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차는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IoT(사물인터넷)이 적용된 커넥티트카 등 다양한 신기술이 집약된 미래형 모빌리티를 통칭하는 말이다. 최근 세계 자동차 산업은 전통적인 영역을 넘어 경계가 무한 확장되며 대변혁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각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빠르게 사업 구조를 미래차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들 전통적인 제조사들이 취하는 주목할 만한 방식은 미래차와 관련된 신기술 개발에 있어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전략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내부의 연구개발 활동을 중심으로 한 ‘폐쇄형 혁신’ 대신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기업 내외의 경계를 넘나들며 혁신으로 이어지게끔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오픈 이노베이션의 대상은 다름 아닌 스타트업이다. 글로벌, 빅테크, 대기업 등의 기술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은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서 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혁신적인 미래차 기술과 아이디어로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스타트업, 혹은 초기 스타트업이 알아두면 좋을 정보는 무엇이 있을까?
지난 14일 한국엔젤투자협회가 진행한 ‘2022 제4회 팁스밋업_미래차’ 행사에서 키노트 연사로 등장한 노규승 현대자동차 제로원 팀장의 이야기를 통해 혁신적인 미래차 시대를 대비하고 있는 기업이 스타트업 투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아봤다.
100년을 이어온 자동차 역사를 바꿀 대변혁, 오픈 이노베이션에서 시작
‘팁스밋업’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 선정된 스타트업들의 후속 투자 유치를 지원하고 전문 투자자와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올해 기준 4회째를 맞이한 이번 ‘IR 데모데이’의 주제는 미래차였다.
행사는 전문 투자자와 선배 창업기업의 키노트 섹션을 시작으로 팁스 창업 기업 ‘모플랫’ ‘알트에이’ ‘한국전기차인프라기술’ ‘베스텔라랩’ ‘와이파워원’ 등의 IR발표와 전문위원 피드백 등으로 진행됐다.
그중 첫 키노트를 맡은 노규승 현대자동차 제로원 팀장은 현대자동차 CVC팀 투자심사역을 거쳐 제로원 펀드 투자운용역 등을 역임한 미래차, 친환경 에너지 분야의 투자전문가다. ‘미래차 투자 전략과 전망’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노 팀장은 현대자동차가 준비하고 있는 미래 모빌리티 사업의 비전과 더불어, 국내 대표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는 현대자동차 제로원이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관점과 투자 방식 등을 설명했다.
“자동차의 대량 생산을 위한 라인을 도입하고 현재도 이뤄지는 할부 금융 같은 방식은 사실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고, 자동차 개발은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100년 이상을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며 굉장히 역동적인 변화들이 자동차 산업에서 시작됐죠. 바로 모빌리티(Mobility), 전동화(Electrification), 연결성(Connectivity), 자율주행(Autonomous)입니다. 이 네 꼭지를 저희는 ‘메카(M.E.C.A)’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노 팀장이 ‘아이러니하다’며 언급한 말에 따르면 이러한 기술들은 대부분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서 태동했다. 결과적으로 스타트업에서 개발된 기술들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글로벌 자동차 OEM(부품, 하위 시스템, 소프트웨어 기업)에 영향을 미치면서 자동차 산업의 대변혁을 이끌어 낸 셈이다. 이어 노 팀장은 “이러한 변화는 2015년부터 굉장히 공격적인 변화로 이어졌다”며 말을 이어갔다.
“현대자동차 역시 이 시기에 자동차 제조사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비전과 미션을 선언했던 바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적인 밸류체인의 이노베이션을 필요로하고 있고 굉장히 많은 리소스와 자본이 투입되야 했죠. 하지만 현대차, 기아차만으로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풀려고 하는 숙제는 단순히 현대차만 잘해서 될 일이 아니었고, 특정 모빌리티 서비스를 건드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죠.”
모빌리티 혁신에 대응하는 현대차의 신사업은 스마트 모빌리티를 비롯해 수소차를 비롯한 밸류체인 신사업화, 스마트 팩토리, 로보틱스, 에어 모빌리티 등 다양하다. 노 팀장은 “이러한 각각의 신사업 분야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이 진행되고 있다”고 언급하며 각각의 동향에 대한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미래차 시대를 앞둔 고민들
노 팀장은 미래차 혁신을 부른 메카와 관련해 최근의 동향을 언급하기도 했다. 모빌리티의 경우 슈퍼앱들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카카오모빌리티, 쏘카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노 팀장은 “문제는 수익성”이라며 슈퍼앱들이 직면한 상황을 설명했다.
