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EU투자는 2차 미·중 테크전쟁 대비 포석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지난 15일 향후 10년에 걸쳐 유럽지역 반도체 인프라 구축에 총 총 800억 유로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인텔)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5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 각국과 반도체 동맹을 맺었다. 주된 내용은 유럽 내 반도체 제조, 연구·개발(R&D) 시설에 향후 10년간 800억 유로(약 107조 5000억원)를 투자키로 한 것이다. 일견 팻 겔싱어가 반도체 종가의 자존심을 걸고 최고 반도체 생산기술을 확보하면서 시장 주도권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모습으로도 비쳐진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 1위를 삼성전자에 내줬다.) 하지만 이는 장차 있을 수 있는 미·중 반도체 전쟁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과 그 동맹국 중심의 확실한 세계 반도체 주도권 확보 의지의 반영인 셈이다. 인텔의 글로벌 반도체 투자가 유럽에서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배경과 향후 전개를 예상해 본다.

미정부와 팻 겔싱어의 유럽내 ‘거대 인텔 생태계’ 구상

인텔이 향후 10년간 유럽에 800억유로를 투자하는 계획은 한마디로 유럽 전역에 인텔의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미·중 기술패권 전쟁 2라운드에 대비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래픽은 인텔의 유럽내 반도체 투자 예상 거점. (사진=인텔)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지난 15일(현지시각) 향후 10년간 최대 800억 유로를 독일 등 유럽 각국의 반도체 생산 및 연구개발(R&D) 역량 확보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 구상은 한마디로 유럽 전역에 인텔 반도체 생산공장과 연구개발(R&D) 및 설계 센터를 지어 유럽에 그야말로 인텔의 거대한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겔싱어는 기자회견에서 “인텔의 투자는 스페인에서 폴란드까지 유럽연합(EU) 전체에 걸쳐 이뤄질 것”이며 “전세계적으로 더 조화롭고 탄력 있는 공급사슬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계획에 따르면 인텔은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170억 유로(약 22조 8500억 원)를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짓고, 프랑스에 연구·개발(R&D) 센터를 건설하며, 이탈리아에는 패키징 및 조립시설을 만들고, 아일랜드에서는 120억 유로(약 16조 1300억 원)를 들여 생산시설을 확장한다. 폴란드에 실험시설을 확충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엔 슈퍼컴퓨팅 센터와 공동연구 센터를 설립한다.

인텔은 오는 2030년까지 유럽내 반도체 생산이 전 세계 생산량의 20%에 이르도록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인텔은 미국 정부의 적극 지원과 EU 각국 정부의 절대적 지지와 협력을 바탕으로 향후 10년간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거점을 유럽에 두게 된다. 현재 세계시장에서 EU 회원국들의 역내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9% 수준에 불과하다.

한편 유럽연합(EU)은 앞서 지난달 8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이 유럽 내 반도체 생산을 늘려 공급망 차질로 인한 위험을 피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지원책을 발표했다.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에 대응하고 미국과 아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 반도체 법(EU Chip Act)’을 통해 기존 예산에서 배정된 300억 유로 규모의 공공 투자에 더불어 2030년까지 150억 유로 규모의 공공·민간 투자를 추가로 동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 법은 유럽 의회와 이사회에서 논의된 후 최대한 빠른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각국이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 역시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이다. 현재 유럽의 주요 반도체업체로는 NXP(네덜란드), ST마이크로(프랑스-이태리), 인피니온(독일) 등이 있다.

인텔 왜 유럽에 대대적 투자할까?···미·중 테크전쟁 2라운드 대비

미국과 중국간 기술패권을 둘러싼 갈등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소강상태를 맞았지만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관계다. 인텔의 유럽내 반도체 생산기지 건설 및 R&D센터 추가 투자계획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면서 세계 시장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때를 대비한 포석으로도 읽힌다. (사진=위키피디아)

현재 전세계 CPU와 GPU의 상당수는 미국의 인텔, 엔비디아, AMD에 의존하고 있다. 또 메모리의 상당수는 한국과 일본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설계된 주요 첨단 반도체 생산의 60%이상을 TSMC를 비롯한 대만업체에, 18%이상을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정부가 ‘중국 제조 2025’계획에 따라 급속히 치고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향후 세계적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도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반도체 공장을 더 세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이 아닌 유럽일까. 아마도 삼성전자, 인텔, TSMC가 투자하고 있는 미국의 공장은 충분하다고 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을 제외한 반도체 공장을 세울 곳은 어딜까. 특히 한국, 대만은 지리정치학적으로 만만치 않다.

