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동하는 일본 창업 생태계, 한국 스타트업이 기회를 잡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잃어버린 30년… ‘혁신이 없었다’는 반성 속 일본의 선택은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 10조 투자 나서
재일교포 3세 강리혜 호세이대학교 교수 겸 기업가정신센터장 “갭이 있는 곳에 비즈니스 찬스 있어”
김태호 뤼튼테크놀로지스 이사, “한국 성공 방정식 맹신은 금물, 완전한 재창업의 느낌으로 도전해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서울(롯데타워)과 도쿄(도쿄타워)의 저녁 풍경. (사진=픽사베이)

흔히 ‘가깝고도 먼나라’로 일컬어지는 일본은 한국과 역사나 정치적인 문제로 냉온탕을 오가기도 하지만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나라다. 한편으로 풀기 힘든 오랜 역사적 갈등을 걷어내고 보면 한국 기업 특히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에게 일본은 명실상부한 경제 대국으로써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기에 최적화된 인프라를 갖춘 나라이자 1억이 넘는 소비자를 보유한 시장이기도 하다. 더구나 최근 일본에서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창업 생태계 육성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2022년부터 일본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은 오는 2027년까지 자국 스타트업 10만개, 유니콘 100개를 육성하겠다는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해외 스타트업의 자국 유치 정책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총 10조원 규모의 투자가 뒤따르고 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지난해 ‘통합혁신전략 2023’을 통해 다시금 스타트업 활성화 정책 중심의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기회의 시기에 일본 시장 진출에 나서는 한국 스타트업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최근 스타트업을 위한 취창업 전문 교육기관 ‘언더독스’에서 ‘일본의 혁신 생태계’를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그 답을 찾아봤다.

재일교포 3세 교수가 바라보는 일본의 혁신 생태계, 그리고 한일 협력 방안은?

‘일본의 혁신 생태계와 한일 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의 가능성’을 주제로 나선 호세이대학교 기업가정신센터장 강리혜 교수. (사진=테크42)

이날 첫 발제자는 ‘일본의 혁신 생태계와 한일 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의 가능성’을 주제로 나선 호세이대학교 기업가정신센터장 강리혜 교수였다. 제일교포 3세이자 아사히 신문 기자 출신으로 창업을 비롯해 다양한 경험을 쌓은 전문가다. 호세이대학 디자인공학 대표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하며 일본 정부 비즈니스 정책 수립 담당을 맡기도 했다. 그런 강 교수는 “일본의 자본금 10억엔 이상 기업의 매출액은 변화가 없는 상태”라며 최근까지의 상황을 진단했다.

“일본 기업들은 최근까지 비용절감 노력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따라 제도에도 변화가 없었죠. 하지만 얼마 전부터 ‘혁신이 하나도 없었다’며 반성하는 상황입니다. 기업가, 창업가 수가 늘지 않았고 인재풀 역시 질적, 양적으로 한정돼 있었죠. 연구 실적이 비즈니스로 이어지지 않고 유동성도 떨어져 있었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2년부터 5년간 10조원을 투자해 시드 단계부터 얼리, 미들, 레이터 스테지까지 스타트업을 지원하겠다는 이노베이션 프로모션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앞선 문제 가령 인재 부족 등으로 예산은 있지만 투자할 스타트업이 많지 않은 상황이죠. 여기에 더해 롤모델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한일 간 격차에서 비즈니스 찬스가 있다고 제언했다. 일본에는 돈이 있고 한국에는 인재가 있다는 말이다. 강 교수는 “정치적 대립을 극복하고 경제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한국 기업에게 일본은 가장 어려운 시장입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네이버가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네이버는 결국 세 번째 도전만에 성공했죠. 반대로 일본 기업에게도 가장 어려운 시장이 한국입니다. 유니클로나 무지와 같은 성공 사례도 조인트 벤처 형식으로 가능했죠.”

강 교수는 윤언여한(綸言如汗, 땀이 다시 몸속으로 들어갈 수 없듯 임금이 말한 조칙은 취소할 수 없다는 의미)을 언급하며 일본 사람과 기업의 특성을 설명했다. (사진=테크42)

그러면서 강 교수는 이와 같은 문제들이 서로 간의 인식과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한국에서는 당연시되는 방식이 일본에서는 부정적이며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강 교수는 윤언여한(綸言如汗, 땀이 다시 몸속으로 들어갈 수 없듯 임금이 말한 조칙은 취소할 수 없다는 의미)을 언급하며 일본 사람과 기업의 특성을 설명했다.

