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타트업계에서 앤틀러 코리아의 독특한 배치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고 있다. 앤틀러의 방식은 여느 VC(벤처캐피탈)과는 다르다. 이미 비즈니스 모델이 갖춰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 아닌, 파운더(founder, 창업가)를 모집한다. 다양한 전문성과 아이디어를 가진 개인들은 6개월 동안 ‘앤틀러 프로그램’에 참여해 서로를 알아가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팀을 만든다. 그렇게 결성된 팀들은 프로그램이 끝나는 시점, 이른바 ‘졸업’이라고 일컬어지는 단계가 되면 이미 비즈니스 모델 검증과 시장성을 확인한 각각의 스타트업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크게 창업 팀 구성 후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페이즈(Phase) 1과 아이디어를 확장하고 프로토 타입과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기능제품) 개발, 초기 고객 확보와 추가 검증을 하는 페이즈 2로 나뉜다. 이 과정에서 앤틀러는 페이즈 1을 통해 결성된 스타트업팀을 대상으로 평가를 한 후 최대 2억원의 프리 시드 투자를 한다.
지난해 여름 1기 배치 프로그램을 가동한 앤틀러는 올해 1월 그 성과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개최된 데모데이를 통해 소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당시 현장에는 1000명이 넘는 스타트업 관계자와 벤처투자자들이 객석을 채웠다. 데모데이 무대에 선 14개 스타트업들은 이미 기능검증을 마치고, 매출까지 일으키며 시장성을 확인한 과정을 피칭했다. 그러한 열기는 고스란히 투자미팅으로 이어졌다. 이후 이들 중 적잖은 팀들이 후속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앤틀러 코리아는 한국에 처음 시도된 1기 배치 프로그램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달 초 2기 배치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1기의 성공 사례가 알려진 만큼 2기에 참여하는 창업가들의 열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 그들과 현장에서 함께 부대끼며 호흡하고 시행착오를 줄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앤틀러 코리아 사람들의 중심에는 강지호·정사은 대표 파트너(지사장)이 있다.
현장에서 만난 강지호 대표 파트너는 “굉장히 빡세게 돌아가고 있다”다며 2기 배치프로그램에 참여한 파운더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스타트업 성공을 위한 요령은 없다
강지호 대표 파트너(이하 대표)를 만난 것은 2기 배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20여일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앞서 언급된 페이즈 1 단계인 셈이다. 현장의 분위기는 흡사 시장판을 방불케 했다. 넓은 공간에 책상들이 배치 돼 있고 각각의 책상 마다 삼삼오오 모인 파운더들이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는 강지호 대표를 비롯한 앤틀러 코리아 매니저들이 오가며 진행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Q 언뜻 봐도 상당히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듯 합니다. 1기와 다른 점이 있나요?
강지호 대표(이하 강)_ 지난 1기 배치 프로그램의 경우는 저희 입장에서도 ‘이걸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참가하신 파운더들도 ‘이게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다행히 1기가 끝나고 피드백이 굉장히 좋았고, 그걸 기반으로 얻은 것들을 2기에 반영하는 중이예요. 2기에 참여한 파운더들은 1기를 경험한 파운더들의 후기 같은 것을 보고 앤틀러 배치 프로그램에 대한 각자의 기대치를 가지고 시작한 듯해요.
Q 1기를 통해 앤틀러 배치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다양하게 공개된 만큼 기대치가 적지 않을 듯 한데요. 이번 2기 파운더들에게 어떤 질문을 많이 받는지 궁금하네요.
강_ 몇몇 파운더들은 앤틀러 프로그램에서 투자를 받기 위한 요령 같은 것을 얻어갈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하는데, 요령은 없다고 강조하죠. 이 배치 프로그램을 끝내는 것을 대학 졸업장처럼 여기면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하고요. 우선은 마음을 크게 갖고 프로그램에 집중을 하는 것이 좋다고 얘기해요. 초기에 앤틀러 프로그램에 대한 오해섞인 질문을 받으면서 한편으로 적잖은 파운더들이 어떤 프레임에 갖혀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더군요.