눈을 돌려 유럽에서 찾는 것이 최적의 선택일 수 밖에 없다.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지리정치학적 여건이 맞아 떨어진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서 인텔은 이제 EU역내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통해 파운드리 고객사 확보, 유럽 산업계에 대한 유연한 반도체 공급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일자리 확보가 필요한 유럽 각국 정부의 이해관계 등과 맞아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인텔로선 그간 투자해 온 인텔의 유럽내 반도체 생산 및 연구시설에서 축적된 반도체 인력 활용의 이점도 간과할 수 없다.

크게 보면 트럼프 미행정부 시절부터 부각된 미·일 테크전쟁은 조만간 반도체확보 및 영향력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인텔의 이같은 유럽내 대규모 반도체 생산공장 및 R&D 투자 계획은 미·중 테크전쟁 2라운드 대비 차원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인텔은 앞서 중국 낸드플래시 공장을 SK하이닉스에 매각했다.

여러 요인을 조목 조목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팻 겔싱어 CEO의 반도체 종가 인텔을 확실한 세계 1위 기업 일으키고 싶어하며 그 무대로 유럽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인텔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능력 확보만이 세계반도체 1위 주도권의 확실한 열쇠임을 너무도 잘알고 있는 아키텍트다. 그간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 판매량에서도 AMD의 전례없는 시장점유율 잠식을 허용했고 반도체 생산 경쟁에서는 50%가 넘는 TSMC, 18%대의 삼성전자 등에 뒤지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올초 미국 오하이오주에 200억달러를 투입해 2개의 반도체 생산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사진=인텔)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겔싱어는 이미 지난해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하며 반도체 생산라인 투자 계획을 잇따라 발표해 왔다. 지난해 4월 200억 달러(약 24조 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 파운드리 공장 설립을, 지난 1월 미국 오하이오주에 200억 달러를 투자해 2개의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둘째, 인텔과 EU각국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점이다.

반도체 산업은 전기자동차에서 인공위성과 발사체, 로봇산업, 바이오 의약 기술에 이르기까지 꿇릴 게 없는 유럽이 생산력 확보에 기대를 걸고 있는 중요한 분야다. 대다수 핵심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되는 첨단 산업분야가 반도체 기술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등 제조업에서 특히 강세를 보이는 유럽은 코로나 19 팬데믹에 이은 글로벌 반도체 부족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심지어 미국 포드사가 일부 반도체 부품이 빠진 자동차를 내놓을 정도다. 그리고 이같은 반도체 부족은 크게 2년 정도 더 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디지털화가 더욱더 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에 따른 반도체부족은 이어질 것이다.

유럽 각국에 인텔의 반도체 공장이 증강 또는 신설되면 이러한 반도체 부족에 대한 영향을 완화하는 한편 일자리도 늘어난다. 인텔의 세계 반도체 주도권 공고화와 함께 유럽각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아일랜드와 이태리 정부가 쌍수를 들고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것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광경이다. 미국공장에 우리나라 배터리공장과 반도체 공장 진출시 미국연방정부는 물론 현지 주정부가 앞장서 유치를 위한 혜택을 제공해 온 것과 마찬가지다.

인텔이 건설할 독일 마그데부르크 반도체 팹 렌더링 이미지.(사진=인텔)

셋째, 이미 EU지역에 상당한 인텔의 거점 생산공장과 연구개발 시설이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EU 각국에 있는 인텔의 유럽 생산공장과 연구소에 축적된 지식이 상당하다. 또한 여전히 유럽의 NXP, STM, 인피니온 같은 유럽계 반도체 회사들이 건재하다. 관련 인력 배출을 위한 토양이 마련돼 있다는 얘기다.

넷째,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지리정치학적 입지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됐을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중국이 수년내 최첨단 반도체 기술력을 확보하고 생산량까지 늘리면서 반도체 시장 수급조절자로서 나설 경우에도 유럽은 안전한 공급기지가 될 수 있다. 유럽은 중국이나 대만과도 또다른 안전한 반도체 생산기지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텔의 유럽 반도체 공장에 대한 대대적 투자는 중국 반도체 산업이 세계적 영향력을 가질 때를 대비한 전략적 포석차원으로 읽힌다. 인텔의 유럽진출에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한 미국 정부와의 교감이 있었음을 알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아직까지 중국 반도체산업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 및 경쟁력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중국이 이미 고속철도, 태양전지, 통신장비 등에서 이미 세계적 기술력과 엄청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놀랍지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정부주도하에 ‘중국제조 2025’를 위해 2030년까지 1500억달러(약 184조 원)를 투입하는 반도체 경쟁력 우위 확보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향후 전세계적인 디지털화 급진전은 불을 보듯 뻔하고 미중 기술패권 전쟁은 최소한 중국 제조업 2025의 목표 시점인 2025년 이후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수년내 중국이 세계적 첨단 반도체 공급의 주요한 축을 이루며 반도체 수급에 영향을 미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미중 기술 패권전쟁에서 미국이 우려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영향을 미치게 될 때

