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노바대 비즈니스 스쿨의 존 피어스(John Pearce II) 교수는 불황기에 신제품 개발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기업들에게 ‘제품 재구성(Product Reconstruction)’을 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추억의 제품을 업그레이드해서 새롭게 만들어 보라는 거죠. 이렇게 하면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단 훨씬 적은 비용과 노력이 듭니다.
실제 이 방법으로 최고의 성과를 낸 회사가 있는데요. 바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의 자동차그룹 ‘피아트’입니다. 마세라티, 페라리 같은 유명 브랜드를 여럿 거느린 이 회사는 한때 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무리하게 사업을 키운데다가 유럽 내 경쟁사들뿐만 아니라 일본 자동차까지 급부상하면서 시장점유율이 크게 떨어졌죠. 결국 2,000년대 초 피아트는 누적적자 120억 달러를 기록하며 매각 위기까지 겪게 됐는데요. 이런 위기를 극복한 사람이 바로 새로 부임한 CEO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입니다. 그는 대체 어떻게 한 걸까요?
그는 오래 전, 회사의 히트 상품이었던 피아트 500을 부활시켰죠. 단종된 지 32년만의 일이었습니다. 피아트 500은 원래 1957년 전쟁이 끝난 뒤 불어 닥친 불경기 속에서 가난하고 지친 국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경차였는데요. 당시 싸면서도 성능도 좋고, 디자인도 귀여워서 큰 인기를 끌었죠. 국민자동차로 불리면서 거의 400만대나 팔렸습니다.
그러나 경제상황이 차츰 나아지면서 사람들은 경차보다 큰 차를 찾게 됐고, 이로 인해 피아트 500은 1975년 단종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2,007년에도 피아트 500을 처음 출시한 1957년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죠. 이탈리아를 포함한 몇몇 유럽 국가들의 성장이 느려지고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싸고 성능 좋은 경차를 찾게 된 거죠. 이런 현상을 보고 마르치오네 회장은 어떤 결단을 내렸을까요?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이 때 피아트 500을 되살린다는 결정을 한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 하면 기존 공정을 활용해 생산비를 크게 줄일 수 있어 실패위험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귀여운 디자인의 '피아트 500' (출처: Fiat 홈페이지)
그렇다고 100% 그대로 출시한 것은 아닙니다. 피아트 500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는 ‘제품 재구성’ 작업을 했죠. 일단 사람들이 향수를 느낄 수 있게 3미터의 작은 크기나 내부 구성은 예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반면 엔진이나 외부 디자인에는 변화를 주었는데요. 이를 위해 미니 쿠퍼를 재구성해 큰 성공을 거둔 적 있는 디자이너 프랭크 스티븐슨Frank Stephenson을 영입했죠. 그는 트렌드를 반영해 곡선을 좀 더 추가하고 애플의 ‘아이팟’을 모토로 단순함과 귀여움을 살려 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피아트는 세련된 마케팅까지 더해 사람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했는데요. 구찌, 페라리, 바비처럼 소비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다양한 브랜드들과 각양각색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 거죠. 덕분에 옛 것에서 흔히 느껴지는 올드함, 지루함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대히트를 쳤죠. 원가가 적었기 때문에 이익이 특히 높았고요. 덕분에 회사의 효자상품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다시 출시된 후 지금까지 약 150만 대의 누적 판매 대수를 기록했고요. 덕분에 회사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큰 돈 들여 신제품 개발하는 게 망설여지시나요? 그렇다면 잊고 있던 우리 제품을 한번 돌아보세요. 그리고 그 제품을 고객들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 하는 겁니다.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역주행을 이끌 수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