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3대 거짓말이 있다. 장사꾼이 밑진다는 말,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 그리고 노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이다. 아마도 최근까지 노년의 삶은 질병과 외로움으로 점철되는 듯한 인식이 강했던 탓이리라.
한국의 65세 고령 인구는 내년 1000만명을 넘는다. 바야흐로 총 인구의 20% 이상을 노년층이 차지하는 초고령사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이들 노인들의 삶이 그저 남은 여생을 어찌저찌 때우다 가는 것이라면 얼마나 서글플까? 더구나 이는 현재 노인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인간 삶의 상수 중 하나는 ‘누구나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이니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세상이 바뀌고 있다. 최근 정부 기관과 지자체를 중심으로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의료 시스템의 선진화로 60대의 기력은 과거 40~50대 못지 않은 것도 변화 요인 중 하나다. 적어도 노년의 삶을 영위할 만한 경제력만 뒷받침 된다면 이제 노인들은 짐짓 체면만 차리는 ‘뒷방 늙은이’ 역할은 거부하는 모양새다.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다.
이미 수년 전부터 고리타분한 노년의 삶을 거부하는 ‘액티브 시니어’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제 60대는 노인이라는 말 조차 무색하며 70대에 접어들어서도 세련된 패션과 젊은이 못지 않은 라이프 스타일을 향유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변화에 발맞춰 국내 실버산업 시장의 규모도 2030년 168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대중 서비스가 젊은 세대 중심으로 기획된다는 점이다.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역시 스타트업이다. 의욕은 넘치지만 제대로 된 맞춤형 서비스를 찾지 못했던 노인들을 위해 최적화 된 라이프 스타일, 콘텐츠, 커머스 서비스를 선보이는 두 스타트업을 알아봤다.
액티브 시니어 서비스 브랜드 ‘오뉴’ 선보인 로쉬코리아
로쉬코리아가 액티브 시니어의 여가와 취미, 커뮤니티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오뉴’를 선보인 것은 지난 2022년의 일이다. 이후 오뉴에는 매월 100개 이상의 다양한 콘텐츠가 선보이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의 일상 속 놀이터’를 표방하는 ‘오뉴’는 프로그램 기반으로 오프라인 거점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최근 로쉬코리아는 5060세대를 위한 IT 교육 특화 프로그램을 론칭하기도 했다. ‘나만 몰랐던 챗GPT 활용법’, ‘인스타그램 스타트! 초보자를 위한 첫걸음’, ‘일상을 편리하게, 네이버 활용법’ 등이 프로그램의 주제다.
최근 블루포인트 데모데이 무대에서 만난 현준엽 로쉬코리아 대표는 “오뉴는 여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에 주도권을 갖고자 하는 분들, 사람들과 교류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사회 관계망에 뛰어드는 분들, 인생 이막을 위해 자기 개발에 적극 나서는 분들을 액티브 시니어라 정의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을 위해 오뉴는 시니어를 위한 공간과 이들에 최적화된 호스피탈리티를 연결해 액티브 시니어의 삶이 사회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복합 공간 ‘오뉴하우스’, 특별한 공연과 인사이트 넘치는 강연 프로그램 ‘오뉴 스테이지’ 액티브 시니어의 여가 생활을 위한 프로그램과 커뮤니티 ‘오뉴 오리지널 콘텐츠’가 그것이다. 로쉬코리아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재능을 가진 이들과 함께 프로그램과 커뮤니티를 중개하는 오픈마켓 형태의 파트너스 플랫폼도 운영 중에 있다. 이는 앞서 언급된 대표 서비스에 더해 매거진, 커머스, 광고 등과 연계돼 총 9가지의 서비스 플라이휠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현 대표는 오뉴 오리지널 콘텐츠와 관련해 “지난 3년 동안 약 1만명 이상의 시니어 분들을 직접 만나 쌓은 경험치를 데이터로 치환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키 서비스”라고 강조하며 “오프라인 공간과 프로그램이 연계된 오뉴만의 시그니처 서비스로 인식돼 가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렇듯 오뉴 서비스를 매월 유료로 결제하는 액티브 시니어 고객만 지난달 기준 600명을 돌파했고, 온라인 앱 가입자는 8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복합 문화공간을 방문하는 시니어들 역시 분기 단위 2만명을 돌파하는 등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현 대표는 “로쉬코리아가 오뉴 서비스를 통해 구상하는 비전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만약에 여러분들 집 주위에 있는 주민센터, 경로당, 복지관 또 백화점과 마트의 문화센터 등에 시니어 카테코리를 오뉴가 담당하게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그리고 그중 일부 공간을 저희가 위탁 운영 대행하며 전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저희는 이 시장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상정해 뒀고, 그 규모는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시니어 패션, 메이크오버 프로그램 등을 통해 멋진 노년을 만들어 가는 더뉴그레이
이른바 ‘황학동 아저씨 패션’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다른 관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찌됐던 그들의 관점과 다르게 국내에서 형형색색의 등산복 혹은 미스매치 느낌의 노년층 패션은 희화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노년의 남성’은 유독 패션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소외됐다’는 표현이 더 적당한 집단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더뉴그레이가 주목하고 변화를 시도한 것이 바로 패션 소외층의 극단에 있는 노년 남성들 패션이다. 시니어 패션 콘텐츠 스타트업을 표방하는 더뉴그레이는 지난 2014년 ‘우리도 언젠가 될 아저씨를 바꿔보자’는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그 아이디어는 지난 2018년 “우리 아빠 프사 바꾸기’ 메이크오버 클라우드 펀딩으로 이어지며 더욱 구체화됐다.