“일본 사람들은 한 번 결정하면 절대 변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결정을 한 것도 종종 상황에 따라 변경을 하잖아요. 일본에서는 그런 방식을 보며 자유롭다고 하면서도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접한 일본 사람들의 인식은 한국은 금방 변경하는 나쁜 방식을 가진 나라이고 이것이 신뢰할 수 없다, 약속을 어긴다는 측면으로 굳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다시 한국 제품은 오래 사용할 수 없다. 한국 기업과는 오래 거래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확산되는 것이고요. 그런 차이가 적지 않습니다.”

강 대표에 따르면 이러한 차이는 두 나라 기업의 사업 방식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은 사업을 빨리 키워 성과를 내는 쪽을 선호하지만 일본은 빠른 비즈니스 확장은 기업 이미지를 나쁘게 만든다는 인식이 바탕이 되고 책임과 위험 분산을 위해 의사결정도 다수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느리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 대표는 “이러한 몇몇 비즈니스 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일 스타트업 생태계는 높은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업가, 인재의 갭이 크다는 것, 변화에 대한 인식 차가 크다는 등 비즈니스 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한다면 한국 스타트업에게 일본은 굉장히 매력적인 시장이 될 겁니다.”

서리빈 포항공대 교수가 '혁신의 확산:대한민국 창업 생태계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적 로드맵'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테크42)
코무라 류스케 벤처카페도쿄 총괄 디렉터가 '혁신의 확산:일본 기업가정신 생태계'를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테크42)

강리혜 교수의 발표에 이어 이날 행사는 서리빈 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이자 스타트업 비즈니스 전문가인 서리빈 교수의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진단과 세계화를 위한 전략을 주제로한 발표가 진행됐다. 이어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벤처카페도쿄의 코무라 류스케 총괄 디렉터가 성장하고 있는 일본 생태계의 현황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뤼튼테크놀로지스가 일본 시장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날 행사에서 특히 주목도가 높았던 세션은 ‘뤼튼의 진심을 일본에 전하고 있습니다’를 주제로 한 김태호 뤼튼테크놀로지스(이하 뤼튼) 이사의 발표였다. 김 이사는 뤼튼의 공동창업자로서 뤼튼테크놀로지스 재팬 이사이기도 하다.

지난 2021년 이세영 대표를 비롯해 20대 코파운더들이 의기투합해 창업한 AI 서비스 플랫폼 스타트업 뤼튼은 이후 CES 2023에서 혁신상을 수상하며 급성장을 거듭했다. 최근 시리즈B를 통해 누적 438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 뤼튼은 370만 유저를 확보한 서비스로 성장하며 최근 일본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김 이사는 “일본 시장에 뤼튼이 어떻게 접근했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겠다”며 운을 뗐다.

김태호 뤼튼테크놀로지스 이사. (사진=테크42)

“저희는 회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한국과 일본이 하나의 제품으로 도전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팀 내부에서도 일본 시장에 광심이 많았고 뤼튼의 원형이 되는 모델을 고민할 2022년부터 일본 교토에서 워크숍을 가지기도 했죠.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뤼튼의 포지션은 시작부터 달랐습니다.”

김 이사가 언급한 첫 번째 차이는 시기의 문제였다. 한국에서 뤼튼은 생성형 AI 등장과 비슷한 시점에 창업한 스타트업으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1년 정도 지나 일본에 진출을 시도할 때는 이미 일본에도 많은 AI 기업이 등장한 상황이었다. 일본 시장에서 뤼튼은 후발주자였던 셈이다.

“여기서 첫 번째 고민이 시작됐어요. 저희가 한국에서 가져가려 하고 있는 AI 플랫폼, AI 포털 전략이 일본에도 과연 맞아떨어질 것인지 알 수 없었죠. 최소 비용으로 검증이 필요했고 그래서 라인을 통해 처음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한국에서 카카오 플러스 친구로 접근했던 방식과 유사하죠.”

