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빗팩토리는 지난 2016년 보험사와 통신사 신사업을 담당하던 이동익 대표가 창업한 핀테크 기업이다. 창업 1년여 뒤 합류한 정윤호 공동대표는 30세에 스타트업을 시작한 창업가로 이동익 대표와는 기업 투자 담당자와 투자를 받는 업체 대표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 대표가 금융, 신사업 전문가라면 정 대표는 스타트업 성공의 경험을 보유한 서비스 기획 전문가였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분야는 많은 소비자에게 늘 어렵게 다가오는 ‘보험 상품 선택 전 과정에 대한 혁신’이었다.
자체 개발한 소비 분석 엔진과 보험 분석 엔진을 핵심으로 한 ‘시그널 플래너’는 소비자 입장에서 직면하는 페인포인트(Pain point, 소비자가 불편을 느끼는 지점)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자동화된 기술과 프로세스로 각 소비자가 자신에게 가장 최선의 보험 포트폴리오를 갖추도록 돕고 있다.
특히 많은 소비자가 부담을 느끼던 보험금 청구 정보를 쉽게 알려주는 ‘의료비 가계부’는 호응도가 높다. 보험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보험 가입자 중 90%가 입원 의료비를 한번도 청구하지 않았고, 70%는 통원 의료비조차 청구하지 않았다. 이는 대부분의 소비자가 보험금 청구 과정에 부담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빗팩토리의 시그널 플래너 속 의료비 가계부는 병원이나 약국에서 의료비를 신용카드로 결제 할 때 결제 알림 SMS를 분석 후 내가 가입한 보험과 연계해 보험금 청구 가능 여부를 알려주는 서비스다.
이와 같은 플랫폼을 구축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결과는 놀라운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시그널 플래너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20만을 넘고 있고,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6만 가까이 나오고 있다. 다운로드 수치에 비해 MAU 비율이 꽤 높은 셈이다.
주목할 점은 앞서 언급한 MAU 수치가 마이데이터 사업과 금융소비자법 사이 충돌하는 부분의 해석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고 일시적으로 보험 비교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에서 나오는 성과라는 점이다. 해빗팩토리는 올해 초 이미 금융위원회로부터 마이데이터 사업자 본허가를 획득했다.
현재 해빗팩토리는 금융당국이 정한 기준과 법에 저촉되지 않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조정하며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본격화되는 내년 1윌을 목표로 여러가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창업 당시 KB증권으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한 해빗팩토리는 이후 KB인베스트먼트, 엔텔스,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30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지난 8월에는 해빗팩토리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KB인베스트먼트, KB생명, 트랜스링크인베스먼트로부터 총 75억원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총 112억원의 누적 투자 유치를 달성했다.
정윤호 대표는 “현재 마이데이터 관련 기능성 심사를 앞두고 준비를 하고 있어 구성원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라며 “신규 투자 유치금은 기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그널 플래너 서비스 고도화를 비롯해 보험을 넘어 금융 상품 유통 전반을 혁신하는데 사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으로서 쟁쟁한 대형 금융사들과 나란히 마이데이터 사업자로 이름을 올린 배경에는 시장에 대한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창업 초기부터 다져온 기술력과 프로세스가 있다. 마이데이터 사업자에게 필수적인 API 시스템도 자체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마이데이터 사업은 금융당국과 금융사, 핀테크들 모두 처음 시도하는 탓에 혼선이 적지 않다.