현재 전세계 반도체 생산은 대만과 한국의 팹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생산의 80%가 두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에서 생산되고 있다. (자료=비주얼 캐피털리스트)
전세계 주요 파운드리 업체의 2021년 시장점유율. DB하이테크가 중국업체로 잘못 표시돼 있다. (자료=비주얼 캐피털리스트)

중국이 세계적 반도체 업체들의 기술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중국 선두 반도체 제조업체 SMIC가 고도의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아직까지 중국 SMIC는 세계 5위 반도체 업체로서 부족한 중국내 반도체 수요를 충족시키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잠재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이 반도체 생산능력을 늘리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갖게 된다면 이 문제는 단순한 반도체 수급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중국은 전 세계 전자제품의 36%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 국가로서 세계 전자제품 공급망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를 사용하는 전자기기 소비 시장으로서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제조 전자제품에서 중국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전체 칩 생산량은 중국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현재로선 세계 반도체 매출의 7.6%에 불과하지만 정부의 반도체 생산 규모 확대 지원으로 점차 수치를 늘려가고 있다.

중국 반도체 공급망은 첨단 로직 파운드리 생산, EDA 공구, 반도체 재료, 칩 설계 IP, 반도체 제조 장비 등에서 뒤처져 있다. 현재는 오래된 기술에 한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중국의 지난 2020년 세계 팹리스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16%로 미국 대만에 이어 3위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주로 개별소자, 보급형 로직 칩, 아날로그 칩 판매가 돋보인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업은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수년내 첨단기술 확보와 함께 엄청난 생산능력을 확보할 가능성을 마냥 배제할 수만은 없다.

미국정부가 국가 성명까지 내면서 인텔의 유럽 투자를 지지하는 데는 이처럼 중국이 산업의 쌀을 넘어 산업의 석유같은 존재인 반도체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데 대한 우려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향후 10년에 걸쳐 인텔이 800억유로를 유럽에 투입해 대대적인 반도체 공장을 세우려는 이유다.

우리나라 반도체산업계에 미칠 영향은

지난해 매출 기준 세계 반도체 업계 톱 15개사. (자료=카운터포인트)

물론 인텔이 이같이 공격적인 투자를 집행하더라도 TSMC, 삼성전자를 단숨에 추격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까지 글로벌 반도체 생산량의 대부분을 대만과 한국이 맡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매출 기준 TSMC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52.1%, 삼성전자는 18.3%다. 두 회사의 점유율만 70%에 달하는 셈이다.

이 와중에 중국의 SMIC 같은 기업들이 무섭게 추격해 오고 있다.

결국 인텔이 미국정부와 EU 각국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적·정책적 지원을 받는 상황속에 유럽에 반도체 생산기지를 보강 및 신설하게 된다면 TSMC,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는 향후 3~5년새 특히 격심한 세계 반도체 시장의 수급 관련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인텔 유럽 반도체 공장드링 제품 생산을 시작하면 글로벌 반도체 수급에 다소 숨통이 트일 것이다. 이때쯤이면 중국 반도체 업체들도 가세해 시장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장 변화를 가정한 시나리오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미중 기술전쟁이 반도체로 옮겨붙게 된다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겐 시장 경쟁과 함께 중국내 반도체 공장이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인텔의 이번 결정은 삼성과 하이닉스에게 향후 ‘첨단 반도체 장비 적시 확보’라는 과제도 던져 주었다. 지난해 겔싱어가 20옹스트롬 반도체 공정기술 확보를 내걸며 한 얘기중에는 이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네덜란드 ASML로부터 우선적으로 받기로 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인텔과 최소한 동등하게 최첨단 반도체 장비를 확보할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겔싱어의 야망이 한국 반도체업계에 후폭풍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한편 세계 반도체 통계 조직인 WSTS는 지난 11일 2021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전년대비 26.2% 증가한 5560억 달러(약 680조 5000억원)라고 발표했다. 또 올해 시장규모를 지난해보다 10.4% 성장한 6135억달러(약 751조 원)로 전망했다. 시장 성장 규모는 센서 카테고리가 17.2%, 로직이 17.1%, 아날로그가 14.1%로 뒤를 이었다. 메모리 카테고리는 1.1%로 시장 성장률이 가장 낮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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