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의 투명망토? ‘메타물질’의 세계

소설 <해리포터>의 주인공 해리와 친구들은 모습을 감추고 활동해야 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투명망토를 입고 활약한다. 투명망토를 쓰면 몸은 사라지고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눈치챌 수 없게 만든다. 90년대에 유행했던 게임 <스타크래프트>에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특별한 기술이 등장한다. 바로 다크템플러의 투명위장 기술이다. 더 옛날이야기를 찾아보자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 나오는 기게스의 반지를 떠올릴 수 있다. 반지를 낀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마음대로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렇듯 인간은 몸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고자 하는 욕망은 아주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시도되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것이 이제는 현실에서 과학의 힘을 빌려 투명해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메타 물질(meta materials)’ 덕분이다.

해리포터의 투명망토? 메타물질의 세계


‘메타 물질’은 자연에 없거나 쉽게 찾을 수 없는 특성을 가지도록 사람이 만든 물질을 말한다. 메타(meta)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뒤에(after), 혹은 넘어서(beyond)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이다. 메타물질은 물질을 뛰어넘는 물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메타물질의 만듦새는 인위적으로 물질의 물성을 설계하는 데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타 물질’은 자체적인 물성보다 구조에 의해서 특이한 물성을 띄게 되는데, 이 '구조' 설계가 ‘메타 물질’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파동과 관련된 메타물질이 되기 위해서는 물질 구조에 반복되는 세부 구조가 있어야 하며 이 세부 구조 사이의 간격이 입사 파장보다 매우 작아야 한다. 어떤 원자들이나 물체들의 집합체가 물질인지 아닌지는 제어하려는 파장이 결정하기 때문에, 파장보다 간격이 매우 작아야만 물질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시광선 파장이 400~700nm 정도라면, 가시광선을 제어하기 위한 ‘메타 물질’은 그것보다 작은 100nm 정도가 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메타 물질’은 기존의 천연물질로는 실현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전자기적 물성을 제공할 수 있기에 광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주로 전자기파와 관련된 물질을 많이 만들긴 하지만, 음파나 열전도 등 다른 여러 가지 파동에 대응하거나 특수한 물리적 특성을 지닌 ‘메타 물질’도 연구하고 있다. 덕분에 투명망토처럼 지금까지 상상 속에서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물리현상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투명망토는 어떻게 ‘메타 물질’으로 구현되었을까? 먼저 우리가 물체를 보기 위해서는 빛이 물체에 닿아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오거나, 빛이 흡수되어 검게 보이거나, 혹은 통과하면서 꺾여 왜곡되게 보이게 된다. 이때, 메타물질로 빛의 방향을 꺾는다면, 빛을 다른 곳으로 흘러가도록 여러 개의 길을 ‘메타 물질’으로 설치해버린다면 빛 반사는 이루어지지 않으니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이 1967년 러시아의 물리학자 빅토르 베셀라고가 낸 아이디어였다. 자연과 반대되는 특징을 가진 물질이 있다고 상상하고, 어떤 물리적 특징을 가지며 이것을 어느 분야에 응용하면 좋을지 제시했었다.

1990년대가 되어 영국 임페리얼 대학의 물리학자 존 펜드리 교수가 군용 스텔스 기술을 조사하다가 방사선을 흡수하는 재료 특성이 물질의 분자나 화학 구조가 아니라 물리적 형태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질 내부 구조를 아주 미세하게 변화시키면 물성이 바뀐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렇게 만들어지는 물질은 기존의 물질을 뛰어넘을 거라는 의미로 '메타 물질'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펜드리는 일반 물질의 결정 구조와 비슷하게 특정 형태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인공 구조물, ‘메타 물질’을 고안하게 된다.

지난 2006년 미국 듀크대학 데이비드 스미스 교수 연구팀은 드디어 '투명망토'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지름5cm, 높이 1cm의 작은 구리관을 ‘메타 물질’로 만든 고리로 둘러싸고 마이크로파를 쐈더니 레이더에서 이를 감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이크로파는 구리관에 부딪히지 않고 그냥 흘러가 버렸다. 특정 조건에서만 작동한다는 한계성은 있었지만, 실제로 투명망토는 실현된 것이다. 이후 2015년에는 미국 UC 버클리 대학 연구팀이 3차원 입체 물체를 가시광선 영역에서 사라지게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물질을 뛰어넘는 물질로 상상을 실현시키는 메타물질은 인류의 오랜 욕망인 '보이지 않게 하기'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이론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실험실상에서 메타물질로 투명망토를 만들어 물체를 사라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투명망토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기에 아직까지는 가격이 너무 비싸고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메타 물질’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날은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포항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 화학공학과 노준석 교수는 "(메타물질을 이용해) 카메라 메타렌즈를 대량생산해 낼 수 있는 기술개발까지 왔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기존 스마트폰 카메라에 들어가는 1cm 두께의 적외선 굴절렌즈를 1만 배나 얇은 1㎛로 만들었다. 이 기술을 적용한다면 카메라가 툭 튀어나오지 않은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기술성숙도 9단계 중 6~7단계까지 올라 최종 상용화에 근접한 상황으로, 초박막 메타렌즈를 저렴하고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까지 개발되었다.

노준석 교수는 새로운 기술을 사람들이 사용하기까지 50여 년이 걸린다면서 "30년 후에는 ‘메타 물질’이 없으면 일상생활을 말할 수 없는 세상이 오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55년 전에 처음으로 상상하게 되었던 ‘메타 물질’, 비록 완벽한 투명망토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분야로 뻗어 나가며 우리 생활에서 만날 날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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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오베이션 대표

insu@weinteract.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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