투자심사에서 투자가 이뤄지는 기준에 대해 묻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특정해서 말씀드리기 힘든 부분이예요. 평가 항목과 그에 따른 점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업의 특성, 사람에 따른 특성, 팀에 따른 특성이 다르고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죠. 어떤 획일적이 기준이 있고, 거기에 부합하면 투자가 될 것이라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 공식이 있다면 그대로 따라하는 스타트업은 모두 성공하고 돈을 벌 수 있어야죠. 그런 질문을 받으면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사업을 열심히 해서 성과가 나오면 된다’는 원론적인 답 밖에 드릴 게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지호 대표에게 쏟아지는 파운더들의 오해 섞인 질문 공세는 일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강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처음 창업을 경험한 이후 줄 곳 창업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는 그 역시 적잖은 실패의 과정을 경험해 봤다는 의미기도 하다. 물론 어느 정도 경험을 갖춘 이후에는 성공의 경험이 이어졌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혁신이 막 일어나던 시기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해 ‘Wander’라는 모바일 소셜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다. 이후 2010년 한국인 최초로 500 Stsrtups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숨고의 공동창업자로 합류해 성장을 주도했고, 이후 가장 최근인 2020년에는 블록체인 스타트업 B×B를 창업해 바이낸스에 매각하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Q 그렇다면 성과를 내는 스타트업이 되기 위해 달성해야 할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요?
강_ 한 해에도 수백개의 스타트업 투자를 검토하는 VC들이 보는 것은 과연 성과가 나오고 성장이 이뤄질 수 있는 기업인가예요. 직접적으로는 돈을 벌 수 있는 스타트업이냐는 거죠. 그런 스타트업을 만들기 위해서 파운더들은 ‘내가 만들고 있는 비즈니스가 세상에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를 고민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많은 초기 스타트업 파운더들이 이를 조금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우리 서비스 가입자가 100명이다’ ‘지인들이 모두 좋은 평가를 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굉장히 약한 근거에 기대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근거는 결국 ‘돈을 지불하느냐’죠. 그래서 저는 종종 파운더들에게 ‘길 가는 사람에게 피칭해서 하루 동안 10만원을 벌 수 있냐’고 물어요. 우선 길 가는 사람에게 설명했을 때도 쉽게 이해가 가는 서비스여야 된다는 거죠. 또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기까이 1만원 짜리 한 장을 꺼내 줄 수 있는 만큼의 강력한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자신의 사업이 진짜 시장의 니즈가 있다는 것은 그런 검증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봐요.
하지만 많은 파운더들이 앞단에서 첫 단추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 채 ‘나중에 우리 회원이 몇 천명, 몇 만명이 모이면 이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어요’라고만 이야기 해요. 파운더들이 제게 원하는 답은 ‘1번에서부터 4번까지 이 기준만 맞추자’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대답은 존재하지 않죠. 기업체를 만든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로서 돈을 벌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되도록 하는 거예요. 저마다 내용이 다르고 타깃 고객이 다른 사업에서 그 방법은 각자 알아서 찾는 수밖에 없어요. 다만 앤틀러는 파운더들이 스스로 공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돕는 거죠.
제품을 기획하는 것처럼 프로그램을 개선해 나간다
결국 앤틀러 프로그램의 본질은 파운더들이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하는 것인 셈이다. 때문에 강 대표를 비롯한 앤틀러 구성원들은 지난 1기 프로그램에서 얻은 결과를 놓고 리뷰를 하며 짧은 기간 동안 가장 효과적으로 파운더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 이러한 리뷰는 2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현재도 매주 이뤄지고 있다.
Q 1기 프로그램이 진행 될 당시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두분 대표님들께서도 그렇고 매니저 분들 등 운영진의 긴장감이나 우려도 일부 있었을 것 같습니다. 2기에 변화된 것이 있나요?
