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가 저물고 개별 소비자의 니즈와 취향을 고려한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가 도래했다. 덕분에 이제는 스타트업 수준의 중소 업체들도 저마다의 브랜드를 무기로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제품 생산에 나서고 있다.
특히 화장품을 비롯한 브랜드 제품개발 시 시제품 제작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제품을 만드는 최소 수량은 어느 정도 일까? 대부분의 공장들이 5000개에서 1만개 이상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비용만 족히 수천만원이 필요한 분량이다. 문제는 브랜드 업계의 변화와는 별개로 생산 단계의 공정은 여전히 대량 생산 시스템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중소 업체나 개인 창업자에게는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제품에 필요한 개별 요소를 빨리, 소량으로 만들 수 있는 각각의 공장을 소싱해 네트워크화 한다면 어떨까? 지난 8월 말 앤틀러코리아 배치2 데모데이에서 선보인 팩토스퀘어의 비즈니스 모델은 바로 이와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코파운더 안성현 COO, 박진희 CPO와 함께 무대에 선 홍일호 팩토스퀘어 대표는 “화장품의 경우 이제까지 제품을 생산할 때 하나의 공장에서 용기부터 원료 배합까지 모든 과정을 진행했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시도한 새로운 접근법을 소개했다.
“저희는 먼저 모든 공정을 분리했습니다. 용기 생산과 용기 인쇄, 원료 배합 등 각 공정 별 전문 공장을 소싱해 네트워크화했죠. 현재 저희 팩토스퀘어와 함께하는 파트너 공장은 60곳이 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들과 함께 공장의 설비 규격, 생산 수량, 리드 타임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의 생산 라인을 새롭게 세팅했죠. 그 결과 기존 5000개였던 최소주문수량을 팩토스퀘어 앱을 통해 1000개로 낮출 수 있었습니다.”
공장 네트워크화로 최소주문수량은 물론 시간까지 줄여
최소주문수량이 줄인 것 외에도 팩토스퀘어는 공장 네트워크화를 통해 기존 8주 가량 소요되던 생산 기간 역시 3주로 줄였다. 적정 수량만을 생산하며 가격을 낮춘 것은 물론 시간까지 줄인 팩토스퀘어의 성과에 그간 문제에 직면해 왔던 기업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광화문 인근에 마련한 사무실에서 만난 홍일호 팩토스퀘어 대표는 “법인 설립 한 달 만에 500개 이상의 브랜드 고객을 확보했고, 서비스 출시 두 달만에 60건 이상의 생산 주문을 받고 있다”며 그간의 성과를 털어놨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은 매출이다. 비즈니스 모델 검증을 하는 단 두 달 동안 팩토스퀘어가 올린 거래액은 총 4700만원에 달한다. 홍 대표는 “마케팅 데이터에 따른 올해 말 거래 예상치는 6.2억원, 내년에는 422억원이 가능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국내의 연간 화장품 생산량은 약 3억6000만개 정도입니다. 이중 소량생산 니즈가 있는 20%를 확보하면 팩토스퀘어는 화장품 분야에서만 총 2700억의 거래액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공정과 시장 규모가 유사한 다른 소비재 브랜드로 확장 시 매출 기준 소량 생산 소비재 시장은 3.8조원에 달합니다.”
브랜드 애그리게이터와 제조공정 전문가가 만났다
팩토스퀘어 팀은 앤틀러코리아의 배치2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됐다. 이전까지 일면식도 없었던 홍 대표와 안성현 COO는 저마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소비재 브랜드가 제조 과정에서 직면하는 MOQ(최소주문수량)의 페인포인트에 주목했다. 홍 대표는 “수많은 브랜드사가 겪고 있는 문제지만 정작 공장은 MOQ를 낮출 생각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비즈니스 모델 도출 과정을 털어놨다.
“브랜드사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공장을 찾아가면 최소로 주문해야 하는 수량이 늘 문제였죠. 소규모 브랜드사는 1000개도 겨우 파는 채널만 보유하고 있는데, 공장에서는 최소주문수량을 5000개로 정해 놓고 있으니 브랜드사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5000개를 주문하고 4000개의 재고를 떠안거나 손해를 보며 이른바 ‘떨이’를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는 이 최소주문수량을 낮출 수 있다면 사업성이 있다고 본거죠.”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 도출에는 두 사람이 이제까지 거쳐온 경험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IBK기업은행 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홍 대표는 신입 시절부터 은행 업무 효율화를 위한 이런 저런 제안을 쏟아내는 열정적인 타입이었다. 하지만 큰 조직에서 신입 행원의 의견이 반영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이직을 선택한 홍 대표는 이후 패스트캠퍼스 신사업팀을 거쳐 브랜드 애그리게이터로서 첫 창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명상 콘텐츠 앱 개발로 창업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구독료 외에 수익 모델을 찾지 못했고, 피보팅을 통해 도자기부터 스포츠 의류·용품, 신발, 캔들 브랜드 등을 만드는 브랜드 애그리게이터를 하며 창업의 맛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앤틀러 프로그램을 알게 됐고, 당시 하고 있던 브랜드 애그리게이터를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안성현 COO의 경우는 롯데칠성에서 품질보증팀의 일원으로 경험을 쌓았다. 그 과정에서 회사에서 운영하는 사내벤처 프로그램에 참여해 마음 속에 싹트고 있던 창업의 가능성을 테스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더구나 네 살배기 딸에 이어 둘째 출산을 앞둔 상황에서 “지금이 아니면 못할 것”이라는 조바심도 앞섰다.
