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앞둔 미 대선···빅테크들, 트럼프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 이면엔

트럼프는 실리콘밸리 빅테크 CEO들이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온다고 말했다. 경쟁 우위를 과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진=위키피디아)

최근 트럼프 미 대선 공화당 후보는 세계 기술 업계를 좌지우지하는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성향상 과장이 있다고 봐야겠지만 이전 대선과는 달리 반트럼프 경향이 상당히 누그러졌다는 게 외신들의 전언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층으로 여겨져 온 테크업계가 변심한 걸까. 그렇다면 왜일까.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이기주의로 요약된다.

도널드 트럼프가 캐멀라 해리스 후보와 오차 범위내에서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기에 섣불리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 자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감정적이고 앙심 깊은 트럼프가 선출될 경우에 대비해 표정 및 행동 관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민주당 바이든 정부의 가상화폐와 인공지능(AI) 규제 정책에 대한 실망감 속에 트럼프의 가상화폐 육성정책 언급도 힘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 빅테크 리더들의 친 트럼프 분위기가 트럼프의 잠재적 보복 우려 때문인지, 정부사업 계약으로 보상받길 원해서인지인지, 아니면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경우 추가 감독 및 규제를 받을까 봐 경계해서인지를 단언할 수는 없다.

하루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 후보에 대한 빅테크 CEO들의 ‘전략적 모호성의 이면을 들여다 봤다. 더버지와 BBC 등은 참고했다.

실리콘밸리 리더들이 트럼프에게 전화해 칭찬을 늘어 놨다는데...

실리콘 밸리 테크 리더들의 행동에는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위험을 회피하는 계산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트럼프가 사적으로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와 자신을 칭찬했다고 주장한 3명의 빅테크 CEO. 왼쪽부터 순다르 피차이, 팀 쿡, 마크 저커버그. (사진=위키피디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실리콘 밸리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온다고 주장한다.

어느 정도 새겨 들어야겠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 중 일부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칭찬을 퍼부었다.

그리고 실리콘 밸리에서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트럼프를 대놓고 지지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멋진지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되면 더 나을 것이라고 암시했으며, 그의 상대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도 주장했다.

트럼프의 주장 가운데는 구글, 애플, 메타 CEO가 망라돼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트럼프가 맥도날드 직원으로 근무한 것을 축하하면서 이를 “우리가 구글에서 본 가장 큰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팀 쿡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유럽연합이 애플에 부과한 벌금에 대해 불평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그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사과한다”고 말했고, 펜실베이니아에서 총격 사건으로 트럼프가 목숨을 잃을 뻔한 이후 “민주당에 절대 투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트럼프가 “2016년 선거에서 투표를 조작’하고, 그와 다른 보수파에 대한 “검색 결과를 조작”하고, “일반적으로 반트럼프”라고 비난한 기업들의 리더들에게는 흥미로운 전환점이 된다.

물론 트럼프에 대한 일방적 찬사(그의 말을 믿는다고 치고)만 있는 건 아니다.

아마존은 트럼프가 국방부에 자사와 수십억 달러(수조원) 규모의 방위 계약을 체결하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해 “부적절한 압력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테크 리더들이 실제로 잠재적 대통력 당선자에게 잘보이기 위해 줄을 서지 않았을 수도 있고, 허풍이 세기로 유명한 트럼프가 더 평범한 대화를 선정적으로 과장해 표현했을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의 부에도 불구하고 저커버그, 피차이, 쿡 및 기타 빅테크 기업 리더들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누가 대선에서 승리할지 모른다. 계속되는 여론 조사는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둘 중 한 사람인 트럼프는 테크기업과 리더들에 깊은 앙심을 품고 있고, 아첨에 취약하며, 연방정부와의 계약에서 수십억 달러를 지출할 방법을 결정하는 사람을 임명하는 책임자가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에게 약간의 아첨을 못할 이유도 없다.

