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인생에서 한 가지 일에 천착해 일가를 이루는 사람들을 흔히 ‘전문가’ ‘달인’이라고 하며 칭송한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찌보면 오늘의 것이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되는 속도를 쫓기 힘들 정도인 요즘 시대에 그 변화에 발맞춰 삶을 사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종종 그러한 삶은 중도 포기 혹은 시행 착오 정도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도하는 일에서 매번 의미있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면 어떨까?
표철민 체인파트너스 대표가 스스로의 삶을 변주하는 방식이 그랬다. 표 대표가 처음 창업을 한 것은 1999년 중학교 2학년, 열 다섯 무렵이었다. 이후 창업과 도전은 그의 삶 그 자체가 됐다.
도메인 등록에서 시작해 위젯, 소셜 네트워크 게임 그리고 앱까지 섭렵
2000년에 다드림커뮤니케이션이라는 도메인 등록 대행 회사를 설립한 표 대표는 당시 시민단체에 독도 도메인을 무상으로 기증한 것이 화제가 됐다.
대학교 2학년 무렵인 2006년 표 대표의 삶은 ‘위젯’이라는 사업 아이템을 만나 또 한 번 변화를 맞았다. 당시 표 대표가 창업한 ‘위자드웍스’는 한국에 위젯을 처음으로 소개하며 2009년 무렵에는 네이버, 다음과 제휴해 업계 1위를 기록했다. 미국의 ‘비즈니스위크(BusinessWeek)’는 그를 아시아 위젯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젊은 기업가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2010년, 그의 관심사는 다시금 소셜 네트워크 게임으로 옮겨갔고 이는 ‘루비콘게임즈’ 창업으로 이어졌다. 이어 2012년 개발한 ‘솜노트’는 카카오톡과 제휴해 큰 주목을 받았다. 2014년 일본에서도 노트 앱 분야 1위를 달성한 솜노트로 표 대표는 ‘인터넷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웨비상(Webby Awards)’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그는 300만 사용자 달성 후 옐로모바일에 매각한 여성용 생리 앱 ‘매직데이’, 650만명의 사용자를 모으며 앱스토어 1위까지 오른 모바일 키보드 앱 ‘테마키보드’ 등을 연이어 성공 시켰다. 그 사이 표 대표는 벤처기업협회 이사, 채널IT ‘생상송 스마트쇼’ 진행자, 각정 시사, 교양 프로그램 패널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숨가쁘게 달리던 그의 삶은 2015년 10년간 운영한 위자드웍스를 매각한 후 홀연히 의무경찰로 군에 입대하는 것으로 휴지기를 맞았다. 그리고 2017년 전역 직후 그가 주목한 새로운 주제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크립토(Crypto, 통칭 암호화폐)’ 였다.
새로운 조류를 만날 때면 ‘가슴이 뛰는 것’을 느껴
표철민 대표를 체인파트너스 사무실에서 만난 것은 그가 이어진 해외 출장에서 막 귀국한 다음 날이었다. 지난 9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글로벌 블록체인 행사 ‘토큰2049’, 국제은행간통신협회 ‘스위프트’가 주관하는 글로벌 금융 행사 ‘사이보스 2022’ 등을 통해 기관 전용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 체인저(Changer)’를 알리기 위한 일정이었다. 연이어진 해외 일정 탓에 피로가 겹친 듯 살짝 충혈된 눈이었지만, 지난 이야기를 꺼내자 “그때 그때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했다”며 돌연 화색이 돌았다.
“저는 새로운 트렌드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항상 뭔가 큰 조류가 변할 때 흥미를 느끼고 시작을 하는 편이죠. 도메인도 그렇고 소셜 네트워크 게임도 그렇고 닷컴이나 SNS 등 어떤 열풍이 불기 직전이었어요. 그렇게 재미있는, 새로운 것이 나오고 그것을 시작할 때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죠. 지금하고 있는 크립토도 마찬가지였고요.”
처음 그가 크립토에 주목한 것은 2013년 무렵, ‘생방송 스마트쇼’ 진행자를 할 당시였다. 비트코인이 등장하고 100달러를 막 돌파하는 것을 보며 방송 아이템으로 잡았고, 이후 초기에는 투자자로서 접근을 했다. 본격적으로 가슴이 뛴다고 느낀 것은 2017년 전역 이후 이더리움을 알게 되면서 부터였다.
“블록체인에도 흥미를 느꼈지만, 그보다 인터넷상에 누구나 앱을 올릴 수 있는 자유로운 마켓을 만들겠다는 이더리움의 철학이 멋있게 느껴졌어요. 그것이 강렬했죠. 막 전역한 후 시간이 여유로운 상황에서 3일 밤을 새서 공부를 하고 사이트를 하나 띄웠는데, 이걸로 투자 제의를 받았어요. 그렇게 갑작스레 체인파트너스가 만들어 졌죠.”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였지만, 돌이켜 보면 그가 거친 모든 사업들이 그랬다. 계획이 앞서기 보다는 관심이 먼저 갔고, 그 관심은 자연스레 창업으로 이어졌다. 5년여가 지난 지금, 당시를 회고하는 그는 “운이 좋았다”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그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해부터 좋은 사람들이 쉽게 모였고, 투자도 계속 받을 수 있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좀 오만해 졌던 것 같아요. 원래 무식하면 용감하다잖아요(웃음). 전역하고 한두 달 빡세게 공부한 게 전부였지만, 블록체인 관련 강연도 하고 다녔어요. 그렇게 두세 번 강연하니 ‘전문가’라고 부르더군요.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은 ‘이 분야는 진짜 전문가가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다만 제가 잘못한 것은 스스로도 진짜 전문가라고 착각한 것이죠.”
