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0일을 끝으로, 서울을 뜨겁게 달궜던 아트페어, '2023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이 막을 내렸습니다. 6일 개막하여 9일까지 진행된 프리즈 서울엔 7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았고, 이보다 하루 더 문을 연 키아프 서울에는 8만여 명이 방문했다고 하는데요. 이는 키아프 기준으로 작년 대비 15% 정도 증가한 수치입니다. 아쉽게도 두 아트페어 모두 거래액 실적은 공개하지 않았는데요. 업계 추정으론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을 거란 평가가 많다고 합니다. 작년 기준으로 프리즈는 6~8,000억 원 대, 키아프는 이의 1/10 정도 규모였다고 하네요.
이처럼 아트페어가 불러오는 경제적 효과는 이미 상당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아트페어란 전시 목적이 아닌 판매가 주목적인 일종의 미술 시장이라 할 수 있는데요. 아는 이들만 즐기던 아트페어가 작년을 기점으로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양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가 키아프와 손잡고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국내 미술 시장 규모 역시 1조 원 대를 돌파하였고요. 이제 아트페어는 그 자체로 엄청난 크기의 시장이자, 많은 브랜드들이 노리는 새로운 커머스 전장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키아프 서울이 확 커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감하게 프리즈와의 동행을 선택한 결단이 있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였던 키아프였지만, 더 빠른 성장과 더 큰 명성을 갈망하고 있었고요. 프리즈는 한국 시장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둘의 니즈가 서로 부합되면서 작년부터 5년 간 공동개최한 거로 합의한 거였는데요. 일단은 실리는 프리즈가 챙겼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키아프, 더 나아가 한국 미술 시장에도 득이 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키아프가 원했던 건, 아트페어를 기점으로 대중들의 관심이 쏠리고, 이들이 자연스레 컬렉터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었을 텐데요. 프리즈가 피카소와 같은 대가들의 작품을 가져오면서, 확실하게 아트페어는 역대급 흥행에 성공하게 됩니다. 실제로 행사장 내에서도 사람이 몰린 곳은 이러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었고요. 이렇게 형성된 대세감 덕택에 키아프와 프리즈는 연일 북적거릴 수 있었습니다.
키아프가 넘지 못했던 벽을, 프리즈와의 협업을 통해 가져온 킬러 콘텐츠로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아트페어 만의 프라이싱 모델도 개인적으론 감탄했던 포인트 중 하나였습니다. 이번 키아프와 프리즈의 입장권은 선택한 날만 입장 가능한 일반 티켓. 그리고 최대 4일 입장 가능한 프리뷰 티켓. 마지막으로 일반 관람객 대비 하루 앞서서 방문 가능하며 여러 부가 혜택까지 누릴 수 있는 VIP 티켓으로 나눠져 있었는데요. 가격 차등을 통해 입장객 수를 제한하여, 기존 핵심 고객들의 경험은 유지하면서 확장성은 더한 영리한 선택으로 보였습니다. 일부 명품 브랜드들이 오픈런 등으로 인한 고객 경험 저하로 핵심 고객이 이탈하는 일을 겪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고요. 특히 프리즈 서울의 경우 입출구를 3개로 늘리고, 편안한 동선 설계 및 시간 예약 도입 등을 통해 보다 쾌적한 관람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전시 환경 수준 개선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대세감 형성 콜라보와 세심한 경험 설계가 만났으니, 아트페어가 흥행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물론 일반적인 리테일 매장이나 행사에 비해서 분명 아쉬운 점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우선 개별 작품이나 작가의 매력에 대해 전하려는 노력이 적어 보였습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커머스 구매 전환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결국 상품 소개 콘텐츠입니다. 다만 처음 경험한 아트페어는 상품을 알리기보다는, 상품에 대해 잘 아는 고객들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에 가깝다고 느껴졌고요. 물론 QR코드 등을 넣어 작가나 작품에 대한 상세 설명을 전달하거나요. 엽서 등의 굿즈 등을 제공하며 작품을 각인시키는 시도들도 종종 보였지만, 여전히 아트와 대중의 간극은 크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근 국내 전시들이 다양한 기획을 통해 보다 쉽게 이를 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더욱 아쉬웠고요.
또한 아무래도 개별 갤러리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아트페어 전체를 연결하는 경험이나 색채, 브랜딩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도 다소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물론 프리즈가 세심한 조명 관리의 디테일로 개별 부스의 매력을 더한 것은 좋은 포인트였고요. 작년에 호평을 받아, 올해도 이어진 특별전과 신진 작가를 소개하는 키아프 플러스 같은 기획도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키아프 플러스에 대한 설명이나 안내가 부재하여 사전 조사 없이 왔다면 이를 온전히 누리기 어려운 상황이라, 이조차도 빛이 덜 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최근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고객 경험이 중요시되면서, 리테일이 전시회의 여러 속성들을 빌려오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판매를 위한 전시, 아트페어 관람은 참으로 흥미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는데요. 기회가 되신다면, 국내 아트페어나 미술 행사들을 방문하셔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관점들을 만나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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