트럼프, 빅테크를 위협하고 전화로 불평하기도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실리콘 밸리의 이 테크 리더들의 행동에는 위험을 회피하려는 계산이 작용하고 있는 게 빤히 보인다.

말하자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사업에 영향이 없도록 하려고 판돈을 올인하지 않고 분산해 베팅하고 있다.

사실 트럼프는 과거 자신의 원한과 변덕에 기초해 정책 결정을 내렸으며, 백악관에 복귀하면 다시 그렇게 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일종의 보험들기인 셈이다.

실제로 지난 9월 트럼프는 이번 미 대선에서 재선될 경우 구글을 기소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이 회사가 자신에 대한 “나쁜 이야기”와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좋은 이야기”만 “불법적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피차이에게 전화를 걸어 구글 검색에 나오는 자신에 대한 편견에 대해 불평을 말했다고 밝혔다. 구글로선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약간의 아첨만으로 큰 피해를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커버그와 베이조스, 전략적 모호성을 드러냈나

실리콘 밸리 리더들은 사실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입장을 보이며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우호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제프 베이조스의 우주기업 인 블루 오리진의 임원진이 트럼프를 만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사진=위키피디아)

더버지는 실리콘 밸리 리더들이 실제로는 그다지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여 줄 뿐이라고 쓰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을 보여준 저커버그 메타 CEO와 아마존 사례를 제시했다.

예를 들어 저커버그 메타 CEO는 암살을 시도한 남성에게 피격당한 트럼프의 반응에 대해 “거칠다(badass,‘멋지다’는 뜻도 있어 중의적)”로 표현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워싱턴 포스트의 ‘해리스 후보 공개지지’ 표명을 무산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베이조스 소유의 우주기업 블루 오리진의 경영진은 워싱턴 포스트가 특정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글을 게재한 그날 트럼프를 만났다.

물론 관련 당사자들은 편견이나 부적절성에 대한 어떠한 주장도 부인했다.

데이브 림프 블루 오리진 CEO는 더버지에 보낸 이메일 성명에서 “간단한 인사는 자연스레 일어난 일이고 25일 아침 마지막 순간에 준비됐다. 제프 베이조스를 포함해 누구도 그것에 대해 미리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 다른 뜻이 있다고 암시하거나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터무니 없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베이조스는 워싱턴포스트의 특정후보를 지지하지 않도록 한 데 대해 “캠페인이나 후보 모두 어떤 수준이나 어떤 방식으로든 상의하거나 통보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이 결정을 정당화했다.

대니 레버 메타 대변인은 직접적인 논평을 거부하고 대신 9월 뉴욕 매거진에 한 발언을 꺼내서 “마크 저커버그가 공개적으로 말했듯이, 그는 이 경쟁에서 누구도 지지하지 않으며, 어떻게 투표할 것인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애플, 워싱턴 포스트, 구글은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게 아니다.

베이조스와 저커버그는 지난 2020년 대선에서도 특정 후보를 직접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2020년과 2016년에 모두 트럼프의 반대후보들(조 바이든,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해 최근의 결정과 대비된다.

동기가 무엇이든 기술 리더들은 올인하지 않고 나눠서 베팅해 위험성을 줄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빅테크의 기류 변화

BBC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는 트럼프 후보에 대한 반감이 확실이 줄어든 기류가 느껴진다. 공개적인 트럼프 지지를 보이는 일론 머스크(왼쪽부터), 마크 앤드리센, 벤 호로위츠. 세사람모두 가상화폐와 AI에 관심이 있거나 연계돼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세계적인 부호 일론 머스크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밝히고 기부금 모금 활동에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정치 기부금을 꺼렸던 머스크가 이번에 그가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밝힌 것이다. 그는 과거 버락 오바마와 악수를 하려고 6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 적도 있다고 했다. 2018년에는 자신이 정치적 중도라고 표현했었다. 또한 그는 2017년 기후 변화 정책 문제로 트럼프와 결별하면서 ‘백악관 비즈니스 카운슬’을 탈퇴하기도 했다. 그가 트럼프로 돌아선 계기중 하나는 바이든의 백악관 초청에서 제외된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테슬라의 전기차는 그동안 트럼프로부터 비싸고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거듭 비판을 받아 왔지만 이제 머스크의 사업 방향은 로봇과 AI 쪽이고 트럼프는 이의 적극 육성을 얘기해 왔다.