“롯데칠성에서 사내벤처를 하면서 1년 동안은 제가 하고 싶었던 창업 공부를 실컷 할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스타트업에 정말 중요한 것은 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결국 앤틀러 프로그램을 통해 진정한 창업을 시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원하게 됐고요. 우연찮게도 앤틀러 프로그램을 막 시작할 즈음 둘째가 태어났고, 팩토스퀘어 팀도 결성됐죠(웃음).”
브랜드의 페인포인트, 점을 연결하니 그림이 그려졌다
초기 팩토스퀘어의 문제 의식은 브랜드와 제조 공장을 연결하는 지점에서 시작됐다. 그들 스스로도 경험했던, 브랜드사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공장을 찾기 쉽지 않다는 페인포인트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브랜드사들의 니즈를 충족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이 최소주문수량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안 COO는 “초기 공동발주 시스템을 통해 최소주문수량을 맞추는 방식으로 시작해 생산 시스템을 연결하는 시도를 이어갔다”며 그 과정을 설명했다.
“단순히 공장을 찾아 주는 것 만으로는 브랜드사들이 돈을 지불할 정도의 당근은 되지 못했어요. 그래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공동발주를 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실제 진행을 해 보니 그 과정에서도 조금씩 차별화를 두고 싶어하는 니즈가 있어 각각의 브랜드가 원하는 제품을 정말로 1000개 만들어주는 생산 시스템을 연결하는 현재의 방식으로 발전을 시켰죠.”
각각의 페인포인트 지점을 연결하면서 비로소 팩토스퀘어의 비즈니스 모델은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됐다. 팩토스퀘어는 그렇게 브랜드사들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하는 한편, 공장 측에는 특화된 파트너를 선별해 최소주문수량을 맞추면서도 새로운 영업 채널을 제공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나갔다. 브랜드와 공장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홍 대표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했다”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PoC(개념증명)을 하는 과정에서 중소 브랜드사가 소량의, 빠른 생산을 원할 것이라는 가설을 새웠는데, 중간중간 지속적으로 대기업의 요청이 들어왔어요. 그 과정에서 대기업 역시 신제품 등의 테스트용으로 소량 생산의 니즈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특히 소량 생산도 필요하지만 빠른 생산의 니즈가 크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됐고요. 그 외에 또 다른 의외의 케이스는 인플루언서였어요. 애초에 인플루언서는 기획사들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해 고객군으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PoC를 돌려보니 10만, 100만 팬을 확보한 인플루언서의 요청이 적지 않더군요.”
자동화 플랫폼 구축, 글로벌 시장으로 스케일업 목표
비즈니스 모델 검증에 성공한 상황에서 팩토스퀘어의 다음 목표는 자동화 플랫폼으로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것이다. 현재는 프로토 타입의 플랫폼을 구축한 상태. 올해 안에 블라인드 베타, 오픈 베타 서비스를 거쳐 정식 버전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홍 대표는 “아직 플랫폼이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주문을 조절하고 있다”며 “레퍼런스가 쌓이고 지속적인 공정 혁신을 이뤄 낸다면 목표치를 상회하는 성과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현재는 공장에 유의미한 매출을 제시하면서 저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게 되면 브랜드와 공장이 연결되는 팩토스퀘어의 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되는 거죠. 최종 목표는 발주부터 대금 지급까지 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저희만의 공정 라인을 만드는 겁니다. 그 전제가 되는 것이 효율화와 투명화죠. 이미 화장품 분야는 최소한의 단위까지 세부 공정을 분리하는 작업이 끝났어요. 또 여기서 일부 공정은 공동발주를 통해 비용을 더 줄여나가고 있죠. 이 모든 것을 파악하고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 팩토스퀘어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죠. 마지막으로 저희는 공동 발주가 불가능한 공정의 문제 조차 해결하기 위해 정말 소량 생산이 가능한 공장 풀까지 확보하고 있습니다.”
홍 대표의 말을 종합해 보면 팩토스퀘어는 브랜드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공장에는 자사의 자동화 시스템을 제공하는 한편 공정을 분석하고 세분화해 한번 들어온 고객을 락인(Lock-in) 시키는 팩토스퀘어만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비전까지 그려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비전은 국내 브랜드와 공장 네트워크를 해외로 연결시키는 스케일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화장품 분야의 공정 세분화를 완료했다는 것은 다른 제조 분야 역시도 가능하다는 의미도 되죠. 화장품과 유사한 캔들, 디퓨저를 비롯해 건강기능식품, 식음료 제조에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캔들과 디퓨저, 건강기능식품 분야는 이미 주문을 받고 테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그 밖에도 저희가 구축한 비즈니스 모델을 해외에 적용하겠다는 미션을 바탕으로 현재 해외 고객과도 협의를 진행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팩토스퀘어의 성장 로드맵에는 데이터 비즈니스도 포함돼 있다. 자동화 플랫폼이 완성되면 브랜드사의 니즈를 세분화해 최적화된 공장 네트워크를 연결시키고 그 안에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플랫폼 구축 단계인 현재 데이터를 태깅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터뷰 말미, 홍 대표는 “충분한 데이터가 확보되면 국내를 넘어 동남아 공장을 연결하는 최적의 자동화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며 남다른 자신감을 드러냈다.
“플랫폼을 통해 쌓이는 데이터를 통해 공장의 불량률이나 리드 타임 미스 등의 비율까지 추적할 수 있게 되면 브랜드사가 원하는 품질을 맞추면서도 시간과 비용을 최적화한 세팅이 가능해 집니다. 물론 제조 분야는 큰 시장이면서도 오래된 산업이기에 풀기 어려움 지점이 적지 않겠죠. 그렇다고 해도 저희는 매 순간 직면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며 누구나 브랜드를 만들고 자신만의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