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의 출범은 강력한 콘텐츠 IP 비즈니스 역량과 플랫폼 네트워크의 결합으로 주목받았다. 웹툰·웹소설부터 음악·영상·디지털·공연 등 콘텐츠 기획 제작, 글로벌 플랫폼 네트워크까지 아우르는 종합 IP 밸류체인의 등장이었다.
이후 카카오엔터는 국내를 벗어나 “거대한 IP 밸류체인을 바탕으로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과 경쟁”을 선언하는 새로운 ‘글로벌 비전’을 발표했다. 북미 최대의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 웹툰 플랫폼 타파스, 세계 최대 ‘아시아 판타지’ 웹소설 플랫폼 우시아월드를 차례로 인수하며 ‘글로벌 스토리 IP 삼각편대’를 구축한 것도 이와 같은 계획의 일환이었다.
이와 함께 카카오엔터는 2020년 웹툰의 영상화 트렌드를 창출했던 ‘슈퍼 웹툰 프로젝트’를 글로벌 규모로 확장, 지난 3월 새롭게 론칭했다. 글로벌 플랫폼 확보, 이를 통한 웹툰·웹소설 원작의 강력한 스토리 IP 론칭·확산 전략이 진행된 것이다. 여기에 카카오엔터는 자사가 가장 잘하는 스토리 IP 비즈니스에 카카오 공동체가 보유한 IT 기술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전략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빠르게 전개되는 글로벌 공략에도 불구하고 류정혜 카카오엔터 마케팅본부장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카카오엔터는 꼬꼬마 스타트업에 불과하다”며 섣부른 성공 예측에 선을 그었다. 류 본부장의 관심은 단기적인 성과보다 ‘이제까지 카카오엔터가 구축해 온 방식을 글로벌 시장에 적용하는 한편, 좀 더 다른 방식의 IP 비즈니스를 발굴하는 것’에 집중 돼 있다.
카카오엔터의 스토리 IP 전략을 추진해 나가는 핵심 멤버로서 류 본부장이 그리는 글로벌 비전과 전략은 무엇일까? 오는 7월 6일 ‘콘텐츠 마케팅 인사이트’에서 ‘팬덤과 함께 만드는 스토리 IP 마케팅 : 세이렌 캠페인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강연에 나서는 류 본부장을 만나 먼저 이야기를 들어 봤다.
한때 애니메이션 하청을 했던 우리나라, 웹툰 강국이 된 이유는?
류정혜 본부장은 NHN, 잔디를 거쳐 카카오페이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이르기까지 서비스, 콘텐츠 부문의 마케팅 전문가로 커리어를 쌓아왔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본부장으로 웹툰·웹소설 원작의 막강한 스토리 IP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서는 현재, 지난 시간들에서 쌓은 경험과 인사이트는 오롯이 반영되고 있다. 그러한 류 본부장이 생각하는 콘텐츠 마케팅, 그리고 한때 일본, 미국 등의 애니메이션 하청국이었던 우리나라가 글로벌 웹툰 시장에 혁신을 주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Q NHN, 잔디를 거쳐 카카오페이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서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20여년의 커리어를 통해 경험한 각 사업의 마케팅 특징은 무엇인가?
마케팅 측면에서 보자면 사실 지금까지 인터넷·테크 기업에서 줄 곳 일을 했으니 경험의 폭은 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의 콘텐츠 마케팅을 보자면 전통적인 산업 영역과 디지털이 결합돼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NHN에서 커뮤니티 관련 인터넷 서비스 마케팅을 주로 했고, 절반 정도는 게임 콘텐츠 마케팅을 담당했다. 카카오에 합류한 후에는 주력이 스토리 IP가 됐는데, 사실 콘텐츠라는 점은 다르지 않았다.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테크 베이스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게 전통적인 비즈니스 영역의 마케터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 할 수도 있겠다. 처음 이 분야에 몸담을 때부터 마케팅을 할 상품은 물론 수단까지 모두 온라인, 디지털이었다.
