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늘을 나는 플라잉택시 개발과 함께 사람들의 꿈을 자극하는 발명품 중 하나가 제트팩이다. 최근 몇 년새 부쩍 늘어난 새로운 제트팩들이 여러 매체에 자주 소개되고 있다. 일부는 가짜 동영상이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해 8월과 10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제트팩맨이 공항근처에서 날고 있다는 목격담이 잇따랐는데 지난주 NBC는 FBI의 심도있는 수사 결과 이것이 풍선이었다는 뉴스를 전하기도 했다.
지난 2일 영국 제트 슈트 발명가인 리처드 브라우닝은 그래비티 인터스트리즈(Gravity Industries)라는 회사의 대표가 돼 자신의 발명품으로 영국군에 기술을 과시할 기회를 가졌다. 그의 ‘아이언맨’ 슈트는 군인들이 신속히 전쟁터를 가로질러 하늘을 날 수 있게 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팬버러에서 영국육군 고위층이 직접 이 제트슈트를 착용하고 거뜬히 시연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 제트슈트는 무게가 85kg으로서 5개의 가스 터빈을 사용해 시속 129km로 비행하며 1만 2000피트(3600m) 상공에 도달할 수 있다.
지난 5월 2일에는 영국 해병대 특공대가 이 제트슈트를 입고 고무보트에서 해상 경비함 HMS 타마르에 탑승하는 해상 승선 작전에 사용해 군용 활용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발명가 브라우닝은 이미 지난 2019년 HMS 퀸 엘리자베스호를 도는 시범 비행을 한 인물이다. 그의 제트슈트 연료는 A1 등유, 프리미엄 디젤이다. 최대 비행시간은 8분이며, 슈트무게는 85kg 이하다.
흔히 아이언맨 슈트라고도 부르는 놀라운 제트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제트팩 시험 맨 중 가장 주목을 끈 사람은 두바이에서 제트팩으로 고공 비행하며 비행중인 여객기 꼬리 따라잡기까지 한 프랑스의 스턴트맨 빈센트 레페다. 그런 그가 지난해 11월 제트팩 연습 중 사망했다. 빈센트 레페가 사용한 제트팩은 30초 만에 고도 1000m까지 수직으로 솟구치는 기능을 갖췄다. 그는 연습을 마치고 고공에서 낙하산을 펴 지상에 도착하려다 펴지지 않는 낙하산으로 인해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이처럼 제트팩이 아직은 완전히 안전한 고안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벅차게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여곡절 끝에 공상속에서 현실이 된 제트팩은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
1928년 미국에서 발행된 ‘어메이징 스토리’란 잡지에 상상 속 제트팩 맨이 등장한다.
2차대전 때 독일군이 제트팩을 개발했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뜬 소문으로 밝혀졌다.
최초의 제트팩 발명자는 1953년 미국 항공우주업체인 벨 에어로 시스템이 만든 ‘벨 로켓 벨트’로 알려져 있다.
미군은 벨 로켓 벨트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지뢰밭 위를 날아다니는 군인들을 상상하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번에 영국 육군 고위층이 시연한 브라우닝의 제트팩이 사용된 이유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지난 5월2일 영국해병대처럼 순식간에 특수작전으로 함상 이동하는 계획의 확장일지도 모른다.)
1961년 말에는 당시 케네디 미 대통령앞에서 개인적으로 시연되기고 했다. 1962년 6월 8일 포트 유스티스(Fort Eutis) 미군기지에서 여러 군인들이 보는 가운데 시연도 이뤄졌다.
그러나 군용으로 처음 시작됐던 당시 ‘벨 로켓 벨트’(2개 모델)는 실제 사용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채 30초에 9m를 상승하고 최고 시속 16km로 120m 정도 거리까지 밖에 날아가지 못 했다. 게다가 지나치게 조작이 까다롭고 위험해 오랫동안 정식 훈련을 받아야만 탈 수 있었다.
소음도 130데시벨(dB)이나 됐다. 이는 제트기가 몇 백m 바깥에서 이륙할 때 나는 소음 수준이다. 또한 조종사는 370℃가 넘는 수증기에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 혹시 발생할지 모를 폭발 사고에 대비해 비행 고도도 제한됐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군 제트팩 특공대는 끝내 조직되지 못했고 미군의 관심도 결국 끊어졌다.
이 제트팩은 과산화수소가 은판과 만났을 때 일어나는 산화환원 반응결과 발생하는 수증기로 로켓 추진력을 얻도록 설계됐다. 은을 촉매로 과산화수소가 물(수증기)과 산소로 나뉘게 되는 방식이었다. 산소는 원래 다른 물질, 특히 금속과 매우 잘 결합한다. 제트팩에서는 또한 질소가 큰 역할을 한다. 액화질소로 과산화수소를 조금씩 밀어내 촉매인 은판과 반응시키면 산소가 환원되면서 폭발적 수증기가 발생한다. 이때 수증기를 노즐 2개로 내뿜으면 누구나 하늘을 나는 제트팩맨이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작동원리와 비교할 수 없이 조종법은 어렵다.
초기 제트팩의 가장 큰 문제는 제트팩의 무게와 거기에 더해진 조종사의 몸무게를 이겨낼 만큼의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이에 벨에어로시스템은 미항공우주국(NASA)와 함께 우주비행사들이 달에서 이동할 때 쓸 제트팩을 개발하려 애썼지만 NASA는 제미니 9호에 우주용 제트팩을 실어 보낸 적이 있을 뿐 실제로 제트팩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지난 1965년에는 우리가 잘 아는 007영화 썬더볼작전(1965) 속에서도 등장한다.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숀 코넬리는 악당들에게 쫓기다가 2층 건물에서 제트팩을 메고 2층건물에서 반대쪽 거리에 있는 자동차로 가뿐히 내려와 이들의 추격을 따돌린다.