“(문제는) 슈퍼앱들 조차도 수익성에 대한 이슈를 완벽하게 탈피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투자한 그랩(‘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며 75% 이상의 시장 점유율 확보, 순매출 2조원을 앞두고 있지만 적자 상황을 이어오고 있다) 같은 경우도 그렇고, 우버 역시도 비슷한 상황이죠. 이들은 딜리버리 시장 등으로 모빌리티 서비스를 확장하며 수익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노 팀장이 언급한 또 다른 특징적인 현상 중 하나는 직접적으로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을 선보였던 OEM 기업들이 사업을 접거나 투자를 철회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노 팀장은 “전기차 자체가 그렇게 마진이 좋은 차량은 아니다”라면서도 테슬라의 시도가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단순히 차량 판매만으로 수익을 내기는 어렵지만 테슬라는 구독 모델이나 OTA(원격 업그레이드)라고 하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부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이 동작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미래차에 있어) 소프트웨어 중심의 차량 설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내년에 시장이 어려운 상황을 맞이한다면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안 좋은 이야기지만, 대기업에게는 좋은 엔지니어를 흡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가치는 더 올라가겠죠.”
이 외에도 노 팀장은 베터리, 자율주행, 로보틱스를 비롯한 스마트 팩토리 등 현대자동차가 진행하고 있는 각 신사업 분야의 동향을 설명하며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이 직접적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며 “스타트업의 본질은 어떤 문제를 파악해서 푸는 것이고, 그런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역량이 있는 팀이라면 성장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자율주행과 관련해서는 “세계적으로 자율주행 스타트업이 많이 부상했다가 최근 주춤하는 분위기”라면서도 “도심 내 서비스, 정부와 연계한 서비스가 먼저 론칭되고 그 안에서 사업 모델이 좀 더 구체화되는 시점인만큼 살아남는다면 위너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 한국 스타트업에 관심도 높아
스타트업 투자와 관련해 노 팀장은 ‘해외의 관심’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질문을 해외에서 많이 받고 있어요. 왜 한국 스타트업은 글로벌 기업들이 많고 잘 되고 있냐는 거죠. 어찌보면 쿠팡이 뉴욕증시에 상장을 한 것도 영향이 있고, 한류나 케이팝이 주목을 받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은 실제로 높아지고 있어요.”
이와 관련 노 팀장은 다른 나라와 다른 한국 스타트업의 특징을 몇 가지로 꼽기도 했다.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의 투자 비중이 굉장히 높고, 최근 들어 굉장히 많은 CVC(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탈)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CVC 투자는 다른 어느 나라나 지역보다 굉장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뒤에 어떤 단서가 붙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VC와 비슷한 형태로 활동하고 있죠. 이런 국내 CVC 활동들은 국내 스타트업계에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모든 대기업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한다는 것은 글로벌 추세로 볼 수 있지만, 특징적인 것은 지난 몇 년 사이 실리콘밸리나 외국기업과 굉장히 달랐던 기업 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어요.”
노 팀장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로 인해 젊은 세대에서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반드시 대기업에서 일해야 된다는 생각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인재들이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 등을 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노 팀장는 “그런 측면에서 CVC의 스타트업 투자 활동은 재능 확보 목적이 크다”며 말을 이어갔다.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했지만, 잘 안된다고 했을 때도 그렇게 육성한 스타트업의 파운더나 엔지니어들은 저희가 갖고 있는 밸류체인 안에서 굉장히 유의미한 인력들로 순환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또 국내 대기업 오너의 세대교체가 지난 몇 년 사이 급격히 이뤄지면서 오픈 이노베이션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리더십으로 변화가 빨라지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대기업이 주도하는 CVC의 투자 방식에서 주목할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
노 팀장의 말처럼 최근 몇 년 간 국내 CVC는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개중에는 아예 별도 법인으로 활동하는 조직도 적지 않다. 이러한 CVC 활동에서 주목할 특징은 초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노 팀장은 “과거 ‘전략적 시너지’를 KPI(성과지표)로 삼던 것에서 ‘재무적 가치’의 비중을 중시하는 경향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 외에 또 다른 특징으로 주목할 만한 동향은 분사 벤처 시스템을 많이 도입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희 같은 경우 분사 벤처 시스템은 20년 이상 운영해 왔는데, 요즘들어 다른 대기업의 오너, CEO 분들이 직접적인 미팅을 많이 요청하고 있어요. 저희가 어떤 시스템으로 분사 벤처를 운영하는지에 관심이 많더군요. 실제로 분사 벤처를 담당하는 내부 팀을 만드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요.”
이어 현대차 제로원이 지원하고 있는 스타트업 육성 사례를 소개한 노 팀장은 “제로원은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보다 사람에 좀 더 집중하는 창의인재 플랫폼을 표방하고 있다”며 세계 각지에서 운영되는 ‘크래들’의 운영 방식, 그로벌 CVC와의 파트너십 등을 설명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제로원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시작으로 서울, 중국의 베이징,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독일 베를린 등에 크래들이라는 오픈 이노베이션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본사를 비롯해 각 지역에 있는 협업 기회, 오픈 이노베이션 니즈 등을 제로원이 모으고 크래들에 공유하죠. 각 크래들은 지역에 있는 베스트 스타트업을 추천하고, 저희는 국내 스타트업을 추천하며 파트너십을 골라 PoC(기술실증)도 하고 투자도 검토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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