Q 테크 베이스라고 하지만 온라인 서비스와 콘텐츠 마케팅은 차이도 적지 않을 듯한데?
서비스 마케팅의 경우 대부분 플랫폼 서비스다보니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해주는 게 중요했다. 그 서비스가 가지는 특징,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 이런 부분들에 대한 느낌이나 이미지를 사용자가 느끼게 하는 것이다. 반면 게임과 같은 경우 마케팅의 역할은 대부분 경험을 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일단 와서 가입을 하고 게임을 다운받고 시작하게 만드는 것이 첫째 목표였다. 이때 동원되는 수단 역시 디지털이다. 정리하자면 서비스는 사용자들에게 ‘이 서비스가 당신의 삶에 어떤 것들을 말해줄 수 있다’는 것을 주로 마케팅했다면, 콘텐츠는 ‘경험’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서비스 마케팅의 경우 그 효용성이 명확하기 때문에 이용할 때와 안 할 때에 차이가 분명하다. 반면 스토리, 게임 같은 콘텐츠는 이걸 경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에 별 다른 지장이 없다. 세상에 콘텐츠는 너무나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죠. 이것이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Q 그렇다면 콘텐츠 마케팅에 있어서 사람들이 경험하게 하기 위해 카카오엔터가 적용한 전략은 무엇인가?
웹툰과 웹소설의 경우는 마케팅하면서 우리가 가장 많이 스터디하고 연구한 것이 드라마, 영화 마케팅 기법이다. 영화와 드라마가 스토리를 판매할 때 어떤 문법을 활용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인지에 집중했다. 게임도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스토리 마케팅은 조금 달랐다. 이 스토리가 가지는 매력, IP의 아우라를 어떤 식으로 포지셔닝해서 전달하고 짧은 시간 안에 기억하게 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영화와 드라마 분야는 그런 화법이나 메시지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다만 전통적인 문법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미디어를 접하고 살아온 디지털 네이티브인 세대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는 그 장점들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우리만의 문법을 찾아내며 마케팅을 해온 셈이다.
Q 우리나라는 한때 일본이나 미국 애니메이션 하청을 주로 하던 때도 있었다. 물론 당시 국내에도 좋은 만화가 많았지만, 지금의 K-웹툰과 같은 파급력은 없었는데, 우리나라가 오늘날 웹툰 강국이 된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가장 큰 차이는 처음부터 플랫폼 형태로 강력하게 시작했다는 점이라고 본다. 우리나라가 테크 분야에 일찌감치 눈을 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좋은 작가들이 많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이전에도 만화라는 IP는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하나의 플랫폼과 결합된 형태로 선보인 적은 거의 없었다. 기존 전통적인 만화 분야에서는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데 집중했던 것이고, 여기에 테크 쪽 플레이어가 나오면서 개별 콘텐츠 IP를 담는 플랫폼 측면으로 접근하게 된 셈이다. 이게 우리나라 웹툰이 산업화되고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본다.
2022 슈퍼 웹툰 프로젝트는 ‘글로벌 공략’… 글로벌 불법 유통에도 대응
2020년에 이어 올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시동을 건 ‘2022 슈퍼 웹툰 프로젝트’는 2020년 당시 전제였던 영상화 가능성 및 IP완성도, 작품성에 이어 ‘글로벌 가능성’이 추가됐다. 이를 바탕으로 본격화된 2022 슈퍼 웹툰 프로젝트는 지난 3월 가수 겸 배우 이준호를 페르소나로 내세운 ‘세이렌’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에 이어 최근 아이유와 함께하는 ‘도굴왕 원정대’ 캠페인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해 류 본부장은 “2020년 당시는 ‘천만 웹툰 시대를 열어봐야겠다’는 목표로 처음 슈퍼 웹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면, 올해는 글로벌 유통망이 셋업 된 상태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스토리 IP를 알리겠다는 목표로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Q 스토리 IP 마케팅은 카카오엔터가 2020년부터 진행해 온 ‘슈퍼 웹툰 프로젝트’와도 관련이 높을 듯한데, 올해 슈퍼 웹툰 프로젝트 특징은 무엇인가?