이에 앞서 더뉴그레이는 시니어 인플루언서 아카데미를 베이스캠프로 시니어들과 함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일에도 나섰다. 블루포인트 데모데이에 나선 더뉴그레이의 유대영 이사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시작된 작은 시도를 돌이키며 말을 이어갔다.
“2014년 작은 사회적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응암동에 있는 어느 골목 카페 사장님을 찾아가서 멋진 옷을 입혀드리는 일로 시작됐죠. 단지 옷을 바꿔 드렸을 뿐인데 생각과 눈빛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따님과의 관계도 더 좋아지시더군요. 이런 경험을 하며 저희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낼 게 아니라 프로젝트로 확대해 보기로 했고 10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용돈을 주시는 분도 계셨고,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는 분도 계셨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불편한 감정이 생기더군요. ‘왜 하루만 멋져야 할까’ ‘나머지 일상도 멋져질 수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저희 더뉴그레이의 비전이 정해졌습니다.”
‘일상을 바꿔서 세대를 바꾸고 세대를 바꿔서 산업을 바꾸자’는 비전을 바탕으로 더뉴그레이는 평균 60세의 시니어 아이돌 ‘아저씨즈’를 만들어 새로운 시니어 라이프 스타일을 입체적으로 그려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닌 기존에 없던 시니어 세대의 모습을 제시하고 콘텐츠화하려는 작업들로 이어졌다. 그 결과 더뉴그레이는 시니어 콘텐츠 전문 제작사이자, SNS 30만 유저를 보유한 미디어 운영사, 시니어 아케데미 운영, 시니어 모델 에이전시, 중년 남성 패션 비즈니스를 시도하고 있다. 더뉴그레이의 권정현 대표는 그 목표를 ‘이 시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닉 우스터’처럼 만들고 싶다’는 말로 언급한 바 있다. 더 나가 한국 아저씨를 외국 어디에 내 놔도 이탈리아 아저씨 못지 않은 멋진 아저씨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성을 토대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나간 더뉴그레이는 현재까지 약 60여개 브랜드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처럼 시니어를 바꾸고 콘텐츠를 통해 산업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2년간 1300% 성장이라는 성과를 낸 더뉴그레이는 연간 200명의 시니어 크리에이터를 배출하며 시니어 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다. 이들이 배출한 크리에이터들의 합산 팔로워 수는 이제 100만에 육박하고 있고 조회수 500만이 넘어가는 콘텐츠도 적지 않다. 이날 유 이사는 “10년간 오프라인에서 시니어 분들을 직접 만나며 쌓은 세 가지 자산이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더뉴그레이가 쌓은 세 가지 자산은 시니어 아저씨들을 모던한 시장으로 끌어올 수 있는 콘텐츠 IP, 그리고 롤모델이 되어 줄 시니어 인플루언서, 함께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 입니다. 이 세가지가 준비된 상황에서 저희가 시도하고 있는 또 다른 것이 시니어가 주인공인 브랜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희가 이 문제를 최초로 해결한다면 글로벌에서도 이니셔티브를 가져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