변형이긴 하지만 제트팩은 우주에서도 사용됐다.
지난 1984년 우주왕복선 임무 방식 우주비행사 브루스 맥캔들리스는 부착식 유인이동장치(MMU)를 둘러메고 우주공간을 인류 최초로 자유유영했다.
이 변형 제트팩은 커다랗고 조작이 어렵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세차례의 우주왕복선 비행에서 사용에 성공했으나 사고 위험성이 너무높아 조용히 처분됐다고 한다. 자칫 잘못하면 조종사가 중력에 끌려 지구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단다.
더 작은 제트팩인 세이퍼(SAFER Simplified Aid for EVA Rescue)는 안전선없이 자유유영하는 우주비행사를 구출할 때 사용가능하다는 판단아래 살아 남았다고 한다.
우리는 영화 ‘그래비티’와 ‘마션’ 등에서 이같은 변형 제트팩을 사용하는 우주비행사를 봤다.
미국 LA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제트팩을 멘 사람들이 올림픽 경기장으로 날아와 성화에 불을 붙였다. 미국의 기술력 과시 차원으로 읽힌다.
스위스 출신 항공기 조종사 이브 로시는 제트팩을 타고 스위스 알프스 하늘을 날았다. 이브로시의 제트팩은 탄소섬유 합성물로 제작한 날개밑에 조그만 제트엔진을 달았다. 최고 시속 300km로 15분 넘게 날 수 있는 터보팬 제트팩이다.
분사추진 방식인 제트엔진을 이용한 터보팩 제트팩은 벨 로켓벨트보다 훨씬더 효과가 좋다. 사람들은 이브 로시의 비행에 열광했고 개인용 제트팩 시대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미국의 벨 에어로 시스템도 당연히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1960년대에 이 엔진을 실험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제트팩 에이비에이션(Jet Pack Aviation)이라는 회사가 JB-9이라는 이름의 제트팩을 공개했다. 이 제트팩은 모양이 ‘벨 로켓 벨트’와 아주 비슷한데 다만 수증기 배출 노즐이 소화기 크기의 제트엔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동안 기술이 향상돼 사용방법이 벨 로켓벨트와 비교도 할 수 없이 간단해졌다. 서 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하늘을 날아 오르면 10분 가까이 자유비행을 할 수 있다. 상승속도는 분당 305m이며 최대 상승고도는 3000m다. 또한 값싸고 구하기 쉬운 등유를 연소시켜 추진력을 얻었다.
제트팩 에이비에이션은 JB-9제트팩을 메고 자유의 여신상 주변을 날아다니는 짜릿한 장면도 연출했다. 이 시점에서 JB-9은 우리가 꿈꾸는 제트팩에 가장 근접하는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 제트팩 크기는 여행가방에 들어갈 정도고 일반인이 어려움 없이 착용할 수 있는데다 배출 수증기의 온도도 뜨겁지 않아 화상 피해도 없고 엔진의 기동성도 아주 뛰어나다.
이 제트팩은 이브 로시가 시험 비행했던 터보팬 제트팩처럼 낙하산으로 착륙할 필요가 없다. 아쉽게도 이역시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비싸다.
현재 제트팩 에이비에이션은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식 제트팩을 개발중이다. 이 회사의 새로운 제트팩은 땅에서 곧장 하늘로 떠오르고 아무 도움없이 공중에 가만히 정지해 있을 수 있는 버전이라고 한다.
비싼 제트팩과 비슷한 경험을 제공하는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 하나가 지난 2012년 프랑스의 프랭키 자파타가 개발한 수상용 플라이보드다.
초기 모델 플라이보드는 스케이트보드와 닮았고 벨 로켓 벨트처럼 어깨 뒤에 2개의 노즐이 붙어 있다. 이용자는 두발에 스키부츠처럼 생긴 플라이보드를 신고 얕은 물위로 나아간다. 어깨높이의 노즐 2개는 허리 근처의 손잡이로 조절할 수 있다.
플라이보드는 소방호스 모양의 관을 통해 많은 양의 물을 펌프질 하고 그 물이 노즐을 통해 뿜어져 나오면 공중으로 날아 오른다. 이 추진력에 필요한 에너지원과 펌프, 연료 등을 모두 물위에서 얻는다. 이 때문에 가볍다. 호스길이의 제한이 있긴 하지만 약 18m 범위 내에서만큼은 제트팩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하늘을 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이 장치는 중국에서 열린 2012 제트스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됐고 2016년 프랭키 자파타는 미국 방산업체 임플랜트 사이언스에 자신의 자파타 레이싱을 매각했다.
그렇다면 일반인에게도 이런 제트팩 활용 시대가 오게 돌까. 당장은 아닌 것 같다. 그래비티 제트슈트 가격이 4억원 정도니까. 전기차 2~3대 값이다. 어쨌든 전세계 업체들이 2024년 전후로 플라잉카 상용화를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아이언맨처럼 하늘을 나는 시대도 점점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만은 듯 분명해 보인다.
아래는 1984년 LA올림픽 개막식과 지난 5월 영국 해병특공대의 제트팩 함상 이동훈련 동영상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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