2020년 당시 슈퍼 웹툰 프로젝트라는 워딩을 ‘이태원 클라쓰’ 캠페인 때 처음 사용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막 시작된 시점에서 넷플릭스를 타고 영상화 된 ‘이태원 클라쓰’가 전 세계에 나가고 그야 말로 난리가 났다. 물론 원작 IP에 대한 관심도도 엄청나게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우리에게 글로벌 플랫폼이 있었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우리도 해보자’는 열망을 가졌던 것 같다. 그것이 결국 비즈니스적으로 지난해 북미 웹툰, 웹소설 법인 인수, 아시아 국가 법인 설립, 중국 합작 법인 설립 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본도 픽코마가 잘 하고 있었고… 이 모든 게 ‘이태원 클라쓰’ 이후 2년 간 진행된 거다. 이렇게 구축한 글로벌 유통망을 바탕으로 향후 ‘이태원 클라쓰’ 같은 스토리 IP들이 계속 론칭될 수 있는 구조는 만든 셈이다. 플랫폼은 플랫폼 대로 탄탄하게 구축하고 스토리 IP는 그대로 계속 키워 나가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동하는 상황으로 봐 주시면 될 것 같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웃음).
Q 이태원 클라쓰 이후 2년여 동안 웹툰 원작의 스토리 IP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다. 이제는 웹툰이 영화, 드라마에서 선호하는 스토리 IP가 되고 있는 듯한데?
2020년 ‘이태원 클라쓰’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인식에서 웹툰은 굉장히 마이너하게 인식됐다. 예를 들어 드라마는 시청률 5%인 것도 다 알고 있다. 5%를 사람 수로 환산하면 아마 대략 150만명 정도일 거다. 그런데 웹툰 작품은 100만 200만명이 본 것도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 일단 미디어에서 주목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셀럽이나 스타가 없으니까. 그래서 자조적으로 ‘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고 있다’는 얘기를 자주했다(웃음). 그런 상황에서 ‘이태원 클라쓰’가 성공했다. 이전까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웹툰을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약간 생소하고 가끔 있는 스페셜한 이슈였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변화가 생긴거다. 이제는 웹소설, 웹툰 원작 IP를 활용해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코어 팬덤이라는 매리트가 있다고 본다. 또 이미 검증된 스토리라는 인식도 생겼고… 이런 변화가 우리의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Q 카카오엔터는 글로벌 시장 진출에 드라이브를 거는 한편으로 최근 콘텐츠 IP의 글로벌 불법 유통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나?
글로벌 불법 유통 문제는 사실 가장 크고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도 그런 불법 유통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환경에 비하면 한국은 IP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훌륭한 정도다. 특히 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의 경우는 번역자 집단까지 있다. 문제는 그런 콘텐츠를 이용하는 유저들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유럽, 미국 역시 다르지 않다. 전 세계 적인 문제다. 마약 구글 등의 글로벌 빅테크 등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나 네이버 등과 같은 우리나라 콘텐츠기업들의 매출이 2~3배는 많아질 것 같다(웃음). 일례로 우리 웹툰 콘텐츠 IP 관련 오프닝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는데, 전 세계 언어로 댓글이 달렸다. 번역기로 돌려보니 ‘빨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우리가 아직 서비스 하지 않은 나라였다. ‘어둠의 경로’로 이미 다 봤다는 말이다. 그래서 ‘글로벌 불법유통 대응 TF’를 운영해 최근 5개월 간 성과를 백서로 만들었는데, 그 기간 불법유통 웹툰을 적발해 차단 한 건수가 225만건에 달한다. 그로 인한 피해 예방액이 2650억원 정도다.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지만, 앞으로도 글로벌 불법 유통에 대한 대응은 지속할 계획이다.
이후에도 류 본부장은 “콘텐츠와 기술의 결합에 따른 변화는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하며 그와 관련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다양한 노력과 전략들을 설명했다.
소셜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