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은 황동혁 감독이 무려 12년간 간직해 왔다던 꿈의 프로젝트였다고 하죠. 넷플릭스를 만나면서 실제 작품으로 만들어졌고 꿈을 이루게 됐습니다. 홀로 연출도 하고 각본도 썼습니다. 어떤 인터뷰에서 (오징어게임으로) 치아가 8개나 빠져나갔다면서 마음고생이 엄청 심했다고 전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오징어게임>은 OTT 역사를 새롭게 쓴 콘텐츠가 되었고 K 콘텐츠와 K 문화를 동시에 알리게 된 어마어마한 작품이 되었죠. <오징어게임>은 시즌2를 넘어 시즌3까지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오징어게임>의 시즌2가 무려 1천억 원이라는 제작비가 투입되었다고 했는데 사실 이 제작비는 주연진의 개런티를 제외한, 시즌3까지 합친 금액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시즌1의 제작비는 약 253억 원이었습니다. 작중 주인공이 거머쥐게 될 상금 456억 원의 절반 수준인 셈이죠. 1천억 원이라는 금액은 한국 드라마 사상 최대의 제작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라는 측면이라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의 제작비는 약 2천억 원 수준. 텐트폴 영화의 통상적인 제작비(사실 '통상적'이든 '일반적'이든 이렇게 말하긴 뭐 한 것이 어떤 작품이 만들어지게 되고 또 누가 등장하느냐에 따라 워낙 달라서 '통상적'이라는 말이 잘 맞을지 모르겠지만)로 알려진 것이 약 150억 원~300억 원 규모라고 봤을 때 10배나 되는 수준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이번에 어벤져스 감독이 엄청난 작품을 가져온다던데?"
"근데 그 작품 제작비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아?"
<어벤져스>의 루소 형제가 제작한 디스토피아 SF 장르의 <일렉트릭 스테이트>의 제작비는 약 4천500억 원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미 예고편이 등장했고 꽤 기대감을 높였죠. (넘사벽 제작비보다 루소 형제의 연출과 SF 장르가 더욱 눈길을 끌었다는 이유만으로 기대 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이 제작비에는 마케팅 비용이 빠졌다고 합니다. <레드 노티스>라는 길티 플레저 무비이면서 킬링타임용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드웨인 존슨과 갤 가돗, 라이언 레이놀즈 등이 등장했습니다. 넷플릭스의 영화 중에서 시청 수가 가장 높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제작비는 약 2억 달러. 그런데 이 중 주인공 3명의 출연료가 무려 6천만 달러라고 합니다. 한 사람 당 2천만 달러라는 건데 한화로 따지면 대략 200억~300억 원 수준인 셈인데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비 수준이라는 거죠. 사실 물가는 줄곧 상승하고 있고 그만큼 인건비도 늘어나는 추세랍니다. 콘텐츠 제작비 또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수준으로 폭등하고 있죠.
"이번 tvN 드라마 완전 망해서 제작사 주가까지 떨어졌대"
사실 우리나라 드라마의 제작비도 과거에 비하면 꽤 많이 올랐겠죠.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드라마인데) 약 18%의 시청률 올린 <미스터 션샤인>은 약 430억 원이 투입되었고 평균 시청률 2%대에 머물면서 망작이 되어버린 <별들에게 물어봐>의 제작비는 500억 원대였습니다. 흥행과 참패는 관객수나 시청률로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렇게만 보면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냐는 또 다른 문제 같군요. 물론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더 나을 테니 예산이라도 충분하다면 제작진의 여건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더구나 CG 하나, 그래픽 하나를 넣어도 그게 다 돈이고 배우 출연료부터 인건비, 마케팅 비용, 세트, 의상, 카메라, 미술, 헤어, 장비 심지어 식비까지 들어가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닐 테니까요. 그러한 측면에서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 투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보입니다.
<오징어게임>도 넷플릭스라는 투자자를 만났고 수면 아래 있던 시나리오를 끄집어 내 현실화시켰으며 그걸 또 대성공시켰으니 넷플릭스 입장에서도 콘텐츠의 퀄리티를 더욱 끌어올릴 수 있는 잠재력 있는 'K-크리에이터'를 키워 또 다른 성공을 이룰 수 있다면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다만 이러한 투자 비용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는 미지수입니다. 제작사가 매년 기대를 걸고 내놓게 되는 텐트폴 영화의 경우에도 기대보다 실망하는 케이스도 은근 다반사인걸 보면 물적으로 심적으로 공을 들인 투자가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볼 순 없으니까요. 어쩌면 모험이겠죠.
"너 OTT 몇 개나 구독해?"
"넷플릭스랑 디즈니플러스랑 쿠팡... 그리고"
한편 공중파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제작되는 편인데 OTT 콘텐츠와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입니다. 투자 대비 수익성이 낮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곤 하지만 그렇다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차별화 전략도 신선함도 부족한 편으로 보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가끔 화제가 되는 드라마들이 나오기도 하죠. 뭐 어찌 됐든. 본격 OTT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시청자들은 공중파나 종편채널은 물론 유튜브나 OTT 플랫폼까지 선택의 폭이 엄청 넓어졌어요.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에 웨이브며 왓챠까지 다양한 플랫폼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코드 커팅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코드 커팅(Cord-Cutting) 출처 : DALL-E
여기서 코드 커팅이란 기존 케이블 TV나 공중파 방송 등을 해지하고 OTT 서비스만 이용하는 행태를 말합니다. 예전에는 TV 앞에 둘러앉아 드라마 같은 걸 보며 다 같이 웃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각자 (모바일이든 태블릿이든 노트북이든) 디바이스 하나씩 들고 서로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는 중입니다. 때때로 '함께 보는' 콘텐츠가 있기도 하지만 말이죠. OTT를 통해 공개되는 콘텐츠가 무조건 공중파보다 재미있다고 단언할 순 없겠습니다. 서로가 '대작'이라며 블록버스터 스케일을 방불케 하는 작품들을 내놓기도 하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들도 잦긴 했죠. 뭐랄까 10개를 던지면 한두 개 정도 화제가 된다고나 할까? 엄청난 스케일에 화려한 연출, 잘 나가는 배우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서사가 빈약해지는 경우들도 생기는 법이죠. 때문에 기대감만 증폭시켰다가 실망만 가득했던 경우도 많긴 했죠.
OTT 중심의 콘텐츠 제작 환경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요? 지나치게 높은 제작비는 여전히 부담입니다. 그렇다고 잔뜩 올려놓은 예산을 줄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겠죠.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 대비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 블록버스터급 제작비가 단순히 볼거리만 제공한다면 그건 결국 실망 가득한 망작이 되고 말겠죠. 지금 시청자들의 눈은 상당히 높아져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으니까요. 때론 감동적이고 때론 스펙터클 하면서 때론 예상할 수 없는 반전 가득한 스토리도, 시나리오를 찢을 만큼 아주 강력한 캐릭터도 그리고 이를 잘 버무릴 줄 아는 센스 있는 연출도 요구됩니다. OTT 플랫폼이 콘텐츠 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닙니다. 지속 가능한 변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