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세계 1위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 파페치를 인수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5억 달러(약 6,500억 원) 규모로 알려졌는데요. 쿠팡이 글로벌 기업을 인수한 건 지난 2020년 싱가포르 OTT 업체 훅(hooq)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당시 훅 인수가 현재의 쿠팡 플레이로 이어진 만큼, 이번 행보 역시 또 어떤 전략적 의미를 담고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다만 파페치가 파산을 고려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던 만큼 당장은 우려의 시선이 더 커 보입니다. 쿠팡의 주가 역시 인수 발표 이후 5% 넘게 급락하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론 이번 쿠팡의 결정이 아마존을 능가하기 위한 승부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쿠팡은 아마존의 카피캣*으로 유명합니다. 현재의 명실상부한 국내 1위 유통기업이 되기까지, 해당 전략은 잘 통해왔지만요. 앞으로 더 성장하려면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AWS라는 강력한 캐시카우**를 보유한 아마존과 달리, 쿠팡은 오로지 커머스 사업으로 돈을 벌어야 하기도 했고요.
*카피캣(Copycat): 최초로 시장을 여는 혁신 기업의 사업 모델을 모방하는 전략
**캐시카우(Cashcow): 안정적으로 지속적인 현금을 창출하는 사업을 뜻하는 용어, 아마존의 경우 대부분의 영업이익이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인 AWS에서 나오고 있음
그렇기에 쿠팡은 아마존조차 실패했던 영역에서 성공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요? 아마존이 수차례 도전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카테고리로 보통 그로서리와 패션, 그리고 럭셔리를 꼽곤 합니다. 이중 쿠팡은 로켓프레시를 필두로 그로서리에선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지만요. 여전히 패션과 럭셔리에선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페치 인수야말로,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오랜 숙원이던 글로벌 확장의 길마저 열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였던 거죠.
하지만 당연히 아마존보다 위대해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파페치의 상황이 정말 녹록지 않은데요. 한때는 럭셔리 커머스의 미래라 불렸지만, 현재는 본연의 경쟁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파페치가 코너에 몰리게 된 이유는 모든 럭셔리 커머스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 때문입니다. 럭셔리 시장은 상품을 공급하는 명품 브랜드가 플랫폼 대비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는 글로벌 1위 사업자인 파페치도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전체 명품 시장 내에서 파페치 거래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으로 고작 1.3% 내외에 불과했으니까요.
파페치가 럭셔리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최근 실적 부진으로 더욱 약화된 상황입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명품 브랜드들이 본격적으로 온라인 채널 확장에 나서면서, 파페치의 입지는 더욱 좁아져 갔습니다. 이들은 플랫폼을 통하기보다는 자사몰을 구축하는 등 D2C 전략에 집중하였고요. 이에 따라 파페치는 좋은 상품 재고를 확보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고, 성장마저 차츰 정체되고 맙니다.
물론 파페치도 이러한 한계를 명확히 인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2019년에 오프화이트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뉴가즈그룹을 인수하였고요. 이어서 작년에는 2위 사업자, 육스네타포르테 인수를 발표하는 등 플랫폼 파워도 키우고자 했습니다. 다만 문제는 타이밍이었습니다. 공격적인 투자를 하던 시점에, 고금리와 고물가로 인해 명품 수요가 급감하자, 이는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결국 파산 위기 직전까지 몰리다가, 쿠팡에 인수당하면서 파페치의 이러한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납니다.
물론 쿠팡 역시 파페치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위기인 동시에 이는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요? 우선 쿠팡이 명성에 비해 비교적 헐값에 파페치를 품게 된 것은 확실합니다. 이후 성공 유무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겠지만요. 파페치의 시가총액이 최고점이던 당시 260억 달러에 달했던 걸 생각하면, 5억 달러는 매우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입니다.
명품 시장 수요 감소는 파페치에게 위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명품 수요 감소가 파페치에게 위기를 불러온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합니다. 21년 31.8%, 22년 20.3%에 달하던 글로벌 명품 시장 성장률이 올해는 5%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급하락 하면서요. 명품 브랜드들 역시 넘쳐나는 재고로 인해 그간 꺼렸던 할인 판매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명품 브랜드들은 D2C 전략을 강화하면서, 할인 판매에 적극적인 소매점이나 특히 온라인 플랫폼에 제품을 주지아 않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사실 이러한 행보는 폭발적인 명품 수요가 있었기에 가능했는데요. 수요가 줄면서 재고가 쌓여가자, 도매 채널이나 온라인 플랫폼의 필요성을 다시 체감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나이키 등 D2C를 강화해 왔던 패션 브랜드들도 동일하게 겪고 있는 상황이기도 한데요. 이와 같이 교훈을 얻은 패션 브랜드들은 앞으로 전략적으로라도 외부 채널 비중을 일정 부분은 유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현재 1위 플랫폼인 파페치가 다시금 업계 내 영향력을 회복하고 다시 도약할 기반을 마련하기에 적합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쿠팡은 앞으로 파페치와 함께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가능성을 보고 베팅을 한 걸까요? 저는 어느 정도 쿠팡이 라이벌 네이버의 행보에서 힌트를 얻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네이버가 포시마크를 인수하던 당시만 해도 오버페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요. 현재는 오히려 네이버 커머스 핵심으로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네이버가 포시마크와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로 이미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는데요. 본인들이 가진 광고 비즈니스나 라이브 쇼핑 등 기능을 빠르게 붙이면서,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 빠른 턴어라운드에 성공하였습니다.
물론 파페치는 쿠팡과는 정반대의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쿠팡의 핵심은 직매입과 물류인데 반해, 파페치는 판매 중개 형태의 마켓플레이스 사업에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사업 특성 때문에 파페치는 고객 경험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평가가 종종 있어 왔는데요. 같은 제품이라도 이를 등록한 업체에 따라, 상품 명도, 가격도 제각각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쿠팡이 가진 강점인 고객 편의성과 상품 표준화 노하우 등이 더해진다면 충분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인수가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며 마무리 지으려 하는데요. 우선적으로 가장 위기감을 느낄 곳은 역시나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등 명품 커머스 업체들일 겁니다. 이들은 명품 수요 둔화의 직격탄을 받으며 안 그래도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는데요. 훨씬 더 압도적인 구색을 가진 파페치가 쿠팡을 등에 업고, 국내 시장에 적극 진출한다면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백화점 업계도 긴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전히 백화점 실적의 핵심은 명품 브랜드가 좌우하고 있기에,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이 결코 달갑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명품 경쟁이 심해질수록 대안으로 떠오른 국내 신진 브랜드 확보 경쟁 역시 더욱 치열해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무신사 역시 일정 부분 유탄을 맞을 수 있는 상황이고요.
다만 역으로 쿠팡의 국내 시장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파페치가 글로벌 사업자인 만큼, 아예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에 드라이브를 걸 수도 있으니까요. 비록 쿠팡이 영업이익을 내고 있지만 아주 여유 있다고 보긴 힘든 터라 투자가 해외 사업에 집중된다면, 상대적으로 국내 활동은 위축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올해 하반기 들어 쿠팡이 성장성을 유지하기 위해, 쿠팡이츠나 쿠팡플레이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었는데요. 과연 그 기조의 변화가 있을지도 앞으로 유심히 지켜봐야 할 포인트가 아닌가 싶습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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