이를 테면 플랫폼을 통해 보험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사업자의 경우 마이데이터를 활용한 보험 분석 및 비교 서비스와 이를 통해 개인에게 최적화된 상품 추천, 판매에서 나오는 수수료로 수익을 얻는 것이 주된 비즈니스 모델로 인식됐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보험 비교 추천 서비스를 중개 행위로 규정하며 문제가 됐다. 금융당국은 각 업체들이 이러한 서비스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보험 중개 라이선스를 획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금소법 내 보험업법에 따르면 마이데이터 사업자는 보험 중개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마이데이터 사업 모델과 금소법이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여러가지 방안을 검토중이며, 해빗팩토리 역시 이에 맞춰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정 대표는 “마이데이터 사업 취지가 금융소비자 권리 보호인 만큼 금융당국의 안내에 따라 절차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고객들이 느끼는 불편을 해소하는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금소법과 마이데이터 사업이 일부 충돌하는 요소가 있긴 하지만 금융당국으로서는 금융소비자 보호가 중요한 책임이고, 업체들을 어렵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희를 비롯해 각 회사들은 그에 맞게 대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이데이터 사업의 지향점 중 하나는 고객들에게 좀 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니까요. 그간 고객들이 보험 분야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기술과 서비스로 충분히 해결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저희가 하려는 것이에요. 그런 측면에서 금융당국도 같이 고민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하나 이상은 가입하고 있는 보험이지만, 정작 내가 받는 혜택은 무엇인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험사 선택 시에도 브랜드를 따지거나 지인들의 추천을 받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보장이 필요한 순간이 되면 다시 보험사에 연락을 해 문의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복잡한 약관에 깨알같이 명시된 한 문장 때문에 보장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설계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보험 계약을 하지만 사고나 재난에 직면한 상황에서 뒤늦게 특약 등의 설계가 이상하게 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정 대표는 “현행 보험 판매 구조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며 해빗팩토리가 진행해 온 서비스의 목적을 설명했다.
“다른 금융상품과 다르게 보험은 한번 계약을 체결하고 나면 돈을 넣다 뺐다 하기도 어렵고, 오래 납입을 해야 하죠. 금액도 크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이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하기 쉽지 않은 상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설계사에게 위임을 하게 되는데, 일부 설계자는 본인의 수익이 높은 상품 중심으로 설계를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해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저희가 처음 세운 목표는 ‘보험 분석을 잘 해주자’였어요. 하지만 서비스를 구축하고 진행하다 보니 금융은 생각보다 해석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죠. 일반 고객들이 보험을 쉽게 알기 위해서는 정보를 표준화하고 그룹화 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기존 보험 약관이나 항목을 봐서 잘 모르던 것을 알기 쉽게 한 다음에는 고객이 처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불필요한 항목을 해지하거나 부족한 항목을 추가로 가입하는 프로세스가 필요합니다. 고객 스스로 내 보험에 대한 이해가 돼야 저희도 자신 있게 고객들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제안할 수 있거든요.”
이를 위해 해빗팩토리가 가장 공들인 것은 분석과 자동화 프로세스다. 이는 한 명의 설계사가 보험 분석 및 상품 추천, 계약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모두 관리하는 기존 보험업계 방식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먼저 고객은 자신의 보험 내용이 시그널 플래너 앱의 자동화된 알고리즘으로 분석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추가적인 상담을 원할 경우 카카오톡을 통해 1차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 상담원은 시그널 플래너로 분석된 고객 보험 가입 정보를 기반으로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한다. 고객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앱을 통한 분석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고, 추가적인 상담으로 궁금증을 구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필요 없는 항목 해지와 신규 상품 가입을 원할 경우 2차 상담을 통해 추가적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실질적으로 보험 가입을 원하는 고객들은 해빗팩토리의 자회사인 시그널파이낸셜랩의 정규직 설계사를 통해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체험한 고객의 만족도는 평균 4.8점에 달한다.
정 대표는 “이러한 자동화된 분석 엔진,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며 그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 놨다.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으니 시작할 수 있었다”는 그의 말에 스타트업의 치열함과 그 이면에 깃든 고단함이 엿보였다.
