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할 때) 소셜 임팩트를 고려하는 것이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도 좋다는 것을 종종 강조해요. 그래서 소풍벤처스는 투자 결과를 2~3년에 한 번씩 ‘임팩트 리포트’로 만들고 있죠. 이 방식은 창업팀을 교육하는 것이기도 해요. 회사의 사회적 가치 등을 문서로 만들어 갖고 있는 데서 오는 힘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인터뷰가 이어지며 한상엽 대표는 소풍벤처스가 만들고 있는 임팩트 리포트에 대한 언급과 함께 여느 투자사와 다른 투자 포인트를 설명했다. 우선 되는 것은 앞서 언급한(인터뷰 1편) UN의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가능 발전 목표) 관점에서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소풍벤처스의 투자 심의 보고서에는 임팩트 KPI(핵심성과지표)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두 번째로는 창업자가 사회적 가치 창출이나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명확한 의도가 있는 지를 살피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 해결 의도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사람’을 믿는 수밖에는 없어요.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국내에 이렇게 투자사가 많은데 굳이 없는 걸 있다고 이야기할 이유도 없다고 믿으니까요. 한편으로는 많은 경우 창업자가 굳이 사회적 가치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가치가 큰 스타트업들이 있어요. 그런 관점으로 접근했을 때 소풍벤처스의 외연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거죠.”
이러한 판단의 배경에는 한 대표가 삶 속에서 시도한 여러가지 도전의 경험이 녹아 있다. 그 역시 어느 시절에는 사회적 기업의 개념을 처음 접한 때가 있었고, 이를 공부하던 때가 있었고 실제 실행에 옮기던 때가 있었다. 한국 스타트업계에서 손꼽히는 임팩트 투자사의 대표로 살아가기 이전, 열정 가득한 창업가의 삶을 거쳤던 그의 지난 이야기가 현재 새로운 시도를 하는 후배 창업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회적 기업의 가치를 발견하며 바뀐 모범생의 삶
한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부산, 김해, 보성, 광주 등 지방을 오가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 모범생이었고, 재수 끝에 2004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 생활 속에 그는 이전 삶의 터전과 서울의 격차를 더욱 크게 실감했다고 한다.
‘왜 이런 격차가 존재할까?’
고민 와중에 그는 대학 2학년인 2005년 ‘뭉크(MUNC)’라는 벤처기업을 창업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벌면서부터였다. 우연찮게 접한 ‘세상을 바꾼 대안기업가 80인’이라는 책을 읽은 것도 촉매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경험은 이후 한 대표가 걸어갈 삶의 행로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Q 대학 2학년 무렵에 첫 창업을 시도했다. 꽤 성과가 있었을 것 같은데?
당시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큰 고민 없이 시작한 창업이었다(웃음).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그림으로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는 푸념을 듣고 ‘일단 그려봐라, 우리가 한 번 팔아볼께’라는 말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를 수급해 블로그 스킨으로도 판매하고 브랜드사들과 콜라보도 하는 일종의 디자인 에이전시였다.
Q 이후 ‘넥스터스’라는 단체를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동아리와 같은 개념인가?
당시에 사회적 기업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됐는데, 어디에서도 관련된 모임을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결성하게 됐다. 사실 동아리라고 할 수는 없다. 직장인도 회원으로 가입을 했고, 학교와도 관계가 없었으니까. 일종의 임의단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Q ‘넥스터스’를 통해 시도한 일은 무엇인가?
세 가지 목표가 있었다. 우선은 비즈니스로 소셜 임팩트 창출이 가능하다고 봤고 이 개념을 사회에 알리자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알리고 행사도 개최해야 했다. 두 번째로는 실제 사례가 필요했다. 그래서 멤버들이 직접 창업을 해서 실천에 옮기고자 했다. 세 번째는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적 기업들이 잘 성장하기 위한 체계, ‘에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이런 시도가 없었기에 당시에는 적잖이 관심을 모았고, 학교나 나이, 직업과 관계없이 굉장히 훌륭하고 좋은 청년들이 많이 모였다.
청년들의 자발적으로 모여 사회적 기업을 정의하고 컨퍼런스를 진행하는 모습은 당시 적잖은 관심을 모았다. 넥스터스는 2007년 한 재단의 도움을 받아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을 돌아다니며 사회적 기업이 미치는 영향력을 확인하는 해외 탐방에 나서 ‘아름다운 거짓말’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대단한 것은 이들의 도전이 실제 여러 사회적 기업 창업이라는 실천으로 이어지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한상엽 대표 역시 당시 소셜 캐피탈(사회적 자본)을 구축하고 연결하는 플랫폼 ‘위즈돔’으로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대학 입학 당시부터 그가 느꼈던 ‘격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였다.
Q 2012년에 창업한 위즈돔은 한 때 ‘사람책’이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적잖은 관심을 모았는데?
당시에는 가장 고급 자원을 ‘소셜 캐피탈’이라고 봤다. 그런데 이 소셜 캐피탈을 거래할 수 있는 마켓이 없었다. 소셜 캐피탈이 진짜 의미하는 것은 사실 고급정보다. 문제는 그런 고급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네트워크가 소수에게 편중돼 있다는 점이었다. 보통 학연, 지연으로 일컬어지는 네트워크... 그래서 이런 문제를 플랫폼화를 통해 해결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재웅 대표님이 투자를 해 주셨다. 지금의 소풍벤처스에게 창업자의 한 사람으로써 투자를 받은 거다.
