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프티의 성공은 기적이 아닌 기획 덕분이었습니다

명확한 목표와 구체적인 전략, 그리고 맞춤형 조직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Cupid의 성공이 더욱 놀라웠던 이유

혹시 피프티 피프티라는 아이돌 그룹에 대해 아시나요? 이들이 지난 2월 발표한 싱글 1집의 수록곡 Cupid는 대한민국 아이돌 역사상 최단기간 빌보드 Hot 100 차트 진입에 성공하고, 무려 9주 연속으로 차트인 중입니다. 정말 좋은 의미로 충격적인 데뷔 성과라고 할 수 있는데요. 물론 여전히 낯설다고 하실 분들도 계실 겁니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이러한 성과가 국내의 성공 기반 없이 거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려 멜론 차트보다, 빌보드 차트에 먼저 진입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고요.

어트랙트 제공

사실 피프티 피프티는 이른바 4대 기획사(하이브, JYP, SM, YG) 출신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민희진 대표가 기획한 뉴진스처럼, K팝의 거물급 인사가 참여한 프로젝트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들을 중소의 기적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스토리를 자세히 듣다 보면, 피프티 피프티의 성공은 기적이 아닌 철저한 기획 덕택에 가능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도, 기존의 성공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철저히 세운 전략과 기획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낸 피프티 피프티. 이들의 성공은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은 물론, 모든 비즈니스 영역에서 적용할만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연은 단 한 줄도 없었습니다

언론에서 주로 언급되는 이들의 비결은 틱톡입니다. 미국 시장에서 Cupid가 주목받게 된 것 역시, 우연하게 이를 모티브로 한 챌린지가 유행하면서부터였는데요. 그렇다고 우연에 기반한 성공이라 해석하는 건 성급합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Cupid란 노래는 이러한 시장을 노리고, 친숙하고 편안한 멜로디의 이지 리스닝 팝 장르로 기획되었기 때문입니다. 피프티 피프티를 키운 안성일 프로듀서는 한 인터뷰에서 기존 케이팝 그룹이 10% 미만의 시장을 공략했다면, 처음부터 이를 배제하고 90%를 차지하는 매스 타깃을 노렸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케이팝에서 흔히 보이는 강한 개성과 콘셉트 대신, 우아하고 편안한 보컬을 강조하였던 거죠. 심지어 내부에서조차 아이돌 음악 같지 않다는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안프로듀서는 이를 그대로 밀고 나갔고 기대한 것처럼 틱톡을 통해 미국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글로벌 이용자들에게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처음부터 영어 버전 노래를 같이 내버렸는데요. 심지어 영어 버전에서는 랩 파트를 과감하게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는 케이팝 그룹에게는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100% 영어 가사가 일종의 배신으로 비치기도 하고, 특히나 특정 멤버가 곡에서 빠지는 건, 팬들의 격렬한 항의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팬덤이 없다는 약점을 오히려 역으로 활용하여 이들은 적극적인 현지화 작업으로 승화시켰고, 이로 인해 더 빠르게 곡이 인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차트인보다 더 대단했던 건,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하며, 장기간 살아남았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피프티 피프티의 성공이 대단한 건, 이러한 초기의 흥행을 이후로도 꾸준히 안정적으로 이어갔다는 점입니다. 팬덤 기반의 케이팝 그룹들의 빌보드 순위는 일반적으로 초기 집중되는 화력으로 높은 순위로 진입한 이후 순차적으로 떨어지는 흐름을 보입니다. 그에 반해 팬덤이 부재했던 피프티 피프티는, 대중픽이라는 장점은 있었지만, 이를 성과로 만들 동력이 부재했습니다. 대신 이들의 소속사는 워너 레코드라는 굴지의 현지 파트너를 빠르게 섭외하였는데요. 이러한 기민한 움직임 덕분에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Cupid가 차트의 상단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더 놀라운 비밀 하나가 숨겨져 있습니다. 피프티 피프티가 처음부터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한 만큼 대형 기획사 대비 인력의 수는 부족했지만, 이들 모두가 미국 시장 전문가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빠른 후속 대처가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고요.

이처럼 해외 시장이라는 명확한 목표, 이를 달성하기 위해 준비한 이지 리스닝 팝이라는 장르와 영어 버전 출시라는 구체적인 전략, 그리고 전문화된 조직까지,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에 피프티 피프티는 글로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더 과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성공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2의 피프티 피프티와 Cupid가 등장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해 이와 유사한 형태의 성공이 반복되진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도 틱톡 기반의 흥행을 노린 음악들은 무수히 나오고 있고요. 성공할 때까지 버티기엔, 중소 기획사들의 체력이 그리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팬덤의 힘으론 리스크를 줄인, 기존 케이팝 대형 기획사들의 방식이 더욱 합리적으로 보이긴 합니다.

그러나 결국 피프티 피프티가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은, 기존 케이팝 그룹의 방식을 따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케이팝 매출의 90%는 해외에서 나오고 있고, 결국 이를 공략하지 못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오랜 기간 해외 시장을 공부한 끝에, 맞춤형 전략을 준비한 겁니다. 여기에 어느 정도 운이 따르면서, 기대보다 빠르게 성공을 거두었던 거고요.

그리고 결국 해외로 나가야 된다는 건, 아이돌 산업 만의 일이 아닙니다. 국내 내수 시장은 한계가 있고, 더욱이 어느 산업이나 소수의 과점 지배자가 존재하기에, 해외 진출을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인정한다면, 피프티 피프티처럼 조금 더 과감하게 해외 시장에 맞춘 비즈니스 모델을 처음부터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앞서 성공한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 다른 산업군에서도 주목할만한 해외 성공 사례들이 앞으로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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