“사업 초반에는 보험 정보들이 마구 들어오는데, 초기에는 그야말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진행을 했어요. 지금이야 자동화 시스템이 구축 돼 있지만, 처음에는 정말 엉덩이 무겁게 의지를 가지고 이걸 꼭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갔어요. 각 보험사 공시에 오른 약관을 다운 받아 분류 작업을 하는 과정이 특히 쉽지 않았죠. 또 들어오는 고객들의 정보들을 약관 단위로 분류해야 했고요. 특히 보험 상품은 특약이라는 옵션의 집합이잖아요. 특약 정보들에 대한 분류를 제대로 안 하면 정확한 분석을 할 수가 없죠. 보험사 데이터가 100% 정확하지도 않아서 하나씩 검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이렇게 분류 분석을 하고 백데이터가 형성된 상태에서 고객 정보가 들어오면 이 고객이 어떤 담보를 가지고 있고 계약이 언제까지인지 등을 분류해 분석 결과를 보여주는데, 고객들은 이런 복잡한 과정 없이 내가 어떤 것이 있고 어떤 것이 없구나 언제까지 얼마를 보장 받는구나를 한 눈에 쉽게 확인 할 수 있는 거죠. 고객 편의성은 높지만 뒷 작업이 꽤 필요한 과정들이었어요.”
사업 초기 수작업으로 진행하던 작업들이 쌓이며 현재는 70% 수준으로 자동 분류가 이뤄지고 있다. 정 대표는 “초기에 약관을 하나씩 분류했다는 말에 코웃음 치던 보험사들도 지금에는 저희한테 보장분석 솔루션을 팔라고 한다”며 점차 고도화돼 가고 있는 시스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는 기존 금융사를 비롯해 빅테크 계열 핀테크 기업들이 경쟁하는 시장에서 해빗팩토리가 고객들의 선택을 받는 이유기도 하다.
“상해사망이라고 하면 다쳐서 사망 시 보험금이 나오는 항목인데, 이걸 세분하면 교통사고 상해 사망, 대중교통 상해사망 등 여러가지 상황이 될 수 있어요. 저희는 이걸 다 설정해 놓죠. 내 보험에 상해사망 보장 항목이 있는데 대중교통 사고로 사망했을 때는 얼마가 지급되는 한번에 알 수 있게 해 놓은 거예요. 쉬워 보이지만 분류를 해 놓지 않으면 제공할 수 없는 정보죠. 이처럼 저희는 특정 상황에 대한 보장 안내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건 어디에서도 하지 않고 있는 거죠. 이런 세부 상황들에 대한 분류를 잘 정리해서 표준화시켜 놓으면 고객들이 이해하기 더 쉽거든요. 마이데이터 서비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고객들이 원하는 건 대단한 것이 아니예요. 토스나 카카오페이도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이유는 잔액 조회, 송금, 결제 등 가장 기본적인 뱅킹 이슈를 단순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보험 역시 내가 무슨 보험에 가입해 있고 어떤 상황에서 돈을 받을 수 있는지를 쉽게 알려주고 청구도 부담 없이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가 돼야죠. 그래야 마이데이터 시대에 고객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내년 1월 마이데이터 서비스 시행을 앞두고 해빗팩토리는 우선 보험 분야 서비스의 내실을 다지며 대출, 연금, 저축 등 각 금융 분야로 확장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물론 보험에 특화된 자동화 시스템이니 만큼 각각의 서비스에 맞는 시스템 구축도 필수적이다. 그 과정에서 빅테크, 대형 금융사와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정 대표는 “지금과 같이 기존 업계에서 손대지 않았던 난제들을 소비자 편익에 최우선을 두고 풀어간다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확신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마존을 이긴 스퀘어 같은 스타트업도 있잖아요. 빅테크 등의 서비스가 거창해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서 차별성은 고객들이 느낄 것이라 생각해요. 그들이 보험을 한다고 해도 우리가 하는 것만큼 잘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웃음). 게다가 저희도 끊임없이 혁신하는 중이고요.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객 입장에서 서비스한다’가 저희가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이것 저것 신경쓰기 보다 거기에 집중하려고요. 아, 저희가 극복해야 할 경쟁상대가 있긴 하네요. 기존에 보험이나 보험사에 대해 고객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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