Q 이재웅 대표와 인연이 남다른 것 같다. 동문 선배이기도 한데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학교를 다닐 때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졸업을 한 것이 2008년 2월이었는데 그 직전인 2007년 11월 무렵이었던 것 같다. 이 대표님이 어떻게 아셨는지 전화를 해서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인상 좋은 아저씨가 비싼 밥을 사줘서 좋았다는 정도였다(웃음). 졸업 직후 바로 군대에 입대하고 전역 후 위즈돔을 창업할 때까지도 그 인연이 이어진 셈이다.
창업가에서 투자사 대표로, ‘소풍’의 길에 합류하다
위즈돔으로 시작된 ‘사람책’을 통한 사회적 네트워크 확대 시도는 한때 수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성공하기도 했다. 서울을 넘어 대구를 비롯해 부산, 대전 등 ‘격차’가 존재하는 각 지역에서 사람들이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지역 내에서 힘을 기르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 무렵 이재웅 전 쏘카 대표로부터 소풍벤처스 대표직 제안을 받았다. 삶의 갈림길에서 그는 ‘소풍’의 길에 합류를 선택했다.
Q 스타트업 대표에서 소풍벤처스 대표가 되는 과정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을 듯한데?
이재웅 대표님이 처음부터 소풍벤처스 대표 직을 제안 한 것은 아니었다. 이사 직 제안이었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더니 ‘결자해지(結者解之)하라’면서 계획한 사람이 대표가 돼야 한다고 하셨다. 고민스러운 제안이었고 사실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함께 위즈돔 사업을 하던 C레벨들이 소풍벤처스로 가라고 하더라(웃음). 당시 부사장이 개발자였는데, 위즈돔은 플랫폼 중심으로 가야한다며 본인이 한 번 리드해서 이끌어가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소풍벤처스에 오게 됐다.
Q 안타깝게도 위즈돔의 시도는 지속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어찌보면 나는 실패한 경험이 훨씬 많고, 그 실패한 경험을 갖고 투자사를 경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실패는 내게 적잖은 깨달음을 줬다. 우선 소셜 스타트업은 동료들이 굉장히 중요하다. 절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업은 원래 어려운 일이고 성공률이 낮은 싸움이다. 그걸 혁신적으로 해야 한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주변에 진짜 좋은 동료를 찾고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내게는 넥스터스가 그랬고, 위즈돔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 만난 이들은 평생 친구로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로 깨달은 것은 큰 문제를 해결해야 임팩트도 크다는 점이다. 위즈돔의 문제 역시 스케일업이었다. 문제 해결을 크게 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스케일업보다는 임팩트에 더 집중을 했다. 그게 가장 큰 패착이었다고 생각한다. 늘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스케일업에 대한 고민 보다는 무엇이 더 임팩트 있는가를 고민했다. 피가 뜨거웠던(웃음) 20대 시절이라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런 비슷한 경향은 현재도 소셜 스타트업계에 있는 것 같다.
Q 그런 점이 이재웅 전 대표가 소풍벤처스 대표를 제안한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런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소풍벤처스는 임팩트를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고 그런 스타트업들의 문제 해결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제안을 받았을 때도 이 대표님의 결정적인 한마디가 있었다. 위즈돔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도 의미 있지만, 그렇게 해서 문제가 풀리는 속도에 비해 소풍벤처스에서 수십, 수백 개 스타트업의 시작을 돕고 그들에게 투자해서 생기는 임팩트는 더 클 것이라는 말이었다.
Q 소풍벤처스 대표로서도 8년차다. 매너리즘을 느낀 적은 없나?
없다고 할 순 없다(웃음). 특히 우리가 문제 해결을 진정으로 촉진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순간이다. 사실 투자사로서 소풍벤처스는 문제를 해결하는 당자사는 아니다. 촉진하고 돕는 것인데 어려운 점은 소풍벤처스가 투자해서 잘 됐고 유니콘이 배출됐다며 포트폴리오를 홍보하면서도 과연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계량하거나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투자사로서의 숙명이기도 한데… 한 때는 그런 이유로 ‘이 일이 진짜 문제 해결을 촉진하는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청년들이나 다음 세대에게 명확한 미래나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를 볼 때마다,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한 혁신가들의 생태계가 대안적인 시도이자 세력화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 생태계가 유지되고 좋은 케이스가 나와 문제를 해결하고, 그로 인해 실제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데 기여했다면 그것으로도 소풍벤처스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 특히 최근 기후 생태계를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거기에서 오는 만족도가 크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몇 해 전 한 대표가 썼던 칼럼의 한 대목을 화제로 떠올렸다. 그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창업가 중에서도 소셜 미션이 강한 창업가들의 특징을 ‘공감능력’이라고 지목했다. 또한 한 대표의 시선에서 그들은 ‘누구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는 인터뷰를 통해 수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의 진정성과 마주하는 기자 역시 강력하게 동의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한 대표는 “실패 속에서도 계속 희망을 찾는 것 역시 능력”이라며 지금도 도전에 나서는 스타트업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창업은 실패를 합니다. 그게 저로서는 너무 슬프고 힘들어요. 투자자로서 평가를 하는 위치에서 설 때는 특히 그렇죠. 모든 창업자들은 박수와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투자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결국 무엇이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는가, 혹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면 저는 ‘희망을 계속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반복되는 실패 속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희망을 찾는 것도 저는 능력이라고 보거든요.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것은 내가 뭔가를 할 수 있겠다고 자신하는 것을 넘어 주변 환경과 지지가 뒷받침 돼야 해요. 이 모든 과정을 거쳐낸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시대고, 더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실패에 대한 비용이 너무 높죠. 결국은 스타트업들에게는 내가, 혹은 우리가 계속 이걸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 희망의 열쇠나 증거를 꾸준히 찾아내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도전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