코인 거래 자동화… 체인저의 시작
솔직 담백하게 지난 시간을 털어 놓는 그는 당시 스스로를 ‘선무당’과 같았다고 했다. 이후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하는 코인 시장을 경험하며 그는 점차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됐다.
“처음 콘셉트는 ‘디지털커런시그룹’을 벤치마킹하는 것이었어요. 코인데스크를 비롯해 수많은 자회사를 가지고 있는 이 분야의 삼성과 같은 기업인데, 체인파트너스를 아시아 판 디지털커런시그룹처럼 만드는 것이 목표였죠. 그렇게 거래소부터 결제 마이닝, 자산운영 등 이런 저런 시도를 했는데, 문제는 창업 이후 이듬해인 2018년 코인 시장이 폭락했다는 거예요. 아쉽지만 벌려놨던 일부 사업들을 정리하고 OTC(장외거래)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지금 체인저의 전신이라 할 수 있죠.”
아직까지 장외거래는 우리나라에서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하지만, 미국 등의 크립토 선진 시장에서는 거래소를 이용하지 못하는 기관들이 규모가 큰 거래를 진행할 때 택하는 방식이다. 2019년부터 본격화된 체인파트너스의 OTC 서비스는 실제 국내 신흥 기업 등의 코인 거래를 중개하며 성공 가능성을 키워왔다. 여기서 표 대표가 주목한 것은 또 다른 가능성이었다.
“OTC라는 시장을 알게 되면서 제가 주목한 것은 당시만 해도 모든 거래가 수동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불과 3년 전이지만 전 세계 메이저 OTC들이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응용 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가 없었던 거죠. 전화 아니면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로 거래가 되던 구조였어요. 거래 와중에 가격이 바뀌고 시간도 상당히 소요됐죠. 그랬던 시장이 3년만에 자동화될 수 있었던 것은 저희 ‘체인저’와 같은 자동화 서비스가 등장했기 때문이에요. 끊임없이 자동화에 대한 니즈가 이어졌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다발로 자동화가 이어진 거죠.”
OTC를 통한 코인 거래가 자동화 되며 체인저의 발전 가능성은 나날이 주목받고 있다. 표 대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법인, 기관 간 거래보다 개인용 거래 서비스로 체인저를 업그레이드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향후 젊은 세대가 게임을 하고 메타버스를 드나들 때 각각의 메타버스들은 저마다의 코인을 적용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환전이 필요해 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표 대표는 “기관 크립토 시장은 미국이 강하다면 아시아는 개인 크립토 시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며 “체인저가 승부할 시장은 리테일”이라고 설명했다.
“체인저는 유동성을 통합해서 최저가를 만드는 환전 솔루션이에요. 이전까지 우라나라에서는 이런 솔루션이 왜 필요한지 몰랐어요. 그러다 메타버스가 나오고 거래소가 생기고 가격비교를 해서 최거가로 거래하는 게 좋다는 것을 알기 시작한 거죠. 물론 체인저가 유일한 솔루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솔루션이 글로벌 시장에 많은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이번 해외 행사에서도 글로벌 은행들로부터 ‘체인저라면 한 번 미팅을 해보자’는 수준으로 인정을 받고 있어요.”
현재 전 세계 법정화폐는 180여종이 존재하고 있고 하루 6.6조 달러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그중 크립토의 비중은 1%에 불과한 100조원 정도다. 흥미로운 부분은 비중과 달리 크립토의 종류는 2만여종에 달한다는 점이다. 현재와 같은 성장 추세라면 향후 법정화폐와 2만여 종, 혹은 그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는 수많은 크립토 사이에 심각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 표 대표의 생각이다. 이에 표 대표는 습관처럼 “체인저를 만드는 일은 메타버스의 지하에 상수도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곤 한다.
현재 체인저는 OTC는 물론 탈중앙화거래소(DEX), 중앙화거래소(CEX) 등 다양한 거래소를 모아 모든 유동성을 연결하고, 이를 통해 최저 가격을 제시해주고 있다. 500개가량의 거래되는 크립토는 향후 2000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는 달러를 추가해 크립토>비트코인>달러>각국 법정화폐로 연결되는 삼중환전구조를 구축하고 NFT를 비롯해 기업의 포인트, 상품권 등 디지털로 거래 가능한 모든 재화를 한 번의 클릭으로 교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가상자산 법제화 수순은 필연적이다. 이를 두고 표 대표는 “크립토가 성장하기 위해 쓰지만 삼켜야 하는 약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개인을 넘어 기관 자금까지 들어오는 시장이 되려면 투명성, 건전성은 필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흘러가는 크립토 시장이 직면하게 될 미래는 무엇일까? 시원스레 이어지던 답이 마지막 질문에서 잠시 끊겼다. 표 대표는 “너무 할 말이 많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요즘은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선은 메타버스에서 사용되는 미래의 외환이 될 거라고 봐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곧 월드컵이 열리는 카타르와 같은 곳에 평생 한 번이라도 갈 가능성보다 향후에는 디지털 메타버스에 갈 가능성이 더 높아 질 거예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물리적인 공간에서 환전하는 것보다 디지털 세상에서 사용되는 디지털 화폐로 환전하는 경우가 많아질 거고, 그럴 경우 가상자산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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