강_ 큰 것은 없었어요. 파운더들의 피드백이 안 좋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일부 거두고 프로그램의 순서를 조정하는 정도였어요. 운영을 위한 기술적인 플랫폼은 존재하지 않아요. 대부분이 모두 사람들이 직접 해야 하는 일들이죠. 다만 손을 좀 덜 타거나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파운더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린거나 다른 불필요한 시간적 낭비를 줄이는 것이죠.
제 경우는 원래 제품 기획을 전문으로 했던 터라 앤틀러 프로그램을 제가 설계하는 제품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기도 해요. 서비스 이용자들을 파운더로 보고, 어떻게 해야 이 제품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지를 저희 팀이 계속 고민하는 거죠. 저희의 목표는 가장 우수한 분들이 참여하고, 그들을 통해 강한 스타트업이 배출되도록 하는 것이예요. 이 두 가지 지표를 가지고 실험과 결과 분석을 반복하고 있는 거죠.
앤틀러의 배치 프로그램에 대해 다시 정리하자면 1단계로 창업에 관심이 있는 파운더들을 모아 창업팀을 구성하고 사업 아이템을 발굴·고도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1~2억원의 시드투자가 이뤄진다. 2단계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을 시제품으로 구현하고 초기 고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액셀러레이팅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실제 매출을 일으키는 팀들이 적지 않다. 이 6개월의 과정을 모두 마친 스타트업에 대해서 앤틀러 코리아는 데모데이를 통해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스타트업들은 이후 앤틀러 포트폴리오에 포함돼 지속적인 소통을 하게되며 해외 각 지사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 진출 시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앤틀러 본사는 이들 중 시리즈 라운드 투자에 돌입할 정도로 성장 단계에 들어선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후속 투자를 진행한다.
Q 프로그램 종료 이후에는 앤틀러 본사가 후속 지원과 투자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기 팀에 대한 후속 지원 사례 혹은 검토 중인 건이 있나요?
강_ 본사에서 글로벌 펀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앤틀러는 현재 앤틀러 코리아 포함 25개 지사가 있는데 25개 지사에서는 맨 바닥에 씨앗을 심는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저희 역할을 싹이 틀 때까지 관리하는 거죠. 25개 지사에 걸쳐서 빨리 자라는 팀들이 있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팀들이 있을 텐데 그런 상황을 글로벌 펀드 입장에서는 모두 살피고 있고요. 어떤 팀이 가장 강한지를 모니터링을 하면서 다음 투자를 검토하는 거예요. 그런 팀이 한국에서 많이 나올 수도 있고 적게 나올 수도 있죠. 지사 별로 투자 대상 스타트업 수를 정해 놓지는 않아요. 얼마나 좋은 팀들이 나오는 지는 한국을 비롯한 각 지사가 얼만큼 잘하고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죠.
다만 프리 시드를 받은 1기 졸업 팀들이 바로 이어서 투자를 받기는 어중간한 상태예요. 일반적으로 앤틀러 투자를 받고 졸업을 해서 다른 시드 투자를 받고 난 뒤에 앞서 말씀드린 지표적인 부분 등 투자 근거를 좀 더 만든 후라면 프리A나 시리즈A 단계에서 검토가 될 거예요. 이를테면 앤틀러라는 온실 속에서 먼저 싹을 틔운 다음 외부에 나와서 생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을 거치고, 거기서 강한 팀들을 본사 글로벌 펀드가 살펴서 투자를 결정하게 되는 거죠. 제 생각에 1기 배치 프로그램을 졸업한 팀 중에 정말 잘하는 팀라면 올해 안에 (글로벌 펀드 투자를 받는) 한두 팀이 나올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내년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즉 졸업하고 나서 1년 정도는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죠.
스타트업에서 유니콘이 되기까지는 보통 10년 정도가 걸린다고 보는데, 그렇게 되기 까지는 생태계 전체의 노력이 각 단계별로 필요합니다. 저희는 가장 앞 단계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는 거죠.
>>[인터뷰]-2편- 강지호 앤틀러 코리아 대표 파트너, “다음 세대 유니콘을 이끌 창업자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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