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계획된 적자’ 시즌2 시작하나요?

-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기업이 가장 무섭습니다

역대급 실적, 그러나 급락한 주가

쿠팡의 3분기 실적은 역시나 역대급이었습니다. 분기 기준 처음으로 8조 원대 매출을 올리며 신기록을 세운 건 물론이고, 5개 분기 연속으로 흑자를 이어갔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매출은 18%, 영업이익은 13% 증가했습니다. 그러자 언론에서도 쿠팡의 실적을 두고, '불황 속 나 홀로 질주'라 표현하며 칭찬하기 바빴는데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적 발표 뒤 시간 외 매매에서 쿠팡의 주가는 무려 7% 넘게 하락하고 맙니다. 직전 분기 1억 달러, 약 2천억 원 정도 되던 영업이익 규모가 40%나 감소하면서, 시장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이 급락의 주원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쿠팡의 이익 증가 추세가 멈춘 것은, 신사업 부문의 적자가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조정 EBITDA 기준으로 신사업 부문의 손실은 전년 대비해서 무려 2.6배나 커졌는데요. 작년 초부터 확실히 쿠팡은 긴축 모드에 돌입한 상태였습니다. 성장률이 다소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우선 손익 분기점을 맞추고, 흑자 전환 이후에는 이익 규모를 키우는데 집중해 왔는데요. 이번 실적이 보여주듯이, 올해 중순부터 쿠팡은 다시금 '계획된 적자'를 외치던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감한 경영 활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즌1과 달라진 점은

이처럼 공격적인 투자 재개에 나선 쿠팡, 다만 이전과는 크게 3가지 지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과거와 달리, 안정적인 수익 기반 하에 투자를 확대 중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이전의 쿠팡은 적자 구조였기 때문에, 온전히 투자 금액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당시의 투자 환경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다면, 쿠팡의 봄날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쿠팡은 지속 가능한 투자가 가능하고요. 핵심 사업인 커머스 부문이 정상 궤도에 오른 것은 물론, 이익률은 아직 낮더라도 워낙 매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러한 공격 모드를 앞으로도 충분히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과거 일각에선 AWS(Amazon Web Services)와 같은 확실한 수익원이 없는 게 쿠팡의 약점이라 지목하기도 했는데요. 아마존과 달리 본업인 커머스에서 안정적인 이익을 내면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쿠팡은 가진 것을 활용하여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방법을 알기에 더욱 무섭습니다

이와 같이 지속적으로 투자 가능한 동력을 확보한 것에 이어, 보다 효율적인 투자가 가능해졌다는 점도 이전과 달라진 부분입니다. 과거에는 쿠팡의 '계획된 적자'가 맨땅에 헤딩하기 식이었다면, 이제는 기본적으로 막대한 트래픽과 물류 인프라를 깔고 있기에, 이를 활용하면 보다 적은 자본을 투하하고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번 실적 발표 때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였던 쿠팡이츠의 로켓와우 회원 대상 10% 할인 프로모션만 해도 그러한데요. 2021년만 하더라도, 대대적인 '무조건 무료 배송'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할인 비용은 물론이고, 이를 알리기 위해 비를 기용하여 TV CF를 촬영하는 등 막대한 채널 비용도 지불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외부 광고 없이도, 무료인 인앱 알림만 활용하더라도 충분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티빙을 위협하며, 국내 토종 OTT 2위 자리를 넘보고 있는 걸로 화제가 된 쿠팡 플레이 역시 비슷한 사례인데요.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을 고객으로 확보한 쿠팡 본진이 있었기에, 최소화된 마케팅 비용 지출로도 현재의 위상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경쟁자가 긴축 모드에 돌입했다는 점도 큰 차이점입니다. 특히 이는 쿠팡에게 매우 좋은 일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일단 최대 경쟁자인 네이버만 해도, 성장보다는 수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요. 신세계 그룹 역시 당장의 실적 부진 반등이 최우선 과제라,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나 홀로 투자 모드로 돌아선 쿠팡이 얻는 효과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멈출 때 혼자 달리면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쿠팡과 삼성의 평행 이론

      

이와 같은 쿠팡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과거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를 거머쥐게 만들었던 삼성의 결단이 떠오릅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가격이 폭락하는 사이클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는데요. 그때마다 삼성은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고도, 역으로 투자를 선택한 결단을 통해, 시장 내 압도적인 초격차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쿠팡 역시 현재가 위기인 동시에 좋은 기회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과거만큼의 압도적인 투자까진 아니더라도, 긴축을 하는 경쟁자와 달리 주가 하락을 감수하면서까지 투자를 택한 과감함을 보면, 왜 쿠팡이 유통의 왕좌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다만 여전히 미지수인 건, 국내와 달리 이제 시작 단계인 대만 사업인데요. 과연 국내의 교훈을 바탕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만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쿠팡이 거둘 성공의 크기를 결정짓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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