단위 예비창업자를 모집하고 80명을 선발해 팀구성과 창업을 지원한 프로그램이었다. 6개월 간 이어진 과정에서 조 대표는 천군만마와 같은 파트너와 조우했다. 바로 공동창업자인 이승현 COO(사업총괄책임자)와 하윤희 CTO(최고기술책임자)다.

이 COO는 글로벌 기업 임원과 국내 헬스케어 기업 대표를 거친 25년 경력의 이커머스&디지털 마케팅 전문가이자, 실버케어지도사 1급 자격을 갖춘 노인 문제 전문가다. (사진=삶의질연구소)

이 COO는 글로벌 기업 임원과 국내 헬스케어 기업 대표를 거친 25년 경력의 이커머스&디지털 마케팅 전문가이자, 실버케어지도사 1급 자격을 갖춘 노인 문제 전문가다. 하 CTO는 뮌헨공과대학 컴퓨터공학 석사이자 카이스트 AI대학원 석사, 카네기 멜론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전문가로, 조 대표와는 스쿱 당시부터 인연이 됐다. 함께 자리한 이 COO는 “앤틀러 프로그램 참여자 중 제일 연장자였다”고 털어 놓으며 처음 팀이 결성될 당시를 ‘치열함’으로 떠올렸다.

“회사 일로 몇 년 동안 무리를 하면서 심신이 지쳐있던 상황이었죠. 그러다 앤틀러 프로그램을 알게 됐고,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구나 조 대표와 마찬가지로 저 역시 봉사활동을 하면서 누군가를 도왔을 때 느낀 감동과 힐링을 경험한 터였어요. 앤틀러 프로그램을 통해 팀이 결성되고 3주가량 거의 매일 새벽까지 토론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앤서록을 구체화 시켜나갔죠.”

고령화 시대의 ‘소통 문제’ 해결에 도전, 확장성도 무궁무진

앤서록은 가족 문답과 콘텐츠에서 찾아낸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선물추천 등의 커머스 비즈니스와 연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데이터 비즈니스로 확장성을 띄고 있다. (이미지=삶의질연구소)

불과 몇 개월의 과정에서 삶의질연구소는 카카오톡 및 구글폼을 이용한 PoC(개념증명)까지 거치며 하나 둘 ‘앤서록’의 기능을 추가했다.

앤서록을 처음 접하게 되면 성인 자녀와 부모는 1대 1로 연결돼 정기적으로 공통 가족문답 질문에 답변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질문은 개인의 취향부터 일상, 부모자식 간에 공유할 수 있는 추억 등 감동적인 주제 등으로 다양하다. 이 답변 키워드를 기반으로 관련된 추천 콘텐츠가 큐레이션 방식으로 연결되고, 다시 이것을 매개로 소통의 깊이는 자연스레 깊어진다.

삶의질연구소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앤서록 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관심사 키워드와 소비되는 콘텐츠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물추천, 여행지 추천 등의 커머스로 연결시키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조 대표는 “두 데이터는 굉장히 차별적인 인풋”이라고 설명하며 말을 이어갔다.

앤서록의 가족문답은 각 전문가 집단을 통해 기획되고 있다. (이미지=삶의질연구소)

“저희는 문답 리스트에서 세 가지 카테고리의 내용을 조합해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호캉스가 좋다’는 답은 추억 카테고리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념일’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인 ‘가족과 함께한 레스토랑’과 연결되고 다시 취향 카테고리에서 나온 ‘좋아하는 음식’과 연결 돼 인사이트로 도출되죠. 이는 다시 자녀와 부모가 소비한 콘텐츠 데이터와 결합돼 한 번 더 개인화 과정을 거칩니다. 이를 기반으로 양측 모두 만족하는 선물 추천이 가능해지는 거죠. 매번 ‘필요한 것이 없다’는 부모님 선물을 고민하는 자녀에게 답이 될 수 있는 거예요. PoC 테스트 결과 79.2%의 참여자가 ‘가족 문답 활동을 지속하고 싶다’고 답변했고, 구매 전환율은 비교군 대비 2.3배 높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앤서록의 비즈니스 모델. (이미지=삶의질연구소)

현재 삶의질연구소는 시니어 친화적인 UI(사용자 환경)을 보강해 이달 중 앤서록의 MVP(최소기능제품)을 선보일 계획으로 막바지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디지털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정보화 교육 봉사도 병행 중이다. 부모와 자녀의 소통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커머스 서비스는 하반기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더 나가 삶의질연구소는 시니어의 가치 향상과 재능 활용이 가능한 오프라인 서비스도 구상하고 있다. 시니어 1000만 시대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불가능한 일도 아닌 듯싶다.

피할 수 없는 물결과 같은 인구 고령화의 흐름에서 ‘시니어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혁신적이면서도 접근성 높은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삶의질연구소의 비전이 가지는 가능성은 이렇듯 점점 더 빛을 발하고 있다.

황정호 기자

jhh@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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