또한 그는 오랫동안 금융 당국의 가상화폐 규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 왔다. 게다가 2년 전 백악관에서 열린 비즈니스 미팅에 초대받지 못했다.

머스크가 운영하는 스페이스X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정부 사업을 수행한다. 그 때문에 그가 당선 가능성이 있는 트럼프와의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머스크 외에 투자자 마크 안드레센과 벤 호로위츠, 암호화폐 업계의 거물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 등 거물급 벤처 투자자들과 테크 업계 리더들이 트럼프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물론 이런 흐름을 보편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2021년 미 의사당 폭동 이후 기업들이 트럼프와 거리를 두던 몇 년 전과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스타트업 투자, 암호화폐와 AI 분야의 큰손인 안드레센과 호로위츠의 트럼프 지지는 그런 분위기를 대변한다.

배경엔 실리콘 밸리의 이기주의

민주당은 바이든 행정부가 백만장자와 미실현 자본 이득에 대한 새로운 세금을 제안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테크 업계의 정치적 지지가 달라진 것은 이기심의 발로”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빅테크 기업 노동 조직을 포용했고, 리나 칸 컬럼비아대 법대교수를 FTC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등 반독점 사안 등에 대해 테크 기업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게 사실이다. 이로 인해 일부 테크 업계 리더가 등을 돌리게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업가 마크 큐반은 트럼프의 약진 이유로 “비트코인 플레이”를 꼽는다. 이와함께 민주당의 테크기업 규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테크 창업가들의 정치적 견해를 연구해 온 닐 말호트라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2017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테크 업계 리더들은 규제 문제에 관한 한 공화당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친트럼프적 분위기를 보였다고 해서 트럼프가 백악관에 갔을 때 안전할 것이라는 징후는 없다. 트럼프 진영과 전직 참모들이 초안을 작성한 ‘프로젝트 2025’의 리더십 위임안은 보수주의자들이 테크 분야의 적들을 처벌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연방거래위원회(FTC) 챕터에서는 유럽의 덜 우호적인 규제 환경을 모방할 것을 권장한다. 트럼프도 구글에 대해 “무엇인가를 할 것”이라고 말했고, 러닝메이트인 J D 밴스도 직설적으로 구글의 해체를 촉구했을 정도다.

실리콘밸리 테크 리더들의 전략적 침묵은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과 재선될 경우 그가 받게 될 호의와 처벌에 대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빅테크의 베팅이 트럼프로 기운다면

실리콘밸리 테크리더들의 ‘전략적 침묵’이라는 도박에도 위험은 따른다.

과거 대통령 재임 당시 트럼프는 세금 감면과 반노동 성향의 관료들에게 노동권 행정을 맡겼고 전반적으로 탈 규제 형태의 정책으로 산업계의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틱톡을 금지하며 중국과 무역 전쟁을 시작했고, 테크 기업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이끌었다. 어떤 면에선 이전 행정부보다 훨씬 더 개입주의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랬던 트럼프가 이번에는 공화당 기존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틱톡 금지 및 암호화폐와 같은 사안에 있어선 좀더 완화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데이비드 브록먼 캘리포니아주립 버클리(UC버클리)대 정치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2016년에도 선거운동 때는 비교적 온건했다가 취임 후 극단적인 정책을 펼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따라 트럼프의 대중적 지지가 내려갔고 공화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월 가와의 관계도 악화했다고 지적했다.

이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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