뤼튼의 접근 방식은 틀리지 않았다. 라인을 통해 서비스를 사용한 유저들은 꾸준히 증가했고, 이어 웹이나 앱으로 서비스를 출시해 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이러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한 뤼튼은 이후 일본 시장에 본격적인 진출을 위한 제품팀과 일본전담팀을 꾸려 대응에 나섰다. 그러면서 김 이사는 “일본 웹서비스를 시작하며 특히 Q&A에서 차이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웹 서비스를 내놓고 매달 정해놓은 목표를 달성하며 달랐던 점 중 하나가 Q&A 였던 것 같아요. 한국의 CS 형태를 보면 고객 문의도 답변도 굉장히 짧게 이뤄지거든요. 하지만 일본은 일단 사전 설명부터 길이가 엄청 길고 굉장히 친절해요. CS 역시도 엄청나게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저희도 그에 맞춰 진행을 했는데 특히 앱 출시에 대한 문의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달부터 드디어 앱을 출시하며 일본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과 같다고 생각했던 서비스 환경도 일본은 큰 차이가 있었다. 한국의 경우 앱 서비스를 준비하려면 아이폰과 갤럭시폰에 대한 고려만 하며 됐지만, 일본의 경우 소니를 비롯해 중소 스마트폰 생산 브랜드가 다양해 각 사양에 맞춘 앱 최적화를 진행해야 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일본은 비슷하지만 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말을 이어갔다.

“일본 진출을 준비하며 깨달은 것은 한국에서 우리가 잘했던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가져갔다가는 정말 위험하다는 거였어요. 가령 한국에서 온드 미디어는 보통 인스타그램을 우선하는데 일본에서는 트위터 관리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 또 한국에서 저희 서비스는 1020 유저가 많은데 초기 각 대학 총학생회와 MOU를 맺어 사용자를 확보했기 때문이에요. 일본에서도 같은 방식을 고려했지만, 문제는 일본 대학에 총학생회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 거였죠. 대신 일본은 교수님들이 중심이 된 연구회, 협회 등을 통해 접근할 수 있었어요. 1020세대들의 사용자를 확보하겠다는 목적은 같지만 스테이크 홀더가 다른 거죠.”

일본 시장에서 뤼튼테크놀로지스가 택한 방식을 설명하는 김태호 이사. (사진=테크42)

이어 김 이사는 일본 시장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의 차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일본 시장에서 뤼튼은 해외에서 온 팀으로서 제로베이스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뤼튼은 도쿄도에 법인을 설립하며 도에서 진행하는 스타트업 프로그램에 지원해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갔다. 김 대표는 “이 방식을 통해 얻게되는 혜택이 적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도쿄도의 해외 스타트업 사업은 해외 스타트업이 일본에 법인을 설립했을 때 금융 기관과 연계해 지원금, 교부금을 제공하는 제도예요. 그 외에도 한국과 일본을 잇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재팬 부트캠프의 경우 일본 내에서 활동하는 한국 분들과 일본 스타트업, VC, 한국 스타트업을 매칭해 주는 서비스가 있죠. 저희도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분들을 소개 받고 네트워크를 맺을 수 있었어요. 일본 특유의 ‘소개 네트워크’ 효과를 톡톡히 얻은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발표 말미, 김 이사는 기업을 알릴 수 있는 언론 환경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경우 한국과 언론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난다고. 김 이사는 “완전히 재창업의 느낌처럼 새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며 뤼튼의 사례를 언급했다.

“일본에서 뤼튼이 드라마틱하게 성장한 시점이 두 차례 있었는데 첫 째가 NHK에 ‘한국 AI 최전선’이라는 이름으로 보도됐을 때, 두 번째가 닛케이 신문에 소개됐을 때였어요. 그 이후 유의미하게 유저수가 증가했죠. 일본에 진출하는 스타트업이라면 마케팅의 기본인 PR이나 언론 지형에 대한 파악도 필요합니다. 회사를 검색했을 때 기사에 나오는지, 어느 정도로 신뢰도 있는 매체가 보도하는지에 따라 인식 자체가 달라지고, 논의가 시작되는 지점이 많이 달라지거든요.”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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